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일 경주 불교문화회관에서는 월산 스님(1913~1997)을 조명하는 첫 학술대회가 열렸다. 월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의장을 지내는 등 종무행정 책임자로서는 물론 선사로도 현대불교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관광지로 여겨지던 불국사에 선원을 세워 수행사찰의 면모를 강화시켰으며, 법보신문을 창간해 불교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이번 학술대회에는 중진 불교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던 만큼 월산 스님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소개됐다. 경북 청도 토굴에서 제자들에게 당부했다는 가난에 대한 설법도 그렇다.“내가 그대들
드물지만 일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들이 있다. 조선인 유학생 박열의 부인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 가네코 후미코, 독립투사 변호에 앞장선 변호인 후세 다쓰지, 조선 독립을 외치다 그의 조국에 의해 사형당한 고토쿠 슈스이 선생 등이 대표적이다.불교사에도 한국을 사랑한 일본 스님들이 종종 등장한다. 고려말 회암사의 석옹(石翁) 스님이 그렇다.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건너왔는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는지도 확인할 수 없지만 뛰어난 선사였음은 분명하다.‘나옹화상집’에 따르면 나옹 스님은 출가해 4~5년간 전국의 이
수행자의 기개는 어떤 상황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데 있다. 중국의 여산 혜원 스님이 동진의 실권자 환현에 맞서 출가자는 왕에게 예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천명한 일이나 정영사 혜원 스님이 북주 무제가 불교말살 정책을 펼 때 면전에서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거늘 폐하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오”라고 외쳤던 일. 백곡 처능 스님이 장문의 상소문을 임금에게 올려 조선의 척불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일도 그렇다.근현대불교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와 맞섰던 고승으로는 만공 스님(1871~1946)을 꼽을 수 있다. 만공 스님이 근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발송한 이번 주 뉴스레터(586호)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무너져가는 영화 나랏말싸미를 애도하며’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종교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연구소로 이곳에서 매주 보내는 뉴스레터는 종교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고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글들을 자주 싣고는 했다.이번 필자는 한신대 김윤성 인문콘텐츠학부 교수였다. 한신대는 개신교에서 설립한 대학이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더욱이 김 교수는 종교학과에
최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신미 스님(信眉, 1405?~1480?)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한글 창제 과정을 새롭게 접근한 영화다. 억불숭유의 시대에 가장 높은 곳의 임금과 가장 낮은 곳의 스님이 만나 협력하고 갈등하면서도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꿨던 세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구체화됐는지를 펼쳐낸다.그런데 뜬금없이 이 영화가 역사 왜곡 프레임에 발목을 잡히면서 흥행에 큰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이 영화의 상영 및 해외 보급을 금지하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역사적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세종대왕을 무능한
얼마 전 김호성 동국대 교수로부터 책 한 권을 건네받았다. 동국대출판부에서 펴낸 ‘처음 만난 관무량수경’이었다. 김 교수가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정리·보완한 것으로 ‘관무량수경’에 대한 첫 해설서라 할 수 있다. 책을 받아들고 몇 장 넘기다 머리말의 한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우리 정토문(淨土門)의 사람들에게는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입니다. 권진은 겸손해서는 못하기 때문입니다.”권진(勸進)은 불교학자인 김 교수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말이다. 극락왕생을 위해선 나 혼자만 인과의 법칙을 믿고 경전을 독
근대불교사를 전공한 학자로부터 몇 장의 사진을 전해 받은 것은 6월 말이다. 2018년 출판된 책 내용 일부를 찍은 사진이었다. 제목이 눈에 익었다. 불서총판 운주사가 매주 집계하는 ‘불교서적 베스트 10’에서 늘 상위권에 머무는 책이었다. 저자도 불교계에는 널리 알려진 인사였다. 독립운동가, 수행자, 정치인, 교육자로 우리 근대불교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 백성욱(1897~1981) 박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 오랜 세월 ‘금강경’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했었고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음도 잘 알았기에 그는
불교를 주제로 한 크고 작은 학술대회가 한해 100건이 넘는다. 불교 관련 연구소나 학회 주관이 대부분이지만 사찰이나 문도, 특정 스님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에서 여는 학술대회도 부쩍 늘었다. 이러다 보니 불교인물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비판 부재의 학계 풍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비판적 검토는 학문 연구자의 본령이다. 특정 스님의 사상과 행적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근대 이전 스님의 연구는 비문과 어록이 중심 자료가 된다. 그런데 당시 탑비를 세우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 이상하다. 벌써 지도상에서 없어져야 할 나라처럼 보이는데 아직도 존속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틈바구니에서 5000년 동안 망하지 않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은 세계사의 기적이다.”‘강대국의 흥망’을 쓴 영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의 말이다. 이는 한국의 불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숭유억불의 500년 암흑기를 빠져나온 불교계가 격동의 시기에 온갖 정치적 탄압과 편향을 딛고 급성장한 것은 기적이다.일제강점기 정확한 종교인구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1930년대까지도 불자수는 30만명을 넘지
불교에 이해가 깊을수록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불교학자들조차도 대부분 비판 일변도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게 볼 이유는 충분하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친일행위를 비롯해 1950~60년대 독신승과 대처승의 극렬한 다툼과 법정소송, 불교종단의 군사정권 예속, 1990년대 말까지 계속됐던 스님들간 폭력사태, 자기중심의 기복화 된 불교신앙, 비구·비구니 차별과 문중 대립, 깨달음 지상주의와 교학 외면, 만연된 금권·흑색 선거, 불투명한 사찰 재정 등도 그렇다. 이런 문제들은 불교가 근현대기를 거치며 나
조계종이 최근 제8기 국제교류위원회 위원을 새로 위촉했다. 이번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외국인 스님들이 국제교류위원에 처음 포함됐다는 점이다. 국내에 200여만명의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국제교류위원으로 선정된 서울 네팔 법당 주지 쿤상 스님과 아산 마하위하라센터 주지 담마끼띠 스님은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님들이다. 앞으로 국내에 활동하는 외국인 불자들과의 소통과 협력이 보다 긴밀히 이뤄질 수 있기에 새로운 차원의 한국불교 세계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한국불교계에서
지난 5월24일 오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뜻깊은 학술상 수여식이 있었다. 서울 삼천사 주지이자 전 한국불교학회장 성운 스님의 발의와 상금지원으로 한국불교학회가 제정한 제2회 성운학술상 시상식이었다. 이날 성운 스님이 인사말에서 밝혔듯 이 상은 불교신행과 실천에 대한 불교학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염불과 기도로 대표되는 타력신앙이 한국불교를 지탱해온 근간임에도 ‘불교는 자력종교’라는 틀에 갇혀 신행현장의 불교가 부정되는 모순을 학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성운 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