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제천중에 이어서 욕계제천중의 해탈문과 게찬이 ‘화엄경’ 제2권 (세주묘엄품 2)의 마지막까지 계속되어 있습니다.욕계의 화엄성중은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 화락천왕(化樂天王), 도솔타천왕(兜率陀天王), 수야마천왕(須夜摩天王), 삼십삼천왕(三十三天王) 등의 다섯 천왕과 해[日天子] 와 달[月天子] 두 천자를 합해서 7류중입니다. 앞에서 본 색계 5류중과 합한 12류중이 상계의 화엄성중에 속합니다. 사왕천도 욕계이기는 하나 사천왕(四天王)은 중계의 팔부사왕중에 속하고, 무색계는 물질세계가 아니므로 화엄성중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인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세계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대안은 없는가? 나는 보살의 이타행(利他行)이야말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 근거를 ‘증일아함경’ 제19권 제5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때 미륵보살이 붓다께 “보살이 몇 가지 법으로 보시해야 육바라밀을 원만하게 갖추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속히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이 물음에 대해 붓다는 이렇게 대답했다.“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네 가지 법을 성취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랑의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사랑하면 자존감이요, 자기식대로 사랑하면 자존심이 되기 쉽다. 자존심은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자존감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자신과 남이 모두 존귀함을 아는 일이다. 모두들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방법에 차이가 있듯 자신의 내면도 마찬가지다.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을 한자로 살펴보면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뜻은 같지만 자존심이란 말속에는 아만, 고집 등 부정적인 뜻이 많이 포함된 지 오래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
벌써 여러 달째 ‘웬만한 현미경으로는 알아볼 수도 없는 초미세 존재인 코로나 바이러스-19(약칭 COVID-19)’가 온 세상을 떨게 하고 있고, 그 때문에 전 세계의 교육‧종교‧문화예술‧체육 관련 시설들이 거의 문을 닫고 있다.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전국 사찰을 찾는 발길도 거의 끊겨서 “절간 같아요!”라는 말이 오가는데 이 말을 하는 이나 듣는 이나 가슴이 멍하다. “어쩌다 이 상황까지 왔을까? 언제 이 비상사태가 끝날까?” 스스로에게 묻고 가족‧친구‧도반들과도 물음을 주고받지만 대부분 아무 답도 못한다. 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글
봄이 왔다. 당연히 꽃도 피었다. 꽃은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반가운 편지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무작정 야외로 나가고 싶어진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봄은 무조건 설렘이고 바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꽃피는 달 3월이 다가도록 대학교정이 적막하기만 하다. 여기저기 저 홀로 핀 꽃들뿐이다. 가만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순간 바람이 불어온다. 산수유, 매화, 살구꽃, 개나리, 앵두꽃,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알아들은 척 손짓한다. 하지만 정작 꽃보다 아름다운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던 각종 개강
단원 김홍도가 그린 불화를 이야기하자니 용주사 삼불회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식적인 명칭은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로 되어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화가 유명한 이유는 법당에 걸린 불교회화이지만 화승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국민화가인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용주사라는 절 자체가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니만큼 그가 총애했다던 김홍도를 동원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불화를 그려 모시게 했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김홍도
