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맹 사건으로 검거돼무기징역 선고 후 쓴 시이데올로기에 걸림 없는자유 해탈인의 소망 담아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나의 행복은 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나의 불행은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 박노해(1957~)는 1984년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어 ‘얼굴 없는 노동
섭섭하게그러나아조 섭섭치는 말고좀 섭섭한 듯만 하게이별이게그러나아주 영 이별은 말고어디 내생에서라도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연꽃만나러 가는바람 아니라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엊그제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한두 철 전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인생은 사람과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별로써 끝난다.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의 품에서 자라고 성장해서 또 부모가 그랬듯이 새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끝내 늙고 병들어 자식의 손을 놓고 영영 이별을 함으로써 인생을 마감한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여름 산 같은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오후의 때가 오거든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더러는 앉고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청태(靑苔)라도 자욱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개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고통 속에서 헤매던 중생수행 통해 번뇌 털어내고깨달음 얻어 부처된 모습불교 연기사상 잘 드러내우리는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국화 옆에서’에서 불교의 연기사상을 만날 수 있다. 모든
나는 그대의 불전함/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배고픈 불전함/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천년이 걸린다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내 손이 먼저 무량수전 마룻바닥을 기어가듯/ 천년을 기어가/ 그대에게 적선의 손을 내미나니/ 뿌리치지 마시라 부디/ 무량수전이 어디 부석사에만 있었던가우리가 흔들리며 타고 가는 지하철/ 여기가 바로 무량수전 아니던가/ 나는 그대의 불전함/ 다 닳은 타이어 조각을 대고 꿈틀꿈틀 무릎도 없이/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가난한 불전함/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또 천년이 걸린다무량수전 거룩한 부처님을지하철의 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와 시론, 1952년)존재 의미는 마음 통해 소통서로 의미 부여했을 때 생성이름 부르며 관심·사랑주면단 하나뿐인 의미 있는 존재김춘수(1922~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 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쇠창살을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벽 속에/ 저벅거리는 교도관의 발자국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요/ 연등은 켜질까요/ 고개 가로저어/ 더 깊숙히 감방 속으로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득한 성자’오현 스님의 대표 작품으로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돼무상하고 허무한 인생이나하루 잘 산 이가 주인공 강조시인은 시로써 말하고 도인은 깨달음의 도력(道力)으로 평가한다. 구도자는 아침에 깨달음을 얻고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득한 성자’는 오현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아지랑이’수행으로 얻은 깨침 통해자신의 실상을 인식하고인생에 대한 관조는 물론견처 읊은 깨달음의 노래오현(1932~) 스님의 시는 불교의 심오한 사색과 깨달음의 세계를 일상적인 평이한 시어로 쉽고 감동적으로 읊고 있다.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인 ‘아득한 성자’가 하루살이의 삶
목어를 두드리다졸음에 겨워고오운 상좌 아이도잠이 들었다.부처님은 말이 없이웃으시는데서역 만리 길눈부신 노을 아래모란이 진다. ‘청록집’ 만해 지조·시 계승한 시인한가로운 산사 모습 묘사세상사 갈등·시비가 없는자연 그대로의 평화 그려조지훈(1920~1968)은 혜화전문(동국대학교 전신)을 졸업하고, 고려대 교수가 되어 지식인을 대표해 자유당 독재와 군사정권에 항거하였다. 지성과 양심을 지키고 실천하는 상아탑의 지성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경북 영양 출신으로 유교의 명문가에서 자라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시인 가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새노야 새노야!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새노야 새노야!기쁨 일이면 저 산에 주고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새노야 새노야!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새노야 새노야!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새노야’ 고은(1933~)의 시는 난해하지 않고 쉽다.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운율이 춤을 춘다. 그가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불도를 닦은 공력으로 시 속에 녹여낸 심오한 선사상과 기발한 돈오(頓悟)의 깨달음이 솟구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불명은 일초(一超)이다. 단번에 뛰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순간의 꽃’고은(1933~현재)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한국의 국민 시인이다. 굴곡이 많은 한국현대사의 중심에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네 차례나 투옥된 민주투사이다. 그는 민중과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하는 양심과 지성을 통해 드러낸 작가의 정신이 투철한 시인이다. 시인의 평가는 시로써 한다. 고은은 시집, 소설, 수필, 평론 등의 저술이 150권이 넘으니 대단하다. 그의 시가 모두 명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의 사랑을 받는 절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가 만약 지금과 같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님의 침묵’사랑의 줄은 번뇌의 속박끊음은 번뇌를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더냐. 너에게도 님이 있더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님의 침묵’님은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잃어버린 조국과 자유와오욕의 삶 초극한 절대자부처이며 중생이고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