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시라도 중생의 아픔을 잊지 않으신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일심(一心)으로 염송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 게 이 마음이 바로 자비(慈悲)로 가득한 자량(資糧)의 씨앗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나투신 오월, 자연의 푸르름은 ‘희망’과 ‘긍정’을 말하고 있는데 불자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하신지요? 그리 편치만은 않을 듯 합니다. 소납 역시 그러합니다. 장로 정권의 반문화적인, 반생명적인, 반민주적인, 반인권적인 정책과 행동들은 불자들은 물론 국민과 이 땅의 생명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엔 국민을 향해 온갖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더니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더니 이제는 그런 공약을 한 적이 없다며 국민을 혼란과
한국에서 자살은 이제 양적으로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최고 수준이 된 듯하다. 지난해 서울대생 가운데 5명이 자살했다고 하더니, 올해는 몇 달 안되는 사이에 카이스트 학생 4명, 급기야 교수도 1명 자살을 했다. 잘나가는 엘리트들이 앞장서 자살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드러난 카이스트의 현실은 자살의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징벌 등록금, 예외 없는 영어강의, 등록연한 제한, 교수들의 실적주의 등등 단 한순간도 경쟁에서 피할 수 없는 제도로 학생은 물론 교수들을 토끼 몰듯 쪼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끼몰이 제도들이 한때는 총장이름을 따 ‘서남표 개혁’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찬양되었다고 한다. 카이스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멀쩡한 소 돼지가 잔계산의 경
초과이익공유제. 한국 사회에서 곰비임비 쟁점으로 불거지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삼성그룹 협력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에 참석해 초과이익공유제를 계속 추진하겠다며 ‘꺼져가는 불씨’에 호호 바람을 불었기 때문이다. 기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양극화가 무장 커져가는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두루 알다시피 한국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기업의 99%에 이른다. 일자리를 보더라도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대기업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중소기업의 아우성은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언론에 광고를 많이 주는
지난달 모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때문에 시끄러웠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가수 일곱 명이 나와 각각 노래를 부르고 심사자들이 그들을 평가해 최하위는 탈락시키고, 한 사람을 충원하여 다시 경쟁하는 방식이다. 요즘 좋아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작진은 바로 이 긴장으로 가수들의 노력을 유도하고 그것이 무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길 기대했다. 요즘 대중음악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시도다. 최근 텔레비전 음악프로그램은 어떤가. 이른바 아이돌 스타가 점령한지 오래다. 짧게 소비되는 가수를 기획사에서 계속 찍어낸다. 민망한 노래실력으로 가수입네 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심지어는 30대가 된 전직 아이돌이 예능프로에 나와 무슨 원로 가수인양 회고담으로 시간을 때운다. 채널은 많지만 채널 선택권을 일찌감치 박탈당했다. 투표권은
요즘 시골도량에 가면 ‘참으로 생기(生氣)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만 가득한 우리네 농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인구 통계 조사에서 전 국민의 23%에 해당하는 1200만명 가량이 자발적으로 불자라고 밝힌 점을 생각하면 절에 불자가 없고 사람이 없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불자들이 일상적으로 정진하고 기도하고 참배하는 곳이 도량이거늘 한 달 30일 중 주말과 초하루를 제외하곤 한적한, 그야말로 고요한 산사(山寺)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늘 중생과 함께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전제로 할 것 같으면 도량에 불자가 없다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활기찬 도량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불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
‘강남좌파’, 아마 지금 한국의 보수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인 듯하다. 며칠 전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서울대 조국 교수를 명시적으로 거명하면서 ‘강남좌파’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분당 우파여, 강남좌파에 속지 말고, 자신이 속한 계급을 지지하라!”는 것이 그 글의 결론이었다. 다른 한편 지난달 초순 ‘B급 좌파’를 자처하는 한 논객이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비판하면서, “먹고살 걱정 없는 중산층 엘리트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을 위한 변화라고 과장하여 주장”한다며 비판했었다. 당신은 중산층 엘리트고, 당신이 주장하는 건 ‘민주집권플랜’이지 ‘진보집권플랜’이 아니라고, ‘진보’는 우리 땅이니 저기 당신들 땅(강남!)으로 가라고 비판한 것이니, 단어는 직접 사