스스로를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며, 자신을 낮추고 환속한 원효 스님은 무애행(無碍行)으로 유명하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㝵人, 一道出生死)’라는 ‘화엄경(華嚴經)’의 구절을 따서 ‘무애’라고 했다. 그는 거리며 시장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조롱박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춤을 췄다. 삼국통일을 위한 전란의 시기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위로한 것이다. 그리고 구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하고 부처를 알게 하였다. 바로 ‘염불’로 말이다. 노래하
음악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예술이다. 연주자는 무대에 올린 작곡가의 작품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면서 청중과 감정을 교류한다. 음악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마치 언어와 같은 소통의 도구 역할을 한다. 클래식 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보편성 덕분이다. 요제프 하이든의 음악과 실천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보현행원품’에서 그 접점을 찾아본다.‘파파하이든’이라는 온화한 느낌의 별명처럼 하이든의 음악과 일생은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드라마틱한 서사가 적은 편이
덕행(德行)은 공덕 내지 복덕이 되는 행을 일컫는다. 대장경에는 덕행에 관한 다양한 말씀이 설해져 있다. 덕행의 관점으로 보면 앞서 다룬 행복론에서 언급한 삼학(三學)과 육바라밀 같은 덕목도 세 가지 덕행과 여섯 가지 덕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붓다의 팔정도 또한 여덟 가지 덕행이 된다. 팔정도와 육바라밀이 삼학으로 수렴되는 교학적 논의는 여기서 굳이 하지 않으려 하거니와, 다만 이들 세 덕목이 상호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전개되는 덕행이라는 점은 상기시켜 둔다.불교의 덕행으로 먼저, 지혜와 복덕의 이덕(二德)을 거론할 수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고요히, 수행자들은 무엇을 보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계를 건너다보기 위해 수행을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수행자들이 보는 것은 몸이다. 부처님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념처 수행을 제안하셨다. ‘신수심법’ 즉 몸, 느낌, 마음, 법 중 첫 번째 집중의 대상이 바로 몸인 것이다. 몸을 들여다보면 그곳에 길이 있다. 그런데 그 몸이란 게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오래 몸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몸을 마치 빌어온 말 취급하며 살았다. 말 안 듣고 고집 센데다 툭하면 탈이 나는 이 도구에 질질 끌려, 혹은 질질 끌
일본 불교문화의 고도, 나라(奈良)에는 화엄 동대사와 노사나대불이 자비롭게 세상을 품는다. 그 종교성을 발원하고 구현한 사람으로 쇼무 천황과 교키 스님이 얼굴을 나란히 한다.쇼무(聖武, 701~756)는 일본의 제45대 천왕이다. 그는 불교를 신봉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웅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으며 말년에 천황의 자리를 물려주고 출가자로 살아갔다. 쇼무 천황은 24세 때 즉위한다. 당시 일본은 천황 중심의 국가체제가 정비되어가던 와중이어서 그의 자리는 불안했다. 국내적으로 내란이 일어났으며 외교적으로 잘 지내던 신라와 불편한
몇 년 전 노보살님이 찾아오셨다. 활달한 성품에 씩씩한 기운을 품고 계시기에 조심스레 연세를 여쭈어 보았다. 놀랍게도 일흔 아홉 살이나 되셨다.아주 정정하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동안이라며 덕담을 드렸더니 기분 좋게 웃으시며 자신의 건강 비법이 ‘절’이라고 하셨다.보살님은 약 5년 전 쯤에 극심한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하루 종일 장시간 의자에 앉아야 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하여 직업병이 된 것이다.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파왔다. 너무 통증이 심해서 길을 걷다가 5분 앉아 쉬고, 다시 길을
