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 이 말은 그 의미를 미처 알기도 전에 익숙해져버렸다. 너무 익숙해서 말이 담고 있는 뜻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 노노코씨 원전사고 후 변화사진에 방사능 위험 메시지 담아한국서 전시회…탈핵 순례 동참“나를 강하게 만든 건 아이들”지난주에 후쿠시마 6주기 사진전 ‘100인의 어머니와 아기 +9’를 기념하는 토크가 있었다. 나는 토크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이번 전시회의 사진작가인 카메야마 노노코 씨를 알게 됐다. 카메야마 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그 이전과는 180도 바
베란다에서 추운 겨울을 지낸 군자란이 막 꽃대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는데, 집안에는 장미, 튤립, 양귀비, 카네이션 등 활짝 핀 꽃들로 화사함이 가득하다. 거기에 프리지아의 싱그러운 향기까지 더해지니 봄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갑작스레 집안에 꽃이 만발한 까닭은 작은 아이가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들 덕분이다. 꽃다발 포장을 풀어 꽃을 꺼내서 크고 작은 화병에 꽃아 집안 곳곳에 두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화병에 꽂고 나니 남겨진 쓰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꽃을 묶었던 철끈부터 꽃다발을 예
초목에 움이 돋기 시작한다는 우수가 지났고 경칩은 멀지 않았다. 아직 기온이 차다해도 공기 속에서 묻어온 봄기운은 완연하다. 바쁜 일상을 잠시 밀쳐두고 제주로 봄 마중 다녀왔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땅이면서도 식생이 달라 이국적인 풍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는 휴가로, 출장으로 줄잡아 예닐곱 번은 다녀왔던 것 같다. 제주도에 가면 어디를 가야하고 무얼 먹어야하고, 하는 것들이 늘 따라다닌다. 뭍과 다른 문화의 영향도 클 거라 생각한다. 제주도에는 박물관도 정말 많다. 갈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단 박물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길을 걷다가 한 카페 유리창에 붙은 딸기 파르페 사진을 봤다. 칙칙한 겨울에 빨간 색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그 사진은 식욕을 자극했다. 딸기는 어느새 겨울의 제철과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런데 한 겨울에 딸기를 만나는 건 못내 불편하다. 몇 년 전 일이다. 유난히 추웠던 터라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장갑까지 낀 채 들른 마트에는 빨갛고 싱싱한 딸기가 박스로 쌓여 있었다. 영하의 기온에 봄 과일인 딸기를 만나고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궁금해서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한 박스 샀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지난 토요일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내 기억에 대보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럼 깨물기였다. 새벽에 잠이 깬 기척을 들은 어머니는 아직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우리에게 깐 밤을 건네주시며 ‘부럼을 깨물자’를 세 번 말하라고 하셨다. 눈이 채 떠지지도 않아 눈을 감은 채 밤을 씹다보면 잠은 슬그머니 달아났고 그러고 있는 모습을 식구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폭소를 터뜨리던 때도 있었다. 마을 명절이었던 대보름 풍속이제는 내 가족행사로만 한정공공 위한 새 아이디어 필요이웃과 함께하는 문화 창출부럼의 뜻도 모른 채 그저 해마다 정월
설 연휴가 끝나고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재활용을 분리수거하는 날이 있었다. 박스들이며 선물포장으로 쓰였던 것들이 산을 이루었다. 그토록 엄청난 양은 해마다 명절이 지나고 한차례씩 볼거리를 제공한다. 박스들 대부분은 찌그러진 곳도 없이 멀쩡해보였다. 고급스럽고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진 박스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선물만 빼고 고스란히 버려진 그 광경을 보면서 가을에 밤송이를 양쪽으로 벌려 밤톨만 빼어간 형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밤송이에 비유했던 생각을 얼른 취소했다. 밤송이와 선물포장용 박스는 애당초 격이 다르다는 데 생
