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올해 70세인 저는 온종일 초등학생인 손자 둘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손자들끼리 뛰어놀다 작은 아이가 다쳤습니다. 마침 퇴근하던 딸이 울고 있는 손자를 보고 애를 어떻게 본 거냐며 화를 냈습니다. 애 봐준 공은 없다지만 애들이 크면서 놀다 다칠 수도 있고 그동안 대신해서 양육에 살림살이까지 도와주고 있는데 애가 조금 다쳤다고 찬바람 나게 모진 소리만 하니 속상합니다. 손자 돌보는 것도, 살림도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자식한테 못 할 소리 하는 것 같아 참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불교미술의 트랜드라고 한다면 ‘귀욤’이 아닐까. 원래는 동자승을 귀엽게 만든 인형같은 조각상들이 사찰 기념품점이나 혹은 탑 기단 위에 슬그머니 올라가 있더니 점차 부처님까지도 귀엽게 만들어 캐릭터화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불단 위에 모시고 예불드리는 불상은 조선시대 불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 시대에 등장한 ‘귀욤’ 양식은 아직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다만 사람들이 불교를 더 친근하게 생각하고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홍보용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불교미술이라고까지 불러야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그러나 앞
身在海中休覓水 日行嶺上莫尋山신재해중휴멱수 일행영상막심산 鶯吟燕語皆相似 莫問前三與後三앵음연어개상사 막문전삼여후삼(몸이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물을 찾지 말고/ 날마다 산 위를 다니면서 산을 찾지 말지어다 /꾀꼬리 울음소리와, 제비의 지저귐이 모두 서로 흡사하니 / 전삼삼과 후삼삼을 묻지 말지어다.)쌍계사 금강계단의 주련은 송나라 야보도천(冶父道川 1127~1130) 선사가 ‘금강경(金剛經)’을 강해(講解)함에 있어서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에 대해 쓴 게송이다. 글씨는 월정 정주상 선생이 쓴 것으로 파악된다. 쌍계사 국사암에 있는 선
우리 사는 이 시대에 수행의 의미를 사색해본다. 수행은 불교의 신행체계인 신(信)-해(解)-행(行)-증(證)의 ‘행’에 해당한다. 신해행증은 사법(四法)이라 칭해지는 교(敎)-리(理)-행(行)-과(果)와 상응한다. 우리의 믿음[信]은 붓다의 가르침[敎]에 대한 믿음이고, 우리의 이해[解]는 붓다의 가르침의 진리성[理]에 대한 이해이다.이와 같은 신해와 교리가 이루어진 연후에는 실천[行]으로 나아가는 것을 수행이라 하며, 이 실천수행을 통하여 인과[果, 연기]를 증득[證]함으로써 온전한 신행을 확립하게 된다. 기실 깨달음은 온전한 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84년 3월 다른 작곡가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특이한 편성의 실내악곡을 작곡했다. 피아노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5중주 Eb장조, K.452이다. 이 독자적인 악기 구성은 단순히 관악 앙상블에 피아노를 추가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관악기들의 음색들을 한데 모으기도 하고 동시에 각 악기가 개별적으로 돋보일 수 있도록 피아노를 중심으로 유기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가 관악기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실내악적인 음색들의 악기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고, 각각의
앵무새는 화려한 색감과 인간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능력 때문에 특별히 사랑받는다. 고대 로마에서는 앵무새를 인도 왕실에서 기르는 신성한 동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앵무새는 약 300여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데, 특히 케아(Kea)앵무가 크고 IQ가 높아 주목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귀한 학(鶴)과 반대로 기계적으로 말을 반복하거나 말재주만 뛰어난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미물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잉꼬(いんこ)라고 불리는 사랑앵무(Budgerigar)는 금실 좋은 부부를 비유할 때 주로 사용된다. 불교경전이나 인도우화에 등장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튜브는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유튜브 사용 시간이 가장 긴 연령층은 10∼20대가 아닌 50∼60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과거 농경사회에서 노인은 지혜롭다는 인식이 있었다. 크게 변화할 것 없는 단순 반복의 농사패턴은 노하우가 많은 노인을 지혜로운 판단자로 만든 것이다. 또 당시 노인이란, 지금의 40∼50대에 불과하니 신체적으로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그러나 현대사회의 빠른 속도는 변화에 더딘 어른들을 슬프게 만든다. 실제로 IT 기기는 나이가
불교의 모든 경전은 여시아문, 즉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말로부터 시작한다. 이 말에는 불교경전이 부처님께서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누가 대신 기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교단은 부처님이 남기신 교법에 대해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부처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통해하고 있을 때 수밧다라는 늙은 비구가 이런 말을 했다.“도반들이여. 이제 그만하십시오. 그렇게 울면서 슬퍼할 것 없습니다. 저 대사문(석가모니)은 지금까지 ‘이것은 마땅히 해야만 한다, 저것은
석가모니 당시 초기불교시대나 남방불교권에서는 아예 거론도 안 될 문제가 북방불교권에서는 중요하게 거론 되는 문제들이 상당히 있다. 특히 율장(律藏) 관련 사항들이 그렇다. 오늘 다루는 사찰의 소유만 해도 그렇다. 율장에는 당연 출가자의 ‘사적 소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그런데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한대(漢代)에 이르면 왕토(王土) 개념이 확립되는데, 천명(天命)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한 천자(天子)는 천하(天下)의 인(人)과 민(民)에게 땅을 배급한다. 받은 이들은 그 대가로 충성을 맹세한다. ‘땅과 충
그간 부처님 출현의 문명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삼보(三寶)의 첫 번째인 불(佛)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연재부터는 삼보의 두 번째인 법(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불교는 ‘가르침’을 그 중심에 놓고 있는 종교입니다. 철학적 종교 혹은 이법(理法)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그리스도교와 같은 계시의 종교가 ‘믿음’을 신앙의 핵심으로 한다면 불교는 ‘가르침’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입문한다는 것은 곧 삼법인, 연기법, 사성제 등 불교의 기본교리를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간 불교를 공부하고 또
어떤 일이든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을 해야 할 때는 더욱 큰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주부터, 처음으로 영상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분들은 감사하다고 거듭 말합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쉬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하다며 잘 했다고 칭찬해 주니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영상으로 진행할 뿐, 강의는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니 힘들 것이 없는데도, 시작 전까지 무척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강의를 공개하면 받게 될 비난을 감당
승이 풍혈에게 물었다. “저에게 친절한 이치란 무엇입니까.” 풍혈이 말했다. “수미산의 남쪽에서는 다함께 북을 치고, 하란산 위에서는 가죽옷을 쌓아놓는다.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는 임제종의 제4세이다. 수미산은 불교의 우주관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명칭이다. 그 남방에 인간세계인 섬부주가 위치한다. 하란산(賀蘭山)은 몽골의 동쪽 오늘날에는 감숙성(甘肅省)에 편입되어 있지만, 20세기 전반기에 한때 영하성(寧夏省)에 속했던 은천(銀川)의 서북쪽에 있다. 황하가 연접해 있고 몽골초원에서 섬서성(陝西省)과 감숙성으로 통하는 교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