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에 대한 불교계의 침묵 진리 탐구하는 자의 태도 아니다 요즘 이슈가 뭐야? 데스크가 편집회의를 시작하며 던지는 단골대사이다. 북핵문제라는 답변도 있었고 차기 조계종총무원장 선거요, 라는 대답도 나왔었다. 그리고 몇 주 째 인간복제문제가 그 몇 안 되는 답변 속에 계속 포함돼 있다. 인간복제에 대한 불교계의 공식적인 입장은 언제 나오나? 가톨릭이랑 기독교계는 진작에 입장표명을 하고 있잖아. 불교학계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데요, 종단에서도 그렇구요. 불교학자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학회가 한두 군데도 아니면서, 불자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정답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불교철학-교리를 바탕으로 한 답안을 제시해야 되는 것 아냐, 저러고 있다가 또 엉뚱한 소리만 나오
올해도 각 언론에서는 어김없이 대입 수험생들이 수능고사를 치르는 모습을 보도하면서 아울러 수험생들에 대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금년에도 수험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사진이 실리겠지라고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락없이 작년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똑같은 사진을 게재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대부분 여성불자일까? 타종교에도 열성적인 신앙의 형태를 자주 보이는데도 말이다. 지극한 모성애는 어떠한 형극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이는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번지게 마련이다. 어떠한 종교를 갖든 자신의 보편적 의지는 어떤 신념에 찬 목적의식이 일어나면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인 욕망의 힘을 입어 무분별한 특수한 의지로 변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교리를
'삼귀의(三歸依)'란 무엇인가.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삼보는 불보(佛寶) 즉 깨달음을 이룩한 부처님, 법보(法寶)는 부처님이 설하신 교법, 승보(僧寶)는 교법대로 수행하는 자이다. 우리가 삼귀의문을 봉독하는 것은 부처님에 귀의하고, 부처님 법에 귀의하고, 교법대로 수행하는 자에게 귀의한다는 것이다. 그럼 왜 삼보에 귀의하는가. 부처님은 최상·무상의 인격 완성자이기 때문에 귀의하고, 교법은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진 진실이기 때문에 귀의하고, 불교교단은 평등화합의 이상사회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요사이 '귀의승(歸依僧)'을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귀의문은 스님·신도 모두가 같이 봉독하는 글이다.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과 '불교교단에 귀의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
사람들은 일단 자신이 선호하는 종교를 가지게 되면 상대방의 종교성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특히 한국인의 절반이상이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국민의 종교성향은 대단한 것이다. 이 같은 종교에 대한 열정은 자신의 행복이 종교에 있다고 여겨지고 그 종교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문화가 되기까지 한다. 지난주, 우리국민은 온 나라가 법석되면서 16대 대통령선거를 치렀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 때 누구나 정치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한마디씩 할 정도이고, 선거를 치른 후에는 '당선'의 뒷얘기에 귀를 모은다. 이런 와중에 역시 관심을 끄는 것은 대통령의 종교단체에 향한 공약에 대해서다. 대통령당선자의 불교계 선거공약이 어떻게 이행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
고려시대에는 수선결사가 있었고 백련결사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봉암결사가 있었다. 우리 불교사에 있어서 이런 결사들을 서양기독교사에 비교해보면 당연히 종교개혁이 떠오른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독일에서부터 이다.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교황권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던 16세기 초엽의 독일은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과세권과 성직임명권을 둘러싼 교황청의 극심한 부패, 교리에는 눈이 먼 성직자들의 반신학적 행태.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업 도시들은 무분별한 교황청의 간섭 아래 경제는 침체상태에 빠져들었다. 여기에 마르틴 루터가 있었다.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일하고 있던 루터는 1517년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의 항의문 발표, 세속권에 대한 교황권의 우월성은
이제 한여름의 무더위는 지나갔지만 스님네는 여름철이면 절을 찾는 이들의 여러 가지 꼴불견을 보아야 한다. 양어깨가 드러난 옷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오는 여인이나, 반바지 차림에 색안경 쓴 남자들이다. 예전에는 바닷가 사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절에서도 볼 수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관람객과 실랑이를 심심찮게 해야 한다. 그리고 '스님이 왜 남이 옷 입은 것을 시비하세요?'라고 말한다. 인격과 예절을 생각하는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 모습을 여름철이면 보아야 한다. 물론 그들 모두가 5계를 받은 재가불자는 아니다. 재가불자는 삼귀오계(三歸五戒)를 받은 뒤 다음에 한 가지를 더 다짐한다. '이와 같이 계를 받고 불자가 된 사람은 예참의(禮懺衣)인 법복을 마
