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을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우리 집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큰 아이는 재사용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얘기하며 반드시 재사용을 좋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이가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음료수 병에서 유리조각 등 이물질이 나오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했다.사용한 빈병 바로 세척하면미생물 번식 막을 수 있어재사용 반대의견 보완해야미래세대 삶 더 나아질 것식품안전처에 따르면 2013년 식품 이물 신고 건수는 6400여건에 이른다. 이 중 음료류에서 500건 가까이 이물이 발견됐다. 음료에서 발견된
어릴 적 방학이면 이웃집에서 빌려온 리어카에다 우리들이 봤던 지난 학기 교과서며 날짜 지난 신문, 빈병 등을 모아서 4남매가 고물상에 팔러가는 게 연중행사였다.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는 그렇게 집 안을 청소하시고 대신 고물상에 폐품들을 팔아서 생긴 수입을 우리 4명에게 고루 나눠주셨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활보하는 일이 점점 창피했지만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전자계산기는 고사하고 눈금을 쉽게 볼 수 있는 저울도 흔치 않았다. 추를 올려놓으며 양팔의 수평을 살펴 무게를 재는 저
‘기변’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난 글자가 있다. 그 뜻이 뭘까 궁금해 하다가 우연히 휴대폰 가게 앞에 붙여진 광고를 읽고서야 기기변경의 줄임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과장을 좀 보태어 자고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니까. 관건은 소비자가 ‘많이’ 사줘야 기업의 이윤이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런데 어지간한 가전제품은 소비자가 이미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해결은 의외로 쉽
많은 자동차들이 뒤엉키며 누런 흙탕물 속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80층이나 되는 초고층아파트로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 아파트에서 팔뚝만한 바닷물고기를 잡았다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어 웹에 올렸다. 어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이달 초에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강타한 태풍 차바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당연한 소리겠으나 제 삼자로 그런 풍경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그 일을 겪어본 사람의 심정은 천양지차다. 세간살이가 다 물에 잠기는 경험은 참으로 처참하다. 느닷없이 범람한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지났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폭염도 시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걸 보며 무상함을 느낀다. 아침, 저녁 일교차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벌써 단풍 소식이 산꼭대기에서 전해져온다. 봄에 떠들썩하던 벚꽃 행렬이 더운 여름 내내 주춤하다 단풍으로 그 행렬을 이어갈 것이다. 나들이 철이 되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보다 곳곳에 수북이 쌓일 쓰레기가 내게는 먼저 떠오른다. 페트병 하나 만드는 데막대한 양 석유 사용돼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하천 마름 현상도 심화걱정도 팔자라는 이들도 있겠으나 실상이 그렇다
갑자기 책꽂이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월요일 저녁 그 시각에 나는 책꽂이를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 이중 서가의 앞쪽 책꽂인지라 이동이 자유로우니 바람에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애써 생각을 그렇게 하려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그 진동이 지진일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 두 차례 지진을 경험했던 터였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든 외면하려 했지만 벌어진 현상 앞에서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는 곧 밝혀졌다. 흔들림이 멈춘 뒤 고갤 들어 창을 보니 문은 닫혀있었다. 사실 창문이 열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이토록 ‘간절하게’ 아름답다고 느끼던 때가 살면서 또 있었나 생각해본다. 미세먼지로 인해 연일 뿌옇게 흐리멍덩하던 하늘과, 창문을 꼭꼭 닫고 지내야 했던 경험들을 떠올려보면 요사이 이토록 청명한 하늘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해보면 선택지는 언제나 우리 손에 있었다. 파란 하늘아래서 살 것인지, 희뿌연 하늘 아래 갑갑한 마스크를 끼고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한.배기가스는 열섬현상 등 원인자동차 사망자도 연간 25만명공공 자전거 시스템의 도입은맑은 하늘과 공기 돌려받는 일일 년에 딱 두 번, 내가 살고 있는 서
재미있게 본 영화는 많지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영화는 드물다. 그 몇 안 되는 영화 가운데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가 있다. 실존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한창 유명하던 전성기에 돈과 명예의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걸어 내려왔다. 원하는 만큼 무대에 서서 연주할 수 있었지만 음악을 상업적으로 보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맘껏 작곡하고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음악회에 온 듯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에 푹 빠질 수 있었고, 마치
지방 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입장휴게소였는데, ‘되돌림 화장실’이라는 독특한 화장실을 만났다. 한글 이름이어서 눈에 띄었는데 화장실 입구에 있는 홍보관에 들어가 살펴보니 꽤나 의미 있는 화장실이었다. 건축물을 허물 때 나오는 건설폐기물을 100% 재활용해서 지은 화장실이었다. 건설폐기물을 재활용해서 건축물을 지어 되돌렸다는 의미와 화장실이란 곳이 우리 몸을 거쳐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곳이란 두 가지 의미가 ‘되돌림 화장실’이라는 말에 담겨 있었다. 건설폐기물을 재활용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건설폐기물은
쏟아지는 비 받아놓기만 해도온난화 대책에 큰 효과 있어비 없는 것은 열대야와도 관련편리함 누린 대가 고통으로 와염천에 떠오르는 풍경 하나가 있다. 마당가 풀들이 축축 늘어지고 매미 울음소리마저 더위가 삼켜버린 날이면 뙤약볕 아래 달궈진 마당이며 담벼락 그리고 골목길 어귀까지 물을 뿌리곤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다. 아버지가 호스로 물을 뿌리시는 틈바구니에 나도 슬쩍 끼어 시원한 물세례를 받곤 했다. 대문간에 있던 진돗개 진수도 꼬리를 흔들며 낑낑댔고 결국 물세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진수가 물기를 온몸으로 털기 전에 얼른 저만치 피해
