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인연의 맺음이다. 좋은 인연이란 나를 앞세우지 않고, 편견이나 집착이 개입되지 않은 인연이라 종종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계산된 나의 분별심이 존재한다. 나를 대하는 상대도 그럴 것이다. 분별심 없이 상대를 인정해 주면 좋은 인연이 되겠으나 곱고 미움, 능력의 유무, 생각이나 지향점이 다른 데서 오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갈등 관계가 되는 경우도 많다.코로나19 상황이 어찌 변할 지 모르지만 올해는 장애 불자들과 사찰 순례를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순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대흥사, 마곡사
승이 수산에게 물었다. “깨침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여기서부터 양현(襄縣)까지의 거리는 오 리이다.” 승이 말했다. “그렇다면 향상사(向上事)란 무엇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왕래하기가 쉽지 않다.”본 문답의 요점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입장과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입장을 적절하게 섞어서 납자를 이끌어주고 있는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의 안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에 달려 있다. 상구보리에 대하여 향상(向上)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화중생에 대해서는 향하(向下)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반적
경전을 보다보면, 부처님과 외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 혹은 재가자들 사이의 대화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그 대화의 내용을 보면, 부처님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교화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일방적인 설교나 웅변이 아닌, 침착하고 온화하며 배려하는 대화의 모습이다. 그리고 핵심적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 가며 대화를 하는데, 그 일단의 모습을 ‘맛지마 니까야’ II권에 나오는 79번 경 ‘사꿀루다이에 대한 작은 경(Cūḷasakuludāyisutta)’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부처님과 사꿀루다이의 대화는 부처님께
종교에는 세상의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들이 많다. 기적이나 신통은 빼놓을 수 없다. 물위를 걷고 허공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다.불교에서도 부처님이 신이 아님에도 갖가지 신통을 썼다고 전해진다. 천상에 올라가 설법하고 지옥에 내려가 그곳 중생들과 대화를 하신다. 때로는 몸을 여러 개로 분신하거나 모습을 바꾸는 변신술도 쓰셨다. 부처님만 신통을 갖춘 것은 아니다. 부처님 제자들도 신통을 보였다. 마하 목갈라나는 신통이 뛰어나 ‘신통제일 목갈라나’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였다.불교를 포함한 대다수 종교는 기적과 신통
1.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사람은?① 찢따 장자 ② 욱가 장자 ③ 빔비사라 왕④ 수닷타 장자 ⑤ 나쿨라피타 장자 2. 불교의 전파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① 중국에 처음 선불교를 전래한 사람은 혜능대사이다.② 스리랑카의 상좌부불교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전해졌다.③ 아쇼카 왕의 왕자 마힌다는 기원전 3세기 중엽 스리랑카에 상좌부불교를 전했다.④ 아쇼카 왕은 불교를 인도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⑤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왕은 1세기 후반 제4차 결집을 주도하고
햇살이 정말 쏟아지는 듯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매화가 가지마다 잔뜩 피어 있다. 겨우내 웃자란 소나무 가지와 하귤을 가리는 삼나무 가지를 높은 장대톱을 구입해 종일 자르고 치우다 보니 땀이 흠뻑하다. 눈이 내릴 때 밑둥이 늘어진 소나무 가지가 눈에 거슬려 오늘 이리저리 살피며 자르다 보니 마치 이발사라도 된 것 같다.예전에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실제 영화 제목은 ‘The Barber of Siberia’였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인생을 걸어버린 러시아 초급장교
