塵墨劫前早成佛 爲度衆生現世間진묵겁전조성불 위도중생현세간 巍巍德相月輪滿 於三界中作導師외외덕상월륜만 어삼계중작도사진묵겁 전에 일찍이 성불하셨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셨네./ 높고 높으신 덕상은 둥근 달처럼 원만하시어서/ 삼계 가운데 중생 이끄시는 스승이시네.이 주련의 내용은 불교의례를 진행할 때 ‘산보집’ ‘작법귀감’에서 찬불게에 해당하는 게송이다. 그런데 ‘작법귀감’ 나한대례에 보면 진묵겁전조성불이라 하지 아니하고 진점겁전조성불로 나와 있다. ‘산보집’에 나오는 진묵겁이 바른 표현일까? ‘작법귀감’에 나오는 진점겁이
서양신학은 세계의 생성과 만물의 존재에 대해 여러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신이 무(無)로부터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 그들은 신이 만물을 창조한 다음에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를 질문했다. 사물이 창조된 순간을 넘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창조된 사물이 다음 순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해야 할 필연성은 없다. 사물은 순간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일상의 경험과 맞지 않다.그래서 서양인들은 신이 사물 안에 계속 존재할 수 있는 힘(concurrence)을 불어넣기 때문에 만물이 계속
승이 천팽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천팽이 말했다. “집에서는 항상 친절하였기에, 집에 있어도 적막하지 않다.”본 문답의 주제는 선문답에서 가장 흔히 언급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불조(佛祖)와 관련한 것이다. 불조는 부처와 조사라는 의미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모든 납자들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수행을 하고 깨침을 얻어서 조사가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야말로 납자들에게는 가장 전형적이고 궁극적인 인간상을 성취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조에 대한 문답은 납자의 본분사와 직결되는 물음이다.여기에서 승이 질문한 부
불교에는 크게 나누면 두 부류의 제자가 있다. 출가제자와 재가제자이다. 각각에는 다시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로 구분된다. 이를 4부대중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정각 이후 곧바로 이 4부대중을 조직하고자 하셨다. 이 4부대중에 대한 것은 ‘대반열반경’에서 악마 마라가 부처님께 반열반을 청하는 내용에서 나온다. 부처님 당시 우리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귀의와 오계를 받고, 준수할 것을 맹세하면 되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오늘날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비교해 보면, 불자들이 전법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니까야를 읽는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대응하는 아가마와 대조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 선명하게 이해될 때도 있다. 초기경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동이 조금씩 다르다. 예전에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경이 요즘에는 가슴에 와 닿는 경우도 있다.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나는 최근 ‘빱바뚜빠마-숫따(Pabbatū pa ma-sutta, 산의 비유경)’(SN3:25)를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이 경은 꼬살라국의 빠세나디(Pasenadi, 波斯匿王) 왕과 붓다의
우리절에서 백중을 처음 맞이하는 몇몇 보살님들이 소란스럽게 이야기하길래 들어보니, 영단에 절을 몇 번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어떤 이는 2번, 어떤 이는 1번 절하면 된다며 설왕설래하고 있었지요. 한 보살님은 ‘어느 스님이 3배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정색하고, 마무리 지었습니다.“우리 절에서는 영가단에도 삼배를 합니다. 영가의 본 성품이 불성이니 삼배하며, 삼보에 귀의하여 부처님 법을 따라 깨달음을 성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삼배합니다.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이니, 영가라
인터넷에서 증강현실을 찾아보니 인터페이스, 3D 가상공간이 나오고, 이것을 이해하자니 프로토콜, 마커 인식이라는 말이 나오며 다소 과장하자면 무한에 가까운 새로운 용어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것을 언제 다 이해하나라는 현애상(懸崖相)이 생긴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의 세대는 실제와 가상현실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가상공간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어떤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공간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마치 정토계 경전이나 ‘화엄경’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이번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강화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들의 일상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거리두기’이다. 의학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인류가 신종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처방으로 내놓은 것이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소위 ‘거리두기’는 일상의 회복을 위한 임시적 조처인가, 아니면 인류 생존을 위해 ‘거리두기’ 속의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빠른 회복을
인도의 국조(國鳥)는 인도 공작새(Indian Peafowl)이다. 학명 ‘Pavo Cristatus’는 고전 라틴어로 ‘볏이 있는 공작’을 뜻하는데, 여기서 볏은 머리 위 부채 모양의 화려한 장식깃털을 말한다. 목주변이 푸른색이어서 ‘블루 공작(Blue Peafowl)’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힌두신 쉬바(Śiva)의 목이 파란 색인 것과도 연관된다. 인도신화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인 ‘우유바다 휘젓기(Samudra Manthana, 乳海攪拌)’에서 선신과 악신은 불멸주(不滅酒)를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승이 파초철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한 사람은 생사도 버리지 않고 또 열반도 증득하지 않습니다. 화상께서는 그런 사람과 제휴할 수 있습니까.” 철화상이 말했다. “그런 사람하고는 제휴하지 않는다.” 승이 물었다. “어째서 제휴하지 않는 것입니까.” 철화상이 말했다. “노승은 좋고 싫음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파초철(芭蕉徹)은 파초산(芭蕉山) 계철선사(繼徹禪師)를 가리키는데, 파초혜청(芭蕉慧淸)의 제자로 위앙종 제5세이다. 본 문답은 선문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문답은 얼핏 들어보면 전혀 비상식적인 내용처럼 간주되기도
세상의 다툼은 많은 경우 질투로 인해 일어난다. 질투는 자신이 비교 대상인 사람보다 못한 대접을 받거나 평가를 받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인 정서이다.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상대를 해코지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위로도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하고 비교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고, 질투 또한 주요한 번뇌로서 언급하셨다.내가 남에게 느끼는 질투가 나와 남을 파괴하는 힘이 있다면, 남이 나에게 느끼는 질투는 어떠할까. 내가 질투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우월감을 가질 수도 있을테고, 상대를 처연하게 생각할
젊은 시절 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스님은 무척 따스하고 자상한 성품을 소유하신 분이라 제자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늘 애를 쓰셨다. 어느 봄날이었다. 꽃구경도 하고 바람도 쐴 겸 몇몇 제자들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용인의 유원지를 가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산책하다가 큰 호수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중 스님은 불현듯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만약 너희들이 죽어서 부처님, 하느님, 염라대왕과 같은 심판자를 만났다고 가정하고, 그가 너희들에게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지 딱 한가지씩만 말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