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런데 이 꽃은 맨 땅에 심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진흙 속에 심으면 제대로 꽃을 피워낸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진흙 속에서 피워내는 아름다운 연꽃을 두고 ‘부처님의 마음’ 혹은 ‘부처’라고 이름 한다. 경전 ‘묘법연화경(法華經)’은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모든 번뇌 망상 그 자체가 부처님의 향기임을 가르치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묘는 ‘오묘하다’는 의미와 ‘바르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합친 ‘묘법’은 참된 바른 법을 뜻하고 ‘연화’는 연꽃, 경은 ‘진리’이다. 따라서 ‘묘법연화경’은 ‘참되고 바른 법인 연꽃의 진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108산사순례를 나서는 우리 회원들은 진흙 속에서 꽃을 틔우는 한 송이의 연꽃과 같다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여기
제 57차 ‘108산사순례기도회’ 법석이 6월9~11일 천년고찰 경주 불국사에서 열렸다. 삼일 연속 초여름의 날씨로 인해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날 정도였지만, 회원들은 입정과 천수경을 외고 부처님 전에 열심히 108기도를 올렸다. 경주 불국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 되어 있는 곳이어서 매일 수천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어릴 적 수학여행을 오고는 두 번째로 불국사에 왔다는 보살님도 있었고, 아름다운 경주 불국사에 와서 정말 행복하다는 보살님들도 있었다. 이날 불국사에는 관광을 온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5,000여명의 회원들이 대웅전 앞에서 장엄한 기도를 하는 광경을 보고 신기한 듯 여기저기에서 카메라에 사진을 연신 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동양의 이러한 문화가 이슬람의 성지순
지난 5월 말, 제 56차 ‘108산사순례기도회’ 법석이 경북 문경 대승사에서 장엄하게 펼쳐졌다. 삼일 째 비갠 뒤 푸른 사불산 서쪽하늘에는 일원상 무지개가 나투어 회원들은 절로 환희심에 젖어 들었다. 어떤 회원은 합장한 채 하늘을 바라보며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승사는 시방세계의 부처님이 머무는 곳이며 불법(佛法)의 성소(聖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대승선원은 금오·청담·성철·향곡·월산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각자와 눈푸른 납자들이 수행하시던 곳이다. 발을 딛자, 무량수전의 ‘송풍수월견정화(松風水月見精華)’란 주련의 글귀 하나가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사물의 정수가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다. 소나무와 바람 물과 달이 있는 산사는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어느 날,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 한 분이 내게 참으로 귀중한 사연을 편지로 보내왔다. 그 보살은 그동안 빠짐없이 ‘108산사순례’를 다니며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했다고 한다. 기도 덕분인지 낙산사 관세음보살님이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에서 남편이 큰 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야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이 군에 입대하는 친구와 함께 양양 경포대 바닷가에서 놀다가 아들친구가 그만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중환실에서 며칠간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사경을 헤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은 팔에 끼고 있던 단주가 빠져 그 단주를 줍기 위해 뛰쳐나오는 바람에 무사했다고 한다. 아들의 친구는 다행히 서울 아산병원의 중환자실에 있다가 지금은 통원치료중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보살은 작년 108산사순례기도회 순례지인
인생은 마치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 순례도 끝없는 길을 따라나서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이 그렇듯 길 위에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도사리고 있다. 앞으로 남은 순례 또한 결코 쉬운 여정(旅程)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매달 순례를 나설 때면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 때론 우리 오천여명 회원들이 분홍빛 순례복을 입고 부처님 전(殿) 앞에서 고절(高絶)한 참회의 기도를 올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 장엄한 모습에 눈시울이 가끔 붉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기도란 아름답고 고결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다. 기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참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바로 부처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108부처님이 다 들어 있다. 소담하고 아담한 것이 오히려 천년을 견디듯이 산사의 대웅
경전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설화비유문학의 대표적인 경전은‘현우경’이다. ‘현우경’은 모두 1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나라의 혜각·담학·위덕 스님이 서역에 가서 삼장법사들로부터 들은 설법을 중국에 돌아와 번역해 엮은 것으로 모두 69품이며 성현과 범부의 예를 들어 착한 일을 하고 불교와 인연 맺을 것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쉽고 흥미로운 설화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불교대중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나는 5월 ‘부처님오신날’이 되면‘현우경’에 들어 있는 ‘어느 가난한 여인의 등불’이야기를 떠올린다. 부처님의 중생 사랑이 그 속에 가득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난타’라는 매우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당시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안거를 하고 계셨는데 국왕과 모든 백성들은 남녀
산사는 물론, 거리마다 오색찬란한 꽃 연등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 따뜻한 5월 봄날에 오셨으니 이 또한 축복이다. 초파일을 준비하는 불자들이나 스님들도 덜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부처님오신날이지만, 늘 이때가 되면 스님들과 불자들은 한없이 마음이 즐거워진다. 이른 아침 신문을 장식한 조계사의 11명 동자승들의 천진무구한 얼굴을 보자 미소가 절로 일어난다. 그들 모두가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어떻게 이 땅에 오셨을까? 마야부인은 어느 날 태몽을 꾸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푸릇한 봄빛이 찾아 왔을 때 꿈속에서 눈이 부시도록 하얀 코끼리가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그 사실을 왕에게 이르자 왕은 바라문 중 장로들을 불러 왕비가 꾼 꿈에 대해 해몽을 부탁했다.
