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부처다” 참으로 신선한 법문이다. 귀가 번쩍 뜨였다. 불기2553(2009)년 6월15일 조계사 대웅전 앞. ‘이명박 정부의 참회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염원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 1447인 시국선언’이 천명한 말이다. 시국선언문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비뚤어진 공권력에 의지해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집회 등의 자유를 유린해온 지난날을 깊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국가적 희망과 미래도 없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시국선언을 놓고 숫자를 비교하기란 못난 짓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750여명의 서명에 견주어 서명자가 2배에 이른 사실은 분명 음미해볼 진전이다. 1994년 종단개혁 이후 15년, 조계종 변화를 입증해준 선언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조계종의 달라진 모
봉하 마을 추모 대열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추모객들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고인의 미덕을 찬양하며 이른 죽음을 애달파 한다. 나는 또 다른 안타까움을 말하고 싶다. 대통령이 방문객들의 부름을 받아 나오면서 시작된, 반갑고 흥겹고 진지했던 봉하 이야기판의 사라짐에 대해서. 대통령이 퇴임하여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그곳의 생활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어, 많은 국민들이 감동했다. 참 따뜻한 모습이었다.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달리는 모습이 그랬고, 오리 농법으로 키운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을 운전하는 모습이 그랬다. 고향 강 습지를 되살리기 위해 쓰레기를 줍고 뒷산 장군차 밭의 풀을 뽑는 모습도 그랬다. 그중 가장 찬란한 순간은 봉하
21세기를 특징짓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지난 세기 세계를 이끌었던 서구중심의 문화로부터의 탈피가 심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개발과 물량위주로 인한 서구 근대정신의 폐해와 한계를 극복하여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류문명의 중심이 동양으로 옮겨 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고 있다. 자유분방한 사고와 시장원리를 최고의 가치로 발전해 왔던 서구의 물질위주의 사상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인 석학들은 21세기를 ‘환태평양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유구한 역사와 심오한 정신문화를 간직한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문명으로부터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줄 가치를 캐내고자 탐구해 오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어느 국가도 내놓을 수 없는 독특한 전통 문화를 찾는다면
경기도 양평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유림에 조성한 수목장림 ‘추모원’ 이 개장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수목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지정된 수목의 밑이나 주위에 묻어 장사를 지내는 것을 말하며, 수목장림은 이러한 수목장을 하기 위해 지정된 산림을 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수목장림은 숲을 아름답게 조성해 공원처럼 만들어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숲을 느끼고 숲속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돌아가신 망자(亡者)는 자연으로 돌아가 나무와 함께 상생을 하면서 자연회귀에 따르도록 한다는 것이 그 취지이며 의미라고 봅니다. 수목장림은 그렇기 때문에 묘지가 아닌 숲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신수사상과도 연결 지어 생각을 할 수 있어 전통성까지도 가지고 있기에 그 의미는 더욱 깊다고 봅니다. 또 그
“거룩하신 부처님! 부처님은 일찍이 나라 일이 잘 되려면 민족이 모여앉아 함께 의논하라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남과 북(북과 남)의 사부대중은 오늘 부처님오신날에 이 나라 방방곡곡 사찰에서 일제히 봉축법회를 열고 통일의 서원을 발원합니다.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이룩하자면 겨레의 가슴마다에 통일의 환희를 안겨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변함없이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서 발표된 공동발원문에 나오는 다짐이다. 남과 북에서 각각 공동법회를 여는 형식으로 발표된 공동발원문은 “우리 모두가 어엿한 통일보살”로 살아가자고 남과 북의 불자들에게 제안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관계가 시나브로 악화하는 데 있다. 공동발원문도 “지금은 비록 화해와
요즘 우리나라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거듭 접하게 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기에 이르렀을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자살을 충동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상황을 잠시 모면하고자 떠올린 실천력 희박한 단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결국 자살을 시도한 경우는 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치명적 고통을 전제하는 것이다. 자살의 동기는 타인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아 ‘의문사’로 남기도 했다. 관련 정보가 독점되는 군대에서의 자살은 더욱 그랬다. 그동안 군 당국이 자살로 몰아가려 했던 의문사가 타살이거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자살이었다는 사실이 군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에 의해 하나둘 밝혀졌다. 그런 군 당국의 태도를 여성들의 죽음을
