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 학술지 「불교원전연구」를 창간해 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원전연구는 한역에 의존했던 불교연구를 다양한 언어와 주제로 해방시킬 것이다. 연구자들의 역량은 과거보다 훨씬 성숙하여 기왕에 바란다면, 한국의 불교학계 내에서 영문잡지의 발간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학 영문 잡지의 국내 발간은 국내의 연구정보를 해외에 전달하여 외국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국내연구자들 스스로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점검하도록 만든다. 일본은 이미 1921년 스즈키(D. T. Suzuki)에 의해서 영문 불교학술잡지인 「동양 불교도」(The Eastern Buddhist)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일본의 선불교와 대승불교를 국외에 알리게 되었
말은 불교문화재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의 하나로 신비로움과 정진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표현돼 왔으며, 사찰 벽화나 탱화, 조각, 탑, 부도 등에서 다양하게 묘사돼 있다. 통일신라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는 태화사지 12지상 부도를 비롯해 많은 석탑에서 12지상의 하나로 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양주 회암사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부도탑의 기단에는 구름에 휩싸인 말이 생동감 있게 조각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으며,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법주사 마애불에도 창건 설화와 관련해 경전을 실은 말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말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는 곳은 불화다. 특히 두루마리 명부를 들은 저승사자와 함께 등장하는 말은 조선시대 사자탱의 단골 주인공이다. 또 최근에는 제작
내가 있는 청계산에도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다. 휴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고 절을 참배한다. 유난히도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명산일수록 대찰이 있으며, 그 곳만은 울창한 산림이 자리하고 있다. 어디 고찰이 있는 산에 나무 없는 절이 있는가 보아라. 이와 같이 전국 사찰림에 숲과 나무가 울창하기까지에는 역대 스님들의 나무사랑, 산사랑이 남달리 지극하였기 때문이다. 요즈음에야 산에서 땔나무를 하지 않지만, 70년대까지만 하여도 집집마다 부엌 아궁이는 이산 저산의 나무를 모두 다 집어 삼켰으며, 시골 동네마다 나무 짐을 지고 다니는 일꾼들이 줄을 이었다. 도시에서도 땔나무를 파는 장터가 열렸으며, 장작더미를 높이 쌓아 두는 것이 마치 부의 상징인 것처럼 여길 때도 있었다. 그 뒤에 나온 것이 연탄이
한보에서 기아에 이르는 기업 부도사태에 뒤이은 금융위기와 외환위기가 IMF구제금융으로 까지 이른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국경제 상황을 지켜 볼 때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기본이 있다. 경영의 기본은 이익-고객-기술-사람-가치로 이어지는 “전략의 고리”로 설명될 수 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고 이익으로써 생존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을 사주는 고객이 있어야 하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품질이 좋아야 한다. 품질이 좋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기술은 사람의 잠재력 개발을 통해서 향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이익에만 치중하고, 고객
변화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변하는 것은 또 아무 것도 없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하는 시인의 영탄도 맞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 또한 진리다. 같은 말, 비슷한 표현이라도 경우에 따라 함축하는 의미가 꼭 같지 않다는 것을 유념하면 일견 상반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어긋나는 표현이 실은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종합과 이해가 가능해진다. 이러함에도 세상에는 본질이 아닌 표현의 모순성을 두고 끝없이 시비하거나 다른 차원의 것을 동렬에 놓아 혼돈 속에 갈등을 증폭시키는 일이 흔하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가닥이 덜 잡힌 과거사 정리가 그런
관음보살의 교화의 땅 티베트.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전생활불(轉生活佛)인 달라이 라마! 고향 땅에서 쫓겨 40여 년 세월을 망명객으로 떠도는 티베트의 성자 달라이 라마와 이 땅 이천만 불자와의 인연이 이어질듯 말듯하니 답답한 가슴 가눌 길 없다. 티베트의 역사는 중국 역대 왕조의 간섭과 영향력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한때 원(元)나라는 무력으로 티베트 전역을 장악한 적도 있었지만 세조 쿠빌라이는 티베트 라마교의 고승을 황제의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후 명(明)·청(淸)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종주권 밑에서 정교합일 체제를 갖추어갔다. 20세기 들어와 신해혁명 후 국민당 정부도 전통적인 종주권을 유지하려고 관리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지킨 티베트는 종전 후 독립정부를 구
지금 조계종은 제 31대 총무원장 선출이 최대의 관심사다. 원장은 '종무행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주요 종무를 결정한다. 따라서 '원장'은 바로 조계종의 모습이 된다. 최근, 비구니 종회의원 스님들은 원장 후보인 두 스님을 모시고 간담회를 가졌다. 조계종의 현안과 그 발전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의원스님들은 비구니의 위상 제고와 전법교화의 종단업무에 비구니의 대폭 참여 확대를 요청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종무기관에 대한 비구니 참여 확대, 각종 선거에 대한 비구니 참정권, 계단 업무에 있어서 비구니 계율본을 비구니가 강의되어야 하는 것 등에 대해서다. 두 후보는 종무에 임하게 되면 이러한 현안이 시정, 실현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현재, 구족계를 받은 조계종도
