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8일 전남 해남 대흥사에 보관 중이던 황금 십자가(이하 ‘십자가’)가 사라졌다. 황금에 칠보로 장식한 천주교 십자가였다. 길이 5.9cm, 두께 0.1cm, 앞면에는 INRI(‘유태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뜻)라 새기고 밑바닥에는 로마자로 SV라 새겨져 있었다.경찰 수사로 행자 안씨 검거진술만 있을 뿐 행방은 묘연십자가 원래 소유했던 사람예수회신부 vs 서산대사 갈려 2016년 대흥사 복제품 제작 SV는 이 십자가를 지녔던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를 표시한 것일 터인데, 이를 근거로 1593년 일본 침략군 장수
1906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1962년 세상을 떠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은 요즈음 같으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에 버금가는 큰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그것을 헛되이 쓰지 않고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재를 모아 온전하게 지켜내는 일과 교육 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전통문화 아끼는 마음으로기와집 120채값에 금동불감불자 어머니 가르침 따라서매년 양로원에 기와집 한채그는 오세창과 고희동에게 배운 탁월한 문화재 감식안, 귀한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필요할 때는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손에 넣는
동국제강을 설립해 철강왕국의 주춧돌을 놓은 장경호(1899~1975)는 본명보다 ‘대원(大圓)’이라는 법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동국제강 설립 철강왕국 건립3·1만세 동참 日 경찰에 쫓겨대원정사 개원 선방·불교대학불서 출판 주도해 불교 대중화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1916년 봄 서울 보성고보를 졸업한 대원은 3년 뒤 3‧1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쫓기게 된다. 이 무렵 4‧19혁명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과도정부 수반을 맡아서 원만하게 권력 이양작업을 지휘했던 허정을 형님이라 부르며 절친하게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회향하겠습니다. …제가 지은 공덕은 일체 중생의 공덕이 되어 저들의 미혹한 마음이 활짝 밝아지오며 불보살이 이루신바 모든 공덕을 수용하고 불국토의 청정광명을 영겁토록 누려지이다. 옛 불보살이 이러하셨으며 오늘의 불보살이 이러하시오매 저희들의 회향도 또한 이러하옵니다.”육조단경 선관책진 등 번역스님의 지극한 울림에 감동대학생 군포교 열정적 지원1974년 문서포교 불광 창간광덕 스님이 지은 ‘보현행자의 서원’ 회향(廻向)분의 처음과 마지막 단락이다. 스님이 여러 경전과 ‘육조단경’ ‘선
“종교가 너무 정치권력과 밀착되면 권력의 시기를 받든지 아니면 정치권력과 함께 부패될 위험이 있다. 세속적 권위 집단인 정치권과 세속을 초월한 교단권 사이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세속적 영예나 명성이나 향락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는 출가한 수행자들의 집단이 승가다. 따라서 승가의 권위는 세속적, 정치적 권위를 넘어선 지위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불교 교단 즉 승가는 세속적 정치권력집단과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구태 벗고 사회참여해야”‘불교계에 바란다’ 큰 반향중학생 때 항일운동 옥고성철
“머리가 없으면 사람의 작용을 할 수 없음과 같이 정부가 없으면 국가의 작용을 할 수 없나니, 지난 10년 동안은 우리 국가의 작용이 잠깐 쉬었는지라. 따라서 정부도 없이 지내어 왔거니와 이미 원수의 굴레를 떠나 독립을 선언한 이상 국가의 작용을 하여야 할 것이며 국가의 작용을 하려면 정부가 없고는 될 수 없으니 외교로 보아서도 그러하고 내정으로 보아도 그러하고 정신의 통일로 보아도 더욱 그러한 것이다. … 바라건대 중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당국의 여러분들은 개인을 생각하지 말고 일을 생각하며, 형식을 생각하지 말고 실
1946년 9월1일 봉선사 대웅전에서 광동중학교(교장 운허 스님)의 개교를 알리는 의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군정청 문교부장(현 교육부장관) 유억겸도 참석하여 “자연미의 풍치 좋은 이 지역, 이 학교야말로…시대의 악습과 외래의 유혹에 감염됨이 없이 숭고한 민족자존의 역군 배양의 최적지로 인정되니 조속히 지방 관민의 합심 협조로 완전한 6년제 중학교를 만들고 장차 대학까지 이루어 달라”는 축사를 했다. 지방의 개교식에 그가 직접 참석하여 축사를 하며 격려를 한 데에서도 당시 ‘인재 육성’의 필요성에 대한 간절함을 엿볼
1969년 12월1일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 불교계 최고 지도자 담마난다(K. Sri Dhammananda, 1919~2006) 스님이 방한하여 1주일 동안 머물면서 조계사와 동국대 등을 방문하고 청담·벽안 스님, 동국대 김동익 총장 등 국내 불교 승재가 지도자들을 만나 양국 불교계의 유대 강화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스님은 본래 스리랑카 출신1952년 말레이시아로 이주두 나라 불교지도자로 우뚝한국불교 승재가 방향 조언당시 ‘대한불교’(현 불교신문)는 사장 이한상이 직접 대담을 갖고 말레이시아 불교계 사정과 스님의 이력을 상
1968년 11월30일 한국불교 최초로 군법사(軍僧) 5명이 임관된 날을 ‘군승의 날’로 기념하는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에서는 50주년이 되는 2018년에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1968년 군법사 5명 첫 임관이승만 정권, 한국전쟁 당시개신교 이어 가톨릭도 군종17년간 기독교 군종만 유지아시아 불교국가 역사에서는 일제가 청일전쟁·노일전쟁·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 승려들이 장교로 파견되어 “장렬한 전사가 해탈의 길”이라고 역설하며 부처님 법을 어기고 전쟁을 독려하기 이전에는 군종장교 제도가 없었다고 해도 될 것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승군을 일으켜 지휘하며 관군보다 더 큰 활약을 하고 임금 선조의 부탁을 받아 수신사가 되어 일본을 오가며 전후 처리 등 외교를 맡았던 사명대사 동상을 제막하는 행사가 1968년 5월11일 서울 장충공원에서 열렸다. 송영수가 조각하고 이희승의 발문을 서예가 김충현이 써서 새긴 동상 제막식에는 대통령 박정희 부부와 국회의장 이효상, 조계종 종정 고암 스님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동상 제막 사진에서 보듯이 군 의장대와 악대가 동원되어 분위기를 돋우고 있어서 동상 건립이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쿠데타 두 달 만에 민정이양 계획을 발표하였지만, 이 약속을 여러 차례 뒤집었다. 게다가 쿠데타 세력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궁지로 몰리게 되자 1962년 7월 헌법심의위원회를 구성, ‘개헌 논의’로 난관을 돌파하려고 하였다.독재합리화 위한 꼼수 개헌신문사설 통해 거세게 비판불교학자·시인도 적극 후원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헌법을 개정해서 '합법적 집권'을 꾀하는 것이었지만, 이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낼 용기 있는 지식인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해 5월부터 동아일보
안진오‧서윤길‧고익진‧김선근‧이민용‧송재운‧오형근‧차용부‧목철우(목정배)‧박선영‧이진두‧문명대‧이무웅(홍파스님)김금태‧박명순‧김규칠‧박세일‧윤제철‧신광수(법타)‧조용길‧송석구‧최동수‧이용부‧김춘송‧박호석…, 승재가를 막론하고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던 이 인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