3박4일의 짧은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 나가노현 우에다시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경로원과 연꽃마을과의 개호 기술향상과 인적 교류를 위한 실무 협약식에 참석하고 선진 시설을 견학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동경 나리타 공항에 내려 나가노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일본의 봄 모습은 한국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약간 늦은 봄이라 벚꽃은 바람에 날리고 있지만 다른 봄꽃들은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며 이방인을 맞이한다. 시골 풍경은 우리와 다른 것이 없으나 논과 밭이 정연해 보이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튿날 6시부터 젠코지(善光寺)를 참배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몇 년 전에도 방문한 사찰이지만 이번에는 색다른 마음으로 참배를 결심 했으나 만만치가 않을 것 같다. 작년 10월에 kbs ‘백
이제 며칠만 지나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전국의 사찰들은 이 날을 기리고 축하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절집 안은 물론, 거리 곳곳마다 연등을 장식하며 조금은 멋지고 화려하게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자유와 책임의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그리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하여 의미 있고 보람 있는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근본은 사람이기에, 누군가의 말처럼 삶이란 그 무언가에 또는 그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일입니다. 그 때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터득합니다. 하지만 많은
오체투지. 두 무릎, 두 팔꿈치, 이마. 몸의 다섯 곳이 땅에 닿는 절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오체투지 앞에 옷깃을 여밀성 싶다. 지금 이 순간도 히말라야 산맥 어디선가 불자들이 설원을 오체투지로 가로지를 터다. 상상만 해도 사뭇 경건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만이 아니다. 이 땅에서도 오체투지의 수행이 진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미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의 길(2008년 9월4일~10월26일)을 걸어온 수경 스님이 다시 길을 나섰다. 지난 3월28일, 계룡산 신원사에서 출발해 하루 4㎞ 정도씩 서울로 북상하고 있다. 쉽지 않은 결단이다. 더구나 수경 스님은 75일에 걸칠 오체투지의 길을 떠나기 전에 한국 불교에 회한을 토로했다. 화계사를 찾은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였다. “근자엔 용산 참사를 대하는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 선수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일본 선수들을 물리쳤기에 그 기쁨은 더하다고들 했다. 중계방송은 시종 일본 선수와 김연아를 대비시키며 승리의 기쁨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이 김연아 선수를 통하여 야구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꾀를 썼다는 음모론까지 떠돌았다. 분명 두 나라 사람들은 쉽게 씻을 수 없는 집단적 업을 쌓고 있는 것 같다. 춤과 회전, 도약이 어울어지는 피겨 선수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 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그들의 간절한 수행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피겨 선수는 상대를 쓰러뜨리고 자기가 이기려 하지 않는다. 끝없는 자기 극복의 과정이 바로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은 ‘보살’이다. 불자는 누구나 보살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구도자여야 한다. 깨달음을 추구 하며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노력을 펼치는 존재가 보살이다. 보살은 타인을 돕기 위해서 축생의 몸을 받는 것도 기꺼이 행한다는 절대적 이타행을 실천한다. 보살의 목표는 이웃을 위한 끝없는 헌신과 봉사다. 헌신과 봉사야 말로 오늘날 자원봉사자의 이념이며 철학이고, 보살정신의 실천은 복지국가의 이상적 목표다. 보살은 자비와 연기이론을 근본사상으로 무장한 실천행자다. 자비는 불교의 본분이며 생명 존중의 기본 이념이요, 보살의 최고의 덕목이다. 자비사상을 통하여 생명존중, 만유평등, 기회균등의 원리를 체득하는 것이 불자의 도리이며, 또한 자원봉사자의 생활규
봄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하니 교외로 나가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참으로 밝고 젊어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세상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 자전거처럼 우리 인류에게 큰 공헌을 한 발명품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불의 발견과 바퀴의 발명이 오늘날 인류가 발전하기까지 제일 큰 공헌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류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 하면서 마을이 생기고, 마을과 마을이 생기면서 서로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도구의 필요성이 나타나면서 바퀴가 발명된 것이지요. 그래서 경영학에서는 자전거의 발명을 발상의 전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바퀴는 우리의 활동영역을 확장시킨 공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을 운반해 주는 운반수단으로서도 큰 변화를 주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