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에 끌려간 모든 동물들은 해체과정이 이루어지는 라인 위로 사슬에 묶여 끌어올려지기 전에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효과적인 기절 장치를 사용해 한 번에 의식을 잃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항의 법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도살법(Humane Slaughter Act)입니다. 산목숨을 죽이는데 자비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미국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돈벌이에 환장한 축산업자들과 육가공업자들에게 자비로운 도살법이라니요! 그들은 매년 1억 1백만 마리의 돼지를 도살하고, 3700만 마리의 소와 송아지를, 400만 마리가 넘는 말과 염소와 양을, 그리고 80억 마리가 넘는 닭과 칠면조를 도축해야 합니다. 그러니 도살장의 작업라인을 단 1초라도 멈
요즘 날씨가 자주 꾸물합니다. 이런 날에는 간식거리 잔뜩 사놓고 어둑한 방안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딱입니다. 그럴 마음으로 만화책을 한 권 펼쳤습니다. 하지만 나치에게 처참하게 당한 유대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만화책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어찌나 거칠게 그려졌는지 만화를 본 게 아니라 아주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힘들게 인터뷰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쥐’는 유대인, ‘고양이’는 나치입니다.유대인인 슈피겔만과 그의 아내인 아냐는 나치 치하에서도 처음에는 넉넉한 재산으로 그럭저럭 버티어갑니다. 설마 전쟁이 오래가기야 하겠냐는, 그리고 설마 그런 끔찍한 재난이 진짜로 자신과 가족에게 덮치겠냐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올 것은 오고 말았습니다. 화목하고 풍요롭던 집안은
“명상을 합니다.”라고 누군가가 말하면 그 사람 참 대단해보입니다. 여느 보통 사람은 명상이니 참선이니 하는 것은 자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낍니다. 하는 일이라고는, 아니, 수행이랍시고 하는 것은 그저 경전‘이나’ 읽고 그 속에 담긴 구절이 진정 무슨 뜻일까를 생각‘이나’하는 것이 전부인 나. 사람들에게는 지금 당신이 경을 읽고 불서를 읽는 그 자체가 수행이라고 말하면서도 내 자신은 정작 수행에 매진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왔습니다. 하지만 금요일 아침, 나는 행복합니다.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경전을 읽고 그 뜻을 고민하고 의심하고 회의하고, 사람들 속에서 함께 경을 읽고 문답하면서 내 한계와 부족함을 고스란히 드러내왔던 그 순간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수행의 시간이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쩌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오쿠노 슈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청소년 범죄가 심상치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지방의 학교에서 집단 성폭력이 이루어졌다는 기사가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국의 지진과 미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국내외가 어지러웠던 탓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합니다. 1969년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공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고교1학년생이 같은 반 친구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게다가 친구의 머리까지 잘라내었습니다. 학교와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범인은 미성년자이므로 소년원으로 보내졌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된 채 지내야했습니다. 그 후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사실 형벌을 다
『마하트마 간디』요게시 차다 지음/ 한길사 “만일 비행기가 원자탄을 떨어뜨린다면 아힘사(비폭력)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서방의 어느 기자에게 간디는 대답하였습니다. “비폭력의 병사들은 원자탄 투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대피소를 찾아 뛰지 말아야 한다. 아힘사는 무엇으로도 깰 수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히로시마에서 죽음을 당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굳건하게 서서 두려움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종사를 위해 기도했다면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p.780) 간디는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독재자의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필요하다면 수천 명은 아니더라도 수백 명을 희생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있다.”(
