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 인도사회는 16개의 부족국가들이 난립해 있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합하여 살기를 바랐다. 당연히 국가의 형태로는 어느 특정 개인이나 세력의 독주보다는 공동의 논의를 통하여 국가를 경영해가는 공화정을 선호하셨다. 한번은 마가다국의 왕이 이웃 왓지국을 침범하려는 마음을 먹고 그 나라가 어떤 상태인지를 우회적으로 알아보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서 물었던 것이다. 특사(?)는 총리대신, 브라흐만 왓사까라였다.부처님은 시자인 아난다에게 다음의 내용을 묻고 답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그의 물음에 답하셨다. 왓지 사람들이 서로 자주 모임을 갖는지, 화목하게 모이고 헤어지고 화목하게 일들을 잘 처리하는지, 전에 제정되지 않은 것은 제정을 삼가고, 전에 이미 제정된 것은 폐하기를 삼가고, 왓지인
봄비가 흠뻑 내리고 나니 산과 들은 온통 생기로 가득하다. 생강나무는 산에서 제 일 가는 봄의 전령사답게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무더기로 피어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고향마을 제석사에 다녀왔다. 황톳길은 비가 오면 소들의 발자국으로 얼룩지고 웅덩이처럼 고인 흙탕물을 밟아서 하얀 바짓가랑이에 붉은 물이 들면 야단을 맞았던 추억의 길을 밟고 왔다. 뒷산 중턱에서 샘처럼 솟아오르며 시작되는 물은 수량이 풍부하여 가뭄에도 아랑곳없어 예와 지금이 둘 아님을 변함없이 노래하고 있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도량을 새롭게 결계하고 천일기도 정진으로 여법하게 불사를 하고 있는 모습에 훈훈한 감동을 받았다. 색신이 법당이어서 아프면 부처가 영험이 없으니 건강을 잘 챙기라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도량을 둘러본다. 절 마당에
시인 박노해를 봤다. 신부 쪽의 손님으로, 근자에 우리 절에서 치렀던 결혼식 하나의 축시의 낭송도 겸해서다. 식이 파하고 차를 대접하며 한담을 나눴다. 물론 시인과 나는 초면이었다. 내가 “~씨”를 붙이지 않는 것은 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을 읽고 “얼굴 없는 시인”이라는 말이 떠돌던 한 때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나에게 별다른 호칭 없이 그냥 이름만 부르고 싶은 분으로는 김지하 시인과 곽재구 시인이 더 있다. 출가를 앞둔 나에게 굳이 선물이라며 동아리의 후배 아이가 손에 들려주던 시집이『애린』이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시인의 책을 거의 모두 사서 읽었으니 열혈 독자라 하겠다. 언어와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기가 그리 쉽던가! “화엄개벽”이라는 통째로 한 세상을 열어 보이는 이 분은 신묘(神妙)할
해는 구름 속에 숨었고 도량에는 바다 안개로 가득하다. 아마도 비가 올려는 모양이다. 작년 여름부터 섬에는 비다운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관음상 앞에 나아가 두 손을 모으고 자비의 먹구름을 드리워 법비를 내리시고 모두가 해탈을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법화경』 「약초유품」에서는 “하늘에 구름이 일어 큰 비가 내릴적에 온 산과 들에 가득한 풀과 나무들은 그 크기에 따라서 물을 받아드린 것이 다르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차별 없이 한 맛으로 법을 설하지만 사람들은 그 수준과 근기에 따라서 법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효스님께서도 부처님은 오직 “사람이 본래 부처”라는 일승만을 설했지만 근기에 따라서 차별이 있다고 했다. 세상은 지금 온통 불기운에 휩싸
정초 산림기도를 마쳤다. 음력 정월의 7일간의 신중기도는 절집에서 연년이 치르는 고유한 행사이다. 삶은 우연적이라 미리 한해의 무장무애함을 불전에 기도드리는 것이다. 시작을 중요시하는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는데, 좋은 시작이 일의 절반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법문을 하고 회향과 더불어 방생까지 마치고 나니 온실엔 벌써 튤립이 피었다. 봄이 멀리 않았다는 소식이다. 지방과 달리 서울에서는 올해는 눈 구경을 거의 못해서인지 가는 겨울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절집에서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이뤄지는 공부나 기도 모임을 ‘산림(山林)’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총림(叢林)’이 있다. 총림은 염불원·선원·강원·율원 등을 갖춰야 한다. 종합수도원 쯤 되겠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새해 벽두부터 찾아온 동장군이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오르내리고 있다. 예부터 선사들은 춥고 배고플 때 오히려 발심이 되어 수행하기 좋은 시절이라고 했다. 여러 지성인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추위를 뚫고 마음의 소를 찾아서 머나먼 섬에 찾아왔다. 오후 햇살이 넉넉하고 따스해서 바다로 내려간다. 은빛 파도는 정갈한 몽돌 밭에 내리어 묘음으로 구르고 듣는 성품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세상의 소리는 저마다 차별이 있고 자기주장이 남아있어 서로 화합하기 어렵지만 모든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차별이 사라지고 일미평등을 이룬다. 이것이 파도소리이며 소리 없는 소리여서 바로 무심에 계합한다.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아무런 뜻이 없지만 어린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잠에 들듯이 파도소리는 세상의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에