깜빡 잊고 아침에 지어 놓은 밥을 솥에 그대로 두고 하룻밤을 지냈다.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 사람이 없어서 그만 밥 관리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에 퍼뜩 생각나서 부엌으로 달려가 밥솥 뚜껑을 여는데 시큼한 냄새가 났다. 따스한 마음 담긴 ‘밥 먹자’‘밥=생명’이란 생각서 나와감사 모르는 음식문맹보단욕심내려놓고 음식 대해야아뿔싸!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여름마다 몇 번씩 이렇게 아까운 밥을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이미 시큼하게 쉬어버린 밥을 놓고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걸까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밥
밤이 되어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보름 넘게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이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높은 기온에 매미 개체수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매미 울음소리마저 소음공해가 되어 괴롭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게 지독한 폭염은 작년에 한 달여 지속되던 가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도시에서 살고 있으면 가뭄은 사실상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비가 참 안 오네’ 라고 느끼긴 해도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나 물이 콸콸 나오니 가뭄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폭염은 다르다. 폭염이 가뭄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과학기술의 진일보는 부작용도 제법 가져다줬지만 그 덕에 누리는 혜택도 많다. 서울 내 집에 앉아서 저 먼 알래스카 곰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니 가히 혜택이라 할 만하다. 자연의 끝없는 순환의 고리 속인간은 일방적인 특혜만 받아개발 논리 대신 보전 가치 보며생명 관점에서 자연 바라봐야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브라운 베어의 생활을 24시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곳곳에 설치된 라이브 캠 덕분이다. 요새 그곳은 연어가 한창 올라오는 시기이다. 연어가 힘차게 강을 거슬러 펄쩍펄쩍 뛰어
아이들 어릴 적에 ‘작은 집 이야기’란 그림책을 자주 읽어줬다. 미국 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이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대부분이 발전 원하면서도자연 줄어듬은 원치 않아뭇 생명들 존재 살필수록내 존재도 있음 알아차려야먼 먼 옛날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 집을 지은 사람은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집을 절대 팔지 않을 거라 했다. 이 집을 지은 이는 그의 손자의 손자, 그리고 그 손자의 손자가 그곳에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남아 있길 소망했다. 작은 집은 언덕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넣으면 언제나 첫 장면은 ‘호환과 마마’만큼 무서운 불법비디오를 보지 말라는 공익광고가 떴던 걸로 기억한다.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 호환과 마마에 따르는 두려움은 실로 컸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동물원 우리 안에서나 볼 수 있는 호랑이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었고 이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천연두 역시 두려워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둘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설정한 광고는 오히려 희화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우연히 도로 위 줄지어선 자동
7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었다. 곧 초복을 시작으로 중복과 말복이 열흘 간격으로 기다리고 있다. 복날 보양식은 더위에 지쳐 허해진 몸을 추스르고 보신하려 먹는 음식이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그 시절 삼복더위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 했을까? 고기 구경은커녕 먹는 것 자체가 귀하던 때, 너나없이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하던 그 시절을 상상해보자. 더운 날 노동으로 쏟아낸 땀방울의 무게만큼 축났을 체력을 복날에 몸을 보신하는 일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지혜였을 수 있다. 그래서 단백질 함량이 높은 육개장, 백숙,
퇴근 시간이 좀 지난 뒤라 그랬는지 전철 안에는 서 있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전철 칸이 연결된 곳에 문이 활짝 열려있었는데 내가 탄 앞 뒤 칸의 풍경도 넉넉해 보였다. 훤하게 뚫린 공간에서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전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 대부분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오
해 질 녘, 한낮에 오르던 기온이 한풀 꺾이고 바람도 제법 불던 시각이었다. 모임에 가려 버스를 탔다. 주말 이른 저녁이어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금세 한기를 느꼈다. 여름이면 필수품처럼 챙겨 다니는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창문은 모조리 닫혀있었다. 차창 밖에는 일렁이며 가로수가 춤추고 있는데 그 선선한 바람을 닫힌 창이 가로막고 있고 버스 안은 꽁꽁 얼 것만 같은 에어컨이 가동 중에 있었다. 당장 시원해지고 싶은 욕망이에너지 소비로 지구 덥게 해부채로 땀 식히는 여유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콘크리트로 만든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여 24시간을 보내야하는 도시인들에겐 간절한 바람일 수 있다. 더구나 희뿌연 하늘이 도시를 덮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 답답함은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다. 휴일이면 막힐 걸 뻔히 알면서도 꾸역꾸역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자연을 이리저리 도려내고 파헤치며 들어선 도시에 살고 있으나 우리 안에 내재된 유전자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한 까닭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을 만나는 일은 어쩌면 고향을 찾아가는 일과 같다고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내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지역의 한 수변공원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는 그곳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환경미화원의 뒷모습이 다소간 충격적이었다. 쓰레기양에도 놀랐지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풍경은 마치 그곳에서 놀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를 잠깐 뜬 게 아닌가 싶었다. 앉았던 깔개조차 그곳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날 밤에 비라도 내렸다면 저 많은 쓰레기들의 대부분은 바다로 쓸려갔을 테고, 어느 바다인가를 둥둥 떠다녔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