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종(無始無終)은 시간과 공간을 보는 불교적 관점이다.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은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주는 불생불멸이다. 무시무종의 가르침에 따르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순환하는 윤회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요즘 무시무종의 가르침보다 종말(終末)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올해 폭염은 최악이었다. 35℃이상일 때 내리는 폭염경보가 서울에서만 31일이라는 최장기록을 세웠다. 40℃에 육박하거나 넘어선 곳도 있었다. 폭염은 우리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세계가 폭염에 시달렸다. 찜통지구, 불타
한국은 유독 세습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벌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부를 세습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상속절차를 거치지만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세습의 과정은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세습의 대열에 개신교가 가세했다. 담임 목사직을 아들에게 승계해 논란이 됐던 명성교회에 대해 해당교단 재판국이 세습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1000억원 규모의 명성교회 운영권이 아들에게 세습됐다. 북한의 독재세습을 맹렬한 비난 하면서도 목사직 세습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이율배반적 행위가 씁쓸하다.이율배반적인 종교라면 가톨릭을 빼놓을 수
어린이집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어린이집에서 4살 아기가 통학버스에 갇혀 숨졌다. 운전기사와 인솔교사가 있었지만 버스에 남겨진 어린이를 확인하지 않고 내렸고, 아이는 한여름 열기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버스에 내리지 못한 아이가 있는지 한번만 확인했더라면 아이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화곡동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가 11개월 된 아이를 재운다며 이불을 덮은 뒤 올라타 질식사했다. 아이를 재운다며 이불을 덮은 뒤 올라탄 행위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그렇다면 분노가 보육교사를 향해야 할까? 어린이집에서의 사고는 어제
급진적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WOMAD)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시위현장에서 남성혐오 발언들이 이어지더니 안중근, 김구, 윤봉길 같은 남성 독립투사들까지 테러범으로 폄훼하면서 극단적 남성혐오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빵(성체)에 욕설을 쓰고 불에 태운 모습을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가톨릭 주교회의가 신성모독이라며 반발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여성차별과 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뜻에 반대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가했던 나쁜 행동들을 똑같이 함으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사람들이 난민신청을 하면서, 난민수용문제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하다. 인도주의에 입각한 이성적 접근보다는 난민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적대감이 팽배하고 있다. 난민반대 청와대 청원이 최대 기록인 60만 명을 넘어서더니, 수용반대집회도 열리고 있다.우리나라는 난민에 대한 포용성이 떨어지지만 난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예멘난민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SNS에서는 무슬림 테러, 무슬림난민 범죄, 여성 차별적 문화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군대생활을 악몽으로 기억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 군대생활은 수행의 단절을 넘어 생명과도 같은 계율의 파괴로 이어지기 쉽다. 강제적 육식과 음주, 그리고 불살생계에 반하는 전쟁훈련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일어섰다는 한국불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계율을 이유로 병역에 이의를 제기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병역거부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병역을 거부하면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데 ‘여호아증인’이 대부분이다. 매년 5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교도소로 보내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철창에 갇히는 세상이다. 대통령이 제왕처럼 굴던 시절은 지나갔다. 대통령은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자일 뿐이다. 권한과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선거로 심판을 받고, 처벌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달라진 시대흐름에서 여전히 비켜선 곳이 있다. 사법부다.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발표 이후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있었던 판사들 불법사찰과 정부와의 재판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시절이기도 한 당시, KTX 여승무원 복직사건, 쌍용차 해고사건, 전교조 법외노조사건, 통상임금사건
6·13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다. 17개 광역단체장 중 14곳, 국회의원 재·보선 12곳 중 11곳을 석권했다. 언론은 보수정당의 참패, 보수의 몰락이라 말한다. 보수를 외쳤던 자유한국당의 참패이기에 나온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국민들이 보수 대신 진보에 표를 몰아준 것 같은 착시현상이 생긴다.진보보수 혹은 좌파우파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첫해인 1789년 열렸던 국민의회에서 유래했다. 이 회의에서 왼쪽에 왕정을 없애 근본적인 변화를 바랐던 공화파가 앉고, 오른쪽에 왕정유지를 통한 점진적 변화를 원했던 왕당파가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법보신문, 불교방송이 진행하는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 시상식이 6월4일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신행수기 공모전이지만 당선작들을 만날때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든다. 20여 편에 이르는 수상작들은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참다운 불자의 삶이 무엇인지 골몰하게 한다. 시련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아 삶으로 쌓아 올린 사리탑들이기에 울림이 더욱 크다.올해 대상작인 총무원장상 시상 때는 유독 우는 사람이 많았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위해 30년간 기도와 깊은 신심으로 봉양하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바지런
