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남 준 시인 작년 한해 생명평화탁발순례의 길을 떠나 다니느라 제대로 일구지 못한 텃밭에 뒤늦게 심은 무가 어려서 얼기설기 비닐을 씌워 놓았는데 그나마 다행히 이처럼 엄동의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쓸 만큼 자라줬다. 그 중 실한 것으로는 해를 넘긴 동치미를 담고 나머지 자투리로 무말랭이를 좀 만드느라 없던 일거리가 생겼다. 마당으로 해가 들어서면 처마 밑 평상마루에 고루고루 펴놓았다가 저녁이면 얼지 않도록 들여와 방바닥에 한지를 펼쳐놓고 말려대는 것이다. 갑작스레 날이 많이 추워졌다. 주머니 경제가 어려워져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많기는 하지만 작년연말에 모금한 이웃돕기 성금은 역대 최대였다고 한다. 아직 세상은 이렇게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이들의 따뜻한 정으로 아침으로 해가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 사이트의 방문자를 체크하고 이메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새벽에 명상과 108배로 정신을 단단히 차리지 않았다면 수 백 개의 이메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짜증이 났을 터이다. 30년 전의 기준으로 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때 아침을 맞으면서 인터넷 사이트를 열거나 이메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그 누구도 상상을 못했었다. 그렇게 세상이 뒤바뀐 일은 3백 년쯤 전에도 있었고, 3천 년쯤 전에도 있었다. 3백 년 전에는 동력이나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3천 년 전에는 ‘내 것’, ‘네 것’하는 소유의 개념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상속의 개념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불국토란 이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것일까? 이상과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로 보면 불국토는 이상의 세계에 존재한다. 현실을 이상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나 목표가 담긴 말이라고 이해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국토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처님 나라란 소인국이나 거인국처럼 그 나라에 사는 사람 모두가 부처가 되어야 한다면 우선 나부터 빨리 부처가 되자. 모두가 부처의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면 그 자리가 곧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게 어디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중생이고 싶어하는데 말이다. 따라서 부처님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그 나라에 사는 사람 모두가 부처가 되기보다는 그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기왕에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 하겠다. 지난 94년도 종단개혁에서 내가 개혁의 제일 과제로 내 세운 것은 겸직 반대였다. 당시 총무원장이 종단권력을 무제한으로 겸직하고 있었고, 종회의원에다가 본사 주지에다가 기타 각종 직책을 겸직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런 겸직은 종단의 권력이 소수의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어 그들의 횡포와 독단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도 그것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가는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종단은 개혁이후 겸직의 정신이 많이 훼손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겸직을 금지한 이후 종단 권력은 보다 폭넓게 개방되고 많은 사람들이 종단운
박 남 준 시인 말린 무청을 넣어 시래기 청국장을 끓이려다말고 추녀 한쪽에 걸어둔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올 겨울 유난히 따뜻한 겨울 날씨 탓인지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 파릇파릇한 냉이가 눈에 띄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뿌리, 두 뿌리, 다섯 뿌리, 그래 이것이면 족하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물을 끓이다 청국장과 김치로 간을 맞춘 후 마지막에 다섯 뿌리를 넣은 보글보글 향긋한 냉이 청국장에 한 그릇의 밥을 달게 비우며 두 손을 모았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태를 이르는 것일까. 눈으로 볼 수 있고 코로 맡을 수 있으며 귀로는 들을 수 있다. 그뿐인가 입으로 먹고 말 할 수 있으며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고 일할 수 있다. 두 다리
손 기 원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요즘 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변화사회’라고 할 수 있다. 변화사회의 특징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어지럼증을 느끼고 불안한 이유도 실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내가 다음 발을 내 디뎌야 할 곳’이 확실하면 결코 어지럽지 않다. 그런데 ‘변화’라는 말에 잠시 집중해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친근한 용어임을 알 수 있다. 2천5백 년 전에 이 세상에 나타난 붓다는 진리를 가르칠 때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변한다.”그렇다면 ‘변화사회’의 불확실성과 어지럼증, 그리고 불안감도 그 해답을 붓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변한다(무상법),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연기법), 따
최 진 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인재라고 하니까 재능이 뛰어난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 같이 들리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시대에 따라 사회 발전단계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해 왔다. 농경사회에서의 농민은 부모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전수받은 농사기술로도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과 시장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야 생존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중·고등학교의 교육목표가 대학에 가기 위한 것은 아닐진대 중·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해서, 대학은 취직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으로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잘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만두집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사람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맞추어 끝임 없이 새로운 만두 맛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음식점, 그것도 맛있는 음식점으로 소문난 집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그런 집일수록 맛이 한결같아서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알기 쉽지만,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손님들은 한결 같은 맛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통을 고수 하면서 그런 가운데 끝없이 새로운 맛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나 끝없이 자신을 개혁하면 성장하고 성공하는 반면 현실에 안주하고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하고 만다. 이것은 국가사회나 또는 개인에게 있어서
이 평 래 충남대 철학과 교수 현대는 말할 것도 없이 과학의 최고봉인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과학은 현대의 어머니라고 할 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정신적으로 풍요를 가져온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각이 깊지 않은 우매한 민중은 과학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과학문화의 한계와 그 병폐를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과학사상의 보편화는 인간소외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고, 과학공업의 발전이 가져온 결과는 자연의 조화를 파괴하였으며, 결국은 잘 살아보려는 인류를 오히려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무기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과학문화에 대하여 반성하고 “온살이(wellbeing)”를 참구(參究)하는 운동이 점차로 그 힘을
김 형 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예나 이제나 세상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세상은 풀기 어려운 실타래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그동안 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자들이 머리를 싸매면서 노심초사하였다. 그 성과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많은 철학자들의 교설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 회의가 나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였다. 많은 철학자들이 논리적 시비와 윤리적 선악을 천명하지만, 기실 그것들은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진 심리적 호오(好惡)에서 발단된 아상(我相)과 아견(我見)을 보편적 냄새를 피워서 정당화하려는 의식의 노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세상은 높은 수준의 세련된 논리적 아견과 낮은 수준의 감정적 아견들
최 훈 동 한별정신병원장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소비심리가 실아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모두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모두 정부 탓이고 정치 탓이지 어느 누구도 자기 책임을 논하는 자 하나 없다. 도피성 이민이나 유학이 증가하는 것도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깔려 있다. 경제의 어려움은 정치적 대립과 사회 분열이 작용하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권위주의의 폐단이 해결되었으나 응집력이 떨어졌다. 너무 가벼운 언동으로 대통령의 바람직한 권위마저 땅에 묻히고 말았다. 정권의 잘못은 언론의 비판과 입법부의 견제를 받아야 하지만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야당의 반대는 대안 제시가 뒷받침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현재의 분열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소모적 정쟁
지 산 스님 남양주 봉인사 선원장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기본적인 것이 인과와 윤회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인과와 윤회가 부정된다면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들이 그 기반을 상실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잔혹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이유는 인과와 윤회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다른 생명체에게 가한 피해가 다음 생에서라도 반드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한 것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우리 인간들의 사회는 좀더 맑아지고 밝아지지 않을까? 한탕주의와 이기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인과와 윤회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