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터전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부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낙산사에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어디에선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내 나이 겨우 42세에 하반신 마비가 오기 시작해서 44세에는 혼자 일어서고 눕고 걷기도 힘들고 차를 타기도 힘들었다. 두 아들 교복을 다리미로 다려 깔끔하게 해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다림질을 할 수가 없었다. 엎드려서 해도 안 되고 서서 할 수도 없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 고3때였다. 한 달에 한번 마지
어느덧 50대 후반을 훌쩍 넘겨 발자취를 돌아다보니 굽이굽이 지나온 굴곡진 세월이 가슴 먹먹하게 자리한다. 인생사 사연 없는 삶 없겠지만,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던 시련을 피하려 발버둥 치던 시간들이 다시금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IMF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할 때, 십 수 년을 건축설계사로 성실히 근무하던 남편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 청약적금 부어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애들 보험까지 해지한 돈으로 남의 땅을 임대해 철물점을 차렸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장사가 잘될 리 만무했다. 남편이 못
지난 해 추석 이틀 전(9월11일)이었다. 남편은 정년퇴직 후 전원생활을 시작해 6년여를 시골생활 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올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 800여 평 농장을 가꾸면서 전원생활의 꿈을 실현해가고 있었다.그 날, 추석 전날 온다고 했었는데 웬일인지 전전날 오후 4시쯤 귀가해서는 소화가 안 된다며 누웠다. 동네 한의원에 가보라는 말에 선뜻 일어나 나간 지 한 시간 쯤 뒤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의원에서 집으로 오다가 쓰러졌는데 누군가 일으켜줘 벤치에 앉아있다고 했다. 마침 아들이 집에 있는 저녁시간이어서 먼저 뛰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때론 엄하지만 그 무엇보다 큰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기억만큼은 어디 가서 “저는 행복하게 자랐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손녀라면 언젠가 찾아올 이별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순간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찾아오고 말았다. 내가 이제 막 고3 수험생이 된 3월의 봄이었다. 나는 그날 학교를 마치고 바로 할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갔고 할아버지께서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할아버지 옆에 누워있던 나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그는 이생에서의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화장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뿐이었다. 전날 밤, 조문 온 법우가 내게 당부를 했다. 화장터로 모시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테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그때 꼭 기도를 하라는 조언과 함께 네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법우의 말이 맞았다. 기도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양 손에 염주를 꽉 쥐고서 광명진언을 외웠다. 두 뺨으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구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나는 그 대구에 살고 있다. 불교와 인연이 닿은지는 십여년 남짓 되었지만 유명하다는 사찰을 찾아 기도하는 정도였다. 동화사 대구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한 적도 있었지만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남편의 암 수술과 병간호를 핑계로 중퇴했다. 다니는 절을 정해 놓고 신행 생활을 한 것은 삼 년쯤 되었나 보다. 요즈음은 남편의 사업도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기도에 대한 회의가 슬슬 생겨나기 시작했다. 절에 갈 때마다 기도했지만 법당을 나올 때는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에
나의 재적사찰은 충남 서산 부석사이다. 할아버지를 따라 절에 가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불자가 됐다. 중학교 3학년 어느 여름날 할아버지는 “시집가서도 부석사를 큰집으로 알고 다녀라”하시면서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남들 대학 다니는 스무 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부러워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기도보다는 부처님께 투정부리기 위해 절을 찾았다. 남편은 둘도 없는 효자였다. 인연이라서 그랬을까? 신혼여행에서 남편의 얼굴을 보니 유난히 검었다. 원래 피부색이냐고 물으니 시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셨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님을 운구차에 모시고 벽제승화원 납골당으로 가면서 미약하게 스님의 독경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장례운구차량이라 일부러 독경을 들려주나 싶어 주위를 들러보고 여쭤 봐도 그러한 일은 없었고 그 소리는 화장을 마치고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하여 가기 까지 귓가를 맴돌았다. 일찌기 어머니께서 절과 인연을 맺어 어릴 적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소풍삼아 놀러가는 느낌으로 절에 가곤했다. 사실 불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일년에 두어 번 큰 행사에만 사찰에 가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게 되면 사찰이 주는
나의 종교는 원래 모태 신앙이었다. 어머니가 전남 강진에 위치한 무위사라는 절에서 8년을 기도한 끝에 나를 잉태하셨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인연을 맺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기도 공덕과 부처님의 가피로 이 땅에 오게 된 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1997년 서울 잠실에 소재한 불광사라는 절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는 어머니를 따라, 혹은 이모를 따라 초파일에만 절에 다니는 초파일 불자에 불과했다. 심지어 1990년 결혼해서는 교회 장로로 있는 외사촌 언니를 따라 교회도 갔었다. 그렇게 종교적 방황을 거듭하던 중 시간만 나면 절에 가는