총무원이 위치하고 있는 조계사는 서울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스님들이 서울에 오면 으레 조계사를 방문하고 많은 신도와 일반인들이 이곳에 모인다. 그런데 정작 조계사 주변에는 스님들이 편하게 식사할 장소가 없으며, 식당에 가도 스님들이 드실 채식 위주의 음식이 없다. 이웃 인사동에는 물론 두세 곳의 채식식당이 있으나 가격이 비싸거나 공연까지 하여 스님들이 가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스님들이 일반 음식점에 들어가 오신채를 쓰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한식집에서 스님이 백반을 먹을 때 상에 반찬으로 고기가 올라 있으면 스님이 그것을 먹은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례도 있다. 조계사 이웃의 인사동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는 최근 지하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서 힘드는 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도록 우리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교육, 경제, 정치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해이해 져 있다는 것이다. 왜 이토록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든 사회가 되고 말았을까? 우리 사회에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다른 모든 것은 두고서라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인 해이와 사회적 불안정을 거론할 때마다 그 이유를 학자들은 6.25 한국전쟁과 가난을 들먹인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다. 일단 목숨을 건지고 보자는 생각에서 수단과 방법을 헤아리지 않는다. 전시에는 생존이
다 아시겠지만, 한류(韓流)란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류의 열풍은 동아시아 일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정도로 폭발적입니다. 한류 열풍이 어찌나 거세고 강력한지 최근에는 중국정부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을 정도입니다. “문화 시장에서 상당한 정도의 혼란한 현상과 불량 문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는 게 중국 국무원 회의의 결과입니다. 중국의 ‘인민일보’도 “문화시장 질서를 한 단계 더 정돈하고 규범화하자”는 주장을 사설을 통해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 유입되는 사치향락성 문화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지요. 이런 움직임들은 한류 열풍이 곧 강력한 반작용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 아닐 수
대규모 학술대회를 준비했던 당사자들은 당황했다. 학술행사가 불과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까지 특정 발표자의 원고가 들어오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행사 주최측은 학술지를 만드는 일마저 차질을 빚게 됐고, 논평을 맡은 사람도 나름대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흘러 마침내 학술대회가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원고를 보내기로 한 사람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늦어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여름방학 이전에 원고청탁이 들어갔는데 아직까지 원고를 보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발표자는 당일 날 오전에 원고를 보내왔고 지방에서 생활하는 논평자는 세미나가
어떤 40대 후반의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난다. '지금의 건강상태로 한 10년 잘 살았으니 앞으로도 이 정도는 더 살지 않겠느냐'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출생은 차례가 있으나 죽음은 그렇지가 않은 법, 인간사에는 예고 없는 사건이 많은 법이다. 지금 우리는 북한의 핵 문제로 불안한 마음을 갖고서 살아간다. 핵 문제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북한이 바로 분단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한 50년 동안 전쟁없이 잘 살아왔는데 무엇이 불안하냐'고 한다. 남북 이산 가족의 만남이 있고, 금강산 관광도 있었고 하니 전쟁은 우리하고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다. 바깥 세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
'금강경 결제 논강'이라는 테마로 실상사에서는 매주 한번 토론형태의 논강을 열고 있다. 필자도 새로운 방식의 결제이기에 몇 번 참석하였다. 논강의 논주가 일정한 주제를 정하여 발제하고 그것에 대해 각 분야별로 정해진 토론자와 그곳에 참석하는 대중이 함께 논강에 동참하였다. 이번 금강경 결제는 '경을 보는 그 자체가 주요한 수행'이라는데 있음을 밝히고, '사부대중이 다 함께 모여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공개되는 결제'라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참으로 훌륭한 발상이고 뜻깊은 수행이라고 본다. 그러나 교단에서 처음 시도하는 탓인지 형식상에서 조금은 매끄럽지 않았고, 논강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인지 논쟁을 통해 명확한 의결이나 해답을 내려고 하는 인상도 남겼다. 전통적으로 강원에서 경전반에 입학하면 논
