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무용가 윤 덕 경 교수 지난 11월 10일, 어둠이 짙게 내린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는 내로라하는 한국의 무용가들이 모여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다. 불교를 주제로 각각의 안무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주제를 해석하고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승무(僧舞) 이수자인 김경주 씨의 해학 넘치는 오프닝 ‘비범벅춤’을 시작으로 김난현 씨의 ‘해먹’과 오은희 씨의 작품 ‘환(幻)·멸(滅)’이 이어졌다. 10~20명의 춤꾼들이 펼치는 화려한 몸짓은 관객의 탄성과 갈채를 이끌어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건 ‘고요한 시간, 그 깨달음-위파사나’. 이번 대회를 주관한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인 윤덕경(서원대) 교수가 직접 안무를 맡은 작품으로 이미 몇 차례의 공연을 통해 숱한 찬사를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한 노보살님의 말이 화두가 되어 참구 1주일간 참회의 눈물 이제는 날마다 좋은날 오래 전 공부하러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오랜 여행 끝에 지친 몸을 끌고 안거에 들어가기 위해 방부 들였던 절에 들어가던 길이었다. 일주문에서 어떤 허름한 노보살님이 몇몇 분들과 성지 순례를 오셔서 법문을 하고 계셨다. 지나가며 언뜻 들은 얘기로는 “왜 저 나무를 관세음보살이라 하면 말이죠, 나무는 어쩌고저쩌고….” 나는 지나가면서 피식 웃었다. ‘저 무식한 할매 아는 척 하는 것 좀 보소. 나무(南無)란 말은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니고 인도 말인데 의지한다, 귀의한다란 뜻이에요. 제대로 알고 얘기하소, 할메요.’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이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귀찮기도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지나갔
지난해 가을 방기연 법사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고향 원주로 돌아왔다. 오랜 도시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까닭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다는 서원에서 시작한 상담자의 길. 지금까지 수천 명의 얘기를 들어왔건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깊은 울림은 외면했었는지 모른다. 때로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에 상담자로서 지켜야할 원칙보다 의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미숙함이 오히려 상대방의 상처를 덧나게 했고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절망감 안고 낙향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절망감, 불연 듯 마음 속 밑바닥까지 휘감고 도는 싸늘함은 온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 때 서울생활을 접고 먼저 고향으로 향했던 형님이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래, 회색의 콘크리트
어떤 것에 집착해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망상을 쫓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것… 지혜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수행을 통해 비로소 완성. 탐심 버리고 바르게 사는 지혜를 배워야 금강경을 제대로 본 것. “길 잃은 나그네에게 나침반이 필요하듯 끊임없는 경쟁과 물질 지상주의에 빠져 혼탁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금강경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세납 70세의 지관 스님은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청하지 않으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 지관 스님. 스님은 지난 10월 1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가산불교문화연구원 부설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연구원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금강경오가해’ 강의를 시작했다. 칠순을 훌쩍 념겼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이 다시
임사체험을 한 참가자들은 “죽음은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니라 또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한 관문”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내가 수십 년 동안 정들었던 나의 육신과 이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 이 호흡이 끊기고 나면 나의 육신은 곧 생명 없는 고깃덩이가 되어 냄새를 풍기겠지요. 짧디짧은 인생에서 맛보았던 성취와 쾌락이 모두 꿈같기만 할 뿐입니다. 그동안 일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었던 많은 잘못 참회합니다.” 발원 후 입관 …장엄염불도 짙은 먹구름이 상현달을 삼킨 10월 23일 자정 무렵, 북한산 의상봉 자락에 위치한 국녕사에서는 올해 마지막 임사(臨死)체험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 능인선원에 다니고 있는 이철교(57·무량광) 씨도 그 중의 한 사람. 하얀 수의를 갈아입
더불어 하는 수행은 더불어 행복 만든다 한 지역에만 갖힌 문화는 이젠 다시없다. 오랜 동안 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었던 불교도 특정 지역의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종교의 우열도 분명히 판가름 나게 되었다. 불교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어가는 것은 그 우위성 때문인가. 불교 수행에 더없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도 그 수행인의 수가 나날이 늘어가고 질적으로도 일진월보(日進月步)의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 자신의 경우를 돌아보더라도 수행의 입문이 그리 쉽지 않은 것만은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내용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또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경(經)자체가 그런 것인가. 참선 공부는 화두를 들고 의심을 내야 한다. 이런 가르침은 천편일률적. 어떤 공안
