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圭峰}二 發起序者 謂乞食威儀 離於邪命 是爲持戒 戒能資定 定能發慧 故以戒定 發起般若正宗 於中 有二 一 戒 二 定 今初 두 번째 발기서는 걸식의 위의가 삿된 命을 떠난 것을 말함이다. 이는 지계(持戒)니 계는 능히 정(定)을 돕고 정은 능히 지혜를 발하기 때문에 戒와 定으로써 반야의 바른 가르침을 발기(發起)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첫째는 계요 둘째는 정이다. 이제 계를 말한다. 서분에는 두 개의 序가 있습니다. 첫 째는 앞에서 공부했던 증신서이고, 둘째는 뒤에 이어지는 정종분을 발기하기 위한 발기서로서 지금 공부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발기서도 계(戒)로써 발기하는 부분과 정(定)으로써 발기하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離於邪命(삿된 命을 떠났다)’이란 사사로운 생명의 보
이제까지 태국의 숲 속 수행의 전통을 부활시킨 아찬 문과 아찬 사오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을 여러 분 소개했었다. 아찬 문의 제자이면서 숲 속 수행의 전통을 태국의 중앙부의 평원에서 가르친 한 스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찬 리 담마다로(Ajhan Lee Dhammadharo 1907~ 1961)의 삶과 수행을 보면서 수행자로서의 삶과 그 분의 가르침을 간단히 살펴본다. 아찬 문 만나서 재발심 방콕에서 남쪽으로 32킬로미터 지점에 ‘슬픔이 없는 사원’이라는 의미의 왓 아소카람(Wat Asokaram)이 있다. 1955년에 아찬 리 담마다로 스님에 의해 세워진 이 사원은 넒은 평지에 하얀 탑이 눈이 부시게 보이는 수행도량이다. 이곳은 태국의 중심부인 방콕 근교에 세워진 유일한 숲 속 수행의 전통을
1. 인도에서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이루워진 고도의 문화를 인더스 문명이라 한다. 다음 중 인더스 문명에 대한 설명이 아닌 것은? ① 인더스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을 모태로 하며 모헨조다로·하랍파의 계획도시를 건설하였다. ② 인더스문명은 고도의 청동기 문화를 토대로 형성되었으며, 농경과 목축에 기반을 두고 있다. ③ 이 문명은 후세 인도의 민간신앙과 밀접한 시바신상의 원형을 남겼으며,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④ 이 문명을 이룬 민족은 아리아인들이었다. 2. 인도의 주류로 등장한 아리아인들이 만든 종교서가 4베다 문헌이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리그베다 : 신에 대한 찬가의 집성 ② 사마베다 : 가영의 집성 ③ 야쥬르베다 : 제사의 집성 ④ 아타르바 베다 : 철
통도사에 주석할 당시 경봉 스님은 배춧잎 한장도 아껴 썼다. “시주물 무서운줄 알아야 한다”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노스님은 사중(寺中)의 물건을 어찌나 아끼는지 구두쇠로 널리 알려질 정도였다. 심지어 공양간에 두고 써야 할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극락암 공양간에서는 구경할 수 없었다. 고춧가루통, 깨소금통은 말할 것도 없고 참기름병까지 조실스님이 당신의 방 벽장에 넣어놓고 그날그날 필요할 때만 잠시 꺼내주면서 일일이 관리를 하고 계셨다. 어느날, 통도사의 다른 산내암자에 있던 비구니들이 극락암으로 경봉스님을 찾아뵈었다가 점심공양 때가 되어 공양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공양간에 고춧가루통도, 깨소금통도, 참기름병도 없었다. 한 비구니가 조실스님께 여쭈었다.
