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람들은 음악과 노래를 좋아한다. 순례길은 물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음악과 노랫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순례단은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또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순례단은 물론 스텝이나 기자들과 눈만 마주치면 어김없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학생이나 젊은 층은 SNS 주소를 묻고 친구를 맺는 등 적극적이다.지역 주민들에게 저녁예불을 공개해온 순례단이 어제부터 사진 찍기를 통한 교감에 나섰다. “웃음으로 맞아주는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금 피곤하더라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주는 시간을 갖자”는 회주 자승
평생의 삶은 죽음으로써 평가받는다. 죽음 앞에서도 말과 행동이 당당하다면 예사롭지 않은 삶이다. 고귀하고 바른 삶을 산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그러나 탐욕과 욕망에 찌든 이들은 죽는 순간에도 비루했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버둥거리다가 결국 황천(黃泉)으로 끌려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완벽하게 초월한 분이 있다. 바로 부처님이시다. 부처님께서는 삶에 대한 애착은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오늘도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부처님 탄생성지 룸비니로 향했다. 이제 2일만 더 걸으면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 룸비니에 들어선다. 길은 여전했다. 도로와 흙먼지 날리는 길을 차례로 걸었다. 그러나 모든 길이 비슷한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지문처럼 조금씩 다르다. 비록 잠깐이지만 작은 마을의 한복판을 지나갈 때, 마치 고대의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벽돌집과 흙, 나무를 사용해 지은 낡은 집들과 모두 집 밖으로 나와 신기한 눈으로 순례단을 쳐다보는 눈빛, 집 앞에 매어 놓은 염소와 마을을 누비는 개들. 길이 좁아 차와 오토바이
쿠시나가르에서 룸비니로 가는 길의 풍경이 어제와 사뭇 달랐다. 물이 가득 차 흘렀던 개울 같은 제방은 메말라 있었다. 물길 옆으로 마을이 들어서서 한국의 시골과 같던 모습들이 오늘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인도의 풍경으로 다시 바뀌었다. 다시 길 양쪽에는 밀밭이 지천으로 펼쳐져 있다. 만약 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모습이 아니라면, 이 푸른 밀밭은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을 터였다.부처님께서 이 길을 걸을 때도 비슷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며 부처님은 끊임없이 진리를 설하고 또 끊임없이 길로 나섰을 것이다. 온갖 차별과 가난이
상월결사(회주 자승 스님)가 불자들의 원력과 신심을 모아낼 ‘108배 원력문’을 새롭게 만들었다.상월결사는 3월10일 인도순례 30일차 저녁예불에 앞서 “순례단의 배탈과 감기 등으로 중단됐던 ‘금강경’ 독송과 108배를 3월14일 룸비니 기도법회부터 재개하면서 참회가 아닌 원력의 기도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상월결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교학을 근거로 체계를 갖춘 ‘108 원력문’을 새롭게 제작했다.이는 인도순례 중 회주 자승 스님이 108배를 참회의 내용보다 원력과 신심으로 모으는 내용으로 전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
부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하셨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시작이 끝으로 이어지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 이런 시간의 무한한 흐름을 시작과 끝으로 나누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편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룸비니에서 태어나셨지만, 이미 과거 무수한 생을 통해 수행과 공덕을 쌓아 현생에 부처님이 되셨다. 그랬기에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하늘 위와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이니 내 마땅히 그들을 편안케 하리라”라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순례단이 부처님의 열반
“상월결사 인도순례의 공덕으로 저희의 부족한 면이 변화되고, 더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전환점 되기를 발원합니다. 가는 곳마다 수행하고 봉사하며 생활불교, 자립불교, 세상에 이익을 주는 한국불교가 되길 발원합니다. 중생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 할지언정 저희의 발심 원력이 물러나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나무석가모니불.”부처님께서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서 적멸에 든 바로 그곳, 열반당 앞에 순례단이 가지런히 섰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9일 쿠시나가르 열반당 앞 광장에서 ‘
