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씀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권불 10년’이 아니라 ‘권불 5년’이다. 아무리 더하고 싶어도 최고의 권세를 상징하는 대통령은 5년 이상 할 수가 없고, 그것도 단 한번으로 끝이다. 욕심 같아서야 두 번 세 번, 아니 어느 불행한 대통령처럼 부하의 손에 총 맞아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오래오래 해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겠지만, 아이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천만의 말씀이요, 만만의 콩떡”,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명박’이라는 분이 대통령이 된 뒤 우리 불교계는 그야말로 지난 4년 몇 개월이 50년 세월만큼이나 지겹고 지겨웠다. ‘고소영 정권’이니, ‘영포라인’이니, ‘하나님께 서울봉헌’이니, ‘명박산성’이니 해괴한 유행어를 만들어내
‘편안한 마음으로 취하고 버리는 사이, 그 두 가지 경계에 휘말린다.’ 중국 지공 선사의 ‘대승찬’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편안한 마음(안심. 安心)’이란 선사들이 누누이 강조해 왔던 ‘평상심(平常心)’이나 ‘평온심(平溫心)’과는 다른 개념이다. ‘깊은 사유 없이 내는 마음’,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 없이 내는 마음’ 등을 이른다. 한마디로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마음에 들면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자신이 ‘버리고, 취한 것’에 스스로 걸려든다는 점을 지공 선사는 짚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으로 촉발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아직은 찻잔 속 회오리로도 볼 수 있겠지만 갈등 국면이 더 심화될 경우 허리케인
지난 달 중순 장마철이 끝난 후 시작한 폭염과 열대야로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지속되고 있다. 기상청은 금년 여름이 1994년 이후로 가장 덥다고 한다. 필자는 1970년대 말 캐나다 서해 밴쿠버섬의 아름다운 항구 빅토리아에서 보낸 적이 있다. 시애틀과 밴쿠버를 아우르는 이 지역엔 검푸른 북태평양과 만년설이 덮인 높은 산들의 풍광이 있다. 고위도라 여름엔 밤이 짧고 맑고 시원한 날들이 지속하여 마치 피서지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1990년대의 멜로드라마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출연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서울과 달리 시애틀엔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없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열대야가 아니라 상처한 남자와 약혼자를 둔 여인의 운명적인 사랑 때문에 일어났을
조계종 화쟁위원회 제2기 위원회 활동이 시작됐다. 지난 1기 화쟁위원회는 조계종의 내부 기구이면서도 종단 내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적·사회적 갈등 문제 해결에 앞장서 내외의 관심을 받았기에, 이를 이어 시작하는 2기 화쟁위원회 활동과 행보가 어떠할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2기 화쟁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상과 노선이 필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충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화쟁위원회 활동은 봉은사 사태에서부터였고, 일단은 그 사태의 원만한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화쟁위원회가 종단 내부 갈등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여망도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일 수가 없다. 화쟁위원회가 조계종단의 기구이기 때문
대통령 선거가 다섯 달 남짓 남았다. 각 정당들은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절차들을 밟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8월 20일에 후보를 선출한다. 다섯 명이 출마했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워낙 강해 하나마나한 경선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완전국민경선을 치르기로 한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보다 한 달 늦은 9월 23일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민주통합당은 모두 일곱 명이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 비례대표 경선부정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9월 중에 후보를 확정할 방침이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이 출마의 뜻을 접은 것은 경선 규칙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서 당원의 뜻과 국민의 뜻을 1대 1로 반영한다. 선거인단은 대의원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건, 가톨릭을 믿건, 개신교를 믿건, 회교를 믿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공직자(公職者)가 특정 종교의 광신자(狂信者)가 되어 공무(公務)에 영향을 끼칠 만큼 종교편향자라면 이것은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망언을 해서 불교도의 공분을 샀거니와 얼빠진 포항시장, 서울의 성북구청장 등 일부 공직자들이 공직을 이용해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국민들이 낸 세금을 특정 종교선교에 낭비했는가 하면 충남 당진군에서는 군 예산으로 합창단을 운영하면서 특정종교의 찬송가를 부르게 하는 망발을 일삼았는가 하면 일부 극단적인 공직자들이 이른
한 지인의 메시지가 휴대폰을 통해 들어왔다. ‘그동안 고마웠소. 먼저 갑니다. 미안합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만 울릴 뿐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일언이 스쳐갔다. 유서는 ‘지금 나를 봐 달라’는 마지막 메시지라는 사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1년 동안 자살하는 사람은 1만4000여 명이라고 한다. 34분에 한 명이 자살한다는 얘기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섬뜩한 말이 거북스럽지만 통계는 이를 방증하고 있다. ‘지식채널 e’를 통해 알게 된 ‘남겨진 사람들’이야기는 더 충격적이다. 한 사람이 자살했을 경우 그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은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10명에 이른다. 한 해 자살 유가족이 10만여 명에 이르는 셈이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들을 옭아맨다.
