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8일 포털사이트에서는 광주의 집단감염이 광륵사가 아닌 방문판매발이라는 내용의 속보가 일제히 떴다. 광주시는 당일 오전 광주지역 코로나19 재확산 최초 감염원으로 방문판매와 금양오피스텔을 지목하며, 역학조사결과 대부분의 집단감염이 방문 판매에서 비롯돼 금양오피스텔을 통해 퍼졌다고 설명하였다.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절에 갈 뿐이지만 그래도 불교신자라고 저 기사들이 내심 반갑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반 년, 불교가 한국사회의 어느 종교보다도 기민하게 방역에 앞장섰다는 자부심이 있던 터였기에, 지난달 27일 광륵사 관련 확진자 발생
백남준이 불교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또한 그가 불교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 ‘TV 붓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고, 실제 유사한 작품을 여럿 만들어 현재 전 세계의 많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고, 전위적이며 기괴한 예술가이지만, 그 바탕에는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구체적으로는 선(禪)에 근간을 둔 어떤 확고한 이론적 체계를 지닌 예술가로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TV와 마
‘백 명의 스님이 있으면 백 가지 다른 불교가 있다’는 말이 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백 명의 철학자를 모아 놓고 아무 철학자에게 ‘당신은 여기 있는 철학자 가운데 누구에게 반대합니까?’라고 질문하면 누구나 ‘물론 다른 99명 모두입니다’라고 답한다는 농담도 있다. 이처럼 서로 끝없이 비판하고 반대하는 작업이 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모두가 받아들이는 극소수의 진리 가운데 하나가 ‘모든 것은 스스로와 동일하다’라는 자기동일성 원리(principle of self-identity)다. 서양에서는 너무도 자명하고 근본적인
예술가를 영웅으로 하는 개념은 낭만주의 사상의 중심이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로 대표되는 시기에 프란츠 리스트보다 더 ‘영웅’의 이름에 어울리는 음악가가 있을까? 소년시절, 피아노 신동이었던 그는 리사이틀(recital)이라는 피아노 독주회를 열었던 최초의 연주자였다.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한 무대에서 감상하는 것에 익숙했던 그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그는 바흐부터 쇼팽에 이르는 균형 잡힌 레퍼토리를 혼자 이끌어가며 오늘날의 독주회의 기틀을 마련했다.리스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는데, 그
부처님 덕행의 공덕이 있다고 해도 부처님께서 출현하기 위해서는 선업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 ‘법화삼부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계정혜와 해탈과 지견(知見)에서 생(生)하고, 삼명육통과 도품(道品)에서 발(發)하며, 자비와 십력과 무외(無畏)에서 일어나고, 중생들의 선업을 인연하여 나오시네(衆生善業因緣出).” 또한 ‘법화삼부경’의 본경인 ‘법화경’에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방편품).“그만두자, 사리불아!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제일
카야는 외롭다. 카야가 여섯 살 때 엄마는 습지의 판잣집과 구타하는 남편과 다섯 아이를 버리고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빠와 언니들도 차례차례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오빠 조디마저 어린 카야를 두고 집에서 도망쳤다. 오도가도 못하는 카야만 그곳에 남았다. 이웃도 없고, 그를 보호해줄 친구나 친척도 없는 카야. 부인과 아이들이 다 도망쳐버리자 잠시 개과천선하는 듯 했던 아버지 또한 어느 날 부터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린 카야가 굶어 죽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학교는 단 하루 갔을
“사람은 외계의 사물에 포로 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만유의 절정에 서서 종횡자재 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번뇌는 보리가 되고 고통은 쾌락이 된다. 고통과 쾌락을 양거쌍망(兩去雙忘)하면 낙원 아닌 공간이 없고 득의롭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고통과 쾌락’)“계박을 피하고자 하는 소극적 태도, 독선, 포기, 도피도 다른 의미의 계박이다. 계박과 해탈은 타(他)에 있지 않고 아(我)에 있으며, 물(物)에 있지 않고 심(心)에 있다. 일체의 해탈을 얻으려면 자아를 해탈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입세(入世)가 출세(出世)고 출세가 입세