마침내,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쿠시나가르에 도착했다. 길은 도로와 좁은 흙길이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을 예고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갔던 길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슬픈 마음으로 부처님 뒤를 따르던 제자들의 마음과 순례단의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듯싶다. 부처님 당시 뒤를 따르던 제자들이 부처님의 입멸을 슬퍼했다면, 지금 순례단은 부처님을 직접 뵙지 못함을 슬퍼했다.순례단의 이런 마음이 닿았을까? 이날은 처음으로 비가 대지를 적셨다. 건기인 인도에서는 드문 현상이다. 감로의 비는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몸을 씻은 카쿠타강에서부
상월결사 인도순례 원만회향을 발원하는 불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강원도에 닿았다. 조계종 포교원(원장 범해 스님)은 3월7일 강원도 순례길 ‘강릉 해맞이길’ 순례를 진행했다. 등명낙가사에서 정동진역에 이르는 3.7km, ‘강릉 해맞이길’ 순례는 한국불교 중흥을 발원하며 인도에서 성지순례에 나서고 있는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의 원만회향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이날 강릉 순례에는 포교·신도단체 120여명이 동참했다. 길지 않은 거리지만 인도 현지에서 하루 20여km가 넘는 길을 걸으며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부대중과 마음만은 함께
인도 속담에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신이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인도인은 집에 들어오는 개나 소, 염소라 해도 함부로 대하거나 내쫓는 경우가 없다. 동물에게도 이럴진대 사람에게는 오죽할까. 어느 집이나 불쑥 들어가도 환한 미소로 반겨줄 뿐 아니라 물과 의자를 내어주며 잠시 쉬어갈 것을 권한다. 오늘도 인도인들의 이런 마음이 꽃비가 되어 내리는 길을 걸었다.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7일 두바울리야를 떠나 마다착, 마쵸아, 바하르커드를 거쳐 27일차 회향지인 삐뻐라까낙에 도착했다. 이날 순례단은 성도성지
순례의 시간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길만이 있는 건 아니다. 계절 또한 우리와 함께 걷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인도의 날씨가 올라가고 있다. 3월에 접어들면서 한낮 온도가 이제 35도를 넘나든다. 덩달아 새벽 기온도 올라 새벽 한기가 사라져 따로 옷을 챙겨 입지 않아도 될 정도다. 온도가 오르면서 모기도 눈에 띄게 늘어 아침저녁으로 극성이다. 하루살이만큼이나 많은 모기떼가 사방에서 달려든다. 앞으로 날씨가 더워질수록 모기떼 극성은 더욱 거세지고 순례단의 고단함도 커져갈 것이 분명하다.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르로 가는 여정에 열반재일
인도는 날것 그대로 사문유관(四門遊觀)의 땅이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카필라성의 동서남북 4문을 나가서 늙고 병들고 죽음을, 그리고 마지막에 당당한 사문을 만난 뒤 출가했다.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자마자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기에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인과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사문유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생각해 보면 카필라성에서의 삶은 싯다르타 태자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화려한 카필라성에 살았던 싯다르타 태자와 다를 것이 없다. 산업화 사회에서 죽음은 장례식장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5일 24km를 걸어 고팔간지에 도착했다.순례 25일차를 맞아 제법 적응이 됐다 싶지만, 여전히 ‘노 프러블럼(No problem)’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쓰레기다. 아무 곳이나 마구잡이로 버리진 쓰레기도 그렇지만 마을 어귀마다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 더욱이 음식물, 일반, 재활용이 뒤섞여 악취가 진동하고, 여기저기 불까지 질러 메케한 검은 연기로 가득한 곳을 지나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 아수라장 같은 쓰레기 더미를 뒤져 플라스틱
