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텐진 갸쵸(달라이라마)지음 / 무우수 시중에 나와 있는 몇 안 되는 반야심경 해설서 중에 나는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을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여느 반야심경 해설서가 으레 시도하는 오온이나 십이처, 십팔계, 십이연기, 고집멸도 등과 같은 기초교리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전 설명에 앞서 기초교리를 비롯하여 괴로움(苦)에 대한 다각적인 설명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초기경전인 아함경에서 익혀야 할 수준의 설명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그러한 기본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경이 아니라 그 기본교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위치에 도달한 수행자에게 그 단계를 뛰어넘도록 독려하는 경이기 때문입니다.두 번째 이유는, ‘제1부 불교 전반에 대한 이해
『미의 법문』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 이학사 책읽기 모임에서 책을 선정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완독할 때까지 나는 벗들의 눈치를 봅니다. 그런데 이번의 이 책,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 법문』처럼, 책 한 권을 읽어가면서 벗들의 매서운 감상과 혹평과 호평 속에서 이토록 오만가지 상념에 사로잡힐 때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미의 법문』은 그 중에서 삶의 종점에 막 다다른 야나기 무네요시가 병상에 누워 그간 자신이 열광적으로 수집하고 예찬했던 작품들을 돌아보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매듭을 짓는 글 네 편을 모은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정작 책 속에는 고차원의 종교적 경지가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말과 생각의 길마저 끊어진 궁극적 차원이 조선 막사발을 비롯한 서민들의
『길모퉁이의 중국식당』허수경 산문집 / 문학동네 아주 오래 전 남산이 통째로 바라보이는 어느 교수님 연구실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추위가 찾아들 때면 교수회관 전체가 적막 속에 잠기고, 취미가 별로 없는 나는 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을 넘기고 메모를 하였습니다. 아뢰야식, 말나식, 의타기성, 원성실성…. 단어들은 생명을 잃고 남산의 낙엽처럼 자꾸만 내 입에서 허망하게 떨어집니다. 배가 고파질 때면 선배의 책상서랍을 뒤졌습니다. 노란 봉지에 들어 있던 립톤 티를 꺼내 설탕을 듬뿍 넣고 마셨습니다. 써늘한 연구실에서 홍차가 담긴 작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손을 녹이면서 나는 이렇게 춥고 배고픈데 저 단어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며 한없이 실망하였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을 읽자면
『경청의 힘』래리 바커, 키티 왓슨 지음 / 이아소 부처님은 하루일과를 ‘사방 살피기’로 시작합니다. 오늘은 누구와 만날까,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를 먼저 파악하는 것입니다. 일단 오늘 만날 대상이 결정되면 그 대상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합니다. 사람을 만나서 그를 교화하는 과정은 대체로 대화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대화의 장면을 보면 처음에는 부처님은 ‘듣는 사람’이고, 중생이 ‘말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은 듣는 쪽을 먼저 택합니다. 다 듣고 나서 부처님은 입을 엽니다. 절대로 말하는 중생의 말허리를 자르며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만한 걸 다행인 줄 알라.”“나는 어땠는지 아니?”“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대신 부처님은 전적으로 ‘나는 네 편이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유경 지음 / 인물과 사상사 얼마 전 스위스를 여행하다가 베른으로 가는 기차에서의 일입니다. 입이 궁금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묵직한 수레를 밀고 등장한 ‘홍익아저씨’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키가 작고 얼굴빛이 다소 검다 싶은 아시아인이었습니다. “어디서 왔어요?”“코리아에서요. 당신은요?” “방글라데~~~쉬”하며 그는 익살스럽게 제 나라 이름을 발음하며 웃었습니다.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스위스인 노부부는 우리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다가 “코리아래”, “방글라데시래”라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유럽의 기차 안에서 아시아인 둘이 만나는 일이 절대로 희귀한 사건은 아니지만 스위스 부부의 눈길과 속삭임은 내게 ‘너희는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같은 아시아
『거지성자』 전재성 지음 / 안그라픽스 동생은 왕인데 형은 아주 가난한, 그런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은 형이 살고 있는 시의 시장에게 큰돈을 건네주면서 가난한 형을 도와주라고 요청했습니다. 시장이 형을 찾아가 돈을 건네자 형이 말했습니다. “나는 필요 없습니다. 내게 주려거든 부자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시장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에게 주라는 말을요. 하지만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자 시장은 하는 수 없이 그 큰돈을 부자들에게 모조리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동생인 왕이 형을 찾아갔습니다. “형님, 시장한테 돈을 받으셨지요? 그 돈을 어디에 썼습니까?” “아하, 부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지.” 동생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왕 남에게 주려면 가난한 사람에게
