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여느 때보다 빨리 찾아오고, 더 뜨겁다. 여름날씨보다도 더 뜨겁게 우리 사회를 달구는 게 있다. ‘반값 등록금’ 문제이다. 연평균 800만원의 살인적인 고액등록금의 당사자인 대학생들은 날마다 촛불을 들고 모이고 있다. 등록금 촛불을 든 것은 대학생뿐만이 아니다. 학부모, 교사, 야당 정치인, 시민단체, 그리고 배우 김여진 씨, 가수 박혜경 씨 등 연예인들도 합류했다. 보수족벌언론들은 마치 이들이 순진한 대학생들을 선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날라리 외부세력’이라 부르고 있다. 이들이 왜 날라리 외부세력인가. 학부모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액등록금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다. 대부분의 가정에 대학을 다니는 자녀가 있고, 학생 자신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실제 등록금을 대느라
불교계 공식 행사에 참여하여 간혹 “삼귀의는 우리말로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때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래선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경우 “귀의불 양족존…”, “중생무변서원도…”하는 정말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의식을 접하게 되면 더더욱 당혹스럽다. 이것은 작은 문제인듯 하지만 실로 큰 문제이다. 조계종 정도 되는 큰 종단이 통일된 법요와 의전이 없다면 그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의심할 일이 아닌가? 만약 있는데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닌가? 이래 저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불교계를 대표하는 종단이라면 당연히 통일된 의전과 법요가 확립되어 있어야 마땅하고, 그것이 통일적으로 시행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종단의 권위는 그냥 성립되는 것이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인간과 동물은 물론 식물도 음악 선율에 반응한다는 학계 보고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음악은 아마도 모든 생물을 초월할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30여 년 전에 떠나보낸 보이저 호에 동서양의 민속 음악과 베토벤, 모차르트 음악을 실었겠는가. 여기서 물음하나가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위대한 음악은 언제,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연주되거나 들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2010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시민들이 사전에 우려했듯이 ‘방아타령’이 연주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추모식에 흥겨운 민요라? 한국 전통 민요라 해도 그 자리에서는 맞지 않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현충일에는 어떤 곡이 어울릴까? 일단
지난 5월8일 자 중앙선데이(Sunday) 사설은 21세기는 불교의 세기라고 선언했다. 그 이유로서 21세기는 세계화의 세기, 환경의 세기, 과학의 세기, 인권의 세기, 민주주의의 세기인데 불교가 이러한 21세기의 시대정신과 가장 잘 부합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 추가하여 21세기가 불교의 세기가 되어야 할 다른 이유를 들고자 한다. 21세기는 갈등의 세기, 분열과 투쟁의 시대일 수 있는데 그러한 문제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종교가 불교라는 점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신 또는 초인간적·초자연적 힘에 대해 인간이 경외·존중·신앙하는 일의 총체적 체계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정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인간을 신에게 예속된 존재로 비하하
1년 전 2010년 6월2일 제5차 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선거결과는 한나라당의 대패. 한나라당은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6228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82곳밖에 이기지 못했다. 인천, 충남, 강원, 경남 등 오랜 야당열세지역에서도 야권이 이겼다. 야권승리의 원동력은 야권연대의 위력이었다. 6·2 지방선거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는 5·16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가 30년 만에 부활된 지 20년째가 되는 해이다. 1991년 3월26일 기초의원 4277명을 주민 직선으로 뽑았고, 6월20일에는 광역의원을 뽑았다. 제1차 기초의회선거는 3562개 선거구에 9963명이 입후보해 평균 2.3대1의 경쟁률이었다. 유권자 투표율은 55.0%였다. 집권여당인 민자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야당세가 강한 서
종교가 올바른 종교로 서려면 우리의 삶 전체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불교는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삶 전체를 이끄는 종교가 아니라 수행이라든가 기복이라는 측면만을 위주로 하는 종교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게 되면서 불교는 반쪽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좀 지나치게 극단화시켜 말한 듯한 느낌이 있지만, 이것이 오늘의 불교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임은 틀림없다. 불교라 하면 참선·염불 등의 여러 수행이 떠오르고, 절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 떠오를 뿐이다. 불자라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불교라면 또 어떠한 이념을 지니고 우리 세상을 이끄는 종교라는, 그러한 불자와 불교의 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불교는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끄는 종교가 아니요, 이 세상을 올바로 이끌고 세워
