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먹었던 음식 맛이 엄마를 부른다면, 다 커서 만난 음식도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보다. 나에게 평양냉면은 바로 그런 음식이다. 비빔은 정중히 사양한다. 사시사철 언제나 물냉면을 먹는다. 성격 한번 유별나다. 특별한 맛이랄 것도 없는 슴슴한 국물과 맥없이 끊어지는면발의 허무한 느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을지면옥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얼추 25년은 된 것 같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시간을 두고 한없이 불안하던 시절, 추운 겨울날 우연히 들렀던 곳이 을지면옥이었다. 처음 맛본 차
나는 가끔 종교란 아무도 끝까지 읽은 적 없는 책, 아니 아무도 읽을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두꺼운 책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종교는 완전한 독서를 거부하기 위해 쓴 기묘한 책, 즉 책 너머의 책 같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나의 독해는 항상 미완이나 실패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이 점이 종교만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이런 종교로 인해 그만큼 나도 세상도 두꺼워지기 때문이다.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를 먹고 산다. 더 이상 미래가 맛있는 시간의 먹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 속에서 발걸음은 더뎌지고
2023년은 한국과 인도가 수교를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3년 첫 수교를 맺은 이후 사회, 문화, 경제 등 많은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통한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인도의 신동방정책이 맞물려서 양국 간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사실, 두 나라의 교류는 최근의 일은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외국 승려[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陁)가 진(晉)나라에서 와서 왕이 친히 그를 맞이해 궁궐 안으로 모시고 예우하며 공경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두 나라의 교류
옛적 인도는 부처님의 나라왕자로 나시어 출가 수행하신 뒤깨달음을 얻어 널리 가르치시고는윤회의 괴로움 없는 완전한 자유의 나라에 몸소 드셨다네.잘 가신 분이란 뜻으로 선서(善逝)라 불렀는데성스러운 입멸 이후 불기(佛紀)의 새로운 연표가 시작되었지.하마 2천5백 년이 넘었네.그 사이에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편서풍 뱃길로 가야국엘 찾아와김수로왕과 혼약을 맺기도 했었지.이런 국제결혼도 부처님 입멸 후 5백년 즈음이었으니두 나라의 2천 년 인연은 꽤나 이슥하지 않은가.새해의 해가 뜨는 불기 2567년은 때마침 한국-인도 수교 50주년상월결사
“우는구나, 마침내.”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서래(탕웨이 분)가 이어폰으로 해준(박해일 분)의 음성 녹음을 듣다 눈물을 왈칵 쏟는다. 들키기 싫었던 모습인 양 서래는 “젠장”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해준은 “거, 부처님 앞에서 참”하고 머쓱해하는 서래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종고루'에서는 마주 선 채 커다란 법고를 “퉁퉁” 번갈아 두드린다. 아끼고 숨겨왔던 마음을 열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결정적 장면. 낭만적인 우중 데이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경은 다름아닌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이다.전 세계 한류(韓流) 팬 숫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눈이 왔다. 한 일주일 전 맛보기 예고편인 양 아주 조금 내리긴 내렸지만 지난 밤부터 거친 바람과 함께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오랜 가뭄에 내린 눈이라 더 반갑다. 그래 겨울은 눈이 와야지. 출근길이 더디고 긴장되어도 눈 내린 아침은 즐겁다.지난 1년 동안 연재를 하면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 순간을 장식할 사진은 눈 덮인 풍경이 좋겠다 생각하고 눈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한 겨울 눈내린 절집 풍경은 언제나 설렘 그 자체다. 봄꽃 가득한 봄의 산사도 멋지지만 눈 덮인 산사는 추위를 잊게
여든여섯 살 아내가 입원했다. 몸져 누운지 3년 만에 결국 병원으로 보냈다. 코로나19로 면회도 못하는 남편은 애가 끓었다. 평생 남편과 자식들만 살피던 아내다. 수술에, 검사에 시달리는 아내는 병실인지 집인지도 분간을 못 한다. 그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남편 걱정이다. ‘식사하고 내복 갈아입으라 한다’ 전화기 너머로 간병사가 전해주는 말에 남편은 또 가슴이 저민다.‘간병일지’는 남편의 기록이다. 24시간 돌보던 아내를 병원으로 보내야 했던 남편은 아내의 빈 자리가 휑하다. 외롭고 안타까운 그 심정을 담담하게 시로 옮겼다. “여보,
月照諸品靜 心持萬緣輕월조제품정 심지만연경獨坐一爐香 金文誦兩行 독좌일로향 금문송량행知機心自閑지기심자한(달빛 비추니 온 세상 조용하고/ 마음 굳게 지니니 모든 인연 가볍도다./ 홀로 앉아 향로에 하나의 향 사르고/ 경전 말씀 외우노라./ 세상 돌아가는 것 알기에 마음은 스스로 한가하다.)표충사 만일루는 조선 철종 11년인 1860년 월암(月庵) 스님이 세웠다. 1926년 화재로 소실됐으나 1929년 중건됐다. 2010년 보수할 때 주련을 유물관으로 옮겼다. 그러나 주련은 게송을 온전하게 인용한 것이 아니다. 앞의 두 구절은 당나라 시인
수보리 비여유인 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위대부(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만일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몸을 크다 하겠느냐?”수미산왕(須彌山王)이라 함은 산의 높기와 넓기는 3백3십6만 리나 된다고 한다. 지금의 계산법으로는 8십4만Km. 지구를 157바퀴 반을 도는 높이와 넓이이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물론 상징적으로 크다는 표현을 하기 위함이다. 수미는 묘(妙)히 높다는 뜻이요, 산왕(山王)이라 함은 뭇 산 가운데 가장 크다는 뜻이나, 마음
우리 수행자를 부르는 명칭은 참 다양하다. 나는 그 중에 ‘걸사(乞士)’라는 말을 좋아한다. 저자거리의 거룩한 수행자들이 불자의 공양을 받을 수 있는 고귀한 선비라는 의미다. 사실 수행자를 무노동으로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도 있지만, 걸사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 수행자들은 평생을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다. 조석으로 예불을 통해서 법을 내려주신 부처님께, 그 법을 대대로 이어오신 역대조사님들께, 그리고 그 대를 잇도록 뒷받침 해주신 불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의식이다.한편으로는 동사섭의 실천행으로 사회복지 현장에 있는
수행일지는 수행 단계를 스스로 점검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으로 수행지도자들이 명상을 공부하는 수행자들에게 장려해왔다. 옛 선지식들도 수행과정에서 일어난 일상을 점검한 수행일기를 남겼으며 이 전통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수행일지를 작성하는 습관이 우울증과 불안감 등을 감소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와 주목된다.명상상담평생교육원 교수 혜성 스님은 11월26일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 20주년 기념 ‘명상과 심리상담의 만남’ 주제 학술대회에서 ‘오온(五蘊)을 활용한 명상일지 쓰기의 치유적 효과
천태종 부산 광명유치원이 개원 40주년을 맞아 학부모들을 초청해 원생들의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는 광명예술제가 열렸다.광명유치원(원장 배향숙)은 11월26일 유치원 내 강당에서 ‘광명유치원 개원 40주년 기념법회 및 광명예술제’를 봉행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예술제가 진행된 것과 달리 올해는 학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을 초청해 행사를 열어 감동을 전했다. 특히 광명유치원은 10개 반 원생들을 오전 1부와 오후 2부 두 분류로 나누어 각각 행사를 진행해 안전과 원활함을 더했다. 이 자리에는 광명사 주지 춘광, 광명유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