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어느 날, 영국 소년 앤드루 와일즈는 마을 도서관에 들러 ‘최후의 문제’라는 책에서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와 관련된 문제 하나가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방정식필생의 문제로 연구한 와일즈7년 만에 하자 해결하며 증명한번 성립되어진 수학 정리는논리적 증명만으로 성립 가능절대 무너지지 않는 진리 돼진리 향한 끈질긴 분투 보며종교의 진리성 성찰하게 돼나를 점검해보는 계기되기도‘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 불리는 그 문제는 이렇다. “xⁿ+ yⁿ= zⁿ/ n이 3 이상의
화씨의 구슬(和氏璧)은 중국 황제의 옥새로 사용된 유명한 보물이다. 전국 시대에 화씨벽은 조나라가 갖고 있었는데, 진나라 소왕이 그것을 탐냈다. 소왕은 조나라 혜문왕에게 성 열다섯 개와 구슬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혜문왕은 구슬을 주자니 성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안 주자니 이를 빌미로 진나라가 공격해 오지 않을까 염려되었다.조나라 인상여, 번뜩인 재치로진나라로부터 위기 벗어나게 해직위 오르자 시샘 잇따랐지만지혜로 백전노장과 우정 맺어공인은 사익 개입시켜선 안돼사사로운 감정 뒤로 미루어야공공의 마음 회복할 수 있어혜문왕은 인상여
현대인이 복싱과 이종격투기를 즐기듯이 고대 로마인들은 검투를 즐겼다. 검투를 위해 로마인들은 싸움에 능한 노예들을 검투사(gladiato) 양성소에서 훈련시킨 다음 원형 경기장에서 겨루도록 했다.노예 검투사, 로마 항거 시작6000명, 십자가 못박혀 죽어투쟁역사서 자유인 모습 발견부처님, 승단 안서 평등 구현현대불교는 과연 진보적인가과거 성찰과 고민 필요한 때삶과 죽음이 극적으로 갈리는 검투사의 운명은 문학과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1950년에 하워드 패스트가 소설 ‘스파르타쿠스’를 펴냈는데, 이 작품은 1960년에 스탠리 큐
선(禪)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혜능(惠能)은 619년에 중국 광동의 영남에서 태어났다. 얼마 후 성이 노(盧)씨인 그의 부모는 남해로 이사했는데, 당시 북방 사람들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남방 지역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미숙한 ‘오랑캐’로 여기고 있었다. 그에 더해 부모가 아주 가난했던 터라 혜능은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못한 ‘일자무식’이었다.배움 없었던 일자무식 혜능금강경 듣고 홍인대사 찾아가부처 되려고 시험에 응했지만인정받지 못하고 방앗간 일해홍인대사 금강경 요체 설법에스물셋에 깨달음 성취한 혜능모든 중생에게 있는 부처성
1945년생 미국인 린다 버리치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나는 삶을 갈망한다. 하지만 삶 역시 나를 원해줄까?”라고 쓴 일이 있었고, “죽음이란 영원한 것, 하지만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쓴 일도 있었다.고등학교 졸업 스물두살 린다 꿈에 나타난 남성 초상화 그려두통 호소하다가 쓰러진 그녀 결국 뇌종양으로 짧은 생 마감꿈속 남자 린다가 사는 곳에서400마일 거리에 살고있는 우디린다와 동갑내기…각막병 앓아결국 실명해 린다 눈 이식받아두 사람 책꽂이의 책도 일치해고
한고조 유방(劉邦)은 젊었을 때 한량으로 지냈다. 아직 거병하기 전, 유방은 품행이 단정하지 않았고 일하기를 즐기지 않았으며 돌아다니며 놀기만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쫓겨난 그는 분가한 형에게 얹혀살았다. 그런 형편이면 조신하게 굴었을 법도 하건만 그는 건달 친구들을 형 집으로 불러들여 형수에게 밥을 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형수가 여러 방편으로 시동생을 구박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유방은 젊었을 때 한량 생활성품도 난폭하면서 방약무인항우는 자애로운 인덕베풀어병사상처 입으로 빨아주기도두 사람의 승패 전쟁서 갈려
오늘날 소피스트(sophist)라는 말은 궤변론자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일 때가 있지만 그들이 활동하던 기원전 4세기 경, 이 말에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녔으며, 강연료와 교습비를 받아 생활했다. 안다는 것 확실한 근거찾으려끊임없이 의문 제기하며 질문산파술로 지식인 곤경 빠뜨려스스로 모르는 걸 아는게 ‘知’그 무렵, 한 젊은이가 나타나 소피스트들과 30년에 걸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조국인 아테네 사람들은 소피스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
위문후가 중산을 치고 싶어하자 책황이 악양을 천거했다. 문제는 악양의 아들이 중산에서 벼슬을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들이 일제히 악양에게 병권을 맡기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책황이 말했다.책황 천거 위문후 군대장된 악양반대 극심했지만 그를 신뢰한 왕악양 5만대군으로 중산군과 대치아들 적진에 있어도 공격해 승리“악양은 아들로부터 중산에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중산군이 무도하다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주군께서 그를 쓰시면 꼭 성공할 것입니다.”문후는 그 건의를 받아들여 악양을 대장으로 삼았다. 악양은 5만의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1852년 어느 날, 영국 해군 소속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6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바위와 충돌했다. 시간은 한밤중인 오전 2시, 그 배에는 630명의 사병들과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바위 충돌로 난파된 버큰헤이드호선장 지시 따라 부녀자 우선 구출여자·아이 먼저 구출 전통 세워진정 보살행 되려면 명예욕 버려야아비규환의 대혼란이 일어났다. 넘어진 사람, 다친 사람, 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런 상태에서 배가 다시 한번 바위에 크게 부딪혔고, 선체 앞부분이 바닷속으로 침몰하기
아나타핀디카는 부처님 당시 코살라 국의 대부호였다. 그는 소년 시절에 교육도시로 유명했던 탁가실라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욱가라는 소년을 사귀었고, 마음이 잘 맞았던 두 소년은 장차 자신들의 자식을 서로 혼인을 시키기로 약속했다. 장자의 아들과 혼인한 수밧다자이나교 나체 행사에 불참해시아버지 노여움 사 추방 위기불참이유 말하며 시부모 교화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욱가가 아나타핀디카를 찾아왔다. 그때 아나타핀디카는 자신의 장성한 딸 수밧다로 하여금 옛친구를 시중들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욱가는 수밧다가 매우 싹싹하고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수백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폴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이다. 정치체제 면에서 아테네는 민주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아테네와는 대비되는 스파르타는 어땠을까. 왕이 있었다는 점에서만 보면 스파르타는 군주정체를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를 단순히 군주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데, 스파르타만의 독특한 정치체제와 관습을 제정한 인물이 리쿠르고스이다.스파르타 개혁단행 리쿠르고스그리스폴리스 중 가장 강한군대토지 공정분배&hell
춘추시대 말, 진(晉)나라에는 중항씨, 범씨, 지씨, 한씨, 위씨, 조씨 등 여섯 대부 등 여섯 대부가 임금인 진후(晉侯)의 힘을 무력화한 다음 멋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신념 가진 사람 죽음 앞에서 초연해신념 중에서 가장 강한 신념은 종교종교는 인간의 유한한 삶 넘어서는 길알아주는 이에게 헌신하며 초월키도여섯 대부들 간에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예양(豫讓)은 처음에는 중항씨를 섬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중항씨가 범씨에 의해 정복되자 그는 옛 주군을 버리고 범씨의 신하가 되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지씨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