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重寶樹圍金界 一點閒燈伴白雲칠중보수위금계 일점한등반백운簇簇法雲生片刹 霏霏花雨散諸峰족족법운생편찰 비비화우산제봉(금계(金界)는 일곱 겹의 보배나무가 둘러있고/ 등(燈)마다 한가로이 흰 구름과 짝하고/ 뭉게뭉게 법운(法雲)은 조각마다 찰토(刹土)요,/ 모든 봉우리마다 꽃비 흩날리네.)경남 합천 해인사 주련에는 칠중보수위금계(七重寶樹圍金界)로 시작하는 주련이 명안각(明眼閣), 심검당(尋劍堂) 두 곳에나 있다. 명안각의 주련은 독창적이지 못하고 앞의 두 구절은 다른 시문에서 차용을 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인 내용은 해인사 도량을 정토 세계에
오늘은 부처님께서 도업을 이루신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보리를 이루는 일을 도업이라 하고, 일체제불은 모두 도업을 이룬 분이며 일체중생은 생업을 이루었습니다. 생업은 살아가는 일입니다.그러면 도업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대방광불화엄경’의 ‘세주묘엄품’에서 첫 번째 말씀하시는 것이 도업을 이룬 내용입니다. 모든 지혜를 이룬 분을 일체제불이라고 하며, 일체제불은 일체종지요, 일체종지는 일체제불이라는 가르침입니다.석가모니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는 순간 지혜가 생겼습니다. 중생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반면 일체제불이 도업을 이룬 순간에는 생
동국대 2학기 강의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2년 내내 온라인 원격강의만 하다 학생들을 직접 만나려니 새삼 긴장되고 설레기도 한다. 이번에 맡은 과목은 불교학부 전공인 ‘위빠사나 이해와 실습’이다. 사마타 명상 일부와 위빠사나 명상을 다루는, 몇 년간 반복해 온 명상실습 과목이다. 이번 학기도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재미있게 명상 공부를 해보고자 한다.지난주에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이 각각의 고유한 몫과 역할이 있다고 했다. 특히 사마타 명상은 마음(삼매)이 계발되고 탐욕이 제거되는 반면, 위빠사나 명상은 지혜가 계발되고 무명이
① 전날 밤의 초경보살이 마군을 항복받던 날이섣달 초이레라.설산에서 6년, 보리수하 금강좌에서 49일째.금강삼매로 마군을 정복했으니이젠, 거리낄 게 없다.이날 밤 초경, 우주의 만법이보살의 투명한 마음속에 비치고 있었지.지혜의 광명이 비치어 온 우주가 환하다.시방세계가 환하다.괴로움도 즐거움도 여의었다.근심도 기쁨도 여의었다.광명한 지혜로 사람의 인영을 들여다본다.사람의 생로병사는 왜 있는가?업을 지었기 때문.애착은 왜 있는가?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감각이 있기 때문.안‧이‧비‧설‧신‧의.어리석은 중생이 무명의 껍질 속에 갇혀육도를
‘누구나 가슴 속에/ 별 하나 만듭니다// 장미꽃 심어 놓고/ 나팔꽃 트럼펫이// 화단에/ 목화씨 몇 알/ 정성들여 심어봅니다//… 물레를/ 잣던 둘레길/ 무명옷이 그리워// 실 뽑아 한 올 한 올/ 마음을 열어가며// 사랑의 방방곡곡/ 원앙침 수놓으면// 찬란히/ 목화별 뜨는/ 밟아가는 산책 길’(홍정희 시 ‘목화별 산책’)대개의 사람이 화려한 장미꽃이나 개성 강한 나팔꽃을 좋아하지만, 시인은 어머니 품처럼 따듯한 온기를 전하는 목화를 선호한다. 사랑하는 꽃을 별로 승화시킨 시인은 오늘도 내일도 ‘찬란히 목화별 뜨는 산책길’을 밟
소리꾼 장사익이 코로나19의 긴 강을 건너 4년 만에 소리판을 편다.장사익은 10월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다. 거리두기, 집합금지 등으로 멀어졌던 시간을 치유하려는 듯 공연 제목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이다.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슬픔과 기쁨, 용기와 믿음을 나누는 것이 사람살이의 중심임에도 그동안 유예됐던 만남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1994년에 45세로 데뷔한 이후 가요, 국악, 재즈를 넘나들며 장사익은 구성지고 비강하면서도 폭발적인 창법으로 매니아층을 만들어왔다. 특히 삶의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수행이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간략히 말하자면 계정혜 삼학의 수행과정과 해탈, 해탈지견의 증득과정을 말한다. 즉 계를 기반으로 삼매와 선정을 성취하는 사마타 수행을 닦고, 계와 선정을 기반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닦아서 최종 목표를 이루는 것. 이것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수행의 전체이자 전부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사마타 수행보다 위빠사나 수행을 먼저 접했다. 마하시 전통의 위빠사나 수행을 몇 년 간 수행하다가 고엔카 전통의 수행법을 만난 이후로는 고엔카 위빠사나를 위주로 수행했다. 오랫동안 사마타
