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어로 '룽타(Lungta)'는 ‘바람의 말이 갖는 힘’이다. 룽(Lung)은 ‘바람’, 타(Ta)는 ‘말(言)’의 뜻이다. 히말라야 고원을 가보면 바위나 돌에 경전이 쓰여 있기도 하고, 오색의 삼각 깃발에 불보살님의 형상이나 경구를 새겨 깃대와 깃대 사이를 연결한 줄에 촘촘히 매달아 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가을 하늘을 수놓던 만국기를 떠올려보면 되겠다. 나는 한 여름의 키 큰 나무에 달린 무성한 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햇살을 흔들 때면 넋을 놓고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리는 느낌을 갖는다. 90년 초, 인도 여행을 갔다가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한 적이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왕복 코스였다. 이 코스에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고려시대 보조선사는 「간화결의론」을 지어 이 땅에 처음으로 간화선을 도입, 선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자리매김 시켰다. 수행이란 마치 무성한 번뇌의 수풀 속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소를 찾아나서는 것과 같고 다시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화선을 제시한 것이다. 수행자가 간절한 발심으로 길을 나설 때 우선 요구되는 것은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어 밖으로 구하는 마음을 쉬는 것이다.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확실한 믿음이 성취되면 마음은 작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체가 마음 아님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눈앞에 작용으로 나타난 마음의 소가 있는 줄은 분명하게 보았으나 아직 얻지는 못했기 때문에 간절한 정진을 끝없이 들이대면 문득 깨닫게 된다. 이것을 바로 돈오라고 한다. 돈오는 간절한 정진으로
‘이야기(narrative)’란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을 뜻한다. 영감이라는 것이 무의식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무의식은 대개 비슷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샤먼이나 그 사회의 선지자들의 말이란 게 그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면 내 이야기가 아니라며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종교나 신화를 알려면 그 이야기가 생겨난 배경을 이해해야 하고, 내포하는 메시지를 잘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표현이 은유적이어서 고정된 답이 없다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야기의 형식에 있어 ‘민담’이 보통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신화’는 영적인 교시를 위
세상을 디자인하는 남자 박원순. 그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후 그것을 사회로 회향했 듯 오늘날의 불교 역시 세상을 향해 대안과 실천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정하중 기자 국내 1호, 아니 전 세계 최초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가 된 남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다. 2006년 신실학운동을 구현할 수 있는 중추로 정부와 기업, 민간이 연계된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를 설립한 이래 그는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희망을 만드는’ ‘희망을 나누는’ 그리고 ‘희망을 심는’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최근 발간된 그의 책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희망을 심다』의 제목처럼 그의 화두 역시 늘 ‘희망’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불기 2553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한국 불자들에게 봉축 메시지를 보내왔다. 달라이라마는 4월 4일 티베트 망명정부 동아시아 대표부(대표 락파 쵸고)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 왔으며 공식 메시지 전문을 우편으로도 전달해 왔다. 그는 봉축 메시지에서 한국 불자들에게 부처님오신날의 기쁨을 전하며 부처님이 설하신 이타행의 실천을 강조했다. 법보신문은 달라이라마의 봉축 메시지 전문을 게재해 부처님께서 이 땅에 나투신 참 의미를 나눈다. 편집자 인간의 몸으로 나투시어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에서 법을 설하신 지 2500여 년이 지났습니다. 석가 세존께서는 법을 듣고자 하는 일체 중생들에게 평화로이 가르침을 주셨으나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협
오랜만에 큰 비가 내리니 초목들은 저마다 법열에 젖어 동자승의 해맑은 미소로 넘실거리고 있다. 그 동안 일체 흐름을 끊고 깊은 무명의 습기를 다스리던 골짜기는 이제 밑바닥을 치고 다시 노래 부르며 법성의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지붕 위에 후드득 떨어지는 청량한 빗 방울소리를 들으며 모든 사람들의 정수리마다 함께 하여 욕불공양을 이루고 일시에 해탈하기를 발원해 본다. 고사리 밭에는 여린 주먹을 쥐고 솟구쳐 오르는 고사리가 천상천하유하독존을 외치며 모든 생명들은 본래 평등하여 누구나 부처임을 만천하에 선언하고 있다. 대지는 모든 생명들의 어머니가 되듯이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자마자 외친 탄생게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성은 남녀와 노소의 구별이 없으며 인간과 자연이 본래 평등한 존재이니 모든 경계를 허물고 인류의
