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끈질긴 설득에 원주불교산악회 인터넷 카페운영을 맡았다. 정상 등반을 못하는 회원들과 절에서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하산 시간에 맞춰 1080배 정진, ‘금강경’ 독송 등. 신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원주불교산악회 인연으로 신행어린이청소년팀서 포교에 매진전문포교사·선혜품계도 받아1년 정도 지나 주변 도움을 받아 원주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어렵게 시간과 학비를 내서 시작한 공부인 만큼 열과 성을 다했다. 나를 불교로 이끌어 준 것은 내 절망이었고, 신행에 깊이와 배움을 더하고 나누도록 이끌어 준 사람은 원주불교산악회장, 지금은
좌절했고, 주저앉았고, 세상도 바닥으로 꺼졌다. 분하고 억울했고,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를 양육해야 했고, 신용불량자가 됐고, 살아야겠다는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2003년 가을, 난 망했다. 누군가는 모스님이 용하다며 권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보냈다.빚쟁이 신세로 전락한 모진 삶‘금강경’ 독경과 정방사 기도로고통 매듭을 풀며 다시 태어나교수인 지인이 자기가 보던 거라며 책과 테이프를 한 박스 보내 줬다. 손때가 얼룩얼룩 묻은 무비 스님의 ‘금강경’ 초판과 큰스님들 법문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쪽으로
제주 4·3 당시 집안 대가 끊길 위기를 넘겼고, 2대 독자인 유복자로 태어날 수 있었던 일은 부처님 가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을 견디는 데 익숙했고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으며, 그 이름이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믿음이 남편보다 한 수 위인 아내를 맞이했고, 수행도 늘 같이 했다. 대 끊길 위기 넘기고 가족 이뤄부처님 가피로 행복한 일상 찾아수용자에 불법 전하며 자비 전파3남2녀를 낳아 길렀고, 6명의 손자와 2명의 손녀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왔다. 추석 다음 날에는 외손자까지 본가로 찾
제주 4·3이 일어나는 해, 독자였던 아버지는 난리를 피하지 못했다. 인천형무소에서 한국전쟁 발발 후 행방불명됐다. 당시 아버지 나이 19살, 꽃다운 나이에 위태로운 시국이라는 시절인연은 너무 가혹했다. ‘성도’란 이름 의미 찾고자 매진매일 자신 되돌아보며 참회진언불자들 제주불교 피해 기억해야2018년이면 제주 4·3이 70주년이다. 물론 내 나이도 70살이 된다. 반공을 무기 삼았던 지난 정권은 4·3을 ‘빨갱이 집단’으로 낙인찍어 연좌제의 사슬로 동여맸다. 입 밖으로 말 한 마디 못하게 족쇄도 채웠다. 후손들은 신원조회란 이름으
어린이청소년 포교라는 길을 걸으면서 간절히 되묻곤 한다. 자신에게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년기, 중장년기를 살고 노년기로 간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이 마음은 아직도 어린이청소년기에 있는 천진불 마음이다. 도대체 변하지 않은 이것은 뭘까. 절하는 할머니 보고 느낀 전율다시 느껴보려 신행활동 매진시장에서 전법하며 행복 발원일 열심히 하고, 기도 잘 하고, 3000배 하고, 등도 꼬박꼬박 달고, 보시하고, 불사 잘 동참하면 신행 잘 하는 줄 알았다. 둘러보니 다들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나 물에 젖지 않는다.”IMF시절 발심으로 인연미술봉사로 시작해 포교일반·전문·선혜품계 품수경전 ‘삿 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 Pundarica Sutra)’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묘법연화경’이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만 물에 젖지 않는다’는 그 말씀에 담긴 의미를 뒤늦게 알았다. 포교사 활동 10년이 지나서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다. 이런 경이로운 삶을 열어준 것이 일반포교사, 전문포교사, 선혜품계로 이어지는 불법의 인연이었다. 아주 사소한 발심이 씨앗이었다. IM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사찰 속 불법 알리고 싶어경전 공부·예불 참여 신행익어가니 해설이 절로 술술처음에는 삶이 힘들고 어려워 삼보에 귀의했다. 기도를 올리고 많은 것을 바라기 위해 절을 찾았지만 상황이 나아진 게 없었다. 다만 그 상황을 바라보고 상대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한층 여유롭고 편안해졌다.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관념도 바뀌었으며 그런 부분을 그들 역시 좋아하고 행복해했다.교리와 경전을 공부하고 사시불공에 참여하면서 공덕과 내공이 만만찮게 쌓였다. 범어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이 부처
어김없다. 아내 덕에 금정불교대 입학실낱 같았던 불연 두터워져사찰해설하며 삶을 담금질매주 일요일이면 부산 금정산 자락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등산객, 외국인 방문객과 여러 불자들 그리고 다른 사찰의 신도들이 개인 또는 단체로 조계종 제14교구본사 금정총림 범어사를 찾는다. 사찰순례든 관광이든 제각각 다른 목적으로 범어사에 든다. 이들은 일요일마다 범어사 일주문 앞에 정복을 가지런히 차려 입은 포교사들과 마주한다. 틀림없다. 외호신장처럼 서 있는 이들은 부산지역단 사찰문화해설 금정팀 소속 포교사들이다. 금정팀은 모든 이들에게 산문과 석
“자비몰유적인(慈悲沒有敵人) 지혜불기번뇌(智慧不起煩惱).”갖가지 행사 열정적 지원요양원 자비원 봉사 열심절집서 반출가 경험 환희‘자비에는 적이 없고 지혜에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래도록 몸에 배인 습은 새벽 4시30분 어김없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 포교사가 되고나서부터 몸에 밴 습이다. 포교사가 삶의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셈이다. 직장에서 정년퇴임 후 회갑지나고 인생 후반부는 그런 습으로 살아오고 있다. 세안 하고 몸을 단정히 한 뒤, 새벽 5시면 서가에 모시고 있는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벽
시작은 개인적인 부분이었다. 독실한 아내의 기도 외호정년퇴임 뒤에 깊은 불연군법당에서 첫 전법 활동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갈 만큼 어렵다고 했던 직장 승진고시를 준비하면서 불연이 손을 내밀었다. 독실한 불자였던 아내는 원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니 무조건 외우라며 수첩 하나를 건넸다. 독송본 ‘금강경’이었다. 승진시험 준비로 바빴지만 틈나는 대로 읽었다.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열심히 읽었다. 이게 도움이 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몇 차례 고배를 마신 뒤 승진시험에 합격해 간부가 됐다. 아내가 기도하러 가는 남해 보리암이나
불교대학을 졸업하면 끊어질 공부가 걱정이었다. 포교사를 발심한 이유도 부처님 가르침을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였다. 늦었지만 포교사 시험 대비반에 합류했다. 불교대학 2년을 포함해 10년은 더 공부하고, 특히 초기경전 모두를 깊이 있게 읽어 보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포교사를 시작하면서는 전문포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전문포교사 품수를 받는 올해는 많은 고민 끝에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부처님 공부라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신다는 어느 학인스님 말씀이 힘이 된다. 여러 인연으로 공부 이어와군포교·정애
슬픔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한여름, 시야를 순식간에 가리는 폭우처럼 갑작스러웠다. 의사의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거센 빗줄기 같았다. 딸아이와 사별로 후회·자책3000배 등으로 극복하면서불교대학·포교사 인연 닿아“의사의 한계를 느끼고 이런 말을 할 때가 가장 힘듭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의사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느라 의사의 말을 제대로 듣기 어려웠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중학교 졸업을 앞둔 12월 초였다. 딸아이는 급성골수성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