“헤아릴 수 없는 모든 고통 없애주시고/ 꿈속에서조차도 두려움을 없애주시니/ 나아가 수명이 끝나려 할 때는/ 보살님이 몸을 나투어 편안케 해주시네./ 거룩한 관자재(관세음) 공덕의 바다/ 한량없고 가없어 다함없으니/ 백 개의 혀를 빌려 오랜 시간을/ 드날려서 찬탄하여도 끝이 없어라.”위 구절은 관세음보살님의 지혜 자비를 찬탄하는 노래인 ‘성관자재보살공덕찬(聖觀自在菩薩功德讚)’에 나오는 말씀이다.부처님의 위대한 지혜와 보살님들의 거룩한 자비는 항상 중생들을 돕고 있다. 하늘에 해가 떠있듯이 부처님의 지혜는 환하게 빛나고 있고, 어둠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은 대부분 구원을 약속하며 전도한다. 그럼 불교는 어떠할까. 부처님은 전도선언에서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세상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천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이것이 전도의 목적이다. 여기에는 어떤 사회적·종교적 헤게모니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입장은 부처님 생애를 걸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한 때 부처님께서 당시 국제적 상업도시로 유명한 웨살리라는 도시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릿차비 사람들이 집회당에 모여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있었다.
앞서 제4묘행무주법에서 범어 와스뚜(vastu)를 언급하며 응무소주행어보시(應無所住行於布施, 머무는 바가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살펴보았는데, 비록 ‘응무소주행어보시’라는 여덟 글자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앞에 내용상 중요한 ‘어법(於法)'이 있기에 온전히는 “보살은 法에 있어서 머무는 바가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한다”이다. 여기서 말한 ‘法’은 범어의 다르마(dharma)가 아닌 와스뚜(vastu)를 옮긴 것이다. 와스뚜는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의 대상인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을 총칭하는 말로서, 변화
명상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합니다. 이 중 어느 특정 명상법을 선택하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충실하게 규칙적으로 매일 명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을 자각하여 집중하고, 호흡과 몸, 감정과 마음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어떤 명상이든 좋습니다. 명상의 목표는 마음을 정지하거나 어떤 특정한 마음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몰랐던 자기 마음의 여러 가지 모습에 가슴을 열어서 보다 또렷한 시선으로 매 순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몸과 감정을 열린 마음으로 보게 되면서 일어나는 생각
전장부터 ‘신해행증(信‧解‧行‧證)’ 중에 ‘행증’을 설명했다. ‘수행’과 ‘증과’를 ‘3학(계율‧선정‧지혜)’으로 요약하면서, 이 장에서는 ‘마음’에서 ‘3업(三業, 몸‧입‧생각)’이 청정한 ‘심계(心戒)’를 설한다. 39장은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3업’을 두호하지 않는다. 방일하고 게을러서 ‘타인’에게 쉽게 교만해져 ‘기량’을 겨루는 것이 ‘기본’이 된다”이다. ‘3업’이란 ‘몸’으로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을 행하거나, ‘입’으로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과 악한 말과 속이는 말을 하며, ‘생각’
한 승이 운거홍각한테 물었다. “홍각스님의 가풍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입니까.”운거홍각이 말했다. “산속에 사는 것이 딱 안성맞춤이지.”홍주 운거산의 홍각은 도응선사(?~902)로서 유주 옥전현의 왕(王)씨의 후손이다. 어려서 범양 연수사에서 수업하였다. 제방을 유행하다 취미무학(翠微無學)에게 참문하였다. 취미 문하에 있다가 예장현에서 온 납자로부터 동산양개 문하의 법석이 흥성하다는 말을 듣고 동산양개를 찾아가서 참문하였다.동산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운거가 말했다. ‘취미에서 왔습니다.’ ‘취미의 교화방식은 무엇이던가.’