홀로 앉아 한 줄기 향을 피우고 객과 도적은 문 밖에 내버려 두라 무착문희 선사는 앙산의 제자다. 벽암록 第35則에 의하면 무착선사가 어느 날 인적 드문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문수보살의 절에서 신세를 지며 문답을 나누게 되었다. 문수보살이 무착에게 물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 “남방에 있었습니다.” “남방의 불법은 요즘 어떠한가?”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받드는 정도입니다.” “그 계율을 받드는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삼백 명에서 오백 명 정도 됩니다.” 이번에는 무착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떻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네.” “수행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佛 불(佛)이여! {說}本源天眞 是 相好嚴身 是 一身 分作兩鄕心 본래 근원의 천진이 부처인가, 훌륭한 상호로 장엄된 겉모양이 부처인가? 한 몸이 두 마음으로 나뉘어졌도다. 無面目說是非漢 얼굴도 없이 시비를 설한 사람이로다. 부처란 모든 모습이 끊어져서 면목도 없는데도, ‘잘 살아야한다, 못 살면 안된다’는 설법을 하게 되셨습니다. 모든 것이 끊어진 진리자리에서 설법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 스님은 "부처의 상에 집착하면 자신은 마구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說}無形還有像 逢人說是非 모습이 없는 가운데 도리어 모습이 있어, 만나는 사람에게 시비를 설하셨다. 小名 悉達 長號 釋迦 度人無數 懾伏群邪 若言他是佛 自己 却
1. 한국적 종교의 효시가 된 동학(천도교) 종교가들의 설명으로 틀리는 것은? ① 동학의 창시자 수훈 최제우는 ‘종교적 각(學)’을 체험하며 근대 한국적 종교의 효시가 된다. ② 동학의 2대 해월 최시형은 스승 최제우에 못지않은 지도자로 동학의 조직과 정착에 힘쓴다. ③ 동학의 3대 의암 손병희는 동학의 근대화에 주력하면서 민족독립운동을 위한 3.1운동을 주도한다. ④ 동학은 뒤에 천도교로 개칭되며 동학혁명을 일으킨 녹두장군 전봉준과는 별개다. 2. 동학의 사상을 나타내는 내용이 아닌 것은? ① 시천주(侍天主): 사람은 한울님을 모셨다. ② 수심정기(守心正氣): 마음을 닦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는 법 ③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④ 천지공사(天地公事): 우주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지의 상좌불교에서는 여성이 출가하더라도 비구니가 될 수 없다. 상좌불교의 종주국이었던 스리랑카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12세기 경에 비구니 승단의 전통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 스리랑카에는 비구도 없어졌었는데 미얀마와 태국에서 다시 계율의 맥을 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비구 승단이 존재하게 되었다. 상좌불교에서는 비구니 승단이 다시 생겨나려면 부처님이 다시 비구니 승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보수적인 상좌불교의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상좌불교 국가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출가하여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사원에서 수행과 교학에 정진하고 있다. 그들의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여성 수행자들의 입장을 개선하려고 아야 케마 스님은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87년에 사키야디타(석존의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경봉(鏡峰) 큰스님은 근세에 경남 양산의 통도사가 배출한 위대한 선사(禪師) 가운데 한분이었다. 스님은 1892년 4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문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어머니 안동 권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16세의 나이에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절감하고 양산 통도사 성해 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였다. 이후 경학(經學)이나 사찰소임에는 뜻이 없고 오직 참선수행에만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그에게 종무소 사무를 계속 맡기는지라 스님은 통도사를 탈출, 비장한 각오로 참선 수행을 시작했다. 1927년 ‘이 뭣꼬’ 화두를 들고 참구하다 마침내 개오하여 ‘대자유’를 얻었다. 그 후 경봉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와 중창불
