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마음이 있고(人各有心)마음마다 보는 것이 있다.(心各有見) 무자년 정월의 기도와 행사를 마치고나니 시간은 훌쩍 키가 자라 3월이다. 정초의 7일 신중기도를 ‘산림기도’라 부른다. 흔히 말하는 ‘살림’이 바로 이 ‘살림(山林)’에서 유래한다. 일정 기간을 두고 이뤄지는 일이다. 경전을 강독하면 ‘경전산림’이다. 아직도 많은 사찰에서 정초에 방생을 가기도 한다. 절집의 고유한 문화이기도 하다. 우리 절에서도 꿩 방생을 다녀왔다. 정초에 기도를 올림으로써 한해의 무장무애를 발원하고, 방생을 통해 자비로운 마음을 기르자는 뜻이다. 오래 살고 싶은 게 생명의 본능이고,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일부러 고통스러워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뜰 앞에는 매화가 마침내 진한 향기를 토하고 있다.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한바탕 사무친 정진 끝에 찾아온 봄소식에 더욱 환희롭기만 하다. 이제 동안거 해제가 시작되면 제방선원에서는 만행을 떠날 것이다. 『만선동귀집』에서는 이(理)와 사(事)가 서로 의지해야 걸림이 없어 나와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동체대비가 원만해져서 다함없는 만행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수행의 목적은 실상의 이치를 증득하여 널리 중생들을 위해서 보살행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이 일하는 속에서 실천 되었던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좌선에 집착하여 고요함을 지키면 이기심으로 인해서 자비심이 일어나지 않아 활달한 경계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을 통해서 이치를 파악함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선원에서는 점점 울
제 환공(齊 桓公. BC 685~643년 재위)이 하루는 재상인 관중(管仲, ?~BC 645)과 함께 궁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지금도 사람간의 아름다운 우정을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는데, 이는 관중과 포숙아(鮑叔牙)를 두고 생겨난 말이다. 바로 그다. 발길이 멈춰선 곳은 마구간이었다. 환공이 마구간의 관리를 불러 물었다. “마구간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가?” 관리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관중이 나서서 대답했다. “황송하오나 저 역시 예전에 마구간에서 일해본 적이 있습니다. 마구간에서는 말을 세울 우리를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굽은 나무를 쓰면 그 굽은 나무가 다시 굽은 나무를 요구하게 되고, 반대로 처음부터 곧은 나무를 쓰면 이 곧은 나무가 다시 곧은 나무를 요구
따뜻한 남녘 바다에 볼을 베어갈듯 칼바람이 몰아친다. 온몸에는 청아한 기운이 뼛속 깊이 흐르고 물결은 끝없는 설원처럼 은빛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금광명경』에서는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물속의 달처럼 인연을 따라서 응한다고 했다. 산짐승들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가고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 속에서도 설원과 꽁꽁 얼어붙은 강에서는 겨울 축제가 한창이다. 이 모든 것이 법신이 인연을 따라서 울고 웃으며 차별 없이 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법신이 허공에 두루 펼쳐져 있으며 허공 속에 법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견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법신이 곧 허공’이라는 사실을 투철하게 알지 못한 까닭에 자유롭게 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허공을 기준으로 수행을 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없고
옛날 일본의 삼정사에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그는 유난히 가난했고 인연이 박하여 누구하나 찾아오지도 않았다. 같이 지내는 대중들도 외면하니 항상 외로운 처지였다. 어느 날 ‘내가 이렇게 가난한 것은 이 절이 나와 인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데로 옮겨보면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떠나기로 마음먹고 짐을 싼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깡마른 체구에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하나가 출타를 하려는지 짚신을 신으려고 댓돌에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은 야위고 푸르스름했다. 이 절에 여러 해 있었지만 한 번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젊은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나는 여기에 오랫동안, 특히 당신과 항상 같이 있
도량에는 한 송이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산과 바다는 덩달아 일어나 빛으로 깨어나고 있다. 새해 들어 첫 장날에 나와 보니 어판장 거리에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흐른다. 붕어빵집 노보살님은 해묵은 병이 가신듯이 신명나게 희망을 구워내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처럼 긍정의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의 속성이다. 마음은 어떠한 절망이나 대상에 물듦이 없지만 스스로 빛을 등지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서있는 일터에서 한걸음 옮기고 한손을 들어 올리면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바로 돌이켜 현전일념을 이룬다면 모든 고통과 어둠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온통 행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지금 성공학으로 마음을 주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긍정의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선사는 선근이 깊었던 분이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간 적이 있다. 어머니가 불전에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불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어머니가 말했다.“저 분이 부처님이시다.”백장이 말했다. “형상은 사람과 같아서 저와 차이가 없군요. 나중에 저도 부처님이 되겠습니다.”이 닮고 싶은 마음이 종교의 시작이다. 백장 선사가 90세가 되어서도 대중운력을 빠지지 않자, 하루는 젊은 수좌들이 장난삼아 농기구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자 선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 대중들의 공양 걱정에 이렇게 말씀 하셨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선가(禪家)의 온갖 직책(職責)에서부터 식사(食事)
