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는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스승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기도 한다. 부모님이 나의 육신을 낳아주셨다면, 스승은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격을 성장시켜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싱갈라까라는 젊은 바라문에게 육방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편 부처님께서 비구 수행자들에게 스승으로서 제자를 가르치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그 중에서 스승인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대놓고 “저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존자 밧
출가수행자를 나타내는 상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바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삭발(削髮)’일 것이다. 삭발은 그 자체로 출가를 뜻한다. 또 삭발은 번뇌를 끊임없이 끊어내는 일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부르기도 한다. 삭발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고 또 끈질기게 달라붙는 훈습과의 절연을 뜻하기도 한다.삭발에 담긴 이런 지중한 의미때문인지 삭발에 관한 이야기는 율장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사분율’의 ‘잡건도(雜犍度)’ 가운데 그때에 어떤 비구가 머리가 기니 부처님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건강검진을 받는다. 겨울이 졸린 듯 하품을 하고, 봄이 막 기지개를 켜고 기상하려는 순간에. 어쩌면 나 또한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빌려 한 해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의학적인 주문(呪文)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랬었다. 여태껏 봄은 언제나 ‘오는(生)’ 것이었지 결코 ‘가는(滅)’ 것은 아니길 희망했었다. 군대 가던 그해의 까마득했던 봄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이날치 밴드가 ‘범’ 내려온다고 소리치며 흥겹게 춤을 춘다. 내 눈에는 ‘범’보다 먼저 ‘봄’이 내려 왔지만, 뭐 ‘봄’이나 ‘
2004년 7월경 도난된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84 서고사(西固寺) 나한상 8구와 복장물이 2014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되돌아왔다. 서고사 나한상 4구가 경상남도 고성 옥천사 나한상과 함께 2014년 6월2일 서울 관훈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아트 옥션에 경매물품으로 나왔던 것이다. 우선, 나한상을 도난문화재로 압수한 후 숨겨진 불교문화재를 찾기 위해 끈질긴 노력 끝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의 전과가 있는 서울의 전 사립박물관장의 새로운 은닉처에서 2020년 7월에 서고사 나한상 4구를 추가로 찾았다.회수된 서고
‘철학’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 ‘philosophia’의 번역어인데, ‘지혜에 대한 사랑 (love of wisdom)’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혜란 과연 무엇일까. 지혜는 지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철학자들의 지혜에 대한 사랑과 불교에서 가르치는 지혜(智慧)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지혜롭다(wise)는’ 말은 ‘많이 안다’ 또는 ‘유식하다(knowledgeable)’와 의미가 다르다. ‘많이 안다’는 말은 주로 ‘정보를 많이 습득해서 숙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이것저것 많이 읽고 들으면 유식해질 수 있다. 한편
“뒤로 물러나야 이기는 게 뭐~게?”답은 ‘줄다리기’다. “많이 물러날수록 많이 이기는 게 뭐~게?”답은 ‘줄다리기’다. 줄다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리나라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가 우리 국민에게 협동을 가르쳐 왔다. 풍년을 비는 의식으로 행해 오던 놀이여서 농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대보름에 지방별로 행해져 왔다. 민속박물관에 비치된 줄다리기 줄 하나를 보기로 들자. 그 줄다리기 줄은 한 아름이 넘는 부피이다. 기능이 있는 마을 어른의 지시로 장정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짚을 모아서 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줄을 높은 나뭇가지에
움베르토 에코는 해박함과 명철함, 그리고 유머감각을 지닌 기호학자이자 소설가다. “백과사전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평을 듣는 첫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이후 활발하게 소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그가 “유동사회”라고 이름붙인 현재의 사회상을 펼쳐놓고 툴툴거린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렇다. 그는 위트있고 굳건하게, 그리고 쉬지않고 툴툴거린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이 미친 세상을 향해. 명민한 그가 꿰뚫어본 이 사회의 문제점은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통도사 산문에 들어 쭉 뻗은 아름드리 노송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무풍한송길을 걷노라면 푸른 기운이 감돈다. 길 가에 사열하듯 서 있는 소나무 길 위에는 소나무 호위 아래 추위를 견디고 숨은 듯 나지막이 들꽃들도 피어나고 있다. 절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매화가 너무 예쁘다고 하면서 지나갔다. 대여섯 살이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들어가면 활짝 핀 예쁜 꽃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그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과 금강계단도 있고, 보물로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는 종단이다. 조계종이라는 명칭은 혜능선사가 조계산에 머물러 가르침을 폈기에 만들어진 명칭이다. 따라서 조계산은 혜능선사를 상징한다. 달마대사를 통해 전해진 ‘직지인심견성성불’의 심인법(心印法)은 혜능선사를 정점으로 만발한다.혜능선을 일명 남종선이라고 부른다. 홍인선사의 문하에서 혜능과 함께 수행하던 신수선사가 북쪽에서 법을 폈으므로 이를 북종선이라 하고 혜능선사는 남쪽에서 법을 폈으므로 남종선이라 한다. 혜능의 남종선의 특징은 돈오돈수법이다. 이에 반해 신수의 북종선은 점수점오법이다. 돈오돈수가 단박에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飛일성갈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비(사나이 이르는 곳 모두가 고향인데나그네 긴 시름에 겨운 사람 몇 사람이던가?한마디 외쳐서 삼천세계를 갈파함에눈 속의 복숭아꽃 펄펄 나부낀다.)이 게송은 올곧게 독립운동을 하신 만해 용운(卍海龍雲, 1879~1944)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스님이 정사년(1917) 12월3일 밤 10시경 좌선 중에 홀연히 바람에 부딪혀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단박에 풀려서 얻은 시라고 알려져 있다.남아는 사내를 말
