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이에 대한 길을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 이미 인류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고집멸도 사성제로 전해주셨습니다. ‘대념처경’에는 “지금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에서 깨어 있으라”고 그 비법을 알려줍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는 일상을 알아차리고 머물러 지켜보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인생은 커다란 늪을 건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늪을 건너가야 하는 경우 먼저 늪을 잘 살피고 한 발 내딛기 전에 발걸음을 주의 깊게 알아차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실행하는 분들에게 ‘자비’는 매우 익숙한 단어다. 그러나 누군가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무엇입니까?’ 물어오면, 다수는 난감해한다. 뭐부터 말해야 할지 주춤거리다 그동안 절에 다니며 귀 기울여 듣던 것들을 정리하느라 사고하는 뇌는 바쁘게 움직인다. 자비를 좀 더 잘 설명하려다 보니 머뭇거리게 된 것이다.평상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배려했던 생각이나 행동들이 바로 자비실행인데, 시간 여유를 내서 또는 금전 여유가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설명도 실행도 머뭇머뭇하게 되는 것이다. 실은 자
통제가 심한 부모에게 자라면 스스로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해야 해” “나중에 뭐가 되겠니?”라고 말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늘 꾸중을 듣는 것 같습니다. 잘못한 것이 많으니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스스로 잘못을 느끼게끔 인도해 주면 좋겠지만 심지어 잘못하지 않은 것까지 지적을 받으니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혼란스럽습니다. 자기 확신이 낮아지면 쉽게 불안하고, 공포를 느끼며, 의심·시기·질투도 강해집니다.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만나면 늘 행복한 기운이 흐르는 분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앉은 탁자 중앙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행복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감사를 실천하라 했다.” 순간 ‘아!’하는 감탄이 올라왔습니다. 10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SNS 단톡방을 활용해 감사 정진을 이어간 적이 있습니다. 하루 2~3가지 감사를 찾아 간단한 글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특별한 일상에 대해 글을 올렸습니다. 어딘가를 여행했다거나, 누군가를 만나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자랑거리가 생
아침입니다. 공기가 다릅니다. 맑고 밝은 느낌입니다. 아침 햇살이 방 창문을 통해 들어오듯 지구의 공기가 나의 마음에 그 기운을 보내 줍니다. 참으로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은 푹 잤는가 봅니다. 역시 아침의 개운함은 일찍 잠드는 방법이 제일입니다. 다른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아도 마침내는 휴식의 시간이 지나야만 합니다. 일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쉬는 것은 게으르다. 착하지 못하다’라는 가르침이 머리에 또 가슴에 새겨져서 참 힘들었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과로로 인해 또 한약을 먹게
우리들은 생김새도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다르다. 상처에 새 살을 돋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적 가치를 소홀히 해 상처를 주고 덧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인격상품에 늘 하자를 품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남들이 종종 잘못을 저지르면 그를 질타하거나, 뒤에서 흉을 보거나, 심지어 왕따 시키는 등 고통을 더 가중시킨다. 마치 자신은 결이 다른 인격소유자인 양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 씀씀이를 들여다보면 자신도 많은 단점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런 부족한 것들을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들 좋은 사람이다.석가모니 부처님은
신도님들의 신심이 더 좋을까요? 스님들의 신심이 더 좋을까요?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전국 신도 상위 10%와 스님 전체의 신심을 비교한다면 해볼 만할까요? 스님들의 신심은 어떤 불자보다 더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신심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발보리심이 근본이지만 올바른 견해와 사유를 비롯한 팔정도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견해를 가지려면 사성제·삼법인·12연기·사무량심·37조도품·18불공법 등 가르침을 늘 사유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부처님의 세상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도 중요합니다.
혹시 스스로가 사랑받기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내가 속한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나나요?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싶지만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는 생각과 감정들로 괴로운가요? 수치심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또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때 밀려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싶은 절박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면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머리를 숙이거나 억지웃음을 지을 수도, 과도하게 말을 많이 하거나 반대로 침묵할 수도 있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급한 일인가 싶어서 바로 전화했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안부를 먼저 주고받게 됩니다. “스님! 스님의 근황은 유튜브를 통해서 잘 알고 있어요. 예전에 비하면 살도 찌셨네요!” 순간 반가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방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이 반갑다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근황들을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남은 마음은 ‘유튜브에 나갈 땐 살을 빼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나도 이제 늙어 가는구나!’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가끔 어르신 보살
대만의 여름은 고온다습해서 한낮의 바깥활동은 그야말로 고난이다. 아스팔트가 푹신푹신한 8월 여름 한 낮,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연거푸 혼잣말로 “얼굴이 익어가는 구나~”하며 홀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주 허름한 옷차림에 몸이 한 쪽으로 기운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정류장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바로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어르신은 느닷없이 내 손을 잡더니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어주고는 아무 말 없이 오던 길을 되걸어가셨고, 엉겁결에 손을 잡힌 나는 놀라 얼른 손을 펴보았다. 내 손안에는 동전 10원이 놓여
명상 중 가장 효과적인 명상은 소리 파동 명상일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명호를 구구절절 외치는 명상은 일찍이 경전에서도 대단한 효과를 설해왔습니다.‘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 괴로움을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물과 불의 재앙에서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고난에서 벗어나는 등 가지가지 위험 속에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불러 그 일이 해결된다고 하셨습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잘 안돼요.” “쉽게 짜증을 내는 편인데 그러고 나면 내 자신이 너무 싫어져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데 지쳤어요. 그렇다고 멈추기는 두려워요.”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사소한 일들도 계속 곱씹게 돼요. 그래서 너무 힘든데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요.” 사실 마음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자책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나에서 다른 내가 되길 원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변화하고 싶은 마음과 건강하지 않은 삶의 방식과 태도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면서 나를 괴롭히고 이것은 자기 비난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