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단지 너무 익숙해져서 그만 잊고 지냈다. 숨 쉬지 않은 생명이란 게 가능키나 한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키면서 그게 우리 숨통까지 죌 거란 생각은 차마 못했다. 어쩌면 그 생각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기술이 우릴 구해줄 거란 생각에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쉼 없이 들숨 날숨 하는 바로 그 공기를 함부로 더럽혔다. 그리고 그 과보를 이제 받고 있는 중이다. 깨끗한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지를 요즘처럼 간절하게 느낀 때가 또 있을까 싶다. 보이
이 땅의 많은 숲들이 온통 헐벗었던 때가 있었다. 놀라운 건 그런 시절에도 사찰 숲은 울창하게 푸른 숲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민병갈 원장의 자서전을 읽다보면 1950년대 대한민국 산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미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우리 산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 땅에 정착했고 귀화해서 평생을 한국인으로 살다 갔다. 그가 묘사한 50년대 이 땅의 산림은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데다 땔감, 식량 등을 구하느라 온통 민둥산이 돼버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독 절이 있는 곳 주변의 숲은 아주 잘 보전되
1시간 전등 끄면 23억 절약기후변화는 전 인류의 문제소비 위한 소비로 환경오염냄비 속 개구리 같은 인류종교지도자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라이 라마 존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기후변화에 대해 언급한다. 기후변화는 한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 겨울 한파가 닥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을 개방하며 노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애썼다. 기후변화의 원인제공은 잘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가장 가난한 이들부터 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책임은 그것이 과학적이든 윤리적이든 결국 풍족한
깊은 겨울을 털고 숲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즈음 나무줄기에 귀를 대면 물오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어느 분야에서 한껏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이를 두고 ‘물이 올랐다’고 비유한다. 그러니 ‘물오르다’는 나무에서 배운 표현이 아닐까 싶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나무는 동해를 염려해서 줄기 속 수액을 비운다. 날이 풀리는 기운이 감지될 무렵 나무는 겨우내 비워두었던 줄기로 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2월이 끝나갈 즈음 단풍나무 줄기에 부리로 상처를 내고 흘러나오는 수액을 먹던 박새를 만난 적이 있다. 흘러내린 물을 손가락
생명평화, 이 말은 그 의미를 미처 알기도 전에 익숙해져버렸다. 너무 익숙해서 말이 담고 있는 뜻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 노노코씨 원전사고 후 변화사진에 방사능 위험 메시지 담아한국서 전시회…탈핵 순례 동참“나를 강하게 만든 건 아이들”지난주에 후쿠시마 6주기 사진전 ‘100인의 어머니와 아기 +9’를 기념하는 토크가 있었다. 나는 토크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이번 전시회의 사진작가인 카메야마 노노코 씨를 알게 됐다. 카메야마 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그 이전과는 180도 바
베란다에서 추운 겨울을 지낸 군자란이 막 꽃대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는데, 집안에는 장미, 튤립, 양귀비, 카네이션 등 활짝 핀 꽃들로 화사함이 가득하다. 거기에 프리지아의 싱그러운 향기까지 더해지니 봄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갑작스레 집안에 꽃이 만발한 까닭은 작은 아이가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들 덕분이다. 꽃다발 포장을 풀어 꽃을 꺼내서 크고 작은 화병에 꽃아 집안 곳곳에 두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화병에 꽂고 나니 남겨진 쓰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꽃을 묶었던 철끈부터 꽃다발을 예