일타 스님 소개로효봉 스님께 출가 340일 동안 17만배 회향50년간 끝없는 기도 정진 손수 빨래하며양말도 꿰매 신어 시주 열심히 해도 번뇌 여의어야 ‘극락’ 1959년 7월 14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 서울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노스님과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젊은이에게 그 노스님은 거대한 산맥이었다. 그가 한국인 최초의 판사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8년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에 오후불식 등 치열한 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이루고 출가 12년 만에 송광사 조실에 추대됐던 선가(禪家)의 ‘전설’ 효봉 스님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효봉 스님에게 출가를 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네 얼굴은 중 상호인데 지금까지 왜 속가에 있었느냐?”라며 허허
일미세계로 화합하는태안 앞바다가 신음안방 닦듯 모래 닦아불성 광명 드러내야 한 덩어리 붉은 해가 검은 파도를 떨치고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다. 갓난아이처럼 방긋한 미소로 빛을 토하며 서서히 뭍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탐진치 삼독이 반야의 작용인줄 알아 일체 생멸인연이 밑바닥을 쳐야 안심입명 하는 불성 광명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는 보현보살이 열 가지 행원을 설하며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을 지금 이 자리에 시현해 보이고 있다. 보현행원은 부처님의 세상을 여는 열쇠이며 영원한 자기의 생명을 개척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온갖 정보의 훈습으로 가치관이 흔들려 방황하고 있으며 수행하는 사람들도 안일한 선정에 매몰되어 더 이상 길을 몰라 헤매고 있다. 보현행원은 모든 생
성공도 실패도 모두 버릇좋은 습관 기르는 것 중요 아프리카의 한 감방에 펄족과 밤바라족의 죄수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간수로부터 둘 중 한명은 팔을 자르고, 다른 한명은 목이 잘릴 거라는 왕명을 전해 들었다. 교활한 펄족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팔을 잘라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지 참다못한 간수가 소원대로 팔을 잘라주었다. 펄족은 통증으로 밤새 끙끙대면서도 목숨은 건졌다며 흡족해 했다. 그러나 그 옆의 밤바라족은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실컷 잤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그런데 왕은 두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석방시키라고 했다. 팔을 잃은 사람이 분해서 날뛰며 소리쳤다. “저 밤바라족은 멀쩡한 데 나만 팔을 잃었구나!” 왕이 웃으며 말했다. “책을 읽
잔잔한 아침 바다에 노을이 번지고 있다. 숲은 빈 몸으로 서있어 부채살처럼 끝없이 펼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지금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듯 표심을 잡으려고 지지자들을 앞세워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십이인연이 본래 공하듯이 후보들은 저마다 차별된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되 출신처가 본래 국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올해 대선의 공통된 화두는 국민통합과 경제문제라고 한다. 한 결 같이 계층과 세대 간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이대로 두고서는 국가경영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보들은 자기만이 적임자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서로가 비방만 할 뿐 뚜렷한 정책과 비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저수지로 목욕을 하러 갔다. 그녀는 아이를 먼저 씻기고 나서 자신도 물속에 몸을 담갔다. 그때 한 야차(夜叉)가 아이를 보고 잡아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다가가 “당신 아기냐?”고 물었다. 그리고 젖을 먹여주고 싶다고 청했다. 여인의 허락에 젖을 물리는 척 하던 야차가 갑자기 아이를 안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는 깜짝 놀라 뒤쫓아 가서 야차를 붙잡았다. 그런데 야차는 갑자기 돌변하여 “이 애는 내 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재판관을 찾았다. 재판관은 마당 한가운데 선을 그은 후 두 여인을 마주보게 했다. 그리고 아이의 팔과 다리를 각각 잡게 하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이 선을 중심으로 많이 끌어당긴 사람이 아이의 주인이다.” 여인과 야
화두 순일하면 이기심 사라지고 항상 진실해 행복이 절로 나온다 찬바람이 길을 잃고 문풍지에서 울다가 온통 숲을 뒤흔들고 있다. 바다에는 거센 파도가 끝없이 달려오고 갈대밭에는 먼 비행을 마친 철새들이 한가롭게 자맥질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 조그만 암자에서 보낸 치열했던 동안거가 그리워진다. 탁발로써 한철 먹을 식량을 마련하고 손수 김장과 땔감을 장만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춥고 눈이 많은 깊은 산골이라서 인적이 끊어지고 눈 속에 갇히면 내려오는 산짐승들이 유일한 도반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좌선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한창 때라서 항상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정진뿐이라서 화두를 놓치게 되면 끝없이 절망해야 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돌이켜 보면 그때 얻은
가을은 수확의 계절작은 인내심으로도삶은 절로 풍부해져 춘생하장(春生夏長)추수동장(秋收冬藏)봄에는 소생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갈무리한다.이것이 천지가 운행하는 도의 큰 길이다.(此天道之大經也) 『史記』 우리 절은 광화문에서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초입, 경복궁의 동문과는 도로 하나를 마주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옛 왕궁의 돌담이 도로 너머로 높고 튼튼하게 세워져 있고,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보도를 따라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이 길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때도 이 은행나무의 변화와 함께한다. 이른 봄 앙상한 가지에서 새순이 싹트는 시기, 그리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이즈음이다. 구청에서는 새벽 한때 외에는 낙엽을 일부러 쓸지 않기도 한다.
