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흙 속에 묻어둔까아만 그 꽃씨는 어디로 가 버렸는가그 자리에 씨앗 대신꽃 한 송이 피어나진종일자릉자릉종을 울린다‘까아만 꽃씨’는 불성 상징‘꽃 한송이’는 화엄의 세계장식하고 있는 부처의 발현짧은 시에 깊은 철학 담아문정희(1947~현재 ) 시인은 고교시절부터 청소년 백일장을 휩쓴 문학천재 소녀로 시인학교인 동국대학교에 입학, 미당선생의 수제자가 되어 문명을 날린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문단의 최고 여류시인이다. 불연(佛緣)이 깊은 시인이나 불교 용어를 구사하여 쓴 불교적인 시는 드물다. 직접적인 불교 용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불교
큰 절이나/작은 절이나믿음은 하나큰 집에 사나/작은 집에 사나인간은 하나불법은 본래 평등 가르침크고 작음은 상대적일 뿐아상이 부처·중생 가르니아상 떠나면 그대로 부처인간은 평등하다. 생명체를 지닌 중생은 모두가 그 가치가 절대적이고 평등하다. 대붕(大鵬)의 경지에서 보면 모두가 천하일색(天下一色)이다. 불법은 모든 생명과 중생이 본래가 평등하다는 가르침이다. 크다 작다 하고 비교 분별하는 것은 인간의 관념이다. 본래 큰 것과 작은 것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큰 것은 작은 것을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클 뿐이다. 작은 것 또한 큰
무금선원에 앉아내가 나를 바라보니기는 벌레 한 마리몸을 폈다 오그렸다가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배설하고알을 슬기도 한다선원뜰 기는 벌레를 보고불현듯 자신의 모습 발견생명 위대함과 가치 깨쳐벌레도 동류중생임 설파조선 사림(士林)의 선비정신을 드러낸 사표로 동방사현인 정여창은 성종 때 성리학자이며 조선 성리학의 정통 계보를 계승한 김종직의 제자이다. 송나라 성리학의 태두인 정이천(程伊川)이 “농부(農夫)가 무더위와 한 겨울에 열심히 경작하여 내가 이 곡식을 먹고 공인(貢人)이 어렵게 기물(器物)을 만들어 내가 이를 사용하고, 군인(軍人)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온갖 역경 이겨낸 인동초인생은 기쁨과 슬픔 공존세상은 이해·화해로 발전도종환(1954~)의 ‘접시꽃 같은 당신’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는 한국의 중년 남자들을 울린 시이다. 가난을 극복하고 이제 간
사노맹 사건으로 검거돼무기징역 선고 후 쓴 시이데올로기에 걸림 없는자유 해탈인의 소망 담아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나의 행복은 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나의 불행은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 박노해(1957~)는 1984년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어 ‘얼굴 없는 노동
섭섭하게그러나아조 섭섭치는 말고좀 섭섭한 듯만 하게이별이게그러나아주 영 이별은 말고어디 내생에서라도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연꽃만나러 가는바람 아니라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엊그제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한두 철 전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인생은 사람과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별로써 끝난다.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의 품에서 자라고 성장해서 또 부모가 그랬듯이 새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끝내 늙고 병들어 자식의 손을 놓고 영영 이별을 함으로써 인생을 마감한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여름 산 같은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오후의 때가 오거든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더러는 앉고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청태(靑苔)라도 자욱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개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고통 속에서 헤매던 중생수행 통해 번뇌 털어내고깨달음 얻어 부처된 모습불교 연기사상 잘 드러내우리는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국화 옆에서’에서 불교의 연기사상을 만날 수 있다. 모든
나는 그대의 불전함/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배고픈 불전함/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천년이 걸린다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내 손이 먼저 무량수전 마룻바닥을 기어가듯/ 천년을 기어가/ 그대에게 적선의 손을 내미나니/ 뿌리치지 마시라 부디/ 무량수전이 어디 부석사에만 있었던가우리가 흔들리며 타고 가는 지하철/ 여기가 바로 무량수전 아니던가/ 나는 그대의 불전함/ 다 닳은 타이어 조각을 대고 꿈틀꿈틀 무릎도 없이/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가난한 불전함/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또 천년이 걸린다무량수전 거룩한 부처님을지하철의 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와 시론, 1952년)존재 의미는 마음 통해 소통서로 의미 부여했을 때 생성이름 부르며 관심·사랑주면단 하나뿐인 의미 있는 존재김춘수(1922~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 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쇠창살을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벽 속에/ 저벅거리는 교도관의 발자국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요/ 연등은 켜질까요/ 고개 가로저어/ 더 깊숙히 감방 속으로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득한 성자’오현 스님의 대표 작품으로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돼무상하고 허무한 인생이나하루 잘 산 이가 주인공 강조시인은 시로써 말하고 도인은 깨달음의 도력(道力)으로 평가한다. 구도자는 아침에 깨달음을 얻고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득한 성자’는 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