초목에 움이 돋기 시작한다는 우수가 지났고 경칩은 멀지 않았다. 아직 기온이 차다해도 공기 속에서 묻어온 봄기운은 완연하다. 바쁜 일상을 잠시 밀쳐두고 제주로 봄 마중 다녀왔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땅이면서도 식생이 달라 이국적인 풍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는 휴가로, 출장으로 줄잡아 예닐곱 번은 다녀왔던 것 같다. 제주도에 가면 어디를 가야하고 무얼 먹어야하고, 하는 것들이 늘 따라다닌다. 뭍과 다른 문화의 영향도 클 거라 생각한다. 제주도에는 박물관도 정말 많다. 갈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단 박물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길을 걷다가 한 카페 유리창에 붙은 딸기 파르페 사진을 봤다. 칙칙한 겨울에 빨간 색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그 사진은 식욕을 자극했다. 딸기는 어느새 겨울의 제철과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런데 한 겨울에 딸기를 만나는 건 못내 불편하다. 몇 년 전 일이다. 유난히 추웠던 터라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장갑까지 낀 채 들른 마트에는 빨갛고 싱싱한 딸기가 박스로 쌓여 있었다. 영하의 기온에 봄 과일인 딸기를 만나고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궁금해서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한 박스 샀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지난 토요일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내 기억에 대보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럼 깨물기였다. 새벽에 잠이 깬 기척을 들은 어머니는 아직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우리에게 깐 밤을 건네주시며 ‘부럼을 깨물자’를 세 번 말하라고 하셨다. 눈이 채 떠지지도 않아 눈을 감은 채 밤을 씹다보면 잠은 슬그머니 달아났고 그러고 있는 모습을 식구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폭소를 터뜨리던 때도 있었다. 마을 명절이었던 대보름 풍속이제는 내 가족행사로만 한정공공 위한 새 아이디어 필요이웃과 함께하는 문화 창출부럼의 뜻도 모른 채 그저 해마다 정월
설 연휴가 끝나고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재활용을 분리수거하는 날이 있었다. 박스들이며 선물포장으로 쓰였던 것들이 산을 이루었다. 그토록 엄청난 양은 해마다 명절이 지나고 한차례씩 볼거리를 제공한다. 박스들 대부분은 찌그러진 곳도 없이 멀쩡해보였다. 고급스럽고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진 박스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선물만 빼고 고스란히 버려진 그 광경을 보면서 가을에 밤송이를 양쪽으로 벌려 밤톨만 빼어간 형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밤송이에 비유했던 생각을 얼른 취소했다. 밤송이와 선물포장용 박스는 애당초 격이 다르다는 데 생
어느 여름 날 이른 저녁을 챙겨주신 어머니께서 울밑에 심어 놓은 봉숭아 꽃잎을 따오시는 날이 있었다. 꽃잎과 봉숭아 잎을 절구에 놓고 찧으면 예쁜 꽃이 칙칙한 갈색으로 변했다. 나는 꽃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 칙칙한 것에 백반을 섞어 만든 것을 조금씩 덜어 어머니께선 우리들 손톱 위에 올리고는 헝겊과 무명실로 싸매주셨다. 우리 사 남매 모두 열손가락을 그렇게 싸매고 나면 봉숭아 꽃잎은 아주 조금 남았다. 어머니는 그걸로 당신 새끼손가락에 하나씩 물을 들이곤 하셨다. 어머니의 정성은 다시 생각해도 참 지극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젠 겨울이어도 눈 쌓인 풍경을 보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다. 겨울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들이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나온다. 아무리 겨울이 포근해도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터라 내 겨울의 기억은 여전히 매섭다. 손등은 쩍쩍 갈라지고 처마마다 굵고 긴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으며 판유리 한 장이 고작이었던 창에는 이른 새벽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의 성에가 들러붙었고, 어린 내 키를 훌쩍 넘는 폭설이 겨울이면 찾아왔으니까. 눈에 갇힌 날은 며칠이고 두문불출하고 지루한 방안 생활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두툼한 옷과 이
새날이다.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아주 산뜻한 마음으로 자리바꿈을 했다. 시계 바늘이 자정을 향할 무렵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합창했고 시계 바늘 두 개가 포개지자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몇 해 전 나는 그렇게 ‘새날’을 열었다.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새해, 새날을 나는 어떻게 경험해 온 걸까? 어릴 적에는 새해가 되기 전에 이런저런 계획들을 거창하게 세웠던 것 같다.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일이 허다했어도 계획을 세우는 시간만큼은 뭐라도 할 것 같은 기개가 충만 했다. 그
어느 날 아침밥을 먹던 우리 가족은 모두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그날을 이야기하자면 이랬다. 드물게 즐기는 내 취미는 우리밀로 빵을 굽는 것이다. 간만에 시간을 내어 구운 빵이었는데 하필이면 식구들이 먹을 짬이 없을 때를 맞춘 거였다. 급기야 그 빵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기 시작했다. 날도 따뜻했지만 밖에서 사온 빵이라면 아직 멀쩡했을 그 시간에 방부제 없이 만든 그 빵은 이내 곰팡이 세상이 돼버렸다. 아까운 마음에 어쩌나 싶다가 새들 모이대가 떠올랐다. 해서 빵을 잘라 일단 두 덩어리만 내 놓아봤다.