어느 여름 날 이른 저녁을 챙겨주신 어머니께서 울밑에 심어 놓은 봉숭아 꽃잎을 따오시는 날이 있었다. 꽃잎과 봉숭아 잎을 절구에 놓고 찧으면 예쁜 꽃이 칙칙한 갈색으로 변했다. 나는 꽃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 칙칙한 것에 백반을 섞어 만든 것을 조금씩 덜어 어머니께선 우리들 손톱 위에 올리고는 헝겊과 무명실로 싸매주셨다. 우리 사 남매 모두 열손가락을 그렇게 싸매고 나면 봉숭아 꽃잎은 아주 조금 남았다. 어머니는 그걸로 당신 새끼손가락에 하나씩 물을 들이곤 하셨다. 어머니의 정성은 다시 생각해도 참 지극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젠 겨울이어도 눈 쌓인 풍경을 보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다. 겨울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들이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나온다. 아무리 겨울이 포근해도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터라 내 겨울의 기억은 여전히 매섭다. 손등은 쩍쩍 갈라지고 처마마다 굵고 긴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으며 판유리 한 장이 고작이었던 창에는 이른 새벽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의 성에가 들러붙었고, 어린 내 키를 훌쩍 넘는 폭설이 겨울이면 찾아왔으니까. 눈에 갇힌 날은 며칠이고 두문불출하고 지루한 방안 생활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두툼한 옷과 이
새날이다.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아주 산뜻한 마음으로 자리바꿈을 했다. 시계 바늘이 자정을 향할 무렵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합창했고 시계 바늘 두 개가 포개지자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몇 해 전 나는 그렇게 ‘새날’을 열었다.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새해, 새날을 나는 어떻게 경험해 온 걸까? 어릴 적에는 새해가 되기 전에 이런저런 계획들을 거창하게 세웠던 것 같다.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일이 허다했어도 계획을 세우는 시간만큼은 뭐라도 할 것 같은 기개가 충만 했다. 그
어느 날 아침밥을 먹던 우리 가족은 모두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그날을 이야기하자면 이랬다. 드물게 즐기는 내 취미는 우리밀로 빵을 굽는 것이다. 간만에 시간을 내어 구운 빵이었는데 하필이면 식구들이 먹을 짬이 없을 때를 맞춘 거였다. 급기야 그 빵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기 시작했다. 날도 따뜻했지만 밖에서 사온 빵이라면 아직 멀쩡했을 그 시간에 방부제 없이 만든 그 빵은 이내 곰팡이 세상이 돼버렸다. 아까운 마음에 어쩌나 싶다가 새들 모이대가 떠올랐다. 해서 빵을 잘라 일단 두 덩어리만 내 놓아봤다.
아이들 어릴 적에 책 귀퉁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어주던 옛이야기 가운데 ‘팥죽할멈과 호랑이’가 있다. 어느 날 열심히 밭을 매고 있는 할멈 앞에 호랑이가 쓱 나타나 잡아먹겠다고 한다. 할멈은 팥 농사가 다 끝난 뒤 팥죽 쑤어줄 테니 팥죽이나 먹고 잡아먹으라 한다. 암흑시간 정점 달하면 밝음 시작동지는 태양시간 도래하는 희망자연과 조화롭게 살 방법 모색이지속가능한 삶으로의 전환의미이윽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팥죽을 쑤는 할멈에게 알밤, 송곳, 개똥, 맷돌, 자라, 멍석 그리고 지게가 차례로 와서는 팥죽을 한 그릇 달라고 한다. 팥죽
자연은 계절과 무관하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다만 그 경이로움은 그것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 그 가운데 거창오리의 군무는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몇 만 마리가 일제히 위로 날아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며 펼치는 장관을 보고 있자면 그 감동을 표현할 언어의 부족을 느낀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군무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혹자는 장엄한 군무가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들만의 소통이라 한다. 군무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