1970년대의 명화로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가 출연한 대부(Godfather)가 있다. 이 영화는 이태리 시실리출신의 마피아 패밀리들이 미국에서 벌이는 범죄행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대부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유학 중 이 책을 읽은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소설 표지의 뒷장에 발자크의 다음 말이 있었다. “모든 큰 재산 뒤에는 범죄가 있다” 최근 세칭 백양사도박 몰카사건은 비단 불자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조계종의 지도자급 스님들이 거액의 도박판을 벌려 조계종의 현 집행부가 썩을 대로 썩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 출가승을 비구(比丘)라고 부른다. 그 의미는 걸사(乞士)라는 뜻이다
지난 6월14일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가 개최한 ‘출가제도 개선과 출가자 활성화 공청회’에서 발제자들 대부분이 출가에 연령과 장애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원론적으로 보아 당연한 이야기이다. 온 삶을 깨달음을 추구하는데 바치기로 결단하는 출가에 무슨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결심의 확고함을 기준으로 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출가의 연령 등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공청회를 연 이유가 그런 원론의 확인에 그치고자 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겠다. 출가자 수의 감소, 출가자의 자질 문제 등을 함께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현실적인 대안에만 몰두하다보면 큰 원칙을 저버릴 위험이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겨우 여섯 달 남짓 남았다. 한국정치의 역동성이 워낙 강해서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대선가도에서 단연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대선출마를 밝힌 이들이 있고, 자천 타천으로 여러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외의 다른 주자들은 한참 뒤쳐져 있다. 그러다보니 현 단계 한국정치를 끌어가는 힘은 ‘박근혜 대세론’이다. 4.11 총선은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의’ 선거였다. 의석이 100석도 되지 못할 거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당 이름까지 바꿔야 했다. 선거도 당의 이름으로 치르지 못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름으로 치렀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서울시
서울특별시 가운데서도 ‘부자들의 특별구’로 알려진 강남 3개구의 한곳인 서초구청이 정신나간 짓을 되풀이하고 있어 특단의 조치가 요청되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 2010년 3월 ‘사랑의 교회’로부터 공공용 도로지하에 예배당 건립을 위한 도로점용허가신청을 받고 “도로법시행령상 지하실 건립에 해당된다”는 핑계를 내세워 해당 신축건물 가운데 325㎡를 기부채납 받는 조건으로 서초구 관내 ‘참나리길’ 도로(지하)점용허가를 내주는 정신나간 짓을 자행했었다. 그러나 이에 서초구 주민들이 “공공도로 지하에 특정종교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공공성에 위배되고 공익성을 무시한 위법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서초구민 297명의 연명으로 서울시에 서초구청의 위법행위에 대한 감사를 지난 4월 청구했고 서울시 시민감사 옴부즈만이 2개월
서울에서 만난 스님 한 분이 차 한 잔 하며 전한 일언이 가슴을 찌른다. “고속도로 주행 중 휴게소에 들러 물 한 병 사고 싶은데 도저히, 정말, 갈 수가 없더라고요!” 최근 조계종에서 터져 나온 ‘도박, 몰카’ 사건이 일으킨 파장은 크다. 실추된 조계종 승풍에 대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실추된 승풍은 다시 진작시켜야 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 법을 올곧게 세울 것인가이다. 하지만 이전에 간과하지 말아야할 게 있다. 왜,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옛 선지식이 나태한 후학들을 향해 던진 공통적인 사자후 한 마디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가사 입은 도둑.’ 능엄경에서는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팔아 의식주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