선진국. 참 좋은 말이다. 선진국으로 가자는 데 반대할 국민이 있을까? 없다. 문제는 선진화의 내용이다. 선진국을 가장 부르대온 정당은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시절 ‘선진국’을 내세웠다. 그의 선진국 담론에 핵심은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이다. 하지만 747은 언제나 한나라당을 두남두는 부자신문에서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세계 금융위기 탓이라고 둘러대지만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이었다. 현재까지 선진화 주장에 상대적으로 가장 체계적 담론을 내놓고 있는 곳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이다. 재단 책임자는 박세일이다. 문제는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박세일의 선진화 담론이 공허하다는 데 있다. 두루 알다시피 박세일은 한나라당 정책위 위원장과 여의도
누구나 꿈이 있었다. 그래 꿈이 있었다는 표현이 맞다. 많은 이들에게 꿈 얘기는 그저 추억이다. 멋모를 적 나는 뭐가 될 거라고 허풍을 떨었지. 선생님하고 대통령 가운데 뭐가 될까 고민도 했지. 그야말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이 시대에 꿈은 매뉴얼이 있다. 대학 가는 게 꿈이고, 취직하는 게 꿈이다. 이 정도도 힘들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게 꿈이다. 존재하는 게 꿈인 웃긴 현실이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장래 꿈이 뭐냐고 묻는 게 민망한 시대다. 다섯 살 배기 아이가 “제 꿈은 취직하는 거요” 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듣고 있는 부모나 어른들은 정말 미안할 것이다. 일찍 철이 들어서 좋긴 하다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아버지
충청도의 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노(老) 보살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드릴까 합니다. 보살님의 시골마을에는 대략 7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 마을에도 작은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 작은 교회에서 무료 봉사단을 꾸려 어르신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고통들을 보듬는다는 것입니다. 읍내의 병원에서 의학 박사님을 초빙하고 머리를 손질 할 미용사와 영정 사진을 찍을 사진기사, 페인트칠 전문기사, 도배사, 전기 수리공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봉사단을 구성해 어르신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 미루고 미루어왔던 집안의 소소한 골칫거리들을 말끔히 처리해 주는 것입니다. ‘감동 만점’의 봉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봉사를 하면서도 어르신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의 마음도 여간 꼼꼼한 게
구제역 등 나라 온통 헤집고도 자화자찬실책․공적도 구분 못하는 이 시대 反영웅 예전에 농담처럼 이순신을 주인공 삼아 소설을 하나 쓰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적이 있었다. 근접전도 아닌 해전에서, 그것도 전쟁을 끝내는 마지막 해전에서, 쫓겨 가는 왜군의 유탄에 맞아 승전군 최고 장수가 죽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임금이 사는 궁궐에 백성들이 불을 질러버린 상황은 조선이란 국가가 명이 다했음을 뜻하는 징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시대에 이순신 같은 인물에게는 ‘난세의 영웅’이 되어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 아니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난세의 영웅이 될 인품과 능력, 그리고 조건과 명성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
수행·문화·생명·나눔·평화. 조계종이 선언한 5대 결사운동의 ‘푯말’이다.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를 꿰뚫고 있다. 종단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조계종 직할교구는 회의를 열고 오는 3월11일 사부대중이 참석하는 대규모 결의 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민족문화수호위원회도 구성했다. 교구종회 자승 의장은 회의 들머리에 “국민과 함께하는 불교를 표방하기 위해 자성과 쇄신을 통해 5대 결사를 추진해 나가기로 결의했다”고 밝히며 “5대 결사는 대외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불사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변화를 통해 국민과 사회와 함께하는 불교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신도회도 민족문화수호를 위한 실천위원회를 꾸리며 ‘자각자구(自覺自求)’를 기치로 내걸고 모금운동에 나섰다. 조계종의 자성과 쇄신 움직
세월이 모질다. 말 못하는 산 짐승이 파묻히는 때다. 봄이 온들 산으로 들로 나들이 갈 수 있겠는가. 저들의 시신을 밟고 설 자신이 없다. 짐승만 그런 게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그랬다. 많은 사람이 직업인지 아르바이트인지 모르는 직장에서 부지불식간에 잘린다. 터벅터벅 죽은 자의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영영 귀가하지 못하는 자도 있다. 도시에서 자행되는 살처분. 인간이 묻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불교계도 세월이 모질다. 그가 여당 대통령후보자격으로 조계사를 들를 때만 해도 불교계는 나름 장밋빛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흙빛 허무로 바뀌었다. 조계종 수장이 나선 시청 앞 집회를 기억하는가. 불교인들의 외침은 컸으나 멀리 가지 못했다. 수신해야 할 자가 수신을 거부해버렸다. 누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