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통한 포교활성화를 기원하며 매달 1천만원의 방송후원금을 기탁하고 있는 전우감(83)보살. "처음 방송국이 생기니까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전보살은 이렇게 방송후원금 기탁동기를 밝혔다. "종파를 떠나서 불교는 하나예요. 일단 방송국이 확충돼 많은 사람에게부처님자비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는 전보살은 현재 원불교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일찍 원불교에 귀의한 집안덕에 불교에 귀의했다고한다. 전보살의 일과는 불교방송과 함께 한다. 매일 방송을 들으면서 전보살은많은 위안과 신심을 다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보살은 친구들한테 방송을청취하라고 권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라디오를 사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
불자 미술인들의 오랜 숙원인 `불교미술인 협회'가 지난 13일 창립을결실을 보았다. "불가에서 흔히 쓰는 대작불사의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날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전영화교수(동국대 미술과)는 10여년 가까이이 모임의 주선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애를 써오다 더이상 늦출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창립의 산파역. "세월이 흐르면서 더이상 미룰 일이 아님을 다들 느꼈던 것 같습니다.오랜 시일이 걸렸지만 결정적으로 꾸려내는데는 큰 걸림없이 잘 이루어졌습니다." 지난해 연말 십수년전부터 불교미술인 모임을 만드는데 뜻을같이 했던7명이 모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급진전되어 금년초엔 곧바로 창립전준비에 들어갔다. 예상외의 호응으로 1백여명이 넘는 회원이 결성되
조선왕조가 말기적 증세를 보이는 징후는 무엇보다 민중의 삶을 도탄에빠지게 한 봉건체제의 부패였다. 계급사회를 받쳐주는 형식이었던 과거제도는 진작부터 공정한 시행이 자취를 감추었고 공공연하게 뒷거래를 통한매관매직이 기승을 부렸다. 중앙의 웬만한 자리는 뇌물로 거래되기 일쑤였다. 지방의 조그만 고을의 벼슬까지 자리값을 주고 부임을 했으니 그 댓가를치루기 위해서는 애꿎은 민중만 피를 말려야 했다. 누군가 자신이 지불한자리값 보다 더 두둑히 치루는 사람이 오기 전에 상납한 뇌물의 벌충을 확실히해야 했다. 이미 죽은 사람까지 들먹여 세금을 뜯어가는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시달리는 민중들에게 한가닥 실날같은 희망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였다. 계급으로부터의 해방, 억압과 수탈이 없는 평등사회, 착취자에 대
김승덕씨는 요즘 가을에 나올 앨범 녹음에 정신이 없다. 매니저와의계약기간이 끝나 이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부처님께서 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같습니다. 그동안은 내취향의 노래를 주로 만들고 불렀는데 이제는 다른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도 생각할 만한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그는 그래서 요즘 `구업을 짓지 말라'고 하셨던 경구를 늘 가슴에 새기고산다.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의 딸(지인)과 아들(군도)은 모두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 물론그 자신도 어릴적부터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갔던 절밥의 오묘함(?)에 빠져절에 다니게 됐지만 그의 자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하기까지 한단다. 그와는 달리 알아서 절
20년 연기생활을 오직 여주인공만 맡은 스타 한혜숙 씨(42세). TV드라마 "꿈나무"에서 청춘스타로 발탁돼 적격 스타덤에 오른 그는 "춘향전" "원효대사" "등신불"등 은막의 여배우로 연기의 폭을 넓히며 치솟는인기를 누려왔다. "편안하게 연예인생활을 보내 혜택을 받은 연기자에 속하지요". 그가 회고한 연기생활 20년은 그의 짧은 이말속에 담겨있듯 탄탄일로였다. 그런 배경에는 연기자로서 "무기"가 될 수 있는 빼어난 외모가 뒷받침했을 것이고 또 그의 인생관을 차지하는 불심이 순탄한 길을 풀어놓았으리라고 짐작케한다. 그것은 3년의 긴 침묵을 깨고 불혹을 넘어서서 출연하고 있는 SBS-TV연속극 "일과 사랑"의 여주인공을 맡은것에 대해 올해 정초 월정사에서발원한 기도덕분이라고 풀이하는 삶의
동국대 역경원장에 봉선사 월운스님이 18일 임명됐다. "역경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동안 조언을 해온 입장이었는데이제는 책임자가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원허스님 영암스님 자운스님에 이어 역경원장이 된 월운스님은 대강백이던 운허스님의 상좌로, 57~61년 통도사 강사를 거쳐 67년부터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중앙승가대 교수로 내년 2월정년퇴임할 예정이다. "역경인력 양성, 재정확보, 역경의 질 향상, 역경원 서적의 활발한 유통등을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로 봅니다." 스님은 이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단과 신도들의 역경에 대한 깊은관심이 요구된다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역경사업 추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월운스님은 그동안 봉선사에서 불경서당
