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행 나쁘고 절제 없다면쇳덩이 삼키는 것과 같아정치인들 특히 유념해스스로 욕망 경계해야 ‘담마빠다’에는 요즘 세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불교의 수행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재가 신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는 물론, 통치자나 사회 지도층은 어떠해야 하는지와 같은 내용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번에 살펴 볼 비유는 ‘쇳덩이’이다. 그런데 그냥 쇳덩이가 아니라 뜨거운 화염과 같은 쇳덩이이다. ‘불에 시뻘겋게 달구어진 쇳덩이를 먹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이야기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미약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뛰어난 지능을 소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힘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존재가 되었다.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더라도 협력을
게으름은 달 가린 구름방일 않는 정진 수행자정각 뒤엔 구름 벗어나마음은 달처럼 빛날 것 2010년도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란 영화가 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 이 영화 제목을 보는 순간, ‘법구경’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 구절의 키워드는 ‘구름’과 ‘달’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구름과 달이 의미하는 바는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서의 구름은 아마도 당시의 왕과 통치계급이 아니었을까. 부처님은 구름을 방일, 즉 게으름에 비유하셨다. 이 비유가 나오는 시의 전문은 이렇다. “어떤 이가 과거에는 방일했지만 나중에 방일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춘다.” 상상해 보자. 달마저 구름에 가려 있는 어두운 밤이다.
갈애·자만 부모와 같아 내 존재의 원동력이지만 번뇌·윤회 원인이기도 끊어내야 해탈에 이르러 당나라의 선승 임제 의현 스님이 어느 날 법상에 올라 “살불살조(殺佛殺祖) 살부살모(殺父殺母)”라는 법문을 했다.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인다”는 의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임제 스님의 이 법문은 사실 ‘담마빠다(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 근원으로 한다. ‘담마빠다’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두 명의 크샤뜨리야 출신 왕들을 죽이고 나서, 왕국과 신하를 없애고 나서, 바라문은 두려움 없이 간다”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한역 ‘출요경’ 쌍요품에도 나온다. ‘출요경’은 ‘법구경’을 비롯한 여러
숲에서 서늘해진 등골은해로운 일 두려워하는 탓스스로 모든 번뇌 제거해 숲조차 없는 상태 되어야 우리가 밤길을 걷다 보면 익숙한 곳이라고 해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생긴다. 그것은 어둠이라는 장막 뒤에서 무엇이 갑자기 나와 나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훤히 잘 보이는 낮에는 어떤 두려움도 없던 것이 밤이 되면 저절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은 아마도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 무엇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넓은 들판에 있을 때는 확 트인 시원함이 나를 감싸지만, 울창한 숲에 들어가면 시원함이 아닌 두려움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한다. 더구나 그 길을 혼자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온갖 사나운 동물이나 못된 도적이 어디에서 뛰쳐나올지 모를 일이다. 조그마한 소리만 나도 두리번거리게 된다
쇠로부터 생긴 녹을방치하면 쇠를 녹여악업을 가만 놔두면자신 망치는 지름길 얼마 전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 배우 한석규씨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법구경’의 말씀 가운데 인상 깊은 말씀이 있었다며 ‘쇠로부터 생겨난 녹은 자신에게서 생겨나 자신을 삼킨다’라는 경구를 소개하였다. 이 때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다소 ‘법구경’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는 맥락이 달랐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비유는 바로 ‘쇠’와 ‘녹’이다. ‘담마빠다’의 원문을 직역하면, “마치 쇠로부터 생겨난 녹이, 그것(녹)이 생기고 난 뒤, (오히려) 쇠를 삼키듯이”가 된다. 그 뒤에 오는 말씀은 ‘자신이 지은 악업이 자신을 나쁜 곳으로 이끈다’라는 것이다. 쇠붙이에 녹이 생겨난 것을 그대로 방
누렇게 바싹 마르고생기 없는 호리병박영원하지 않은 ‘젊음’집착하면 여유 잃어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노약자석’이란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나, 어린아이 혹은 임산부를 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요즘은 연세든 노인분들께서 앞에 서 계셔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양보하는 미덕’을 강조하는 ‘포스터’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합시다’라는 계몽구의 포스터가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은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70~80년대만 해도, 자리 양보하자는 포스터는 없었다. 어르신들이 타시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굳이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라
