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벌어진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행위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과연 이 나라가 인권을 생각하는 나라인지,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지도자로 두고 있는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군홧발로 짓밟고, 방패로 내려찍고, 무섭게 곤봉을 휘두르는 처참한 활극을 보며 광주학살이 자행됐던 지난 80년 대학생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부 언론의 지적처럼 4월 10일의 시위진압은 80년의 비극을 재연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숨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실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아무리 거세도, 또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거절했을 때에도 애써 놓고 싶지 않았던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져다 준 희망
일전에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환경보존 결의대회가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 가르침에서 출발한 ‘죽어 가는 나무를 위한 천도재’ 의식이다. 내가 늦게나마 불교에 매료된 점이 바로 이 ‘둘이 아닌 하나 (不二)’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숲 속에 들어가 보라. 그리고 거기서 혼자 한참 있으면 나무나 꽃과 하나가 된다. 그들과 생명체로서의 교감이나 대화가 오가며 나무 가지 하나 꺾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하물며 우리 인간 끼리야 생사를 걸 일이 뭐가 있겠느냐. 남과 북이 한 뿌리니 총 뿌리를 겨눌 일도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둘이 아닌 하나 (사실 성경에서는 그들의 조상이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쓰여있다)니
송대 초기 남방 스님 작성…조계 원본일 것 돈황 박물관에 소장된 돈황신본 원문 육조단경(六祖壇經)은 불교 선종의 중요한 전적 중의 하나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손으로 사경(寫經)하여 필사본(筆寫本)으로 전한 까닭에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경(寫經)을 통하여 경전을 소중하게 내 몸처럼 여기는 풍조는 높이 살만하지만, 단점으로 부적확(不的確)한 면이 있었다. 육조단경의 몇몇 부분이 더해지고 혹은 덜어졌다. 문자가 거칠고 촌스러워지고 번잡해져서(朗簡의 壇經 序), 이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고본(古本)의 번다한 글을 읽을 때이다. 처음에는 신나게 읽다가 나중에는 싫증을 내어 덮어버리고 마는 용두사미(龍頭蛇尾) 격이 되어버린다.
역사를 왜곡한 엉터리 역사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검정을 통과시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이른바 일본의 극우파들이 편찬한 엉터리 역사교과서는 근현대사는 물론 중세 고대의 역사까지 모조리 왜곡 날조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하고 있다. 저들은 심지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으며 한반도에 임나 일본부가 설치되어 마치 고대때부터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던 것처럼 기술했는가 하면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한일 합방을 ‘합법적’인 것으로, 종군 위안부 문제는 완전 삭제한채 악랄했던 일본의 수탈과 살육의 역사는 어물쩍 뛰어 넘는 등 날조 왜곡된 엉터리 역사교과서를 후안무치하게도 세상에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보도에 의하면 주한 일본대사관에서는 인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한일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도 일본을 향해 강하게 시정을 촉구하고 있고,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국가인 동남아시아를 포함, 미주지역으로까지 이 문제가 확산되는 등 국제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당초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비난을 받았던 우리 정부도 최근에는 대사를 소환하는 등 전에 없이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여 잘못된 역사관을 후손들에게 심어주려는 일본은 참으로 괘씸한 나라이지만 한편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 공부란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정확하게 사실 그대로를 배워 교훈으로 삼는데 의의가 있을 것인데도 말이지요. 거짓 역사를 가르치는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음을 일본정부와 극우세력들은 모르
얼마전 경북 군위군 고로면의 인각사에서 '일연삼국유사 문화제'가 펼쳐진다는 소식을 듣고 난 그곳에 갈 생각을 굳혔다. 그런데 통영의 '한산대첩축제'와 같은 시기여서 두가지를 반반씩 보기로 하고 우선 초청된 세미나 발표 (희곡작가협회)를 위해 통영으로 떠났다. 8월 13일 통영의 '한산대첩축제'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통영문화마당을 서성이는데 나의 마음은 자꾸 『삼국유사』에만 몰두하게 되어 계획을 바꿔 다음날 군위를 향해 떠났다.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하고 군위군청 대강당에 오르니 제2회 '일연삼국유사 문화제'의 '일연학술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두 분의 연구발표를 모두 듣고 토론에 들어가기전 난 세미나에 참여한 몇분을 만난후 인각사 상인 주지스님을 소개받고 인각사를 향해 떠났다. 인각사 경내에서 베풀
