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4일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가 개최한 ‘출가제도 개선과 출가자 활성화 공청회’에서 발제자들 대부분이 출가에 연령과 장애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원론적으로 보아 당연한 이야기이다. 온 삶을 깨달음을 추구하는데 바치기로 결단하는 출가에 무슨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결심의 확고함을 기준으로 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출가의 연령 등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공청회를 연 이유가 그런 원론의 확인에 그치고자 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겠다. 출가자 수의 감소, 출가자의 자질 문제 등을 함께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현실적인 대안에만 몰두하다보면 큰 원칙을 저버릴 위험이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겨우 여섯 달 남짓 남았다. 한국정치의 역동성이 워낙 강해서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대선가도에서 단연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대선출마를 밝힌 이들이 있고, 자천 타천으로 여러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외의 다른 주자들은 한참 뒤쳐져 있다. 그러다보니 현 단계 한국정치를 끌어가는 힘은 ‘박근혜 대세론’이다. 4.11 총선은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의’ 선거였다. 의석이 100석도 되지 못할 거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당 이름까지 바꿔야 했다. 선거도 당의 이름으로 치르지 못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름으로 치렀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서울시
서울특별시 가운데서도 ‘부자들의 특별구’로 알려진 강남 3개구의 한곳인 서초구청이 정신나간 짓을 되풀이하고 있어 특단의 조치가 요청되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 2010년 3월 ‘사랑의 교회’로부터 공공용 도로지하에 예배당 건립을 위한 도로점용허가신청을 받고 “도로법시행령상 지하실 건립에 해당된다”는 핑계를 내세워 해당 신축건물 가운데 325㎡를 기부채납 받는 조건으로 서초구 관내 ‘참나리길’ 도로(지하)점용허가를 내주는 정신나간 짓을 자행했었다. 그러나 이에 서초구 주민들이 “공공도로 지하에 특정종교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공공성에 위배되고 공익성을 무시한 위법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서초구민 297명의 연명으로 서울시에 서초구청의 위법행위에 대한 감사를 지난 4월 청구했고 서울시 시민감사 옴부즈만이 2개월
서울에서 만난 스님 한 분이 차 한 잔 하며 전한 일언이 가슴을 찌른다. “고속도로 주행 중 휴게소에 들러 물 한 병 사고 싶은데 도저히, 정말, 갈 수가 없더라고요!” 최근 조계종에서 터져 나온 ‘도박, 몰카’ 사건이 일으킨 파장은 크다. 실추된 조계종 승풍에 대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실추된 승풍은 다시 진작시켜야 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 법을 올곧게 세울 것인가이다. 하지만 이전에 간과하지 말아야할 게 있다. 왜,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옛 선지식이 나태한 후학들을 향해 던진 공통적인 사자후 한 마디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가사 입은 도둑.’ 능엄경에서는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팔아 의식주를 구한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삭막했던 아파트 단지가 싱그러운 초록빛 나뭇잎들로 꿈결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장미, 찔레꽃, 철쭉, 영산홍들도 서로 시샘하듯 예쁜 모습들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니 사바세계의 초목들이 법계를 장엄하는 것 같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이 오신 날이니. 눈을 돌려 중생의 세계를 바라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 한둘이 아니다. 불자로서 가장 부끄러운 일은 조계종단의 지도자급의 스님들이 억대의 판돈으로 도박을 한 사건이다. 그것도 종단의 큰 스님의 열반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모셔야 할 49재 전날에. 출가란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대 출가 스님들이 시정의 범인도 차마 못할 일을 저지르다니
4.11 총선이 치러졌다. 총선 결과가 나오자 불교언론들은 당선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불자가 있는지 일제히 보도했다. 현 18대 국회보다 당선자가 줄었고, 개신교 당선자가 가장 많다는 사실도 전했다. 불자 당선자가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불자 당선자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불교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교세가 확산되는 것도 아니다. 또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될 정치인이라도 불자라면 무조건 축하해야 하는가. 이번 선거에서 불교계는 예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다른 종단과 함께였지만 시국선언을 통해 투표참여를 호소했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불시넷)는 “중생의 안락과 행복, 우리 불자들의 손으로 만들어갑시다”라며 불자들에게 투표참여와 바른 선택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반드시 투표하되 묻지마
