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종교고유의 기능을 남쪽 불교에서 배울 수 밖에 없으니…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3일까지 북한의 사찰을 참배했다. 묘향산 보현사에 들렸을 때,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의 주선으로 그곳의 불자들과 함께 남북 불교도 공동법회를 봉행하게 되었다. 분향, 헌화, 찬불가, 반야심경, 발원, 남북대표 인사말, 사홍서원의 간단한 법회의식이 진행됐다. 한 여성불자의 어코디언 연주에 맞춰 부른 찬불가는 남쪽과 마찬가지로 '찬양합니다'였는데 3절까지 부르는 바람에 2, 3절의 가사를 몰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반야심경과 사홍서원의 운율이 남쪽과는 약간 차이가 있어 이색적이었다. 발원문의 경우, 남쪽의 '무엇무엇을 하고자 하오니 불보살의 가피를 내려달라
몇 년 전 성철선사상연구원의 백련아카데미 주최로 한문 경전의 번역에 대하여 발표한 일이 있다. 그 때 한 대학원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발표자의 주장대로라면 한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십수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그 많은 세월을 한문에 쏟아 붓는 것은 어리석고 하기 힘든 일이라는 뜻이었다. 이야말로 현재 우리나라 학문하는 사람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십수년이 아니라 일생을 던져도 부족하게 여기는 구도자적인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요즘 여기 저기서 불교사상에 관련된 연구소가 생겨나고 연구업적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비중 있게 쌓이기 위해서는
얼마 전 본 칼럼을 통해 ‘인터넷 구업’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으로 벌어지고 있는 음해성 발언이나 근거 없는 비방, 비난 행위의 과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다뤘던 글이었지요. 사람들은 흔히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는 사이버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그것도 가상의 공간에 들어가서 벌이는 행위인데 그것이 설사 잔혹한 살상이나 욕설, 악담, 그리고 음란한 행위라 하더라도 뭐 그렇게 큰 죄가 되겠느냐는 의식이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것 같습니다. 최근 인터넷에 익명의 비방성 글이 잇따라 올려지면서 불교계에서도 인터넷 윤리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개진되고 있는 중입니다. 더구나 글의 내용 중 상당수가 스님 등의 파계행위 등을 매우
조계종 교육원에서 펴내고 있는 교재와 준 교재급 책들의 출간을 놓고 최근 적지 않은 잡음이 일고 있다. 종단에서 정재를 들여 만든 교재인 만큼 권위 있는 강백들과 학승들이 모여 최상의 교재를 편찬해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스님들이 이를 모두 도맡아 내거나, 자신과 관련된 출판사에서 책을 펴내고 판권까지 소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원에서 몇 년째 간행하고 있는 불학총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불학총서는 종단의 승려교육에 필요한 준 교재를 편찬해 내는 곳으로 교육원 역경위원회 주관 아래 그 동안 5권의 책을 펴냈다. 지금까지 1억이 넘는 정재가 투입될 만큼 종단적인 역경불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각 분야별로 뛰어난 강백과 교수들도 많을텐데 지금까지 나온 5권 모두 A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동북아시아가 논쟁에 휩싸여 있다. 일본이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다시 미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작성한 2002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초고)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해방전쟁으로 서술했다.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한 것도 합법적이란다. 심지어 종군위안부는 없었고 위안부의 자발적인 매춘만 있었다는 망발까지 버젓이 실려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못해 물론 일본 역사교과서 개정은 아직 진행형이다. 교과서로 채택되기 이전에 일본 안팎의 비판 여론에 밀려 내용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중국의 강력한 경고를 받고 이미 일부 대목은 고쳐지기도 했다. 일본 안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지성인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공석중인 포교-교육원장을 선출해야 하는 중차대한 당면과제를 다음으로 미뤄 버린 지난 제150회 조계종 임시종회를 보며, 교계에는 종단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이 종단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의 의식에 무엇인가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포교와 교육은 여러 말을 할 것도 없이 종단의 가장 중요한 과제들입니다. 종단이 존립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수장을 별 문제의식 없이 공석으로 계속해 남겨 놓을 수도 있다는 발상은 종단을 운영하는 종단지도부의 의식구조에 큰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계종에 총무원이 있어야 할, 또 중앙종회가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포교를 활성화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불법을 전하고,
