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마당에 있는 차 타고 오후에 어디 가는가?”은사스님께서 점심 공양 끝에 한 마디 던지십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신문을 읽고 계시는 것을 보니 컨디션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어제 종일 쉬시고 다시 기운을 차리셨나 봅니다. 스님을 영도 요사채에 모신지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2년 전부터 정착을 하셨습니다. 매일 영양과 사람이 함께하니 스님도 많이 안정되신 듯합니다. 평상시의 모습에서 스님은 거의 요구하는 단어를 잊으신 듯합니다. 어디를 가자고 하거나 뭐가 필요하다거나 먹고 싶은 것이 뭐다 이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다립니
불교는 우리가 부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당연히 해야 할 것’을 규정한다. 부처님 제자는 5계를 받아 지니는 것부터 시작된다. 강제로 ‘~해야 한다’가 아닌, 스스로 ‘~하겠습니다’이다. 5계는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실행 가능하며, 실생활에서 5계가 작용하면 밝은 미래는 당연 보장된다.1.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습니다.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하겠다는 약속이다. 방생습관을 들이면 된다. 생명방생을 포함해, 왈칵 화를 내어 사람·동물·곤충 등을 때리고, 학대하고, 미워하거나, 방화로
한국불교는 선불교 이전에 대승불교입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나와 너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목표며, 이를 위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보살도를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을 살펴보면, 보시는 타인의 성불을 위해 마음과 물질, 언어, 행동으로 돕는 것이고, 인욕은 그것을 실천하는데 싫증 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요, 정진은 열심히 보시하는 것입니다. 선정은 집중된 고요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고 반야는 그 보시가 가장 적절해서 무궁무진하게 확산되는 것입니다. 대승의 핵심 실천사상인 육바라밀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 관계에서 소외될까 두려운 마음, 또는 안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불안하신가요? 겉보기에 근사한 전문능력을 가진 사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에게도 모두 불안이라는 손님은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그리고 불안과 싸우면 싸울수록 공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2년 공황장애로 진료 받은 사람의 숫자가 무려 2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안을 대하는 명상적 태도란 어떤 것일까요? 이것과 관련해 재밌는 실험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오
날이 쌀쌀합니다. 매번 수능을 치르는 날에는 날이 추운 경우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혹여 시험을 치르다가 졸지는 않을까 싶어서 정신 바짝 차리라고 북쪽의 한파신이 내려오나 봅니다. 학생들이 손이 시려 답안지를 쓰는 데에 불편하지 않도록 너무 춥게는 하지 마시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은 이런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추운 날씨에 시험 치르는 시험장에 보내었을 때 불안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랑하는 만큼 불안한 마음도 더 커지고 그 마음을 의지할 기도의 마음도
봉려관(1865~1938)스님은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 승려이다. 1907년 9월 ‘고통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승려가 되고자 목포를 거쳐 해남 대흥사로 향한다.해가 설플 때, 볼품없는 모양새를 한 봉려관이 대흥사에 도착했고, 대중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스님이 되고자 왔다는 봉려관에게 2년의 행자기간을 거치지 않아 수계(授戒)할 수 없다는 답을 한다. 절일을 도우면서 며칠간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해달라는 봉려관의 요청을 대흥사가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산내
핼러윈은 서양에서 들어온 명절입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들어갈 수도 있다는 날입니다. 불교의 우란분절이나 동지와 비슷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불교는 백중과 동지를 매우 중시여기며 법회를 꼭 합니다. 핼러윈은 낯설어서 그런지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청년들에게는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중요한 축제의 날이 되었습니다. 백중과 동지의 기세는 점점 줄어들어 백중은 절에 다니는 사람 말고는 아는 이가 거의 없고 동지도 단오와 삼짓날처럼 사장되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핼러윈이 차지해가는 현실입니다.이런
팬데믹, 경제 불황, 질병, 예기치 않은 사고, 불평등, 이별, 배신 등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이러한 힘겨움과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 고비 넘겼구나 하는 순간 또 다른 장애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불자로서 우리는 삶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불교전통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사바란 범어를 음역한 말로 그 뜻을 풀이하면 감인토(堪忍土) 즉,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나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지옥 중생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반대로 천상의 중생들은 너무나 편해
얼마 전 20대 청년이 1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해 전화로 상담했던 친구여서 잘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님!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습니까?”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했습니다. 매일 부처님 가르침을 보고 배운다지만 지금 한참 마음이 힘들다며 간절하게 묻는 청년에게 짧게라도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부처님께서 숲에 계실
네모 안이 4등분 된 한문 밭 전(田)자는 8이 두 개 붙어있는 모양이다. ‘쌀 1톨이 나오기까지 농부가 88번 논에 나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보통 가볍게 여기는 쌀 1톨에 농부의 손길이 무려 88번이나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지금의 송광사(순천) 공양간은 현대화되었지만, 1980년대 초기에는 오랜 시공(時空)이 깃든 목조건물이었고, 공양간 외부에는 사용한 물이 흘러내려가는 또랑도 있었다. 구산 큰스님은 종종 대나무 꼬챙이를 들고 이 또랑 앞에 서 계셨는데, 밥알 한 톨이라도 흘러내려오면 대꼬챙이로 콕 찔러 바로
부처님 전에 올리는 꽃 공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뜻입니다. 꽃은 가장 깨끗하고, 맑고, 정미하며, 모든 것을 품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완성된 형태로 부처님 전에 올리게 됩니다. 꽃 공양은 꽃꽂이해서 장식하는 방식과 화분에 키워서 올리는 방식으로 나뉩니다. 장, 단점이 있기에 무엇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꽃꽂이는 식물을 싹둑싹둑 자르니 나무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만 같고 화분은 그 속에 벌레나 오물 등이 들어 있을 수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단점이라는 것도
지난 9월24일 서울 광화문. 행진을 하던 수만 명의 시민이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도로 위에 드러눕는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어르신까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마치 죽은 듯 누워있다. “더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기후 재난에 대한 항의이자 비폭력 시위다. 지금 세계는 기후 비상사태다. 역대급 폭염과 가뭄으로 주요 강이 마르고 열대우림이 도처에서 불타며 빙하는 3배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매일 전 세계에서 약 1억50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150여종의 동식물종이 전멸하고 있다. 매일 5만톤의 비옥한 토양이 사리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