삼국통일전쟁은 당과 신라가 동맹하여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동맹관계였던 당과 신라 사이에서 백제의 옛 지역을 점유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됨으로서 삼국통일전쟁은 외세의 침입을 격퇴하기 위한 전쟁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나당전쟁은 전투의 치열함과 7~8년의 장기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에서 3국간의 항쟁에 못지않은 큰 희생을 치른 역사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전쟁은 전기의 삼국항쟁과 후기의 나당전쟁으로 단계를 나누어 이해할
정월보름을 맞이해 선방에서는 해제를 했는데 우리 복지관 어르신들은 집에서 강제로 결제 아닌 결제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선방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내려놓는 공부를 하는데 어르신들은 지난겨울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궁금해집니다. 나이든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 만난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편안하고 환했습니다. 코로나19로 집에 계시면서도 나름대로 공부를 하셨나 봅니다. 나도 내려놓으려고 부단히 공부를 하지만 경계에 당하면 마음속 밑바닥에서 욕심이라는 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고 때론
한때 아난다(Ānanda, 阿難) 존자는 웃띠야(Uttiya)라는 유행자(paribbājaka)에게 불교의 수행 원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여래는 ‘세상으로부터 [열반으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인도될 자들은 모두,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고, 지혜로써 마음의 번뇌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에 마음을 잘 확립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 요소[七覺支]를 있는 그대로 닦은 뒤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열반으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인도될 것이다’라고 압니다.”(AN.Ⅴ.195) 이처
승이 풍혈에게 물었다. “큰사슴[麈鹿]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 어찌해야 우두머리[主中主]를 쏘아 맞힐 수가 있습니까.” 풍혈이 말했다. “낚싯배를 저어서 소상강의 언덕에 도착해보니, 숨이 막히고 무료하여 해오라기에게 물어본다”일반적으로 법거량으로 제기되는 스승과 제자의 문답에서 의기투합하여 마치 상자와 뚜껑이 딱 들어맞는 경우라면 서로 찻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생뚱맞게 동문서답으로 전개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답의 본래의도로부터 동떨어진 결과가 초래되어 깨달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정당하게 평가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당한 평가란 주관적이어서,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된다. ‘도대체 정당한 평가란 무엇인가?’엄밀하게 말하면 ‘정당한 평가’란 주관적 관점에서 벗어나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다양한 생각과 느낌과 관념을 갖고 사실을 판단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맛지마니까야’에 ‘뽀딸리야의 경(Potaliyasutt
내 오른쪽 어깨에는 커다란 우두자국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콜레라, 장티푸스 등이 지금의 코로나19와 같은 공포였다. 친구들이 며칠 씩 학교에 오지 않으면 혹시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감염된 집은 붉은 깃발로 격리됐다. 예방주사는 팔이 짓무르도록 2~3일에 한 번씩 맞았다. 그래도 그 속에서 우리는 용케 살아남았다.이후로도 질병들은 새롭게 창궐했고 1990년대부터는 이름조차 생소한 조류인플루엔자(AI), 사스, 메르스, 신종인플루엔자를 비롯해 최근의 코로나19까지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혀 왔다. 원인이야 학자마다 다르겠지
쓰고 있던 건 다른 글이었다. 매체를 통해 조금, 아주 조금의 어눌함이 느껴지는 저 한국어를 들었을 때, 쓰던 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겹친다. 익숙지 않은 영어로 ‘우리’를 알리려 했던 그 해 5월 트럭 위 청년의 인터뷰가.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 밤 시가를 돌며 애끓는 어조로 호소했던 그 여성분의 목소리가. 그해 그 계절, 푸른 눈의 이방인이 사투를 벌이며 카메라에 현장을 담지 않았던들, 목숨 걸고 탈출하여 그 필름을 세계인 앞에 내어놓지 않았던들, 그날의 우리는 영영 잊히고 묻혔을 것이다. 그래서 고개 돌려 바라
Q. 저와 아내 모두 70대로 은퇴이후 자녀들도 출가시키고 부부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몸이 아플 때마다 약을 복용하는데 나이가 있기에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 준비를 하다가 아내의 약상자를 보게 됐습니다. 평소에도 복용하는 약들이 있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날따라 약의 개수가 많아보였습니다. 아내에게 무슨 약인지 물어보니 우울증 약이라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들으니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연금도 받아 노후 걱정이 없는데 왜 그런 약까지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화도 났습니
인도에서 개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마하바라타(Mahābharata)’에 등장하는 떠돌이 개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유디슈티라(Yudhiṣṭhira)는 쿠루왕조를 세우고 후손에게 나라를 물려준 후 천계(天界)에 이르는 길을 떠난다. 험한 여정 끝에 가족들은 모두 죽고 천계로 가는 마차에는 유디슈티라와 우연히 만난 떠돌이 개만이 오르게 된다. 천계의 신 인드라는 하늘에는 천한 개가 머물 곳은 없다고 하면서 개를 내리게 하지만 유디슈티라는 개를 버릴 수 없다며 자신도 마차에서 내린다. 이 이야기는 유디슈티라의 ‘동정심’이나 ‘자
서양 음악사에서 1685년은 상당히 중요한 해로 여겨진다. 바로크 시대 음악의 중심이 되는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게오르그 헨델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로크의 또 한 명 주요 작곡가인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는 역시 바흐와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스카를라티는 ‘근대 건반악기 주법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바로크 시대의 대표 작곡가인 동시에 훌륭한 하프시코드(Harpsichord,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악기로 건반을 누르면 플렉트럼이 현을 뜯어 소리를 낸다) 연주자였다. 나폴리에서 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