세밑에 자리 잡은 동장군(冬將軍)의 기세가 해를 넘기고도 거침이 없다. 땅이 얼고 만물은 움츠러들겠지만 초목은 이런 겨울을 나야 뿌리가 들뜨지 않고 자연에 적응하는 힘이 길러진다. 그렇다고 겨울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 주기(週期)가 바로 질서인데, 천체에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존재에 필요한 힘을 상호 간에 얻기는 해도 서로 간섭의 의지는 없다. 무심이랄까? 인연이 모이면 생겨나고 그 인연이 다하면 소멸될 뿐이다. 반대로 인간은 정(情)이란 게 있어서 모든 상황마다 자극을 받고 순응을 하던 역행을 하던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삶의 원칙성(經)과 융통성(權)이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천장지구(天長地久,도덕경 7장)”라는 제목의 홍콩영화가 있기도 했지만, 인간의 유한함과 달리 천지
새벽 예불 시간까지 불던 강풍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오늘은 본사에 포살이 있어 가는 날이다. 새해 들어 첫 장날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대합실에 모여 서로 덕담을 나누고 있다.아침 해는 은빛 파도를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뱃머리에 오르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하나 둘 항구로 돌아오고 있다. 오랜만에 나그네가 되는 듯 쾌활한 기분에 차창으로 들어오는 산과 들이 함께 길을 나서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한다. 걸망을 메고 편백나무 숲길을 따라서 들어간다. 처음 출가했을 때가 생각나고 아직도 옛 발자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하여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며 초발심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본다. 어느덧 고색창연한 일주문에 이르러 소멧돌에 조각된 선정과 지혜를 상징하는 두 마리 사자 석상을 만져보니
당대(唐代)의 여순양이란 사람은 도가에서 출발했다가 선종에 귀의하여 황룡선사의 문하에 들기도 했었다. 하루는 여순양이 남경에 이르러, 남루한 늙은이로 변해 한 떡집을 찾았다. 주인은 노파. 그는 매번 떡을 얻어먹으면서도 돈을 내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속되던 어느 날 여순양이 물었다. “벌써 몇 년째 얻어만 먹는데 왜 돈을 달라하지 않소?” 노파가 별 표정 없이 말했다. “당신은 돈이 없어 보이잖아, 그래서 안 받았지.” 여순양이 고마워하며 자신은 신통이 있으니 원하면 신선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때 노파는 “난 찰떡이나 파는 게 편하다오”하고 거절했다. “그럼 큰돈을 벌고 싶지 않은가? 손가락만 대도 무쇠가 황금으로 변하는 비법이라오.” 그러면서 손가락을 쇠그릇에 댔더니 정말 황금으로 변했다.
실핏줄 같이 투명한 숲에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마침내 기축년 새해가 진흙밭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고 있다. 오랜 무명이 일시에 걷히고 나니 첫 배는 마치 무소처럼 거친 파도를 갈아엎어 하얀 포말을 지혜로 소용돌이치며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비야리성의 유마거사는 부처님 제자들의 병문안을 받고 “중생이 병들었기에 나도 병들었으며 중생의 병이 나아야 나의 병도 따라서 나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마치 부모가 품안에서 기른 사랑하는 자식이 병이 들면 그 자식을 따라서 함께 병이 들었다가 자식이 나으면 부모의 아픔도 함께 사라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이 병든 것은 무시이래로 지은바 탐진치의 삼독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을 둘로 보고 소유가 전부인양 끝없이 탐욕을 부추기며 존재의 가치를 망각한 채 욕망
의기에는 의기를 더하고(有意氣時添意氣)풍류가 아닌 곳에 또한 풍류로다.(不風流處也風流) 한 해의 끝자락이다. 닳아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시간의 연속에서, 그래도 뒤돌아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무덥던 여름, ‘쇠고기 협상’에 대한 저항의 촛불이 사람 사람의 손에 들렸었지. 이 질료는 ‘자기 성찰의 빛’이라는 미학에 어울리게 가물가물하면서도 얼마나 강한 전염성을 내포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이어진 정권과 불교계의 불편, 그리고 세계경제의 동반 추락이라는 태풍이 휘몰아쳤다. 아직도 우리는 그 불황의 깊이를 모른다. 잘 살아보자는 공통의 꿈이 이렇게도 요원하단 말인가. 안타까운 것은 위기일수록 온 국민이 대동화합하여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하는데, 내놓는 정책마다 상위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요, 언론에 재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