초기불교수행은 점진적인 단계를 표방한다. 1층 없이 7층을 짓지 못하고, 마라톤 선수가 단 한 발자국으로 마지막 지점에 골인하지 못하듯이,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자의 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즉 한 생각이 바뀐다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마음이 정화되고 향상돼 지혜의 정점에서 깨달음의 완성에 이른다는 것이다. 붓다는 그런 점진적인 수행 과정을 계정혜 삼학으로 제시했다. 삼학(三學)이라는 말에서 ‘학’은 팔리어로 ‘식카(Sikkhā)’이다. 이 ‘식카’는 경전이나 이론을 배운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마음을 지속적으
평생을 부끄럽게 입으로만 재잘대다/ 끝에 와서 분명 알았다, 백억의 말 저편임을/ 말이 있어도 말이 없어도 모두 틀리니/ 모두 엎드려 모름지기 스스로 깨닫기를 청하라.平生慚愧口喃喃(평생참괴구남남)末後了然超百億(말후요연초백억)有言無言俱不是(유언무언구불시)伏請諸人須自覺(복청제인수자각)-정관일선(靜觀一禪, 1533~1608)파격과 역설. 선시의 매혹은 바로 그 기상천외한 파격과 역설에 있다. 파격과 역설이 없으면 선시의 감동은 1도 없다. 이 선시도 첫 행부터 파격과 역설로 읽는 이들을 흡입한다. 평생 동안 말하고 산 것을 “재잘”댔다[
惡因誰作罪誰招 眞性如空不動搖악인수작죄수초 진성여공부동요曠劫無明俱蕩盡 先天後地寂寥寥광겁무명구탕진 선천후지적요요(악업의 인연은 누가 짓고 그 죄는 누가 부르는가?/ 참된 성품은 허공과 같아서 동요함이 없도다./ 오랜 겁 동안의 무명을 모두 다 없애고 나니/ 하늘도 땅도 예나 지금이나 고요하고 고요하도다.)‘금강경(金剛經)’ 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은 ‘금강경’ 수지독송의 공덕으로 전세에 지은 업장도 깨끗이 소멸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중업경수(重業輕受)라 하며 경(經)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나타낸다. 어찌하여 ‘금강경’의 공덕
“만약 부처님이 원력을 세우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희는 어떻게 됐을까요. 중생구제·불국정토는 요원하고, 자비광명 없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헤메고 있을 겁니다. 저희 백년대계본부는 부처님의 원력이 끊어지지 않도록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밝은 법의 등불을 전하고자 노력합니다.”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국장 여해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백년대계본부는 종단의 미래전략을 수립하고 화합과 혁신을 위한 관련 활동들을 추진하는 기관으로 백만원력결집위원회, 화쟁위원회, 화합과혁신위원회, 미래세대위원회, 문화창달위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각자(覺者)라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요? 그 깨달음의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대학이나 사찰의 법회, 그리고 온라인 명상 강의에서 필자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한다.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배우거나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깨달음을 너무 거창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어렵게 생각해서일까? 그래서 필자는 이번에 진리가 무엇이며 붓다가 깨달았다는 진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쉽게 설명
오늘 여름 결제하고 석 달이 지나서 해제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각자 나름대로 몰랐던 것을 알고자,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자 하는 노력으로 결제 기간을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만일 이 한 철 동안에 자기가 목적했던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알았다면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던 모든 생각 구름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상생활이 상쾌하고 시원한 경지를 현재 느끼고 맛보고 있습니까?우리 마음은 소리도 아니고 모양도 아니고 냄새도 아니지만, 냄새가 나면 냄새인 줄 알고 소리가 나면 소리인 줄 알고 빛이 비치면
승조 스님(僧肇, 384~414)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연을 접었지만 그가 남긴 ‘조론(肇論)’은 불멸의 경지에 올랐다. 승조가 서역에서 온 거장 구마라집 스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중국 전통의 무(無) 개념을 공(空)으로 녹여 반야와 열반의 참뜻을 제시한 논문 모음집이 ‘조론’이다.‘조론’은 ‘중국불교의 교과서’로 일컬어진다. ‘조론’으로 인해 반야의 공사상을 근간으로 삼는 삼론종이 싹 텄다. 선의 전성시대 기라성 같은 선사들도 ‘조론’을 인용해 언어 이전의 세계를 노래했다. ‘오랑캐의