“세벌대 기단, 굴도리집, 겹처마, 오랑가구, 교살, 굴도리. 혹시 도종환 장관님, 뜻을 한번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5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청와대 누각인 침류각(서울시유형문화재 103호) 안내판 사진을 띄워놓고 이렇게 질문했다. 암호 같은 용어들이 나열된 안내판에 대한 질책이었다. 안내판이라면 한글로 풀어쓰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연한 지적이었다.이번 대통령의 지적은 불교계가 함께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었다.우리나라 유무형의 문화재 65%는 불교문화재이다. 그러나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팔레스타인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여기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최루탄과 실탄을 쏘아 참극이 벌어졌다. 과거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은 흔했다. 이스라엘은 무장정파를 제거한다며 수시로 폭격을 가해 무고한 사람들을 무던히도 죽였다. 이번에도 60명이 희생됐다. 특히 생후 8개월 된 아이까지 목숨을 잃어 세계는 분노하고 있다.팔레스타인의 시련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팔레스타인의 땅에, 2000년 전 자신들이 살던 땅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
불교의 대표 화두 중에 염화미소(拈花微笑)가 있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며 연꽃 한 송이를 들자 마하가섭만이 혼자 웃었다는 내용에서 비롯됐다.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오로지 참선만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선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물론 염화미소를 통한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화두참구의 영역이다.그러나 살다 보면 가끔은 염화미소의 의미를 알 것 같을 때가 있다. 사찰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동자승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많은 사찰에서 동자승 단기출가 수계식이 열린다. 5~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불교에서는 8가지로 정의한다. 이를 팔고(八苦)라 하는데 생(生), 노(老), 병(病), 사(死),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가 그것이다.이들 8가지 고통 중에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만이 특별히 크게 느끼는 고통이 있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즉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만나지 못하는 고통이다. 남북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불과 70년 전 한나라, 한민족이었던 사람들이 남과 북으로 갈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오히려 증오를 키우며 전쟁의 위험 속에 살얼
가축으로 기르던 동물들이 ‘반려’라는 이름으로 한 집에서 기거하는 경우가 많다. 반려견(伴侶犬) 또는 반려묘(伴侶猫)가 대표적이다. 동물까지 가족이나 식구의 구성원으로 여기는, 생명존중 문화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꼭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의해 버려져 길거리와 들과 산을 배회하는 개와 고양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버려진 개나 고양이로 인한 문제는 심각하다. 쓰레기통을 뒤지다 보니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병원균을 옮기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산으로 들
4월에는 슬픈 일이 많다. 70년 전, 제주도를 무고한 양민들의 피로 물들였던 4.3사건. 60년 전,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섰다 어린 학생들까지 희생됐던 4.19혁명. 그리고 4년 전, 꽃다운 아이들이 낙화처럼 바닷속으로 져버렸던 4.16 세월호 참사. 이 모든 일들이 4월에 일어났다.그래서 눈부신 4월의 봄날은 오히려 핏빛 울음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이들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4.19혁명의 숭고한 희생이야 이미 정당한 평가를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있다. 원숭이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조삼모사(朝三暮四)일 것이다. 도토리를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를 준다고 하자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준다고 말을 바꾸자 환호했다는 내용이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도 원숭이인 손오공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그의 머리에 ‘금고아’를 씌워 제어했다.‘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말로 원후취월(猿猴取月)이 있다. “원숭이가 달을 취하다”라는 의미이다. 달이 연못에 비치자 달이 연못에 빠진 걸로
개를 천시하던 시대가 있었다. 안 좋은 말에는 개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청소년들은 좋은 일에 개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개이득’ ‘개좋아’ 등과 같은 경우다. 개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반려인들이 늘어난데 따른 시대변화가 배경일 것이다.요즘 개를 둘러싼 논쟁으로 시끄럽다. 좋지 못했던 개의 이미지를 현재로 불러낸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대변인 장재원 의원이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수사 대해 “정권의 사냥개가 미친 듯이 물어뜯고 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홍준표 대표는 ‘정권의 똥개’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에 이어 전직 대통령이 또다시 나란히 수감됐다.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구속은 우리 헌정사의 비극이다. 그러나 더욱 참담한 것은 이들의 파렴치한 범죄사실이다. 기업을 협박해 돈을 챙기고,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받고, 탈세와 민간인을 불법사찰하고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 등 범죄교과서를 방불케 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는 최악이다. 검찰은 올해 국민적 화두였던 다스의 주인이 결국 이 전 대통령이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사인 다스를 형님에게 차명으로 맡겨
불교는 생명존중의 종교다. 다른 종교들이 인류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불교는 뭇 생명에 대한 자비를 이야기한다.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은 사람에 대한 존중을 넘어 생명 있는 모든 존재로 그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비둘기 한 마리 생명의 무게가 결국 한 사람 생명의 무게와 같았다는 부처님 전생담은 생명을 대하는 불교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런 생명 존중의 가르침을 사회 속에서 구현하는데 소극적이다. 동물복지가 사회 이슈가 되고, 생명존중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도 불교
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진보의 모습이 추악하기만 하다. 문학과 연극과 영화, 정치를 통해 보여줬던 약자에 대한 눈물, 정의로운 말과 행동이 위선과 거짓말이 돼 버렸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은 놀랍기만 하다. 앞에서는 인권과 양성평등을 외치면서, 뒤로는 여성 비서를 수시로 성폭행한 그의 범죄행위에 환멸이 인다.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성폭력의 본질 중 하나는 권력에 의한 범죄라는 점이다. 가해자가 남성이지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결국 남성이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