我 아(我)여! {說}指天指地獨立底人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며 홀로 서있는 사람이로다. 赤裸裸淨洒洒 沒可把 벌거벗은 듯, 깨끗이 물을 뿌린 듯하여 잡을 수 없도다. 赤裸裸는 眞空의 상태이고, 淨洒洒는 현실에서 해탈한 모습입니다. 根塵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집착으로부터의 대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이 경계는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습니다. {說}古人 道 阿呵呵是甚麽 南北東西 唯是我 雖云南北東西 唯是我 爭 乃一切處 摸索不着 是可謂境上施爲渾大有 內外中間覓摠無 옛 사람이 말하길 “아하하! 이 무슨 물건인고? 동서남북에 오직 참된 나뿐이다.”라 하시니, 비록 ‘동서남북에 오직 나 뿐이다’라고 말했으
물속에 잠긴 달 소유할 수 없는데 진리의 실체를 어찌 알 수 있으리 {說} 南泉 問講師 講甚經 云講涅槃經 云經中 以何爲極則 云以如 如爲極則 云喚作如如 早是變了也 須向異類中行 道取異中事 始得 法 眞一 頌云 涅槃寂滅 本無名 喚作如如早變生 若問經中何極則 石人 夜 聽木聲 謂涅槃寂滅 本無名字 若立名字 未免變異去在 須向異類中行 道取異中事 圓轉不 始得 且道 變向甚處去 不得亂走 若以變不 變 商量 又却不是也 畢竟作生 涅槃寂滅 雖本無名 亦不妨因名現體 爲甚如此 說名之時 早已風吹不入 水不著 只有一段通身寒光 喚作如 如 有甚變去 남전이 강사에게 묻기를 “무슨 경을 강하는가?” 강사가 대답하길 “열반경을 강의합니다.” 남전이 묻기를 “열반경 가운데 무엇을 지극한 법칙으로 삼는가?” 강사가 답하길 “여여(如如)를 극칙으로
1. 구한말은 우리나라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이때 많은 신종교들이 출현하였는데 이 신종교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신종교는 말 그대로 새로 일어난 종교로서 기성 종교와 구별되는 종교를 말한다. ② 한국의 신종교는 일단 한국인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것으로 보통 ‘동학’을 그 시발점으로 한다. ③ ‘수운’, ‘증산’. ‘소태산’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신종교운동은 민족적 차원에서 일어난 주체적인 정신회복 운동이다. ④ 구한말에 조선조 500년을 유지한 유교가 시대에 맞게 변신한 것들이 신종교 운동이다. 2. 한국의 자생적으로 일어난 신종교 계열 중 나철이 세운 것으로 단군을 섬기는 종교는? ① 대종교 ② 천도교 ③ 증산교 ④ 원불교 3. 유교 계통의
수없이 부침하는 삶의 역정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삶의 소중한 기회를 낭비하고 있지 않는가? 정신적인 향상의 길을 가는데 적당한 시기는 언제인가? 이러한 물음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아야 케마 스님의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20년이 넘는 수행으로 깊은 선정체험을 하고, 수행을 바탕으로 호주, 스리랑카, 독일에 세운 수행센터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와 수행을 가르쳤으며, 여성 불자들의 수행환경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한 아야 케마(Ayya Khama, 1923~1997, 본명 Ilse Ledermann) 스님. 그 분의 마지막 저서인 『I give you my life(내 삶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라는 자서전이 입적하기 직전에 독일어로 1997년 출판되었다. 이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스님은 "모든 법이 공함을 관하며 마음이 물듦에 당하지 않음을 각(覺)이라 하니, 각이 곧 부처(佛)"라고 설명했다 오늘은 육조 스님이 구결로 ‘여시아문’을 풀이한 것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六祖} 如者 指義 是者 定詞 阿難 自稱如是之法 我從佛聞 明不白說也 故 言如是我聞 又我者 性也 性卽我也 內外動作 皆由於性 一切 盡聞 故稱我聞也 言一時者 師資會遇齊集之時 佛者 是說法之主 在者 欲明處所 舍衛國者 波斯匿王 所居之國 祇者 太子名也 樹是祇陀太子 所施 故言祇樹 給孤獨者 須達長者之異名 園 本屬須達 故言給孤獨園 佛者 梵語 唐言 覺也 覺義有二 一者 外覺 觀諸法空 二者 內覺 知心空寂 不被六塵 所染 外不見人之過惡 內不被邪迷 所惑 故名曰覺 覺卽佛也 與者 佛 與比丘 同住金剛般若無相道場 故
1, 다음 중 ‘노장사상’과 ‘도교’를 설명한 내용으로 설명이 바르지 않는 것은? ① ‘도가사상’은 철학적으로 노자·장자의 사상을 가리키며, ‘도교’는 선도 즉 종교적으로 신성화된 도가를 말한다. ② ‘노장사상’은 의식의 대전환을 통해서 정신적인 자유와 불멸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했던 반면, ‘도교’는 주로 육체적인 불사(不死)를 이루어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③ ‘도교’에 이르면 노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는 신으로 신격화 된다. ④ 『도덕경』에서는 신선(神仙)을, 「장자」에서는 진인(眞人)을, 선도에서는 성인(聖人)을 도가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설명한다. 2. 『도덕경』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도경」에서는 주로 도에 대한 철학을 다루고 「덕경」에서는 그 철학의 사회적
