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불교는 무슨 힘으로 움직여가는가? 갑자기 이런 엉뚱한 물음을 던지는 이유가 있다. 불자를 움직여가고 불교를 움직여가는 적극적인 힘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걱정 때문이다. 불교를 알리는 홍보물이나 불교 언론들에 주로 등장하는 문구나 단어들을 검색해 보면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교와 관련하여 검색되는 주된 문구나 단어들은 아직도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현대사회의 소외문제, 물질문명의 폐해, 욕망을 떨쳐라, 마음을 닦아라…. 소외문제를 논하는 것은 좋지만 소외가 발생하는 근본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폐해도 마찬가지다. 물질을 폄하하기만 해서는 어떤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다. 욕망을 떨쳐라. 그럼 무슨 힘으로 살
결국 그토록 두려워했던 ‘스물 한 번 째 죽음’ 소식이 전해졌다. ‘정리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통해 반대투쟁을 전개하며 내건 ‘외침’이다. 그들의 절규에 사측과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사측은 노동자를 갈라놓았다. 해고할 사람과 해고하지 않을 사람, 그러니까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리해 놓은 셈이다. 함께 파업에 동참했던 ‘동지’도 정리해고 명단 발표 직후 ‘적’으로 변했을 뿐이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에 정부가 한 일은 하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내내 보여줬던 그 식 그대로였다. 경찰을 동원한 폭력 진압. 방패에 찍히며 울부짖는 노동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모든 책임은 노동자가 떠안았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 일이 있다.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물러나게 되고 부자는 반드시 가난하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별이 뒤따르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며 밝음은 반드시 어둠을 동반하나니 바로 이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니라.” ‘열반경’에 담겨있는 부처님의 이 경고야말로 나라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자비심이라고는 참새 눈물만큼도 없는 이명박대통령이 귓구멍을 활짝 열고 열 번 백번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2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공개 요청한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으로 아직도 구속되어 있는 가엾은 사람들의 석방청원을 즉각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총무원
명나라의 존경받던 재상 여문의(呂文懿)가 늙자 벼슬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술 취한 마을 사람 하나가 그의 집에 가서 큰 소리로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인이 취객을 관가에 고발하려하자 여문의는 그가 취했으니 다투지 말라고 하고 견디기 어려운 모욕을 무시하였다. 1년 후 그 취객이 중대한 죄를 짓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를 듣고 여문의가 크게 후회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그 날 관가에 고발하였다면, 그는 작은 형벌을 받고 각성하고 후회하여 그런 중죄를 짓지는 안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지혜롭지 않아 관용을 베풀어 그를 건방지고 잔인한 사람이 되도록 격려한 셈이 되었다. 지금 그는 사형에 처해졌다.” 최근 대구와 광주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들이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 청
이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 4·11 총선을 앞두고 정당과 정치인들은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높은 건물의 벽엔 예비후보들의 커다란 펼침막이 내걸렸다. 새벽 약수터나 출근길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는 어김없이 허리띠를 두른 예비후보들이 나타난다.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느 때보다도 큰 상황에서 각 정당들은 저마다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폭정으로 한나라당은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에 이어 선관위 누리집 디도스 공격 문제까지 겹쳐 한나라당은 흔들렸다. 다급해진 한나라당은 당헌 당규까지 바꿔가면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힘만으로 되살려내기에는 한나라당의 상처가
새해 들어 지관 큰스님의 원적이 있었다. 그분의 크신 인품과 행적을 돌아보며 우리 한국불교계가 지양해야할 몇 가지 문제들과 지향해야할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관 큰스님은 ‘학승’이라는 칭호가 따라 붙던 분이셨다. 왜 일반적인 고승대덕들처럼 상당법문 안하시냐는 물음에 “니나 많이 공갈치며 살아라…”하셨다는 일화는 우리 불교계의 문제점에 대한 그분 나름의 뼈아픈 통찰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종을 표방하는 불교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가? 공갈치는 불교가 되는 것이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것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라는 구분으로 선종의 우위성을 말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불교의 정신, 아니 선종의 정신으로 보더라도 마음 떠난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2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2.4%가 2012 희망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선택했다. 파사현정의 뜻부터 헤아려 보자. 파사현정에 접근할 수 있는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다. 중론을 지은 용수, 묵조선을 비판하며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 그리고 길장이다. 필자는 중국 수나라 길장이 ‘삼론현의’에서 밝힌 파사현정을 통해 그 뜻을 짚어 보고자 한다. 삼론현의는 삼론종의 근본경전으로 중론, 백론, 십이문론의 대요를 밝힌 책이다. 여기서 길장은 ‘삼론에는 비록 세 가지가 있으나 그 뜻은 단 두 가지 길일뿐이다. 첫째는 바른 도리를 드러냄이요(顯正), 둘째는 그릇된 도리를 타파(破邪)함이라’했다. 여기에 근거해 볼 때 파사현정이란 ‘그릇된 것은 깨고, 바른 것은 드러낸다’는