해마다 되뇌는 다사다난이란 표현을 어느 해보다 더 실감으로 느낀다. 2002년은 한국인에게 그렇게 특별한 한해였다. 그중 압권은 말할 것도 없이 6월 한달 한국인들의 눈과 귀와 영혼을 사로잡은 월드컵 4강 신화 체험이다. 필자는 월드컵을 분수령으로 한국사회의 큰 흐름이 달라졌다고 본다. 유럽인들이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를 가르듯 한국은 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갈라 보아야 한다. 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성공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온 국민이 하나되어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꿈만 같은 체험을 나눈 6월을 거치며 한국과 한국인은 새롭게 태어났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생각이 달라졌고 눈높이가 바뀌었고 욕구가 달라졌다. 그 변화의 흐름은 세대교체라는 큰 물결을
3월 22일은 ‘물의 날’이다.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이 물을 마시는 것에도 그 동안 작지 않은 변화가 있어 왔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우물물을 마셨다.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우물물은 언제나 차고 시원했다. 그러다 도시로 나와서는 수돗물을 마셨다. 약품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역겨웠지만 보리차로 끓인 수돗물은 이내 적응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언제부턴가 물을 사먹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패트 병에 담긴 물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어릴 때를 돌이켜 보면 놀라운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놓고 물을 마시기도 어려운 것이 요즈음 우리네 삶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공기마저 사먹어야 할 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 삶의 공간인 환경이 커다란 위기에 처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km 인데, 지구는 이 거리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1년에 한 바퀴씩 공전한다. 그러려면 지구는 초속 30km 의 속력으로 태양 주위를 달려야 한다. 이는 서울에서 대전까지 5초면 충분히 날아갈 수 있는 엄청난 속력이며, 지구 위의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이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날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뜰에 서 있는 나무를 정지하여 있다고 하는가? 사람들 늘 자기만을 고집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지구 표면에 붙어있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 또한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지표면을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고, 자신의 틀을 한 번도 깨 본 적이 없고, 사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됨에 따라 사찰 환경을 침해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도심 사찰 주변에 고층아파트나 빌딩이 들어서고, 산중 사찰 주위에 도로가 건설되고 송전탑이 설치되고 있다.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사찰 환경의 침해사례 중 하나로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건설에 따른 불암산, 수락산, 북한산의 자연환경 파괴, 이에 따른 회룡사 등 주변 사찰의 수행환경 침해 또 부산에서는 고속전철의 건설로 인한 천성산과 금정산의 자연환경 침해, 내원사와 범어사의 수행환경 침해가 문제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용인의 비구니선원 화운사의 고압송전선 설치, 경남 통영의 미래사 뒷산 미륵산의 케이블카 설치 또한 근래의 사찰 환경 침해사례들이다.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건설은 회룡사 경내지의 도로건설(터널공사)을 문화관광부장관
불교계 대표 수장 선출 후보 검증에 과감한 개방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12월 12일 목요일 밤 8시. 딱 7일 후면 새 대통령이 결정돼 있을 것이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조금 전, '이처럼 재미있는 대선이 없었다'고 촌평했다. 이번 대선은 누구든 그 결말을 쉽사리 예측하고 장담하길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막상막하, 흥미진진의 형세를 띠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조계종 스님들은 또 다른 스님들만의 선거 때문에 지난달부터 눈과 귀가 부쩍 바빠졌다. '정말 떠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럼 언제?'로까지 이어지던, 말로만 떠돌던 조계종 정대 총무원장의 사퇴가 마침내 가시화되어 이르면 내년 2월께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별로 그리하고 싶지는 않았
오는 19일은 대통령선거일이다. 이 날은 입후보자, 그 지지자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국민 축제일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저 일년에 몇 번이나 있는 축제일과는 달라야 한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어떤 이는 '나하고는 관계가 없으니…' 한다. 선거를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꽤나 많다. 그럴 것이 아니다. 며칠 밤을 세워 수립하여 놓은 계획이 장관이 바뀌면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우리 농부가 땀 흘려 일구어 놓은 과수원이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이루어지면 더러는 폐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한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국민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어떤 광고처럼 우리 나라가 이제 동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면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