▲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꾸날라(Kuṇāla) 자따까 안에 있는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Jātaka No. 536)다. 부처님께서 꾸날라 호숫가에 계실 때, 세속에 두고 온 여자들 때문에 우울에 잠겨 있는 500 비구들을 깨우치기 위해 설한 것이다. 부처님은 옛날 3500마리의 암컷을 거느린 꾸날라라는 새로 살았던 과거생을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비구들이여! 나는 축생으로 산 적이 있었지만, 여자들의 부도덕 등을 잘 알고 있다”고 하시며, 500 비구들에게 또다른 전생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옛날 와라나시에 잘 생긴 깐다리(Kaṇḍari)왕과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자따까 245에 해당하며 근본방편의 전생이야기(Mulāpariyāya Jātaka)로, 부처님께서 유가제[Ukkatha] 근처의 숲 속에 계실 때 교만심에 가득찬 자들을 교화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곳에 계실 때 3베다에 능통한 바라문 500명이 출가해 경전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부처님께 문안도 하지 않고 부처님과 같다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부처님 곁에 와서 앉자 부처님은 근본방편경을 8단으로 나누어 설법했으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로 500명의 수행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사왓티의 한 부자가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애통해하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잡비유경』에 그 내용이 전한다. 옛날에 보살은 부자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름이 수자따였다. 성장하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그의 죽음을 무척이나 애통해 했다. 할아버지를 화장하고 뼈를 거두어 장례 지낸 후에도 아버지는 재산이 넉넉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 무덤에 바치고 슬피 울면서 나날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본 수자따는 슬픔에 잠긴 아버지를 깨우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수자따는 죽은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자따까 488번째 이야기(Bhisa jātaka)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욕망을 일으킨 수행자를 깨우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옛날 보살은 큰 재산을 가진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에게는 여섯 명의 남동생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가 성인이 되자 부모님은 혼인을 해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보살은 출가하기를 원했다. 부모님은 다른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했지만, 그들 역시 세속 생활보다는 출가를 희망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보살은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동생들과 하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아름답게 꾸민 여자를 보고 고민하는 수행자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 자따까에는 두 개의 제목이 있는데, 하나는 자따까(山鷄王, Kukkuṭa-jātaka)이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 자따까(猫, Biḍāla--jātaka)이다. 닭 본생은 보살에게 중점이 놓인 제목이다. 부처님은 “여자는 남자를 유혹해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파멸로 이끄는 고양이 같다”고 하시면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옛날에 보살은 닭으로 태어나 수백 마리의 닭들과 함께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속세를 떠나 출가 수행하는 것에 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옛날에 보살은 마가데바 왕으로 성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8만4천년마다 왕자나 부왕(副王) 또는 대왕으로서 나라를 통치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발사에게 “내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보이면 나에게 알려다오”라고 말했다.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발사는 한 개의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왕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이 말을 듣자 왕은 백발(白髮)을 뽑아서 보여달라고 했고, 아직 8만4천의 수명이 남아 있었지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출가를 결심했다.
▲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 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 데와닷따의 자비심 없음에 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옛날에 보살은 많은 무리를 이끄는 코끼리 왕으로 히말라야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메추라기 한 마리가 코끼리들이 배회하는 곳에 알을 낳았다. 새끼들이 아직 날지 못할 때, 코끼리 왕과 그 무리들이 먹이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혹시 코끼리들이 먹이를 찾다가 새끼들을 밟아 죽일까 고민하던 메추라기는, 두 날개를 모아 합장하고 코끼리 왕에게 자식들을 보호해 주기를 간청했다. 코끼리 왕은 발로 새끼 메추라기들을 덮어 보호했고, 코끼리 무리가 모두 지나가자 “내
▲바르후트 탑, 기원전 1세기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이 전생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아내의 유혹에 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옛날에 바라나시의 산속에 수행자(바라문, 仙人)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변을 보다가 정액을 흘리고 말았다. 바라문 뒤를 따르던 암사슴이 풀에 묻은 그것을 먹고 임신해서 새끼를 낳았다.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사람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각(一角) 또는 독각(獨角)이라 불렀다. 사슴이 아이를 선인의 처소에 버리고 가자, 선인은 자신의 자식임을 알아보고 정성을 다해 키웠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에게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 것을 충고했고, 부친의 유언대로 수행에 전념한 아들은 다섯
▲남인도, 2~3세기, 첸나이주립박물관 부처님은 전생에 베산따라(Vessantāra, 須大拏) 태자인 적이 있었다. 용모가 뛰어났고 자비와 효성이 지극 했으며, 항상 보시를 행해 뭇 생명 구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의복과 음식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것을 주었고, 여러 가지 진귀한 보배를 구하면 즉시 그것을 베풀었다. 이런 태자의 보시행의 향기가 멀리 퍼져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인 부왕에게는 용맹이 뛰어난 흰 코끼리가 한 마리 있었는데, 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다. 번번이 싸움에 진 이웃 나라에서는 그 대책을 논의했다. “태자가 어질어서 구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하니, 바라문들을 보
▲2~3세기 경, 첸나이주립박물관, 남인도 부처님은 전생에 500명의 코끼리를 거느리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코끼리 왕인 때가 있었다. 그는 히말라야 산중 아름다운 연지(蓮池)가 있는 곳에서 코끼리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코끼리 왕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특히 첫째 부인을 유난히 사랑했다. 어느 날 물 속에서 연꽃을 얻자 첫째 부인에게 주었다. 질투를 느낀 둘째 부인은 남편인 코끼리 왕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후 인간 세상에 태어나 국왕의 아내가 되었다. 왕궁에서 전생의 일을 기억해 낸 왕비는 코끼리 왕을 죽일 계획을 세운 후, 코끼리 왕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사냥꾼에게 상아를 잘라
▲1세기 경, 산치대탑 탑문, 인도 부처님은 전생에 샤마(Śāma)라는 효심 지극한 청년이었다. 그는 연로한 눈먼 부모를 모시고 산속에서 살았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목이 마르다고 하자 샤마는 물을 길러 갔다. 그 때 가이국(迦夷國)의 왕이 활을 쏘아 사슴을 잡으려다가 잘못해 샤마의 가슴에 화살을 맞추고 말았다. 그는 “누가 한 화살을 가지고 세 사람을 죽이느냐? 우리 부모님은 늙으셨고 또 두 분 모두 눈까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없어지면 그분들도 함께 돌아가실 수밖에 없다”고 슬피 울었다. 왕이 그 소리를 듣고 말에서 내려 “내가 한 나라의 힘으로 너의 목숨을 구할 것이다. 부모님 계신 곳을 알려 주면, 내가 사과하고자
▲2세기 경, 아마라와티 출토, 남인도 첸나이주립박물관 기원전 3세기 경의 아소카왕은 전륜성왕의 대명사로 여겨지는데, 인도를 통일한 후에는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무력이 아닌 법력으로 다스리고자 했다. 그는 불교 성지마다 아소카 석주를 건립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 세운 것이다. 이와 함께 아소카 왕이 이룩한 불교미술 관련 대표적인 업적은 8만4천탑을 세운 일이다. 근본팔탑(根本八塔)은 부처님 열반 이후 그의 사리를 공평하게 여덟으로 나누어 세운 탑을 말한다. 아소카왕은 근본팔탑을 열어서 사리를 꺼내 8만4천 탑을 세우고자 했다. 아소카왕은 라자가하로 가서 아잣타삿투 왕이 묻어 놓은 사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