불립문자란 일체경전 포섭의 의미사람마다 본래 한 권의 경전 있어반일은 좌선하고 반일은 경전보라 도량에는 고절한 국화꽃 향기가 청아하게 흐르고 풀씨는 바람을 타고 먼 적멸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전을 독송하며 평생을 신심으로 살아온 노거사님께서 전화가 왔다. 낙엽은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데 아직 인생이 돌아갈 곳을 몰라 왠지 불안하고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은 세상사에서 크고 작은 일을 당할 때마다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경전의 문자가 공한 줄을 모르고 집착하여 지혜를 밝히지 못하고 안심입명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사미계를 받고나니 어른 스님들께서는 경전을 익히면서 사문의 위의를 갖추고 발심이 되면 선방에 가
“그대가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라!” 이것은 1534년 프랑수아 라블레가 『가르강튀아』에 텔렘 수도원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제시하며 내세운 이념이다. 거기에는 통치 기구가 없다. 공동 생활자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 혈통 좋고 교양 있고 고결한 영혼의 선남선녀들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대략 여자들은 열 살, 남자들은 열두 살 때다. 거주자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다만 소요, 폭력, 분쟁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힘든 일은 수도원 밖에 사는 종복들과 장인들이 맡는다. 흔히 꿈꾸는 천국일 수 있다. 그러나 라블레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이상적인 수도원이 언젠가는
만추의 들녘은 금빛 물결로 출렁이고 집집마다 결실의 행복이 단풍잎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보고 싶어 무작정 들길을 따라서 가다가 어느덧 발길이 멈춘 곳은 월출산 무위사였다. 그윽한 고찰의 뜨락에 들어서니 대웅전 지붕위에는 청자빛 하늘이 한 조각 걸려있어 무위법을 설하고 있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단청이 멀겋게 바랜 법당은 인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고 전설처럼 점안을 마치지 못한 백의관음은 눈 없는 눈으로 보이는 것마다 눈임을 가르치고 있다. 도량에는 관광객들이 고찰의 넉넉한 기운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지나가고 천왕문 앞에는 진돗개 한마리가 일없이 졸고 있다. 무위법으로써 삼라만상과 일체 중생들이 이렇게 차별을 나투고 있지만 서로 아무런 장애가 없다. “돈오입도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사람은 천일을 두고 항상 좋을 수 없고꽃은 백일을 두고 붉을 수 없다.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서안의 법문사 참배를 기점으로 둔황, 투루판, 우루무치를 거쳐 오는 8일간의 여행이었다. 법문사는 부처님의 지골사리(가운데 손가락 뼈)가 모셔진 곳이다. 기원전 240년 경, 인도를 무력으로 통일한 아쇼카 왕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처님 성지마다 탑을 세우고 세계 곳곳에 법사단을 조직해 사리와 경전을 들려 불법을 전하기 위해 파견한다. 기원전 243년, 석리방을 비롯한 18명의 법사단이 지골사리1과와 진신사리 18과를 들고 30여 개 국을 거쳐 3년 만에 지금의 서안 근처에 당도한다. 들판에서 하루를 머물던 일행은 “아직 몸을 드러내지 말라”는 부처님의 교시를 받
섬진강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서 화개장터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끝없이 맑은 물길에 내려앉은 가을 하늘과 강의 정취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강물에 띄운 뗏목이 안전하게 바다에 도착하려면 양어귀와 중간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듯이 성품에 계합하려면 일체 사량 분별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화두를 하는 사람은 의단이 뭉치게 되면 생각의 기멸이 사라지고 마치 가을 들물처럼 무심을 이루어 깨침의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공부를 마치는 것이 멀지 않았다고 『몽산법어』는 설하고 있다. 가을은 너무 덥거나 춥지 않아서 수행하기에 좋은 계절인 것 같다. 수행이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계절을 타지는 않지만 싸늘한 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면 왠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하여 지난 시간을 돌이키게 되어 일어나
부처님 당시에 한 여자 거지가 있었다. 모든 거지의 가난이 그렇듯이 이 여자 거지도 베푼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녀는 부처님께서 한 장자의 초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처님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옆에 있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겠지’ 생각하고 따라나섰다. 그녀는 공양 자리에 참석하여 부처님께서 자신을 바라봐주길 기다렸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느냐?” 여자거지가 대답했다. “먹을 것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무엇이든 함께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먼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주는 것을 그대는 거절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는 음식을 여자거지 앞에 내미셨다. 음식을 본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