아이들 어릴 적에 책 귀퉁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어주던 옛이야기 가운데 ‘팥죽할멈과 호랑이’가 있다. 어느 날 열심히 밭을 매고 있는 할멈 앞에 호랑이가 쓱 나타나 잡아먹겠다고 한다. 할멈은 팥 농사가 다 끝난 뒤 팥죽 쑤어줄 테니 팥죽이나 먹고 잡아먹으라 한다. 암흑시간 정점 달하면 밝음 시작동지는 태양시간 도래하는 희망자연과 조화롭게 살 방법 모색이지속가능한 삶으로의 전환의미이윽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팥죽을 쑤는 할멈에게 알밤, 송곳, 개똥, 맷돌, 자라, 멍석 그리고 지게가 차례로 와서는 팥죽을 한 그릇 달라고 한다. 팥죽
자연은 계절과 무관하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다만 그 경이로움은 그것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 그 가운데 거창오리의 군무는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몇 만 마리가 일제히 위로 날아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며 펼치는 장관을 보고 있자면 그 감동을 표현할 언어의 부족을 느낀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군무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혹자는 장엄한 군무가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들만의 소통이라 한다. 군무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
바닷가에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여느 바닷가 마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풍경에 원자력발전소가 이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그 원전의 안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원전 측은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안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만 귀찮아할 뿐입니다. 또 다른 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래도 그게 있으니 우리 마을이 먹고 사는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지요. 그런 믿음에 재혁은 반론을 제기합니다. 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재혁이네는 눈앞에 보이
집안일 가운데 가장 하기 싫은 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이다. 내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때로 역겨울 때가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서 이웃집 쓰레기까지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되니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면 보기에 멀쩡한 빵이나 야채들이 들어있는 걸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그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저 빵을 만들기 위해 밀을 키우던 농부가 만약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것이다. 밀을 곱게 빻아서 이스트와 버터, 달걀, 물 등이 들어가 오븐에서
늦가을, 거리에 마른 낙엽 뒹구는 소리가 더욱 스산하다. 비가 몇 차례 오락가락하더니 나무는 이제 잎을 거의 다 떨구었다. 해의 길이는 점점 짧아져 마침내 밤이 가장 긴 시간에 이를 것이다. 24절기 가운데 스무 번째 절기인 소설이 지났다.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이라 부르는데 이 무렵에 첫눈이 내린다한들 눈발이 날리는 정도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소설은 앞으로 닥칠 추위에 대비해 홑바지를 솜바지로 바꾸고 김치를 담그는 때라는 걸 알려주는 절기였을 테다. 요즘이야 난방도 잘 되고 일 년 내내 푸릇한 야채가 나오는 시절이니 솜바지는
깊어가는 가을날이다. 물드는 단풍, 쌓이는 낙엽, 조금씩 추워지는 날씨,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우리 마음으로 가을은 깊어간다. 기분 좋게 싸하던 날씨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기온으로 바뀔 즈음, 단풍의 고운 빛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맞는 가을인데도 어느 날 문득 ‘언제 저렇게 물들었지’ 하고 느끼는 일 또한 해마다 되풀이한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떠밀려 살다가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나무는 그렇게 노랗고 빨갛게 변해 있다. 단풍과 낙엽은 가을의 자연현상과정 겪지 않으면 생존 어려워비움으로 충만함 이룰 수 있어때로는 훌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