채찍 맞을까 두려운 소는고통 피하려 목장에 몰려폭력이란 잔인함 깨달아타인에 상처주지 말아야 요즘 우리 사회는 각종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폭력에 괴로워하고 있다. 폭력은 작게는 가정폭력에서 사회적으로 학교폭력, 직장내 폭력, 성폭력, 조직폭력 등이 있고, 크게는 테러와 국가간 폭력(전쟁)까지 다양하다. 폭력은 어떠한 형태이든 생명을 해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모든 성인은 폭력에 대해 반대한다. 폭력에 반대하는 것을 비폭력이라고 하고, 비폭력의 적극적 실천을 자비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세계사에서 비폭력하면, 마하트마 간디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조국 인도를 해방시키는데, 무력적 폭력이 아닌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그가 비폭력 저항운동
낙숫물이 바윗돌 뚫듯삶 속에 시나브로 쌓인사소한 생각·말·행동이선업과 악업 등 만들어 부처님의 제자 중 아누룻다(아나율) 존자라는 분이 계신다. 이 분은 어느 날 부처님의 설법 시간에 깜빡 졸다가, 부처님에게 질책을 받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아누룻다 존자는 스스로를 크게 경책하며,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게 된다. 그러한 아누룻다 존자를 본 부처님께서는 제자의 건강을 걱정하며, 잠을 자며 수행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존자는 부처님의 설법 시간에 졸았던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며 용맹정진을 거듭하였다. 결국 존자는 눈이 멀고 만다. 하지만 대신에 천안(天眼)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 분을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고 하여,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칭송한다. 하루는 눈이 보이지 않는
전생은 현재 이끈 원인미래도 현재에서 비롯깨달음은 자신 아는 것스스로 이겨야 승리자 고대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착각이다. 내가 나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이 육체의 변화를 가장 먼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또 정서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배가 고프면, ‘내’가 배가 고프다고 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해야 아는 것을, 나는 ‘바로’ 나의 상태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나를 세상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국자는 국의 맛 몰라주변 영향 받는 인생스스로 현명한 벗 찾아곁에 둬야 바른 길 걸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산다. 그 중에서 어떤 경험은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경험도 있고, 누군가에게 듣거나 유추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있다. 우리의 앎은 이러한 직간접적 경험 내용을 토대로 한다. 그런데 과연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사실 직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한정된다. 그래서 평생 동안 경험할 수 있는 내용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앎을 전해주는 대부분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획득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를 둘러싼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선우(善友)’에 대한 말씀을 매우 강조하셨
말 앞서고 실천 없으며향기가 없는 꽃과 같아계행 청정한 수행자는맑고향기로운 향기 퍼져 봄이다. 아직은 다소 찬바람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봄기운이 가득하다. 그리고 산과 들에 핀 알지 못하는 이름의 꽃들이 봄이 왔음을 말해준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꽃향기가 우리의 코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꽃에 향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봄의 전령인 개나리나 진달래는 물론, 목련이나 민들레, 벚꽃 등은 향기가 없는 꽃으로 유명하다. 불교에서 말만 앞서고, 그에 맞는 실천이 결여된 사람을 ‘향기가 없는 꽃’에 비유한다. 반면에 향기 가득한 꽃은 실천을 구족한 사람을 가리킨다. ‘담마빠다’에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서 가지 못한다”라는 비유가 나온다. 바람이 부는 날 아무리 좋
재능만 믿고 나태하면순식간에 죽음 다가와부지런함이 수행 완성 게으름 말고 정진해야 주자학의 대성자인 송나라 주희는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숫따니빠따’는 주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어난 자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결국 늙음에 이르러 죽고 만다”라고 읊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은 더디게 갈 수 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처럼, 어떤 일의 결과나 보고픈 사람을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일초의 짧은 시간도 참으로 더디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어떤 재미에 푹 빠진 사람에게는 몇 시간도 몇 초 밖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속담이 말하는 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