나는 76세 할머니 불자다. 올봄에 설악산 봉정암에서 회향할 일이 있었다. 나는 봉정암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5년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늙어 어렵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가서 회향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병마가 오는 바람에 법보신문에 회향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봉정암 부처님의 가피에 대해 적어본다. 봉정암에 처음 간 것은 1985년 7월 중순이다. 도반 형님들이 봉정암 순례를 제안했다. 서울 형님, 부산 형님, 여기저기서 여덟 명이 함께 봉정암에 올랐다. 산길이 험하고 힘들었다. 길을 잃어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
제7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 이채순 불자의 ‘봉정암’이 대상인 총무원장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봉정암’은 일생에 걸쳐 지고지순한 불자의 길을 걸어간 이채순 불자의 신심이 잘 표현됐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대상을 수상했다.조계종신행수기심사위원회(위원장 삼혜 스님)는 5월11일 서울 전법회관에서 심사를 진행해 총무원장상을 비롯해 수상작 16편을 선정했다. 최우수상인 ‘포교원장상’은 이을선 불자의 ‘기도로 이겨낸 슬픔, 기도로 일궈낸 행복’이 ‘중앙신도회 회장상’은 이경남 불자의 ‘작은 이들의 큰 연화심’에게 돌아갔다.‘
“무시분별지심(無是非分別之心)이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그 마음을 없애라는 가르침을 들었다. 노도 잃고 닻도 부러진 배에 올라 깜깜한 바다를 건너다 등대 불빛을 만난 심정이었다. 마음속에 정한 교사상(相)을 없애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양산 통도사 앞에 위치한 보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통도불교학생회 지도교사인 김호준 불자가 마음에 새기는 발원이다. 한 번의 실수나 잘못임에도 매사 부적응 학생으로 낙인찍는 요즘의 세태를 돌이켜보면 김 교사의 발원은 그 어떤 학생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지 않는 한 모든 학생들은 일상에 긍
지난 30여 년 동안 자기 삶의 정신적 궤적을 꾸준히 기록해 온 한 불자가 불교에 입문해서 공부하고 수행한 이야기를 한 권 책으로 엮었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면 한밤중에 일어나서라도 기록했고, 비행기 안에서도 기록했다. 노트와 수첩 등에 적어 내려간 기록들을 정리해 A4용지로 800매에 달하는 분량을 간추린 것이다.이 책 ‘그거, 마음이구먼!’은 정철재 불자가 기록해온 신행수기에 다름 아니다. 이야기는 첫 집을 장만했을 때 동생이 선물한 포대화상에서 시작한다. 선물을 받고 무심하게 2년여가 지나 포대화상의 팔이 깨진 것을 발견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는 불기 2558(2014)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시작돼 불교계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매년 150~200명의 불자들이 수행정진, 기도발원, 일상생활 중 경험한 신행담을 공모하고 있으며, 대상인 총무원장상부터 바라밀상까지 지난 6년간 111명이 수상의 기쁨을 경험했다.지난 6년 바라밀상을 제외한 우수상 이상의 수상작 42편을 분석하면 ‘수행’ ‘병마’ ‘장애’ ‘죽음’ ‘참회’가 주요 소재였다. 이 가운데 ‘수행’ 관련 내용이 14편으로 가장 많았고, ‘병마’를 소재로 한 작품이 8편, ‘장
“발원문은 불자로서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자 불보살님과의 약속입니다. 저마다 놓인 환경과 사정이 다른 만큼 부처님을 향한 각자의 간절한 마음들이 모이면 훗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닮아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발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서울 호압사 주지 우봉 스님이 제7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에 발원문 부문 신설을 제안한 이유다. 스님은 지난해 신행수기 공모전 시상식 직후 발원문 부문에 대한 신설을 추진, 올해 첫 번째 자리가 마련됐다. 우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의 진솔한 삶을 글로 정리해 드러내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신행수기를 쓰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불자들의 성찰과 용기는 한국불교와 불자들의 신행생활을 바꾸는 작지만 소중한 불씨가 되고 있다.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BBS불교방송이 공동주관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는 불기 2558(2014)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시작돼 지난 6년간 불교계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불자들이 일상
3월 4일(수)▲영축총림 통도사 승가대학 ‘2020년 신입생 모집’=20일까지. 055)382-7182 ▲해인총림 해인사 승가대학 ‘2020년 입학생 모집’=12일 오후 4시 접수 마감. 055)934-3081 3월 5일(목)▲동산불교대학 ‘제56기 불교학과 주간·저녁·통신반 신입생 모집’=12일까지. 02)732-1206 ▲현대불교신문 ‘사장 후보 추천 공모’=오늘까지. 02)2004-8204 3월 6일(금)▲(사)경허연구소 ‘경허집 법어 강좌 및 간화선 수행 실참’=오후 6시, 서울 불교여성개발원. 010-8872-5638 ▲고
제7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 운영위원회가 3월1일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삶 속에 녹여낸 불자들의 생생한 신행담을 접수받는다. 조계종 중앙신도회(회장 이기흥)가 주최하고 법보신문과 BBS불교방송이 공동주관하는 신행수기 공모는 불자들의 신심 고취와 바람직한 신행문화 정착을 위해 2014년 시작돼 매년 진행되고 있다. 올해 신행수기 공모전의 변화된 특징은 불자다운 삶의 다짐이자 불보살님과의 약속인 ‘발원문 부문’의 신설이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일반불자를 대상으로 한 ‘신행수기 일반부문’과 교정기관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
2월 26일(수)▲평창 월정사 ‘탄허아카데미 수강생 모집’=3월2일까지. 02)732-2403 ▲과천 연주암 ‘춘계 나한 7일기도 입재’=경내 연주대, 3월3일까지. 02)502-3234 ▲서울 길상사 ‘법정 스님 입적 10주기 사진전’=경내 길상선원, 3월11일까지. 02)3672-5945 ▲예산 수덕사 ‘제 11기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3월4일까지. 041)330-7700 2월 27일(목)▲수선회 ‘불교유식 강의-전의’=오전 10시, 오후 7시 30분, 조계사 후문 원당빌딩 4층. 02)732-5960 ▲남양주 봉선사 ‘26기
• 대상 : 대한불교조계종 신도(신도증 소유자), 전국교정기관 수용자• 원고분량 : 신 행 수 기 : 200자 원고지 30매 내외 (A4용지 4매) 발원문(신설) : 분량 제한 없음• 접수 : 2020년 3월 1일 ~ 5월 6일• 당선작 발표 : 2020년 5월 중순• 접수처 : 03157 서울 종로구 종로 19, A동 1501호 법보신문사 02)725-7014, sugi@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