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췌장, 비장, 담낭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이런 생명의 불가사의를 몸으로 증명한 사람이 김상태 목사이다. 차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장기를 떼어내고도 그는 10년 넘게, 그것도 정상인 못지 않는 사회활동을 하면서 다시 얻은 생명을 값지게 쓰고 있다. 91년 가을 쯤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더니 위암 4기 3개월 시한부 생명이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후 수술보다 어렵다는 항암제 투여가 시작되었다. 차라리 죽는 게 보다 나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는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모두 이겨냈다. 의사들은 지금도 그를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죽으로 시작한 식사는 이제 밥도 먹고 고기도 먹을 수 있다. 하루 식사를 8번으로 나눠먹고 3일에 한번 화장실에
팔공산 갓바위 선본사 주지 정묵 스님이 4월 26일 인행 스님의 사직으로 공석이 된 제7교구본사 수덕사의 제13대 중앙종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보궐선거에서 종회의원으로 확정됐다. 단독 입후보해 종회의원에 당선된 정묵 스님은 제12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선본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죽음에서 희망을 읽느냐, 절망을 읽느냐 하는 차이는 곧 삶에서 희망, 혹은 절망을 읽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삶은 죽음과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은 그가 삶을 어떻게 영위했는가 하는 자기존재의 가치를 거짓 없이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각양각색으로 답하겠지만, 삶은 물론이고 죽음에 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 한 번에 두 가지 암을 이겨낸 산부인과 전문의사 홍영제 박사는 암환자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 자체가 암환자에게 가장 해롭다는 것이다. 2001년 10월 대장
이주명 씨에게 지난 2년간은 그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갑자기 말기암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조금만 약했어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폐암말기의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그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갓 결혼한 20대의 아내, 그녀의 뱃속에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스럽게 자라고 있었던 딸 하늘이 때문이었다.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닥쳐온 것은 2000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은 그는 의사로부터 폐암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앞으로 3개월 남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술과 담배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3개월 밖에 살 수 없는 말기암이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임종환자 B씨는 항상 우울한 표정으로 미간에 주름살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무런 희망이 없잖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살고 싶다. 정말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모든 것이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병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어서 우울하고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크게 달랐다.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을 편안히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죽음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섣부르게 단
만달레이 인근 팔리어 대학의 동자승들. 맑고 천진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만달레이 언덕은 넓은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230미터의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관계로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만달레이 언덕은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방문해 위대한 나라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설화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한 이곳이 불심 깊은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언덕의 의미를 넘어서 깊은 신앙의 귀의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만달레이 언덕을 오르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도 예사롭지는 않다. 물론 가벼운 운동을 위해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샴발라 마운틴 센터는 티베트 트룽파 린포체가 설립한 단체로 초심자 및 능숙한 수행자를 위한 다양한 수행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샴발라 마운틴센터는 콜로라도 산속 해발 2400미터 고지의 73만평 대지에 위치한 수련원이다. 비록 호젓한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은 전혀 한가한 곳이 아니다. 1971년 설립된 이래 30여년간 이곳에선 수백여회의 장단기 명상수련회가 열렸고, 또 명상과 기공, 요가 등의 마음닦기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30여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마음을 닦고 간 내공의 장소, 그래서 주변의 산천초목 또한 깊은 고요함을 이해하는 장소인 샴발라 마운틴센터는 140여개의 도시 불교센터와 7개의 전원수련장으로 구성된 샴발라 인터내셔널(Shambhala Internati
만달레이언덕에서 바라본 구도도 페이야 전경. 오후 1시 30분, 이라와디강을 건너 다시 만달레이로 들어섰다. 인구 50만의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수도로 불릴 만큼 큰 도시다. 그러나 크기보다는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전통의 흔적들로 더욱 주목을 받는 곳이다. 수도 양곤이 정치·경제의 중심지라면 만달레이는 문화의 중심지라고나 할까. 밤이면 폭주족들의 활개 치는 자유로운 분위기도 이곳만이 가진 문화적 여유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만달레이가 긴 침묵을 깨고 역사의 무대로 뛰쳐나온 것은 1859년 무렵이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미얀마 마지막 왕조 꽁바웅의 민돈왕이 수도였던 아마라뿌라를 버리고 이곳으로 천도하면서 만달레이가 미얀마 역사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밍군탑 건립으로 촉발된 영국의 침략은
원로 시인 이형기씨는 시 ‘낙화’를 남기고 지난 2월2일 세상을 떠났다. 16세 되던 1949년 「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고인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시의 덫에 걸렸다”는 말을 자주 했다. 11년 전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아내의 도움을 받아 구술 시작을 했을 정도로 시혼을 불살랐다. 사람마다 죽어가는 모습이 다르지만, 원로시인의 ‘낙화’는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 죽음에 담긴 철학적 의미, 죽음 이해의 다양성과 중요성, 어떤 방식으로 죽을 것인가,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가 라는 문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점이 있다. 11년간 누워 지내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낙화’를 통해 죽음에 임해 여행을 떠나는 자기 자신의 심정을 남김없이 토로하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
시원하게 펼쳐진 이라와디강 뒤로 세계 최대의 전탑인 밍군 대탑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아침 7시, 미얀마의 마지막 왕도(王都) 만달레이를 순례하기 위해 눈을 떴다. 호텔에서 간단하게 빵과 홍차로 아침을 들고 나니 포만감에 비로소 어제의 일이 환영처럼 아른거린다. 어제의 여정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야말로 악몽 같은 것이었다. 미얀마의 개마고원 깔로의 무서우리만치 가파른 산길과 폭풍처럼 몰아치는 먼지바람은 이미 각오한 상태였지만 ‘푸드득’하는 단말마적인 비명과 함께 버스가 길 위에 서 버리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더구나 시간은 새벽 12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길 위에 버려진 신세라니! 그 때의 무서움과 막막함, 그리고 처량한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 죽음에 순응하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평소에 죽음을 사려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살 사망률이 급증하는 것도, 죽음의 질이 심각한 것도 바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만 골몰했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회 풍토는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유방암 말기환자 옥설희씨(40세)는 어느 대학의 교수였다. 먹는 항암제 치료를 사용해 더 치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의료진에게 있었는데 본인이 원하는 호스피스에 가입한 경우였다. 호스피스 관계자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단아한 기품이 느껴
무심선원을 찾은 대중이 김태완 설법을 경청하며 '계합'에 힘쓰고 있다. “자기 마음 위에 이것을 보십시오. 언제나 이것뿐입니다.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화두공부입니다.” 「육조단경」 강의가 한창인 무심선원에는 20여명의 불자들이 김태완 원장의 설법에 몰입해 있었다. 김 원장은 “말끝에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에서 이뤄지는 마음을 보라”고 강조했다. 이 순간 누군가는 반야를 경험했으리라. 경전 계합에 초점 부산 남산동에 자리하고 있는 무심선원(원장 김태완)은 ‘일 없는 사람(無事人)’들이 함께하는 도량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번뇌 망상과 시비 분별의 일이 없는 사람,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수행인들이 함께하는 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