지난해 11월 9일부터 14일까지의 제6차 남북장관급 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서해교전을 거치면서 6·15 공동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나하는 우려와 함께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제7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10개 합의 사항이 도출되고, 8월 15일 57년만에 치러진 남북 8·15 민족공동행사의 성공에 뒤이어 30일 제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남북교류의 실천적 합의사항을 만들어냄으로써 남북관계 발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9월 17일로 예정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평양 방문으로 이루어진 북·일 정상회담이 성공한다면 남북 화해·협력은 탄력을 받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가 분단이래 처음으로 그
拘束元來非我意하야 隨緣處處是吾家라 世事己送浮雲外나 難避事情正若何를 구속됨이 원래 나의 뜻이 아니기에 인연따라 곳곳이 나의 집이었네 세상사를 벌써 뜬 구름 밖에 보냈지만 피하기 어려운 사정에는 어쩔수 없네 天下萬物無非佛이요 世上萬事無非道라 深谷流水誦藏經이요 山上石佛微微笑를 삼라만상이 부처 아님이 없고 모든 일이 도 아님이 없음이라 깊은 산골짜기 흐르는 물은 법을 설하고 산봉우리 석불은 빙긋이 웃네 一打杖眞妄壞요 活眼開眼無邊春이로다 一喝一聲天門開하니 日月星宿輝古今이로다 한번 주장자를 치니 진망이 무너지고 산 눈을 떠보니 모두 화장세계로다 한번 할을 하는 소리에 하늘 문이 열리니
구속됨이 원래 나의 뜻이 아니기에 인연 따라 곳곳이 나의 집이었네. 세상사를 벌써 뜬구름밖에 보냈지 만 피하기 어려운 사정에는 어쩔 수 없네. 오늘 불자(拂子)를 대중에게 보이는 것은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는 것과 같으니라. 사람은 고금의 차별 모양 있으나 법은 고금에 차별 모양이 없다. 그대에게 불자가 있으니 그대에게 불자를 주고, 그대에게 불자가 없으니 그대에게 불자를 빼앗는다. 작은 뱀은 큰 코끼리를 삼키고 큰 용은 병든 돼지로 변하니, 무쇠를 팔아서 금을 사고 교묘함을 희롱하여 옹종함이 되었네. 남쪽에 햇빛이 있으니 북쪽이 자연히 밝고, 동쪽 집에서 북을 치니 서쪽 집에서 춤을 춘다. 고인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불자를 알면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 같도다. 산승
바다 저편 북한이 17km 코앞에 보이는 데다 직선거리로 따져보면 서울보다 중국이 더 가까운, 대한민국 최북단 백령도의 유일한 절 흑룡사는 해병대 군법당이다. 그리고 주민 대다수가 타종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처님의 명맥을 이어 부임한 군법사들은 군불자 위문과 교육뿐 아니라 주민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꾸준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민간불자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인 군법당 흑룡사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놀이터가 있는 법당 우리나라의 최북단 사찰인 백령도의 흑룡사는 점심시간 즈음에서부터 몰려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해질 때까지 시끌벅적하다. 절 안에 설치돼 있는 어린이 놀이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방방이’이라고 부르는 덤블링 기구에는 하교시간이 지나면 어린아이들이 어김없이 몰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한평생을 우리 나라의 민주화와 인권향상에 힘써왔으며,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싹을 틔운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00년 11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일 년여 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에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자격으로 다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열리는 노벨 평화상 100돌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중국 눈치보는 힘없는 정부 100돌이어서가 아니라 21세기 들어 6000여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끔직한 9·11 테러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 공격으로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무차별로 죽어가고 있는 시점이라 이 심포지엄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안고 있다. 20세기의 분쟁의
1700만 명이 죽는다……어지간한 나라의 전체 인구쯤이 한꺼번에 전멸한다…… 지금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 그 전쟁이 몰고 올 파장을 예측하는 기사가 신문과 TV등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두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파키스탄 측이 더 적극적이다. 그들은 인도가 재래식 무기로 계속 공격해 올 경우에도 세가 불리하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을 일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인도 역시 핵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파장으로 하여 1.700만 명이라는 무고한 인명이 대량으로 죽게 된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핵을 사용하면 상대방은 물론 자신들도 같이 죽게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