춘성 스님은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님이 아니었고 큰 감투를 별로 쓴 일이 없었기에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1970년대 한국불교계에서 ‘욕쟁이 스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춘성 스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걸죽한 욕설을 무차별로 쏟아내는 스님이었다. 지나치게 화장을 하고 사치스런 옷을 걸친 채 으시대기 좋아하는 여자가 절에 오면 춘성 스님은 아무리 지체가 높은 고관대작의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즉석에서 “씨부랄 년!” 이라는 욕부터 쏟아냈고, 값비싼 털옷을 입고 온 여자의 털옷을 벗게 한 뒤 그 자리에서 태워버린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걸림없이 쏟아내는 춘성 스님의 무지막지한 욕설을 들어도 누구 한사람 감히 항의하거나 대들지 못한 점이었
스승인 아찬 차 스님의 가르침이 단순하듯이 아찬 수메도의 가르침도 단순하다. 아찬 수메도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일과 사성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일과 마음챙김 수행(satipatthana)으로 요약할 수 있다. 태국 불교의 전통을 통해서 계율에 입각한 남방 상좌불교의 실천체계를 서양에 뿌리내린 아찬 수메도의 계율관을 살펴본다. 여기에 소개하는 아찬 수메도의 가르침은 ‘Ajahn Sumedho Interviewed’(1981, Interview by Roger Wheeler, http://www.geocities.com/Athens/Academy/9280/asint1.htm)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악기 조율하듯 수행 먼저 아찬 수메도는 계율을 지키는 것을 음악을 연습하
二 聞 我 卽阿難 五蘊假者 聞 謂耳根發識 廢別從摠 故云我聞 阿難 所不聞二十年前之經 有云如來重說 有云得深三昧 摠領在心 若推本而言 阿難 是大權菩薩 何法不通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은 '어떤 중생도 능히 망념이 없음을 관하면 이는 곧 부처님 지혜로 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2)는 聞成就니, 아(我)는 곧 오온을 가장한 아난이고, 문(聞)은 이근(耳根)으로 듣고 식(識)을 발한 것만 말하는 것이니, 別(耳根) 만을 들지 않고 摠(我)을 들어 아문(我聞)이라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난이 (출가하기 20년 전) 듣지 못했던 경은 “여래가 아난을 위해 거듭 말씀해주셨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깊은 삼매를 얻어서 모두 깨달아 마음에 저장해 두었다”라고도 하나, 만일 근본을 추구해 말한다면 아난은
1. 유교의 가르침은 ‘수기(修己)’와 ‘안인(安人)’의 가르침이다. 이 뜻은 우리 스스로를 닦고 그 닦은 바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동북아 삼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유교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① 공자 ② 맹자 ③ 순자 ④주자 2. 유교경전에 대한 설명들 중 四書에 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는 것은? ① 『논어』는 공자의 어록으로 처음부터 경(經)으로써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② 『맹자』는 맹자의 어록으로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다. ③ 『중용』은 하늘의 도가 절대적 성실[ 誠]에 있고 그것을 완성시켜 나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 성실은 다름 아닌 중용으로 유교인들이 추구해 나가야할 인생의 목표가 된다. ④ 『대학』은 유교경전 구절 가운데
대자유인으로 걸림없는 삶을 살다 가신 큰스님들이 많고 많지만, 그 가운데 1900년대를 마음대로 활보하며 호호탕탕 걸림 없는 무애행(蕪碍行)을 보여준 춘성(春城) 스님의 이야기는 오늘에도 한국불교계에 설화(說話)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춘성 스님은 1891년 3월 31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원통리에서 출생하여 13세 때 고향인 설악산 백담사에서 한용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하였고 안변 석왕사, 금강산 유점사, 덕숭산 정해사, 도봉산 망월사 등지에서 수행한 뒤 1977년 7월 8일 서울 봉국사에서 열반에 드시어 세수는 87이요, 법랍은 74세였다. 속성은 평창 이 씨였고 속명은 창림(昌林)이었는데 법명도 춘성(春成)이요, 법호 또한 춘성(春城)으로 한문 글자 하나만 달랐다. 춘성은 스승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