금년에도 지구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 7-8월에 서울에 집중 호우가 쏟아져 강남 일원이 물바다가 되었고, 우면산에 산사태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발생했다. 태국에는 장기간 대 홍수가 발생하여 수도 방콕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침수되어 국가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기상재난의 원인으로서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를 지목하고 있다.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생성되었고 지구상에 생물체는 약 35억 년 전에 나타났다. 기상학적 측면에서 불가사의 한 점은 지구상에서 생물체가 출현한 이후 기후가 뚜렷한 변화 없이 현재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35억 년간 태양의 복사에너지는 약 30% 증가했으나 지구의 기온은 생명체가 존속할 수 있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 유지되어 왔다. 지구의 기온이 단지 태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의 해 끝은 유난히 더 을씨년스럽다. 무역이 1조 달러를 넘었다지만 민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다. 정치는 더더욱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며, 자신은 서민생각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코웃음 칠 뿐이다.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한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나라당은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실이 드러나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야당도 혁신을 바탕으로 통합하려 애쓰지만 아직은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울한 세밑 풍경 속에서 새삼 평화를 생각해본다. 살롬(sa-lom;유대교), 에이레네(eire-ne-;그리스), 팍스(pax;로마), 화핑(和平;중국), 헤이와(平和;일본), 샹티(s、
국민들 대다수가 “평생 노력해도 제자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50%를 넘고,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해야 할 30대에서는 그 비율이 무려 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1년 통계청 사회조사) 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이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우리 대한민국이 어디로 나가고 있는 것인가? 심각한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렇게 신분이 고착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 결론은 뻔하다. 갈등의 폭발로 우리의 역사는 다시한번 부러져서 방향을 선회하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가장 큰 요인은 양극화일 것이라고 진단한 학자도 있다. 환경파
‘오늘’은 세상 그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날이다. 각기 세상과 맺은 인연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탄생의 기쁨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만남의 즐거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일본 대사관 앞에 모이는 할머님들의 ‘오늘’도 의미 있는 날이다. 수요집회 1,000번째를 맞기 때문이다. 할머님들의 ‘오늘’은 역사의 오늘이면서도 슬픔과 외침을 넘은 절규의 오늘이기에 가슴 한 구석이 시리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수요집회는 1992년 1월18일 시작됐다. 할머님들의 ‘절규’에 묻어 난 요구는 간단하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명예회복이다. 피해 보상도 중요하지만 오늘 모이는 할머님들에게 그 보상이란 것도 사실 일본의 ‘사과’ 다음 일일 뿐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피해 할머니 234명 중 169명이 세상을 떠났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한 젊은이가 참담한 얼굴로 찾아왔다. 그리고 이 비참한 세상의 중생을 제도하려고 정치를 하고 싶은데 길을 가르쳐달라고 청했다.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처님이 정치할 생각을 말라고 말씀했다. 사람은 오직 자기가 가진 것만을 남에게 줄 수 있는데, 젊은이의 얼굴에서 참담한 마음 밖에 찾아볼 수 없다고 말씀했다. 만약 그가 정치를 하면 그 참담한 마음으로 중생을 더욱 비참하기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좋건 싫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정치가 국가와 국민의 명운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정치를 위임하는 대의정치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