지난달 ‘108산사순례기도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세계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전’을 관람했다. 신라의 혜초 스님께서 1300여 년 전 고대 인도의 ‘오천축국(五天竺國)’을 4년 동안 답사한 뒤 쓴 성보(聖寶) ‘왕오천축국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이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펠리오가 중국 북서 지방 간쑤성(甘肅省)의 둔황(敦煌) 천불동 석불에서 발견하였으며 중국의 나옥진(羅玉振)이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졌는데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벌써 불타(佛陀)의 유적은 황폐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었으며 사원은 있으나 승려가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큰 사원에는 승려가 3천 여명이나 있어서 공양미가 매일 15석이나 소요되어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 곳
제55차 가지산 석남사(石南寺)순례에 나섰다. 첫 날에는 감로의 꽃비가 내렸고 둘, 셋째 날은 날씨가 맑고 화창했다. 올 들어 처음 남도(南道)로 가는 먼 길이었지만, 회원들의 얼굴은 저마다 봄빛처럼 화사했다. 한 달에 한 번 씩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늘 정겹다. 그 속에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정(情)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다. 석남사 일주문에 차가 닿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석남사로 향하는 회원들의 발길이 경쾌하다. 일주문 앞에서 석남사에 이르는 곱게 뻗은 숲길이 긴 감로의 꽃비에 젖어 풀꽃이 싱그럽다. 섭진교(涉眞橋) 다리 위 산자락 아래 수줍게 핀 분홍빛 꽃을 보고 회원 중 누군가가 ‘아, 진달래다’하고 짧은 탄성을 지었다. 모든 시선이 그 쪽으로 향했다. 남도 외에는 아직 진
완연한 봄이다. 아침 창(窓)을 열면, 싱싱한 풀꽃냄새가 코를 찌른다. 산문에 몸을 담고 수행하며 살아 온지 어언 사십 여년, 새삼 이 봄이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어제 오늘 다르듯 세월은 찰나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바른 마음 자비실천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순수한 열정만을 지니고 나섰던 ‘108산사순례’도 어느 듯 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세상일은 그저 열정만으로 되지를 않는다. 거기에는 적당한 행운과 힘든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부족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우리 ‘산사순례기도회’가 무탈하게 반 순례를 회향할 수 있었던 것도 불보살님과 청담 스님의 가피 때문이다. 성찰이란 자신을 뒤돌아보고 참회 하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인류의 철학자와 종교학자들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다양한 수행방법들을 찾아왔는데 이런 연유로 인해 탄생한 것이 갖가지의 종교다. 불교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언어학적으로 보면 불(佛)은 부처님을 뜻하고 교(敎)는 가르침을 뜻한다. 이를 풀이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럼,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일까? 부처님은 태자 때 동문에서 노인,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 남문에서는 병든 사람, 북문에서는 수행인을 만났다. 즉, 부처님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출가 결심을 하고 마침내 설산에 가서 6년간의 수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 오늘날 불교를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마음의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길을 지나다가 도심의 어느 치과 건물위에 ‘힘내세요. 일본!’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고 잠시 묵상(黙想)에 빠졌다가 마음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생사를 알 수 없는 대참사를 겪은 그들에게 한국인이 던지는 이 메시지에는 따뜻한 정이 담겨져 있었다. 한국에게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일본,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당한 시련 앞에 한국인들의 마음도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오늘 ‘108산사순례이야기’를 접어두고 일본인과 일본의 대재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심지어 숱한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산자들을 더 걱정하고,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삶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는데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일본열도의 지진, 쓰나미,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등 대재앙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이렇게 한없이 무기력한 것일까? 그러나 참혹한 피해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침착하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강한 희생정신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정신세계의 뒷면에는 오래 동안 불교의 자비사상과 부처님의 법을 생활화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는 그들이 대재난을 극복, 상처와 아픔을 빨리 치유하게 되기를 간절히 빈다. 지난 3월 제 54차 ‘108산사순례’ 법회
인간의 삶을 두고 곧잘 세인(世人)들은 길에 비유한다. 길 위에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들이 도사리고 있고 때로는 향기가 가득한 길도 있다. 그렇듯 인생은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행복도 있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고 인생이다. 지금 자신이 힘들다고 해서 미래를 포기해서도 안 되며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해서 안위(安慰)해서도 안 된다. 항상 부처님의 마음과 미소로서 세상을 겸손하게 산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한 불자로부터 ‘108산사순례 환영 발원문’을 받았다. 지극정성이 담긴 그 편지에는 ‘108산사순례 불자님들이 가시는 곳마다 향풍(香風)이 불어 불법(佛法)향기가 가득하여 악심은 흔적 없이 녹여버리고 발보리심 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음의