『구운몽』 김만중 지음 / 을유문화사 책읽기 모임 도반들과 4월 한 달 동안 구운몽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불교의 세계를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있고 고전의 향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책의 주인공인 양소유는 문무를 겸비하였고 신수까지 훤합니다. 또한 차례로 등장하는 여덟 명의 미녀들은 너나없이 버드나무 같은 몸매에다 앵두 같은 입술, 꽃향기 넘치는 목소리에 역시 재능을 완비하였습니다. 이 여인들이 하나같이 양소유만을 그리워하니 어느 사내가 감히 맞장을 뜨겠습니까? 게다가 장원급제까지 한 뒤에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결국 천자의 사위되는 영광을 얻는데 천자의 대궐에서 세 여인과 동시에 혼례를 올리니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2001년 4월27일 밤, 우리의 주인공 이광두는 변기에 앉아서 벽에 걸린 액정 텔레비전을 통해 러시아 우주선 유니언 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미국 갑부노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미국 노인도 우주에 가서 먹고 싸는데 소위 초특급 갑부인 자기가 초라하게 지상에서 똥을 쌀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일여 년 후 남아프리카의 IT업계 거부 마크 셔틀위스가 우주여행을 하고, 이어 미국 대중가수 랜스 베이스도 그해 시월 일 일 우주를 항해하겠다고 나서자 뜨거운 솥단지 속의 개미 새끼처럼 초조해 죽을 지경이 되어버린 이광두는 이렇게 신음합니다. “벌써 개자식 셋이 내 앞자리를 뺏었어.” 결국 그는 돈을 아끼지 않고 러시아어를 익히고 체력단련을 하여 대망의 우주여행을 코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강소연 지음 / 부엔리브로 어렸을 때, 빈속에 감기약을 들이켰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나가며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엄마…”하고 불렀지만 혀마저도 입 속에서 축 늘어져버렸습니다. 엄마는 그런 내게 베개를 고여 주고 홑이불을 덮어준 뒤에 문을 닫고 나가셨습니다.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요. 아주 먼 곳에서 짜랑짜랑 방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떤 남자의 구성진 노래 소리도 함께 실려 왔습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을 때 이미 방안에는 고요가 어둑하고 묵직하게 자리하였습니다. 그때 혼자서 찔찔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열 살도 먹지 않은 어린 계집아이를 울게 만든 것은 요령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지음 / 청년사 미니호, 삐삐, 쫑, 무키, 흑돔이, 복태….짐작하시겠지만 우리 집 개들의 이름입니다.지금까지 내 삶에서 개가 없었던 해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여 헤아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개를 기르지 않고 지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종이든 가리지 않고 개는 언제나 내 옆자리에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집에서는 수십 마리를 길러본 적도 있었고, 지금은 두 마리가 내 발 아래에서 칭얼거립니다. 동물을 길러본 사람은 압니다. 녀석들이 은근히 깊은 정을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사람이고, 녀석은 동물이니 우리 사이에 달콤한 밀어가 오고간 적은 단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데에는 말보다 눈빛과 접촉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녀석들을 통해서 깨닫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 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 지식의 숲 영국 사람, 티베트 사람, 중국 사람 셋이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영국 사람이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마구 찍어대더니 냅다 카메라를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카메라야 영국에는 너무나 흔하니까!” 중국 사람이 곧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고는 담배가 많이 남아 있는 담뱃갑을 차창 밖으로 휙 던져버렸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담배쯤이야 중국에 너무 흔하거든!” 티베트 사람은 가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곁에 앉아 있던 중국 사람을 차창 밖으로 내던져 버리더니 말했습니다. “중국 사람은 티베트에 쌔고 쌨으니까!” 중국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라싸에는 생수 값보다 맥주 값이 더 싸
가까운 이를 어쩌다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저런 책이 쌓여있는 가운데 한 권을 빼내더니 두어 페이지 읽어내려 갔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덮고는 한숨을 폭 내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역시 불교는 어려워.” 그가 덮은 책을 집어 들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책은 전혀 어렵지 않은, 오히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고 난 뒤에 던져버려도 그만일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이 어려워?”내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습니다.“불교는 어려워, 역시.”“이 책 어느 부분이 어려웠는데?”심문하듯 캐묻자 그가 외려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이렇게 답하였습니다.“불교가 어디 쉬운 종교니?” 화두를 든 납자를 일러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마주하였다’라고 하더니 내게는 ‘불교가 어렵다’라는 친구들의
너무해요, 법보신문사!왜 내게 지면을 이렇게 작게 주시는 겁니까?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도 아니고 문학계 대가(大家)의 무려 690쪽에 달하는 평전을 이틀 만에 읽으면서 처음에는 큭큭큭 웃다가 그다음엔 킬킬킬 웃다가 그다음엔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고, 책을 덮은 다음에는 찡해지면서 무어라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발자크를 향한 끔찍한 애정이 솟아나게 된 이 책을 내가 어떻게 이 ‘눈곱만한’ 칸에 구겨 넣을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작가’라는 직업. 멋있지 않습니까?모두가 스쳐 지나는 사물을 내면까지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형안(炯眼), 마르지 않는 샘처럼 뿜어져 나오는 메타포, 비듬이 하얗게 떨어진 책상 주위로는 찢어지고 구겨진 원고지가 널려있지만 ‘멋있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 카리스마….어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