새벽 어스름에 길로 나섰다. 길에서 자고 길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 순례는 차량을 이용해 관광하듯이 다니는 여정과는 확연히 다른 감회를 불러온다.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부처님의 체취 가득한 성지로 향하는 길은 비록 고되고 험난한 고행과도 같지만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성지를 스쳐지나갈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부처님께서 걸었던 그 길에는 부처님의 삶이 점점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출가를 위한 결단과 수행에 대한 고뇌, 중생을 위한 연민과 아름다운 열반까지 그 모든 삶의 순간이 이어진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르에 이르는 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의 길인 동시에 싯다르타 태자가 스승을 찾아 나선 새로운 여정의 공간이다. 이 길은 시작과 끝이 하나인 길이다. 마치 생과 사가 하나인 이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은 싯다르타가 스승을 찾아 나섰다는 점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오늘날 인류의 정신문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교 가운데 그 창시자가 스승을 찾아 나선 종교는 없다. 이들 종교의 창시자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신의 계시를 받거나, 혹은 스스로 성인의 반열에
상월결사 인도순례 ‘붓다의 길을 걷다’ 순례단이 3월2일 부처님과의 인연이 가득한 바이샬리를 떠나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하루 전 “석가모니불”을 합송하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던 근본사리탑을 지나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좁은 골목길 따라 한참을 걸었다. 부처님께서 대열반의 여정을 위해 걸음 했을 바로 그 길이며, 탁발을 위해 제자들과 몇 번이나 다녀가셨을 그 길이다.인도순례 22일차 새벽행선은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 걷는 것 때문인지 유독 고요한 가운데 진행됐다. 그동안 낮밤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쏟아내던 노랫소리도,
석가족 여인들이 스스로 삭발하고 부처님의 뒤를 따랐다. 카필라성에서 바이샬리에 이르기까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은 여성 출가를 둘러싼 부처님과 여인들의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마하빠자빠띠는 아난다의 옷자락에 매달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온화한 아난다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세존이시여, 여자도 수행하면 남자와 같은 수행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물론 그럴 수 있다네.”“수다원과를 얻고, 사다함과를 얻고, 아나함과를 얻고, 아라한과를 현생에서 증득할 수 있습니까?”“물론이네, 아난다여.”
2019년 겨울 위례 상월선원의 동안거는 여느 동안거와는 사뭇 달랐다. 깊은 산중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돼 오직 화두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선원의 정진이 아니었다. 안거를 위해 설치된 임시 천막선원 주변은 대규모 아파트단지 공사장이 이웃해 자재를 실어 나르는 차량들의 먼지와 소음, 그리고 굴착과 발파 등 중장비들이 쏟아내는 굉음으로 가득했다. 전국에서 찾아온 불자들의 응원과 기도, 각종 문화행사 등 상월선원 동안거는 몸은 갇혀있지만 저자 한복판에서 정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고요 속에서 이룬 성취는 고요가 사라지면 쉽게 무
조계종 포교원이 순례 프로그램 확산과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원만 회향을 기원하기 위해 불자들의 염원을 모아 강원도 순례에 나선다.조계종 포교원(원장 범해 스님)은 2월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2023 포교·신도단체 대표 및 실무자 간담회를 열고, 순례 계획을 공개하며 참여를 독려했다.포교부장 선업 스님은 “2023년은 한국·인도 수교 50주년의 해다. 종단 역시 이를 기념하는 한국 불교 세계화 사업 및 상월결사 인도 도보순례에 동참하고 있다”며 “총무원을 대표해 포교원장 범해 스님
“싯다르타 태자는 29세 되던 해 2월8일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아버지 정반왕도 모르게 마부 찬타카와 함께 호화로운 왕궁을 빠져나왔다. 지나가는 바라문과 옷을 바꾸어 입고 반연(攀緣)을 잘라내듯 스스로 머리를 깎은 후 마부 찬타카를 다시 궁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사문 고타마로서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출가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기원전 595년 음력으로 2월8일의 일이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 19일 차에 접어든 2월27일은 2600여년 전, 싯다르타 태자가 화려하고 안락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