『밀양』원제, 벌레 이야기이청준 / 열림원 영화 〈밀양〉이 개봉될 때 한달음에 달려가서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전도연과 송강호의 연기에 빠져들어 원작의 메시지를 행여 놓치게 될 것 같아 소설 〈벌레이야기〉부터 먼저 펼쳤습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초등학생이 실종되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사라진 순간부터 모든 정상적인 삶을 박탈당합니다. 아이는 처참하게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이제 경찰은 범인 수색에 나섭니다. 범인은 쉽게 잡혔고 국가는 사형이라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렸습니다. 범인은 사형 당하였습니다. 제 자식 죽인 놈을 붙잡아서 그 부모가 보복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기 전에 국가가 알아서 처벌을 내려주었으니 자, 이것으로 사건 끝! 하지만 소설은 그런 일련의 사건보다 그 아이의 어머니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최순우 지음 / 학고재 9월의 독서는 좀 헐겁습니다. 8월의 찐득한 습기와 열기 속에서 졸음과 더위를 쫓으려고 화풀이하듯 전투적으로 읽어간 것이 여름의 독서라면, 열기를 식히려고 찬찬하게 비가 뿌리는 9월에 책을 읽는 내 모습은 긴 병에서 막 회복한 환자처럼 한없이 느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신 혜곡 최순우 선생의 글은 회복기의 환자처럼 아주 천천히 읽어가야 합니다. 글마다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문장 하나를 눈에 넣고 오래오래 꼭꼭 씹으면 글의 즙이 눈시울에 배어나옵니다. 흘러나온 즙으로 눈을 씻고 맑아진 눈으로 선생께서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자니 아하! 수십 년 전 서울이 저리 멋들어 졌었구나… 새삼스러워집니다. “이제는 헐려 버렸지만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실크로드의 악마들』피터 홉커크 지음 / 사계절 참 광막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툭 트이기 보다는 먹먹하고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그 거대한 모래바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에어컨이 빵빵하게 작동하고 있는 버스에 편히 앉아서 종단하면서도 나는 기가 질렸습니다. 사계절 내내 쉽사리 길을 내어주지 않는 실크로드, 그 실크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클라마칸과 고비사막.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2천 년 전부터 그 길을 걸어가려 하였고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딱 두 부류의 사람만이 이 길을 지나갔을 것입니다. 크게 한탕 하여 한 밑천 톡톡하게 거머쥘 생각을 품은 사람이거나 혹은 고향에 피붙이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아 오직 앞만 보고 갈 수 있는 사람 -
『달려라, 아비』김애란소설집 / 창비 도시인들의 표정은 상당히 이중적입니다. 낮 동안 사람들의 무리 속에 뒤엉켜 지낼 때의 얼굴과 밤이 되어 홀로 종일 비워두었던 제 방으로 돌아가서 스위치를 켤 때의 얼굴은 사뭇 다릅니다. 주머니에 명함을 넣고 다니는 도시인들은 홀로 골목을 걸어갈 때나 밤의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는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두 개의 이름을 지니고 삽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과 아무에게도 불리고 싶지 않은 무명(無明) 혹은 익명(匿名)이 그렇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동영상이 일상화되어버렸지만 안전을 위한다는 cctv에는 심하게 거부감을 갖습니다. 익명성, 소통하고 싶어 하면서도 누군가가 내 내면에 들어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이중성, 어쩌면 현대인들
『밤 미시령』고형렬 지음 / 창비시선 토요일 아침, 아주 오래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래도록 연락이 되지 않던 지인의 입원과 수술 소식은 언제나 어둔 거리에서 불심검문을 당하는 기분입니다. 낯설고 두렵습니다. 병실 입구에 붙여진 이름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들어가니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은 반가운 얼굴이 배시시 웃으며 손을 내밉니다. 뭉텅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고는 밤새 격렬한 통증을 미처 털어버리지 못한 채 지루하게 창밖을 바라보던 아주 오래된 친구 ?. 그녀는 좀 높은 침상 위에서 나는 좀 낮은 보조 의자 위에서 마주보고 앉아서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일에서부터 수다를 떨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얘깃거리도 떨어지고 그녀도 피곤한 기색입니다. 나는 준비해
『연을 쫓는 아이』칼레드 호세이니 지음 / 열림원 텔레비전에서는 꼭두새벽부터 한국인 인질 살해소식이 속보로 뜨는 가운데 나는 책과 TV화면으로 분주하게 시선을 옮기면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아프가니스탄?. TV에서 보여주는 수도 카불의 거리모습은 그야말로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건물은 다 파괴되었고 사람들의 초췌한 행색과 야윈 얼굴은 미래를 짐작할 수 없어 불안하다 못해 이젠 무표정합니다. 대체 아프간에도 나른하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는지, 총성이 들리지 않고 대학에서는 격조 높은 학문을 논하고, 거리에는 아이들과 상인들의 외침이 평화롭게 들리던 때가 있기는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놀랍게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여 년 전에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