1월27일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는 ‘만암당 종헌 대종사 제64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하였다.스님은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뒤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예속하려 시도할 때에 만해·한영 스님 등과 함께 임제종을 설립하여 맞섰다. 1916년 백양사 주지가 된 뒤에는 극락전 한 채만 남아 있을 정도로 쇠락했던 도량을 일으켜 대찰의 면모를 살려냈으며, 여러 학교(광성의숙‧심상학교와 불교전수학교‧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출가수행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교육에 앞장섰다. 또한 불교가 수행과 전법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교단이 재정자립을 이룩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손목에 염주 팔찌 끼기를 좋아했다. 까닭은 모른다. 까까머리 시절, 어머니를 따라 어느 절에 갔었는데(영광 불갑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노스님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른쪽 손목에 나무구슬로 된 염주 팔찌를 끼워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염주 팔찌를 항상 끼고 다녀라. 언제가 너에게 좋은 인연이 될 것이다.”그 말씀과 염주 팔찌가 씨앗이 됐을까. 어떻게 어떻게 살다보니, 그리고 ‘눈뜨고’ 보니, 어느 날 내가 승려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내가 불
프란츠 슈베르트는 자신의 가곡(Lied) 네 곡의 선율을 기악곡에 사용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탄탄한 구성미를 자랑하는 작품이 ‘방랑자 환상곡’ C장조 D.760이다. 1820년 무렵의 청년 슈베르트는 규모가 큰 관현악곡을 작곡하고자 했었다. 이 곡은 피아노 독주곡이지만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 느껴지는 깊고 웅장한 음색과 함께 교향곡적인 구조가 돋보인다. 또한 이 곡에는 청년 슈베르트의 원대한 꿈과 희망이 담겨있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이 곡이 출판될 1823년에는 상당히 몸이 약해져 있었고 이후 항상 병고에 시달렸다. ‘방
‘푸른 눈의 수행자’라는 말이 있다. 불교가 ‘메이드 인 인디아’다 보니, 인도 문화권 승려들이 더 오리지널한 선지식이라는 의미다. 또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 선지식이었다. 연륜에는 반복되는 많은 노하우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소학’에는 ‘조정에서는 관직 높은 사람이 위에 서고, 일할 때는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앞장서며, 사랑방에서는 나이 든 사람이 어른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 존중 대상이 다르게 된다는 의미다.현대에 들어서면 선지식의 개념도 많이 달라진다. 변화가 빠르다 보니, 어른은 선지식보다는
Q. 지난 가을부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다 보면 밤에는 잠도 설치고, 점점 밖에도 나가기 싫어집니다. 올해 일흔이 넘다보니 당연히 몸도 이전과 다를 수 있고, 오히려 아픈 것이 이상할 것 없는 나이가 된 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픈 것도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자식들이나 남편이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도 남편과 둘이 지내고 있는데, 처음에는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위로해주고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사다주며 챙겨
서양화가 봉제 전화황(鳳濟 全和凰, 1909~1996)은 평안남도 안주 출생으로 영변과 평양에서 중학교까지 다녔지만, 중퇴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해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를 출품해 입선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후 그림을 접고 1936년 중국 심양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메이지 37년(1905년) 일본 쿄토에서 니시다 덴코(西田天香)가 창시한 불교종단 잇토엔(一燈園)의 심양 지부 사찰에 기거하며 독실한 신행 생활을 시작했다. 잇토엔은 참회, 무소유, 사회봉사 등을 주요 기치로 내건 일종의 생명주의 운동 불
네팔과 북인도 일부에는 티하르(Tihar)라고 불리는 총 5일간의 빛의 축제가 있다. 축제 두 번째 날 ‘개들을 위한 공양제(供養祭)’인 쿠쿠르 푸자(Kukur pūjā)를 지낸다. 이날 모든 개들에게 금잔화 목걸이를 걸어주고, 이마에 제3의 눈인 티카(tikka)를 백단향으로 그려 축복해주며, 충분한 사료와 간식을 제공하면서 인간과의 돈독한 우정을 찬미한다. 이 축제를 통해 인간은 개들과의 친밀감과 깊은 유대감을 기리고, 그들의 충성심과 봉사에 감사하고 축하하게 된다. 인도에서 이런 특별한 기념일 외에도 개가 신성한 존재로 숭배