최근 불거진 고엽제 매립 사건과 관련해 조계종 환경위원회가 진상규명과 함께 한미주둔지 지위협정(SOFA) 개정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환경위의 이 같은 촉구는 시의적절하고 타당하다고 본다. 사실 소파는 불평등조약이나 다름없다. 비록 2001년 한 번의 개정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상호 정보교류와 논의를 할 수 있게 했지만 포괄적인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절차나 책임 소재, 소요 비용 등에 대한 세부 언급이 빠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엽제 매립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한 예로, 한미공동조사단이 꾸려졌지만 미군의 동의 없이는 조사 현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소파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내 땅을
통도사 주지를 추천하지 못한 영축총림이 점점 갈등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봉축 이전에 불거진 내홍을 접한 대중은 부처님오신날을 기점으로 원만한 합의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기대로만 남는 모양새다. 오히려 화합은커녕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통도사 내홍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방장이 추천한 스님을 주지로 내정할 것인가? 대중이 원하는 스님을 주지로 내정할 것인가? 여기서 하나 더 꼽자면, 대중이 원하는 스님을 주지로 내정한다면 누구로 할 것인가? 그 후보가 원산, 정우, 영배 스님이다. 방장 스님이 염두에 두고 있는 스님은 원산 스님이니, 이를 도식하면 원산 스님과 정우·영배 스님 세력 간의 힘겨루기다. 다소 복잡한 구도가 짜이는 것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일반 교구본사와는 달리, 총림은 방
봄이 왔다. 겨우내 삭막했던 아파트 단지를 목련과 벚꽃이 화사하게 장식하더니 이제 라일락의 향기가 가득하다. 올 봄은 참으로 우울하게 시작하였다. 지난 3월 일본 동북대지진의 피해가 예상외로 컸다. 파고 20m가 넘는 쓰나미가 그 지역의 모든 것을 휩쓸어갔고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를 파괴하여 방사능물질이 통제 불능으로 유출되고 있다. 발전소 주변이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바다와 대기로 유출된 방사능 물질이 지구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그래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아름다운 봄꽃들과 눈부신 신록은 생명과 행복을 예찬케 한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다. 모든 인간 행동의 근저에는 행복추구의 모티브가 있다. 행복의 추구가 인류문명, 특히 물질문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어왔다. 그러
역시 민심은 무서웠다. 4·27재보선의 결과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시 ‘풀’을 떠올리게 한다. 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났다. 물론 민심이 이명박 정부에게서 돌아선 건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재보선이나 대통령선거 사이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원래 정부여당에게 불리한 것이라며 애써 무시하거나 태연한 척 했다. 4·27 재보선은 성찰할 줄 모르는 정부여당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국정에 실패한 무능한 정치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 국민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경고를 보냈다. 그 뒤 대통령선거 때까지
지구 전체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요즈음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의 재앙이 세계 곳곳을 강타하고 있고, 그 속에 인간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수많은 인명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올바른 진단을 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그것을 위해 움직여 나가는 일, 우리 모두가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은 안일하게 그러한 일들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경고이다. 올바른 종교라면 당연히 그러한 일에 가장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불교야말로 그러한 일에 앞장서기에 가장 적합한 가르침을 지니고 있다. 온 생명을 함께 생각하는 종교로서, 또 환경파괴의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무절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부처님오신 날을 맞아 “5대 결사는 우리 종단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설정한 것”이라며 “결사는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종단적 결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선포한 셈이다. 의미가 큰 일성이다. 그러나 ‘의미’ 자체가 전파와 실천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5대 결사는 표류하고 있다. 왜인가. 조계종 5대 결사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민족문화수호’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민족문화수호’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과 전통문화에 대한 수준 이하의 인식과 정책에 대한 일종의 항거에서 비롯됐다. 이에 따른 실천지침은 선포와 함께 곧바로 전국 사찰에 내려졌다. 정부의 금전지원을 유보시키고, 한나라당 의원의 사찰 출입금지와 스님들의 개인적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