수진 스님은 교(敎)가 번뇌의 자리를 부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라면 선(禪)은 그 가르침을 직접 체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경전에서는 한번 스치는 옷깃에도 숱한 전생의 인연이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하물며 ‘인천(人天)의 스승’이라는 출가자의 길에 있어서야….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 지난 30여년 간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은 어쩌면 깨알 같이 많은 과거세부터 삭발염의 했던 납자였는지도 모른다. 스님의 고향은 연화산 옥천사 법당이 멀리 보이는 경남 고성의 한 작은 마을. 또래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했던 소년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부모님께 출가의 뜻을 밝혔다. 저학년 때부터 출가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종종 들어온 터였지만 막상 출가선언을 들었을 때 부모는 당혹스러울 수
남산의 철쭉꽃이 흐드러지던 68년 어느 봄날. 당시 스물다섯 청년이었던 홍익대 김원수(62) 교수는 집을 나섰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옷가지와 『금강경』 한 권. 지금의 고통스러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였건만 오직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가 못내 눈에 밟혔다.영원한 스승 백성욱 박사명문대학 출신에 훤출한 외모. 속 모르는 이들이야 뭔 걱정이 있겠냐고 부러워했지만 당시 그에게 삶은 마치 어깨 위에 큼지막한 바윗덩어리를 올려놓은 듯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 거기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온갖 번뇌와 망상들은 하루가 다르게 그를 황폐화 시켜갔다.이런 김 교수가 향한 곳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의 ‘백성목장’. 그곳에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우룡 스님은 상대방이 먹는 밥으로 인해 내 배가 부를 수 없듯 불교는 철저하게 자기의 업을 자기가 닦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불광사 창립 30주년 법문 우 룡 스님우룡 스님은 상대방이 먹는 밥으로 인해 내 배가 부를 수 없듯 불교는 철저하게 자기의 업을 자기가 닦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룡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는 1000여 불자들. 이 시대 대표적인 대강백으로 수행자로도 손꼽히는 학성선원 조실 우룡 스님이 오래간 만에 대중 앞에 섰다. 서울 불광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10월 8일 보광전에서 개최한 고승초청대법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 이날 스님은 건강이 대단히 좋지 않음에도 법문시간 내내 꼿꼿이 서서 대중들에게 감로수 같은 법문을 들려주었다. 12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법회를
무작정 아집 버리라 하면 쉽게 놓지 못하는 것 당연 지족의 삶 평소 실천하며 자신 내면부터 정화해야 부처님과 똑같은 자리 중생에게도 분명있어 ‘나는 존재한다’식 삶 지옥 놀음에 불과할 뿐 살아있는 불교, 생활불교, 바로 이 순간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는 ‘활불교’(活佛敎)를 주창했던 용타 스님은 1980년 동사섭 법회를 개창한 후 20여년 간 대중들에게 불교수련을 지도해 오고 있다. 용타 스님의 독특한 수련 체계는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현재 약 3,000여명의 회원이 정기적인 수련회에 참여하고 있다. 근기 고려않은 ‘해탈’강조는 무리 용타 스님의 수련체계는 동사섭에서 펼치고 있는 5대원리를 통해 알수 있다. 삶의 주체인 나를 바로 아는 ‘정체’(正
상대적 세계 넘으려면 수행을 Q.: 극락이란 항상 하는 삶을 이른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살면 그만 아닙니까? A: 이 물음은 불교의 교리를 많이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에 관계없이 누구나 갖고 있는 바람일 것입니다. 우리들 속마음에는 언제나 “만약 극락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 수밖에 없으리라”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네 생명은 자신의 표현을 멈추지 않습니다. 짓는 모습이나 상태가 계속 변화해 갑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고자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어릴 때에는 무척 속상하던 사건이 어른이 되어서는 흐뭇한 추억거리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사랑하던 사람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一時). 불(佛).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여대비구중(與大比丘衆). 천이백오십인(千二百五十人). “이와 같이 들리었다고 생각하세요. 먼 옛날의 어느 날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이며 보문사입니다. 천이백오십 비구들이 아닌 여러분입니다. 천이백오십 비구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있기에 기수급고독원은 빛이 났습니다. 바쁜 일상을 놓고 부처님 말씀(금강경)을 마주한 여러분이 있기에 보문사도 빛이 납니다.” 空과 空이 내는 묘음에 귀기울여라 순간 「금강경」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 곁에 왔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으로 생생히 전해졌다. 이전에도 경전은 있었고 금강경이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고 의심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는가. 그럼에도 대진 스님의 조용한 일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