세상에 수행보다 좋은 게 없고(世間莫若修行好), 천하에 밥 먹기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天下無如吃飯難).이 시는 북평(北平) 백운관의 주련인데, 명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것이라 한다. ‘다반사(茶飯事)’는 말 그대로 밥 먹고 차 마시는 일로서 참으로 일상이요, 수행은 뭔가 특단의 용기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시인은 정말 그럴까 하고 되물었다. 원래 밖으로 잘하기보다 안으로 잘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동서양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계정립은 많은 차이가 난다. 자기 경험을 지혜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주의가 사회적 시스템으로 발전한 서양과 달리 동양은 전체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원만한 인간상을 선호해 왔다. 사회의 기능이란 것이 개인의 성취에 이익 되어야지 개인이 사회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회는 옳지 않
거리마다 꽃비가 내리고 골짜기 마다 꽃 사태를 만나는 행복한 요즈음 더욱 반가운 것은 자비를 나누는 절 수행이 절마다 꽃불처럼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다리는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 여러 이웃들을 먼저 부처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자비의 실천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건강과 함께 수행 방법으로 108배가 보편화되고 있으며 1080배와 3000배를 실천 하는 절도 많아지고 있다. 평소에 보통 사람들은 복잡한 생각이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절을 통해서 참회와 발원을 하고 신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굳게 단속해 나간다. 그러나 자비심을 발하지 않고 나만이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그치고 말면 내 가족은 지킬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하게 되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웠다. 뜰에 자라는 한 그루일 뿐이지만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고, 늦서리에도 빨간 열매를 달고 있어서 우리 절에서 사랑받는 나무이다. 도심 포교당에 살다보면 어금니 빠지듯 통째로 계절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어디에 무슨 꽃이 있다면 나가 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같으면 섬진강변의 벚꽃도 그렇고, 지리산 산동마을 산수유 군락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반추되는 기억들 중에 유난히 선명한 것은 시집가듯-절 밥이 눈치 밥이라는 말처럼- 온전히 새 삶에 익숙해져야 했던 행자시절에 본 조계산의 모든 것이다. 『논어』에 보면 재아가 공자님께 “삼년상(喪)은 너무 길고, 일 년이면 족하지 않느냐”고 묻는 부분이 나온다. ‘사계절이 한 바퀴 돌고나면 모든 변화를 다 본 것이니 충분하지
도반스님들이 꽃샘추위와 함께 찾아와서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에 다녀왔다. 이제 차별과 소외의 뱃길이 사라지고 평등과 소통의 다리가 열렸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감동 깊게 읽었던 구도소설 『솔바람 물결소리』가 떠올라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한 소년이 한센병 환자를 부모로 두었는데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음성환자인 마을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보살행의 실천을 그린 소설이었다. 어느덧 하얀 목련이 벌써 지고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은 한센인들이 그 동안 겪었던 깊은 한을 위로하는 듯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원생들은 자녀가 태어난 경우 전염을 우려해서 격리하고 한 달에 단 한 번만 면회가 허용 되었다고 한다. 그 면회 장소를 ‘수탄장’이라 한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으니 섬 속에
부처님께서 한 번은 마가다국의 들판을 지나시게 되었다. 당시 이 나라는 16개의 부족 국가 중에서도 4개의 강대국 중 하나였다. 작물이 자라고 있는 논들은 둑을 경계로 질서정연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것을 보시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저 잘 정비 된 마가다의 들판이 보이느냐?”“예, 부처님.”“아난다, 너는 저 들판과 같이 비구들의 가사를 만들어 보아라.”“예, 부처님.” 부처님을 위시한 대중이 원래 머물던 라자가하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난다는 몇 벌의 가사를 만들어 부처님께 보여드렸다. 이것을 보신 부처님은 비구들을 모이라 하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참으로 총명하구나. 내가 간단히 말하였는데도 천 조각들을 잇대어 잘 만들었구나. 잘라진 조각들을 기워 입
바람이 연 이틀 숲을 뿌리 채 흔들어대더니 나뭇가지에는 어느덧 새 움이 트고 있다. 오늘은 순한 바람이라서 그 간 미루었던 텃밭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렸다. 겨우내 켜켜이 쌓여 익은 무명의 거름을 끌어내고 땀 흘려 설계하여 예쁘게 가꾸어 놓았더니 볼수록 뿌듯하다. 꽃피는 삼월에 찾아와 수행자들의 살림살이를 점검하게 하는 부처님의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은 잠시 꽃 소식에 들뜬 기운을 가라앉히는 커다란 경책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사대문을 통해서 무상을 느낀 후 위대한 포기를 통해 부귀영화를 헌 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욕망의 성문을 박차고 출가를 결행했다. 그것은 모든 중생들이 본래 성불이어서 여래와 더불어 조금도 차별이 없음을 증명해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 부처의 씨앗을 감추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