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전국을 강타했던 ‘힐링 열풍’은 올 한 해도 그대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 만큼 지난해 불었던 ‘힐링’은 사회적 이슈가 아닌 사회가 짊어지고 타개해 나가야 할 화두였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간의 흐름, 적어도 출판문화 흐름에 한정해 보면 자기계발 부문에서는 웰빙 그리고, 힐링으로 변화해 왔다. 그 변화 속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힐링’이란 용어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등장한 건 1997년, 동아일보 ‘21세기 시사용어’일 것이라 사료된다. 당시의 용어는
작년 가을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신 후 최근 진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6 살배기 외손자가 집에 들어서면서 하는 수작이 가관이다. 외조모가 문을 열어주면 “이서방 계신가?”하고 묻는다. 다음에 장모님이 계신 방문을 열면서 “헬로 아무개”하고 이름을 부른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수작에 폭소가 터진다. 이서방은 장모님에게 배웠다.“헬로 아무개”를 번역하자면 “안녕하신가 아무개”가 되겠다. 6살이면 이제 인생에서 걸음마를 시작하는 나이다. 그녀석이 90을 넘겨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증조모에게 안녕한가를 묻고 있는 것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말이다. 대학교수들이 본 2013년이 바로 도행역시다. 그 대학교수들이 2013년 초 고른 고사성어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이었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으로 2013년이 희망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주의를 통한 복지사회의 구현을 약속한 새 정부는 미래로 나아가자는 국민의 바람(제포구신)을 나 몰라라 하고 과거로 곤두박질치는 모습(도행역시)을 보였다. 이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6월 지
철도노조가 조계사로 들어오고, 조계종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화쟁위원회가 대화로 문제를 풀게 하는데 나서는 등 숨 가쁜 과정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부에서 원칙을 내세우며 수서발 KTX법인 면허 발급을 결행하면서 양자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이 됐다. 그러한 극단적인 대립을 중재하려고 다시 바쁘게 일정을 잡는 상황에서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면서 상황은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와 다른 한쪽의 일방적인 굴복의 모습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투쟁이 어떻게 진행되며 어떻게 끝나는가, 또 어떤 모습으로 되어야
진실과 화해의 큰 길. 새해 조계종 총무원의 다짐이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신년사는 붓다가 모든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화쟁과 중도의 가르침으로 연 평화의 길을 원효 스님과 간디, 만델라를 비롯한 인류의 지성들이 이어왔다고 밝혔다.조계종이 불교인 아닌 사람들에게 ‘문’을 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간디와 만델라까지 포함해 인류의 지성들을 두루 아우르는 접근은 신선하다. 조계종은 다른 종교에도 적극 다가갔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의 호암산 산문에는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일찌감치 걸렸다. 총무원은 성탄절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자랑스러운 불통(不通)’이 연일 세간의 지면에 올랐다. 형용모순의 이 말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역설’이라 항변할 수 있겠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정치에 견제비판을 해온 사람들은 ‘아집’이라 주장할 수 있겠다. ‘자랑스러운 불통’이 터져 나온 그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하는 일 말고는 다 번뇌다. 국민만 바라보고 묵묵히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 한 쪽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고독한 수행인이 일갈하는 듯한 ‘소신’이라 할 수 있겠고, 다른 한 쪽은 ‘독선’이라 할 수 있겠다. 역설과 아집, 소신과 독선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유가 있다. 이정현 수석은 ‘저항에 대해 굽히지 않는 게 불통
12월이 왔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시간이다. 고향에 작은 사찰이 있다. 몇 해 전에 들렸을 때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있었다. 그 절에서 보내준 캘린더를 안방 벽에 걸어두고 매월 한 장씩 넘기며 보냈다. 11월 달력을 넘기니 부처님의 초상이 있는 12월이 펼쳐졌다. 문득 올해 부처님이 줄곧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에게 20세기 팝 뮤지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물으면 주저 없이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이라고 할 것 같다. 처음 들은 그의 음악은 ‘42년의 여름(Summer of 42)’이라고 기억한다. 그 아름다운 선율에 내 영혼이 한없이 먼 곳으로 표류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들은 것들이 ‘네 마음의 풍차(Windmills of Your Mind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먼저 나라밖은 커다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면서 동아시아가 갈등의 도가니가 되었다. 중국 방공식별구역의 일부가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과 겹치는데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이어도가 포함되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대만 일본이 서로 자기네 땅이라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중국이름으로 다오위다오)가 포함되어 대만과 일본이 반발하고 있다. 주일미군의 비행훈련구역과 겹치는 미국도 최강의 전폭기인 B-52를 동원해 무력시위에 나섰다. 왜곡된 NLL 논쟁에 남북관계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그 사이 핵과 미사일이 증강된 북한의 움직임은 시민들의 안보불안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나라 안을 뒤덮은 먹구름은 더욱 심각하다. ‘제2의 유신’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이끄는 이번 집행부의, 아니 조계종 전체의 앞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봉은사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들이 바로 그것이다. 봉은사 문제는 단순히 한 사찰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난 집행부 때의 뜨거웠던 사태는 수도권 포교의 핵심이며, 그러한 위치를 고려해 조계종 직영사찰로 지정한 봉은사가 제대로 그 위상을 지닐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돼 있었다. 그러니 그 봉은사가 또다시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직영사찰 전환 문제로 홍역을 앓으며 국민의 불교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던 봉은사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는 것은 사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조계종의 위상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해 온 30대 노동자 최종범.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말이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천안센터 사장과 고인의 전화 통화내용은 충격적이다. 냉장고 소음을 점검하던 중에 ‘고객’이 고인의 태도가 ‘불량’하다며 서비스센터에 항의했다. 센터 사장은 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센터에서 사과했다”며 욕설을 퍼부은 뒤 “(고객을) 칼로 찔러서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든” 아무튼 더는 항의가 없도록 하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친절’한 삼성전자 서비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린다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다.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심정이나 기분의 일부분을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의 내리려 하는 건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무리하기 가장 어려운 감정은 무엇일까? 기쁨(희.喜)과 슬픔(애. 哀), 즐거움(낙. 樂)과 분노(憤怒)는 그래도 명확하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사랑은? 그 어떤 철학자나 예술인도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해 내지 못했다. ‘아낌없이 줄 수 있어야’사랑이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 하지만 이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나타낼 뿐 정의 내린 건 아니다. 국립국어원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사랑 정의는 이러했다. ‘이성의 상대에게
어우야담(於于野譚)은 이조 중엽 유몽인(柳夢寅)의 저술로 대표적인 설화문학의 하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몽인의 고조부 호지(好池)는 용력이 대단하여 소년 시절 남이(南怡)장군과 다음과 같이 그 우열을 겨루었다 한다. 즉 서로 나뭇가지로 깍은 화살로서 발바닥을 쏘아서 발가락 하나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갑(甲), 움직이면 을(乙)로 하자고 약속했다. 먼저 남이가 발바닥을 문지방에 걸쳐놓고 유호지가 활을 힘껏 당겨 남이의 발바닥을 쏘았는데 남이는 나무로 깎아 만든 발처럼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갑을 되었다. 다음에 남이가 유호지의 발을 쏘았는데 발가락 하나를 움직였고 결국 그가 을이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갑과 을을 정했다고 한다. 해학적이고 가히 대인의 도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