“경의선 복구 공사에 3000여명 병사들이 투입돼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신교 군 선교단체에서 약 1억 8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이들에 대한 전도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관할 군법당 법사님은 한번 위문에 수백 만원이 들어가는 자금을 마련 못해 위문 한번 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소연하더군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최근 군 포교에 전념하고 있는 한 군법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기자는 군승단이 해체 된지 한 달이 지났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또 군승단 해체의 파장이 군포교에 어떻게 악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새삼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사실 군승단만 해체되지 않았다면 경의선 복구 공사에 투입된 병사들을 위문하는
동국역경원에서 드디어 고려대장경을 완역하여 금년 3월에는 완간된다고 한다.인류사에서 가장 뛰어난 사상내용을 담고 있는 불교전적에 우리 후학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그러한 작업을 위하여 그일에 종사한 분들의 오랜 세월의 인고(忍苦)를 생각할 때 절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실제로 그러한 노력의 결실에 대한 평가는 무조건 박수만 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바로 생각보다 심각한 오역의 문제 때문이다. 오랫동안 원효저술의 번역에 미력하나마 몸 담아온 필자가 절실하게 문제로 여기고 있는 점은 오역 없는 번역을 하기 위해선 그 기초작업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비달마구사론』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구사론 전반에 대한 상당한 연구가
과거에 비중 있게 다루던 사안이었지만, 앞으론 가급적 다루지 않기로 한 기사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한가지를 거론해볼까 합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거나 전면적인 개각을 할 경우, 발탁된 내각의 각료 중에 불자가 너무 적어서 종교인구 대비로 견주어볼 때 종교형평 원칙을 벗어난 편향적 인사라는 유형의 기사 말이지요. 이런 기사는 불자들에게 피해의식만 길러줄 뿐이고, 더 급한 것은 불자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단행한 첫 조각에서도 이런 시비는 어김없이 재연됐습니다. 선거운동 중에는 그렇게 종교형평을 외치더니 이렇게 됐다는 식의 푸념이 교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요. 그 때 정부측이 보인 반응은 대개 이런 것이었습니다. ‘종교 편향적 인사를 한 게 아니다.
무릇 종교는 말 그대로 으뜸 되는 가르침이다. 본디 종(宗)으로 한역된 범어 또한 궁극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교의 가르침은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깨우침을 준다. 일할 권리 요구할 근거 일각에서는 불교가 새로운 문명의 반석이 될 것이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일찌기 아놀드 토인비가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현대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꼽은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곰비임비 늘어나고 있다. 자연은 물론 사회와 사람을 두루 황폐화시킨 현대 문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을 서양인들 스스로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빈익빈을
‘김태복’이란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김태복 장군’이라고 하면 기억을 되살리는데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분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한다면, 6년 전 교회(6개소)와 성당(1개소)만 있는 부대에 ‘호국 백일사’라는 법당을 지었다는 이유로 기독교 신자인 부하의 거짓된 진술로 의해 억울하게 군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불자장군입니다. 며칠 전 인사동의 한 막걸리 집에서 김 장군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월 1∼2차례 안부와 근황을 살펴온 터라 답답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불자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직접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 의연한 자세는 여전했지만, 눈가에 스치는 서운함, 또 고통스러움의 기운까지는 사단
교계청소년 단체들이 청소년 포교를 목적으로 앞다투어 만든 인터넷 사이트. 요즘 그 사이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든다. 사이트를 처음 개설할 때 가졌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교계 단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면 청소년들이 좀더 적극적인 신행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멀리 떨어져서도 다양한 신행 활동을 공유,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불교관련 지식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소년들이 당면한 신행문제 상담과 그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신행지도’도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청소년과 부산에 있는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