햇살이 따사롭다. 기나긴 겨울 안거(安居)를 끝내고 바랑을 들고 선객(禪客)들이 산문(山門)을 나서는 길 위, 아지랑이가 연신 피어오른다. 겨우내 얼어 있던 계곡에도 물이 흐르고 까치가 연신 나무 잎을 쪼아대는 소리를 듣고 보니 벌써 봄이 오기는 왔는가 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풀리고 산객(山客)들의 미소에도 봄은 가득 담겨져 있다. 지난겨울은 참으로 지독한 혹한(酷寒)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디 온 봄소식이 너무나 반갑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처럼 세상사 모든 것은 순리를 거역할 수 없다.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 같은 진리를 인간은 결코 거부할 수 없다. 인간의 생사(生死)역시 그렇다. 불교가 가진 힘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108산사순례 기도회’는 구제역으로 인해 신묘년 첫 순례의 문(門)을 아직도 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은 이미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가오는 순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기껏해야 채 백년도 살지 못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생이란 끝없는 순례와 같다. 누구에게든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금쯤 우리는 이 한 해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이다. 순례 중에 만나는 고찰(古刹)과 문화재들은 비와 눈보라와 같은 풍상(風霜)속에서도 모두 천년을 지탱하여 온 것들이다. 고려대장경이나 경주의 다보탑처럼, 이미 그것들은 우리의 생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지키며 묵묵히 고난과 역경을 인내하며 ‘천년의 지혜’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례를 하면
어느덧 입춘이 지났다. 지난겨울 추위는 매서웠지만, 산사 곳곳에는 어느새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우리 곁에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한 해 순례 중 가장 춥고 힘든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그러나 우리 기도회는 맹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산사순례를 나섰다. 그런데 이번 겨울순례는 뜻밖의 재난으로 인해 가지 못했다. 비록, 몸은 가지 못했지만 항상 부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생활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은 ‘다문화가정’에 대해 이야기 할까한다. ‘108산사순례기도회’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주 뜻 깊게 생각하는 일은 ‘다문화가정 인연 맺기 운동’이다. 순례를 한 이래로 올 중반기가 되면 108쌍이 인연을 맺게 된다. ‘다문화가정’은 최근 10년간 급증하여 16만 가구에 이르고 있으며
연일 한파(寒波)가 강하게 몰아쳤다. 산가(山家)에 내린 폭설이 며칠 채 녹지 않아 드문드문 쌓여 있고, 산비둘기 한 마리가 눈밭 햇빛에서 졸다가 인기척에 놀라 비상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가의 겨울나기는 매우 힘들다. 동물들도 먹이를 구하지 못해 산중을 헤매고 절을 찾는 기도 객의 수도 확연히 줄어든다. 옛 선사들은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살면 된다.’고 말씀했듯이 한파를 이기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다. 지금 사회는 매우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엄청난 가축들이 살(殺)처분 되고 있다. 동물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물학자들은 동물들이 항상 질병에 노출되어 있어 가축들의 집단사육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킨다고 한다. 이것이 집단
요즘, 우리나라에 슬픈 소식들만 가득한 것 같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구제역 확산 등이 그것이다. 구제역으로 인해 가축들의 14%인 130여만 마리가 살(殺)처분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기 된 적이 없었던 ‘108산사순례’도 결국 월말로 연기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난 13일 순례지에서 하려고 했던 ‘구제역·조류독감 확산방지 및 희생가축 천도재’를 도선사 호국참회원에서 봉행하였다. 도선사 합창단의 엄숙한 ‘무상계’ 합창을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천도재에서는 회원들이 일일이 반배를 하며 가축들의 영혼을 달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행하는 이번 일로 인해 농민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식같이 키워온 가축들의 눈망울을 보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농민들의 슬픔을
지난 해 12월, 신라의 혜초 스님이 727년에 쓴 ‘왕오천축국전’이 1300여년 만에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1908년 중국 둔황(敦惶)의 막고굴(莫高窟)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돼 프랑스로 넘어간 뒤 한국에 전시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프랑스인 펠리오가 가져갔던 그 위대한 견문록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스님으로서 오늘날 ‘108산사순례’를 이끌고 있는 회주로서, ‘왕오천축국전’의 귀향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당시 혜초스님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출발하여 뱃길로 중국 광저우[廣州]를 거쳐 불교의 성지인 인도에 도착한 뒤 육로로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의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까지 2만 Km의 대장정을 여행하고 이 위대한 견문록(見聞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