예나 지금이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거 다 알아. 그거 별거 없어. 들으나 마나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붓다 당시에도 자신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별거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붓다가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왕사성)에 있는 깃자꾸따산(영취산)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사라바(Sarabha)라는 이름을 가진 떠돌이 수행자(유행자)가 승가의 일원으로 있다가 승가를 떠났다. 그리고는 라자가하의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제5 여래실견분의 전반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몸의 모습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보시자 수보리는 ‘몸의 모습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답변에 동조하시며 후반의 가르침으로 이어지는데, 우선 ‘몸의 모습[身相]으로써 여래를 보다’라는 문장을 어떻게 풀이할지 살펴본다.해당 부분의 범어원문을 직역하면 ‘모습[lakṣaṇa]의 갖추어짐에 의해 여래께서 보여져야 한다’라는, 우리 말로는 다소 어눌한 수동문으로 되어 있다. ‘모습’이란 인도 전래에 성인이 되면 몸에 드러나는 32가지
자애명상은 심오한 방식으로 우리의 가슴을 일깨운다. 자애(lovingkindness)는 우리가 억지로 불러내지 않아도 오랜 침묵 가운데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애의 마음은 한번도 거기 ‘없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격심한 분노 같은 마음 상태를 다스리는 데 유용하다. 우리를 압도하는 감정적인 마음 상태와 맺는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어 분노의 에너지에 완전히 굴복되는 일이 없도록 해준다. 열린 가슴으로 비반응적이고 비판단적인 현존에서 알아차리면 우리는 분노나 슬픔 혹은 그 무엇이라도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알아차림 속에서
“일반적으로 ‘학자’는 ‘활구(活句)’를 참구해야 한다.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 ‘활구’는 말 밖의 뜻을 깊이 참구해서 깨닫는 것이다. ‘덕산연밀(10세기)’이 처음 설했다.서산대사가 해석하시길 “‘활구’에서 ‘천득(薦得)’하면 부처나 조사와 함께 스승이 되지만, ‘사구’에서 ‘천득’하면 자신도 구할 수 없다. 특별히 ‘활구’를 써서 스스로 깨닫게 한다.” ‘천득’이란 ‘추천하거나 잔치에 초대받는 의미’인데, 조사의 ‘선지’를 깨닫고 ‘불조’의 법에 부합해 들어가게 된다.원오선사가 ‘화장명수좌’에게 “만일 ‘불조’와 같
승이 구봉에게 물었다. “한 자루의 붓으로 단청까지 한다면서 어째서 지공화상의 진영은 그리지 못했답니까.” 구봉이 말했다. “승요(僧繇)가 지공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승요는 누구의 인정을 받았기에 그런 겁니까.” “오구(烏龜)는 수미단 기둥에 머리를 숙이는 법이다.”지공은 금릉의 지공대사(誌公大師, 418~514)이다. 그는 수많은 이적을 보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양 무제가 화공이었던 장승요(張僧繇)에게 지공화상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였으나 아무리해도 잘 그릴 수가 없었다. 지공이 화공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얼굴표정
불교에서는 육식과 더불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불리는 것이 있다.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라고 불리는 채소이다. 이 오신채는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다. 매운 맛을 갖고 있기에 이것을 먹으면 몸에 열이 생기고 음욕심을 발생시켜서 수행에 방해가 되기에 금지되었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러한 오신채를 금지시킨 내용도 분명 불교 내에서 전해지는 제정이유이기는 하지만 제법 시간이 지난 뒤에 생겨난 것이다. 율장에서 마늘을 금지시킨 이유는 마늘을 보시한 장자의 밭에서 마늘을 전부 가져와 그 장자에게 피해를 주어 금지가 된 다소
어느 분이 물었다. “스님! 남방에 가보니까 비구스님이 담배도 피고 심지어 문신을 한 분도 있었어요. 남방 스님들은 탁발을 하는데 왜 우리 스님들은 탁발을 안 해요? 남방은 육식을 하는데 우리는 왜 육식을 하면 안 되나요?”상좌부의 계율을 언급하면서 출가자의 생활을 평가하는 경우를 SNS상에서 자주 보았지만 막상 이런 질문을 직접 받으니 어떻게 답할까 고민스러웠다. 조금 어렵더라도 율장이 중국에 전래된 상황과 ‘사분율장’이 여타의 율장과 다른 점 등을 살펴봐야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상좌부불교나 티베트불교는
원광이 오랜 중국 유학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것은 진평왕 22년(600)이었다. 진흥왕 36년(575) 즈음 25세의 나이로 남조의 진나라로 유학을 떠나 금릉에서 성실학을 비롯한 다양한 조류의 불교학을 섭렵하였다. 진평왕 11년(589) 진이 멸망하자, 수나라의 장안으로 옮겨 새로 유식학 계통의 섭론학을 공부하면서 수문제에 의한 불교치국정책과 남조의 교학불교와 북조의 실천불교가 종합되는 불교계 변화상황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50세 전후인 진평왕 22년에 본국의 요청으로 귀국하게 되었는데, 25년이 넘는 장기간의 유학생활이었다.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