불교방송의 2대사장으로 선임된 金泰鎬사장은 7일 교계기자간담회를갖고 방송국운영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요지. -지방국 개선에 불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한 추진방안은. "12월2일 공보처로부터 지방국추천서가 접수됐다. 체신부에 무선국허가를 받는 일이 이 달안으로 매듭어지질 예정이다. 불교방송재단이사회와 협조해야할 문제가 많이 있다. 지국형태이기 때문에 지방추진주체들과의 깊은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CATV추진에도 불교방송이 기여할 점이 많다고 보는데…. "CATV는 주식회사형태의 별도법인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단은 종단협의회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술과 전문인력을 갖고 있는불교방송이 도와야 할 사항이 있다면 불교발전차
BBS 이사 출연금중 1억원 전달 손현수 재단법인 불교방송 이사는 불교방송의 재정난 타개를 위해 3억원을 협찬하기로 하고 일차로 1억원을 지난 4월 24일 불교방송 성낙승 사장에게 전달했다.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손현수 회장은 주식회사 대현실업과 대현관광개발주식회사, 대현종합상사 등을 경영하고 있으며 조계종 중앙신도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10일 장애인 나들이 행사 남지심 `우리는 선우' 공동대표는 제 5회 장애인 나들이 행사를 5월 10일장충공원에서 갖는다. 장애인 1백10명과 독거노인 1백60명을 초대하며 자원봉사자 1백30여명이 동참한다. 02)278-8672 화갑기념논문집 봉정 받아 허천택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장은 5월 1일 서
석왕사 부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소속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 불자 외국인 1백 20여명은 4월 25∼26일 양일간 화성신흥사에서 출가수련회를 가졌다. 25일 서울에서 펼쳐진 봉축제등행렬에 참가하고 이날 저녁부터 1박2일간출가체험을 한 이들은 새벽 참선과 108배를 처음 해보며 한국 불교의 참맛을 느꼈다. 한편, 외국인노동자들은 4월 25일 임금체불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한동포돕기 운동본부에 성금을 전달했다.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구하기 위해 지옥에까지 가십니다. 그에비하면 병고에 시달리는 이웃에게 내게는 이미 충분한 것을 나눠주는일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지난 11월, 자신의 신장 하나를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아낌없이 떼어준 교계 최초의 생전 장기기증자 장순자(54세.법명 지원경)씨는 자신의 행위가 기사거리가 되는 세태가 오히려 기사감 아니냐고반문했다. "장기기증서에 서약한 후 기증받을 사람이 나타나고 수술날짜가 잡혀병원에 입원하는 동안에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그러면 지하철 속이든병원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했지요." 3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을 기둥삼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생활을 꾸려오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장씨는 지난 늦봄 우연히 교계신문에서 대원
84년 제8회 MBC대학가요제에서 `눈물 한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란곡으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불자가수 이유진씨는요즈음 대한불자가수회(이하 불가회)의 살림꾼이 되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다. 지난해 11월 대선배인 장미화씨의 권유를 받아들여 총무로 부임한이씨는 이름에 비해 여러가지로 빈약한 불가회를 살찌우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막상 책임을 맡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우선시급한 일이 법당 마련이라 모든 행사를 법당 기금마련에 역점을 두고있습니다." 91년 12월 창립한 불가회는 초대회장 김흥국씨의 맹활약으로 우선 단체를 알리는데는 성공했다. 2대 회장인 명국환씨는 "내실있는 조직이 오래간다"는 생각으로 회원늘리기와 친목도모를 가장 중요
〈법보신문〉은 지난 10년 정체됐던 불교계에 변화와 개혁을 추동하고자혼신의 힘을 쏟아부으며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나날을 보내왔다. 작은 힘이지만 불교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 속에서 불교가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그 중심에 서서 필봉을 휘둘러왔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같다. 그러나 〈법보신문〉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일이 남아 있음으로 해서 다시 개혁과 변화를 향한 시동을 힘차게 걸 것이다. 〈법보신문〉이 함께했던 불교계의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것은 이같은 법보만이 가진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고 다시 다지는 것에 다름아니다. 〈편집자〉 ◆불교종단 〈법보신문〉이 창간되던 때인 88년 5월은 불교종단에 있어 가장 큰 변혁기였다. 이 해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