1962년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이름아래 통합종단이 출범한지 이제 50주년이다. 그 통합종단 출범의 의의와 지금 통합종단이 처해있는 현실, 그리고 미래의 전망에 대해 생각하는 자리들이 연이어 마련되고 있다. 반백년이라고 하는 의미를 넘어서 진정 통합종단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뼈아픈 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그 밑바닥에는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통합종단의 출범은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의 암흑기와 일제 강점기 동안 정통성을 바닥까지 훼손시킨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진정한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이으면서 사부대중의 공동체로서 출범한 통합종단은 그 자체로 한국불교의 가능성을 드러내며, 또 미래의 가능성을 짊어진 커다란 상징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의 모 지역구에서 당선된 ‘문대성’이라는 사람이 모 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로 밝혀지면서 장본인인 ‘문대성’이 자기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해주었던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세상이 떠들썩했던 이 치사하고 더러운 ‘표절사건’은 ‘자진탈당’만으로 유야무야,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결국 남의 글을 훔친 ‘문대성’이 “기어이 국회의원을 해먹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다. ‘표절’이 대체 어떤 짓인가? ‘표절(剽竊)’이란 ‘훔치다’는 뜻을 지닌 표(剽)자와 ‘훔치다·도둑·몰래’ 등의 뜻을 지닌 절(竊)자가 합쳐진, 말 그대로 남의 글이나 창작물을 훔쳐다가 마치 자기가 쓰고 창작한 것처럼 행세한 행위로서 우리말로 쉽게 이
불자 국회의원 40명이 19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당당하게 자신이 불자임을 밝혔다는 건 높이 살만하다. 종교 색채에 따라 당선당락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신심과 불연이 깊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짚어볼 게 있다. 당선 전에는 ‘불자’였지만 국회의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선된 이상 ‘불자’이지만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한 사람을 헌법기관이라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정치역량을 고려하면 이러한 평가가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 역량은 커졌지만 난해해져 가고 있다. ‘사회의 다양성’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절보다 지금의 정치가 더 어려운 것은 국민 총화를 지탱할 국민적,
19대 총선의 결과가 드러났다. 선거 초반에는 이명박 정권의 실정으로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그 예상은 철저히 빗나가고 말았다.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되기 위하여 진보세력과 야권연대를 구축했지만 오히려 새누리당에게 과반수 의석을 넘겨주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건설적인 아이디어 없이 단지 타인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이번 총선이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선거의 목표는 이기는 데 있다. 그러나 단지 이기기만을 위한 야권연대 같은 어떠한 정치공학도 국민의 가슴에 어필하는 진정성과 아이디어 없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야권연
4.11 총선에 불교정당이 등장했다. 불교연합당(공식명칭 : 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이 지역구에 1명(서울 종로), 비례대표에 4명의 후보를 냈다. 비례대표 1순위인 이재열 대표는 법명이 장주 스님(포항 오어사)으로 조계종 중앙종회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이재열 대표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에도 출마했다고 한다. 기독교 정당은 선거 때마다 꾸준히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기독정신으로 신본주의정치 실현’이라는 구호를 내건 한국기독당이 지역구 없이 비례대표만 2명의 후보를 냈다. 지난 2008년 제18대 총선 때 한 지역도 빠짐없이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냈던 통일교계의 평화통일가정당은 없어졌다. 범종단적으로 만든 정당은 아니지만 불교정당의 등장과 선거 출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원래 불가는 세속의
세금을 거두는 일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형평성이다. 그런데 이 형평성의 문제에 있어서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종교인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았던 것은 종교인들이 공익적 활동을 하며, 그것이 모든 국민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전제 아래서였다. 그 믿음이 근본부터 흔들려버렸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가 종교인에게 과세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것이 이러한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제 종교인들이 진정 영적인 삶과 봉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정말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인가? 그러한 종교인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현실은 종교인도 하나의 직업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종교인들 가운데는 어떤 직업을 가진 이보다도 더 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