불교가 전래된 이후 1600여 년 동안 한국불교는 사찰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여 왔으며, 민족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하여 왔다. 특히 산중 사찰은 산의 주인으로서 임상을 보호하고 산의 생태적 관리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이러한 결과는 국립공원의 지정에서 나타나는데, 현재 전체 국립공원에는 해인사와 월정사 등의 교구 본사 급 사찰 7개를 포함하여 총 313개의 사찰이 소재하고 있으며 국립공원별 사찰이 차지하는 면적은 0.36%에서 41.54%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찰은 우리 나라 지정문화재의 16%에 달하는 문화유산을 포함하고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풍경을 창출하고 있으며, 사찰경내 지의 산림은 국립공원에서도 가장 생태가 양호한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국립공원의 자연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봄이다. 가장 맛있는 햇차 세작(細雀)이 나온다는 계절이다. 차인들의 마음은 벌써 푸른 물결로 넘실거리는 차밭으로 향한다. 달콤 쌉사라한 그 맛. 봄을 따라 차 내음을 물씬 풍기는 남쪽 들녘. 맛과 흥취의 고장 남도로 차 문화기행을 떠나보자. 국내 최대 차 재배지 ‘보성’ 남도의 봄은 푸른빛으로 옷을 갈아 입은 보성 차밭에서 시작된다. 20만평에 이르는 우리 나라 최대의 차 재배지로 차인이라면 한번쯤은 들려 볼만한 곳이다. 보성읍에서 남쪽 바다를 향해 가다가 활성산 붓재를 넘으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운 짙푸른 이랑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차밭인 보성 차밭이다. 이곳의 차나무들은 대밭이나 떡갈나무, 오리나무 숲 산비탈에서 이슬 맞으며 자라는 야생 차나무
얼마 전 외신에 의하면, 미국 과학자들은 중국 동북부의 500년 된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연꽃씨를 처리하여 붉은 꽃을 피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연꽃씨는 오래 되어도 발아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담발화는 3000년에 한번씩 핀다고 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는 꽃을 무척 좋아 하셨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연꽃을 가장 아끼셨던 것 같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일곱 걸음마다 연꽃이 받쳐주었으며, 마음의 법을 가섭에게 전할 때에도 연꽃을 들어서 정법안장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을 부촉 하신 것이다. 따라서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불화(佛花)이며, 때로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불교의 이상적인 국토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하며
종교 조직이 그 성직자나 신도들의 신행생활을 도와주기 위해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진정한 종교 단체란 그 종교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것을 불신하는 사람조차도 거두어주면서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삶의 길잡이가 되는 종교 필자는 송광사 여름수련회에 참가했는데, 그 경험은 그때까지 누릴 수 없었던 값진 것이었다. 사찰에서 자면서 예불에 참여하고 참선 수행도 하여 출가자의 생활을 실천해 보는 것은 세속에서의 내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송광사 여름수련회는 불교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종교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일정한 비율로 받아 주었다. 송광사는 줄곧 스님들의 수행 중심으로 절을 이끌어 왔지만 여
개인적 사회적 삶의 질곡 속에서 순간적 오판이나 실수로 인하여 폐쇄된 공간에 격리 수용되어 응보형(應報刑) 제도에 따른 공공적 형행(刑行)을 치르고 있는 수인(囚人)들은, 중생 자비구제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 불가(佛家)에서 가장 큰 관심과 애정으로 감싸안고 교화해야할 대상이다. 그들에게 동체대비의 부처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여 하루 빨리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사명이라 본다. 20여 년 전 모 선배 스님의 교도소 위문 법회에 동행 권유로 참석했다가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매월 1회 교도소 법회를 주관하며 교정 활동을 해오고 있다. 법회 때마다 100∼300여명 분 공양물을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설법내용을 준비함에 있어 고심을 하게 된다.
1945년 8월15일이라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정신적 의미에서까지 한국이 일제로부터 풀려난 날은 1987년 6월29일 이라고 본다. 그렇게 따지면 올해는 해방 16년째다. 웬 뚱딴지같은 주장이냐고 할지 모른다. 요약해 설명하면 이렇다. 1945년 일제가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식민지배 상태에서 외형상 풀려났다. 그러나 일제를 대신해 남북에 각각 진주한 미국과 소비에트러시아의 군정은 실제에서 식민지배의 변형에 불과했다. 1948년 각각 수립된 양쪽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겉포장을 둘렀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런 이념적 대치와는 달리 오히려 유사성이 컸다. 이승만정권은 본질에서 조선왕조의 봉건통치에 더 가까웠고 김일성 정권 또한 그런 속성
매일 아침 예불 후 새벽 사찰의 업무를 부지런히 보고 출근시간에 맞춰 복지관에 들어서면 직원들의 미소가 담긴 합장 인사와 어린이들의 재잘거림, 에어로빅실의 음악소리와 노인대학의 민요노래, 의료서비스 수혜 차 오신 지역 어르신들의 반가운 덕담 등으로 복지관은 온통 복지인연의 활기가 가득하다. 전 직원이 함께 간단한 불전의식에 이어 업무회의를 갖고 70여 종의 유·무료 프로그램의 기안과 진행과정 결과보고서, 각종일지·수입 지출서·공문서 등을 살펴 결재하고 난 후 지역 단체장이나 후원자, 봉사자 등을 만나 협조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나면 서녘으로 지는 해를 보며 다시 사찰로 퇴근을 하게 된다. 벌써 5년 차에 접어든 바쁜 나날에 다소 소진되는 감도 없지 않지만 복지관 운영이 불일증휘 법륜상전(佛日增輝 法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