비구, 비구니는 우바새, 우바이로부터 보시와 공양을 받아 그 힘으로 수행을 한다. 현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자칫 불로소득과 같이 보일 수 있으나,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셨듯이 수행자는 불법의 믿음을 씨앗으로 하여 자신을 깎아내는 수행으로 깨달음의 지혜라는 결실을 맺는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을 자신만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닌 보시를 해준 재가자들에게 다시금 회향하여 열반을 향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승가의 모습은 출가의 자리이타와 재가의 자리이타에 동시에 구족된 모습이다. 재가자는 출가자의 수행을 지지하고
동진시대 혜원 스님(334~416)은 여산 동림사에 주석하면서 백련염불결사를 이끌었던 정토종의 개조이다. 그는 구마라즙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대승경전들에 대한 여러 의문점들을 질문하고 대답하였는데 이 편지를 모은 책이 ‘대승대의장(大乘大義章)’이다. 또한 불법은 왕법에 종속된 것이 아니므로 출가사문은 왕에게 예경하지 않는다는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적기도 했다. 스승인 도안 스님의 영향으로 계율을 굳건히 지킬 것을 강조하고 계율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스님이 병상에 계실 때 제자들이 음식을 권하자 먹어도 되는 근거를 율장에
다른 전쟁이 그렇듯이 제2차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었고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고, 연합국과 추축국 양쪽 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였다. 일선의 전투 현장에 투입되는 군인들과 후방에서 보급을 책임지고 외교전을 펼치는 군과 민간 당국자들뿐 아니라 상대보다 더 빨리 신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여기에 더하여 적의 전략과 전술을 파악해내는 정보‧첩보전이 차지하는 위치가 더 커지고 있었다.유럽 전선에서 프랑스가 육상 전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얼마 전에는 운행 중이던 전동차가 멈춰서는 돌발 상황도 발생했다. 전철 안에서 일어난 마스크 실랑이가 원인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 6월22일 기준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역무원이나 다른 승객과 시비가 벌어져 경찰에 신고된 사건만 840건이다. 짜증이 날만도 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장장 6개월째 강요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왜 마스크를 써야 할까. 윤리학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행위자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정부에서 결정한
요즘 심심치 않게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가 자주 등장합니다. 부모라는 사람들이 자녀를 굶기고 때리는 것도 모자라 쇠 젓가락을 불에 달궈 지지고 여행가방에 가두거나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니 그 잔인함과 폭력성에 제 귀와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어찌 자기 자식을 짐승보다 못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으로서 정말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학대가 세상에 알려져 경찰에 잡혀온 아동학대자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왜 그렇게 몹쓸 짓을 했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아이가 못된 짓을 해서 고치려 매를 들었
6·25의 원인은 얄타회담에서 시작된다. 2차 대전 종전 몇 달 전인 1945년 2월 미·영·소 3거두가 크림반도 얄타에서 회담을 갖고, 소련 참전을 결정했다. 약아빠진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진 이틀 후인 8월8일에 참전, 15일 일본 항복까지 1주일 동안 전쟁을 한다며 어정대기만 했던 것이다. 소련의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분단이 있었을 리 없다. 그래서 뜻있는 지사들은 얄타 3거두 모임을 ‘얄타 실패회담’으로, 우리의 분단을 ‘20세기의 죄악’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피를 토할 일이다. 6·25도 북이 소련의 무기를 들
부릅뜬 두 눈에는 핏발이 서있고, 커다란 이빨은 송곳니처럼 날카롭고, 머리털과 눈썹과 수염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 적황색의 화염상(火焰狀)에, 머리에는 오골관까지 쓴 분노의 신이 악마를 제압하는 모습은 신화에 머물러 있지 않다. 티베트 최초의 사찰인 삼예사원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토착교의 방해가 심하자 그 흉신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금강무(金剛舞)로부터 이어져 지금도 티베트의 불교무용인 참(Cham)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중앙아시아의 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샤머니즘과 불교에 각각 연원한다. 불교의식에서는 보다 형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