이번 호에는 불교 ‘의례(儀禮)’와 관련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종교에 있어 의례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불교 역시 교리나 수행이 내면의 무형적이라면, 의례는 그것이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원론적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내자증(內自證)’의 깨달음을 기준으로 본다면 부처님께서 중생제도를 위해 행하신 일체 교화 및 부처님 제자들의 수행과 교화들도 모두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의례라고 할 수 있다.훗날 경률론 3장의 형태로 남겨진 일체의 가르침, 이것을 우리는 ‘남길 유[遺]’ 자와 ‘가르칠 교[敎
사랑을 자비와 등치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보지 않고, 자비의 자심(慈心)에 국한시켜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제프리 홉킨스는 저서 ‘자비명상’(2001)에서 “사랑은 자비와 짝을 이룬다. 사랑이 ‘이 사람이 행복해지고 행복의 조건을 갖춘다면 매우 좋은 일이다’라고 느끼는 것이라면, 자비는 ‘이 사람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매우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라 하면서 사랑과 자비를 구별하였다.사랑을 여락(與樂)의 자심으로, 자비를 발고(拔苦)의 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각은 자심과 비심을 포괄하는
음력 12월8일은 성도재일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루신 깨달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과 이후의 달라진 세상을 생각하면 성도재일은 부처님오신날 이상의 큰 행사로, 전 세계인이 함께 기념해야할 축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3월경 연재에는 부처님 깨달음의 문명사적 의의에 대해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르시게 되는 수행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고의 속박을 벗어나 완전한 해탈을 이루고자 결심하신 싯다르타는 출가하여 사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 사문들
설법을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도를 깨쳤든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교학이나 정진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대승에서는 사람은 물론 축생과 무정물들까지 설법한다고 가르친다. 세상에 설법 안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설법을 개도, 돼지도, 새도, 나무도, 돌멩이도 한다니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축생들이야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니까 설법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소리를 못 내는 바위나 나무토막도 설법을 한다는 말은 상식 밖의 일로 들리기 십상이다.세상의 과학, 철학, 종교, 문학에서도 찾기 어려운 이야기가 불교에는
假使頂戴經塵劫 身爲床座徧三千 若不傳法度衆生 畢竟無能報恩者가사정대경진겁 신위상좌변삼천 약불전법도중생 필경무능보은자(설령 경전을 받들어 수지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지나더라도 / 이 몸이 침상이 되어 삼천세계에 두루 하더라도 / 만약 법을 전하지 아니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 마침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무능한 자가 될 것이다.)구미 보천사 대웅전 주련에는 명(明)나라 임제종의 여근(如巹 1425~?) 스님이 속집한 ‘치문경훈’ 권 제4 가운데 ‘화상삼보'편에 나오는 게송이 새겨져 있다. 흔히 전법게(傳法偈)라고
앙산용 화상이 설법하였다. “한마디로 모든 산하에 대하여 설파해버렸다.” 그러자 곧장 승이 물었다. “그 한마디란 무엇입니까.” 앙산이 부젓가락을 화로에다 꽂았다가 다시 거두어 본래자리에 두었다.앙산용은 앙산의 남탑광용(南塔光涌, 850~938)으로 그 법계는 위산영우–앙산혜적–남탑광용이다. 본문답은 능전(能詮)과 소전(所詮)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능전이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한 주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떤 개념을 지니고 있는 언어문자가 이에 해당한다. 소전이란 능전의 언설에 의하여 지목되는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답에서 궁극적인
오늘날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고따마 붓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다면 사람들은 어떤 질문들을 할까. 사람마다 궁금한 점들이 다를 터이지만, 아마 그 내용들은 초기경전에서 그 옛날 인도 사람들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질문의 내용을 보면 수행과 관련된 질문이 많기는 하지만 신통력과 관련된 내용도 적지 않다. 그리고 전생이나 내생에 대한 내용도 심심치 않게 본다. 질문의 내용들은 다 제각각이지만, 그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