칠전후원인팔해(七殿後園囚八海) 칠전(七殿) 뒤뜰은 팔해(八海)를 가두고,천매석장해구산(千梅石墻解九山) 천년 매화 돌담은 구산(九山)을 풀어 놓는다.만엽지정무재풍(萬葉止靜無在風) 만엽(萬葉)이 고요함에 바람은 간데없는데,일선연성난집운(一蟬肙聲亂集雲) 매미 한 마리 울음소리에 구름이 어지러이 모여드네,나무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오늘은 본사 칠전에서 지난 9순 동안 행해진 하안거의 해제일입니다. 올해는 유독 무더운 날이 많았습니다만 주야로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선방 스님들과 본사 운영과 주권회복을 위해 힘써준 총림 대중의 노고에 감
1950~60년대 불교정화운동 당시 ‘정화 6비구’ 중 한 명으로 불교정화운동의 산증인이자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인 미룡당 월탄 대종사가 8월4일 오전 10시30분 주석처인 단양 미륵대흥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납 86세, 법랍 68년.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대학 1학년 때인 1955년 초여름 어느 날, 고시공부를 위해 구례 화엄사를 찾았다가 불연을 맺었다. 화엄사 뒷방을 얻어 공부를 하던 중 당시 지객을 맡고 있던 월국 스님의 위의에 감복해 출가자의 삶을 동경했다.월국 스님의 도움으로 그해 하안거 해제 법회에 참여해
‘불교(佛敎)’란 동어반복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면 ‘부처님’이란 어떤 인물이고, 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도적들이 우유에 물을 타서 속이는 ‘열반경’ 비유를 상기하자. 예나 제나 모든 정보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근대 서유럽에서 시작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함경’이나 ‘니까야’ 속에 그 원형이 들어있다. 더 근원으로 들어가면, 아함 중에서는 ‘잡-아함’, 니까야 중에서는 ‘상윳따-니까야’, 그 속에 ‘부처님 가르침’의 원형이 담겨있다. 필자는 위에서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보시행은 무조건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자비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의 소외된 곳에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법보시는 불자로써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비행입니다. 공덕을 짓는 법보시의 기쁨을 많은 사람이 함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청년층 눈높이에 맞춘 수행·신행활동을 이끌며 청년 포교에 진력해온 오지승 조계사 청년회 대학생부장(24·진여주)은 지난 2월부터 교도소·병원법당·군법당 등에 신문을 전하는 법보신문의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불자로서 한 중생의 무명을
경전에서 갈애와 사견에 끌려다니는 것을 ‘정복당한다’고 했다. 정복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해를 통해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나아가야 한다.각산 스님과의 개인 인터뷰 시간에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나에게 출가의 용기가 있는가?’ 선무도를 배우기 위해 골굴사에 갔을 때 적운 스님은 옆에 있던 스님에게 “데리고 내려가서 삭발시키고 행자복 입혀라” 말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머리 깎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오로지 선무도만 하고 싶었다. “스님! 저는 종갓집
삶의 주인이 ‘나’라는 말은 언제나 옳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부처님께서 ‘내가 없다’라 하신 것은 삶의 주인이 없다고 하신 것은 아니다. 무아(無我)를 일상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이 곧 나”라는 의미다. 지금의 내 모습은 지난 세월 살아온 모습의 결과이듯이 지금 내가 행하는 것은 미래의 내 모습이 된다.삶을 바꾸길 원한다면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반복되는 행동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한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된다. 행동은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성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