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여느 바닷가 마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풍경에 원자력발전소가 이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그 원전의 안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원전 측은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안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만 귀찮아할 뿐입니다. 또 다른 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래도 그게 있으니 우리 마을이 먹고 사는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지요. 그런 믿음에 재혁은 반론을 제기합니다. 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재혁이네는 눈앞에 보이
집안일 가운데 가장 하기 싫은 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이다. 내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때로 역겨울 때가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서 이웃집 쓰레기까지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되니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면 보기에 멀쩡한 빵이나 야채들이 들어있는 걸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그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저 빵을 만들기 위해 밀을 키우던 농부가 만약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것이다. 밀을 곱게 빻아서 이스트와 버터, 달걀, 물 등이 들어가 오븐에서
늦가을, 거리에 마른 낙엽 뒹구는 소리가 더욱 스산하다. 비가 몇 차례 오락가락하더니 나무는 이제 잎을 거의 다 떨구었다. 해의 길이는 점점 짧아져 마침내 밤이 가장 긴 시간에 이를 것이다. 24절기 가운데 스무 번째 절기인 소설이 지났다.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이라 부르는데 이 무렵에 첫눈이 내린다한들 눈발이 날리는 정도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소설은 앞으로 닥칠 추위에 대비해 홑바지를 솜바지로 바꾸고 김치를 담그는 때라는 걸 알려주는 절기였을 테다. 요즘이야 난방도 잘 되고 일 년 내내 푸릇한 야채가 나오는 시절이니 솜바지는
깊어가는 가을날이다. 물드는 단풍, 쌓이는 낙엽, 조금씩 추워지는 날씨,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우리 마음으로 가을은 깊어간다. 기분 좋게 싸하던 날씨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기온으로 바뀔 즈음, 단풍의 고운 빛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맞는 가을인데도 어느 날 문득 ‘언제 저렇게 물들었지’ 하고 느끼는 일 또한 해마다 되풀이한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떠밀려 살다가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나무는 그렇게 노랗고 빨갛게 변해 있다. 단풍과 낙엽은 가을의 자연현상과정 겪지 않으면 생존 어려워비움으로 충만함 이룰 수 있어때로는 훌훌
빈병을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우리 집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큰 아이는 재사용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얘기하며 반드시 재사용을 좋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이가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음료수 병에서 유리조각 등 이물질이 나오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했다.사용한 빈병 바로 세척하면미생물 번식 막을 수 있어재사용 반대의견 보완해야미래세대 삶 더 나아질 것식품안전처에 따르면 2013년 식품 이물 신고 건수는 6400여건에 이른다. 이 중 음료류에서 500건 가까이 이물이 발견됐다. 음료에서 발견된
어릴 적 방학이면 이웃집에서 빌려온 리어카에다 우리들이 봤던 지난 학기 교과서며 날짜 지난 신문, 빈병 등을 모아서 4남매가 고물상에 팔러가는 게 연중행사였다.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는 그렇게 집 안을 청소하시고 대신 고물상에 폐품들을 팔아서 생긴 수입을 우리 4명에게 고루 나눠주셨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활보하는 일이 점점 창피했지만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전자계산기는 고사하고 눈금을 쉽게 볼 수 있는 저울도 흔치 않았다. 추를 올려놓으며 양팔의 수평을 살펴 무게를 재는 저
‘기변’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난 글자가 있다. 그 뜻이 뭘까 궁금해 하다가 우연히 휴대폰 가게 앞에 붙여진 광고를 읽고서야 기기변경의 줄임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과장을 좀 보태어 자고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니까. 관건은 소비자가 ‘많이’ 사줘야 기업의 이윤이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런데 어지간한 가전제품은 소비자가 이미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해결은 의외로 쉽
많은 자동차들이 뒤엉키며 누런 흙탕물 속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80층이나 되는 초고층아파트로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 아파트에서 팔뚝만한 바닷물고기를 잡았다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어 웹에 올렸다. 어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이달 초에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강타한 태풍 차바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당연한 소리겠으나 제 삼자로 그런 풍경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그 일을 겪어본 사람의 심정은 천양지차다. 세간살이가 다 물에 잠기는 경험은 참으로 처참하다. 느닷없이 범람한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지났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폭염도 시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걸 보며 무상함을 느낀다. 아침, 저녁 일교차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벌써 단풍 소식이 산꼭대기에서 전해져온다. 봄에 떠들썩하던 벚꽃 행렬이 더운 여름 내내 주춤하다 단풍으로 그 행렬을 이어갈 것이다. 나들이 철이 되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보다 곳곳에 수북이 쌓일 쓰레기가 내게는 먼저 떠오른다. 페트병 하나 만드는 데막대한 양 석유 사용돼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하천 마름 현상도 심화걱정도 팔자라는 이들도 있겠으나 실상이 그렇다
갑자기 책꽂이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월요일 저녁 그 시각에 나는 책꽂이를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 이중 서가의 앞쪽 책꽂인지라 이동이 자유로우니 바람에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애써 생각을 그렇게 하려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그 진동이 지진일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 두 차례 지진을 경험했던 터였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든 외면하려 했지만 벌어진 현상 앞에서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는 곧 밝혀졌다. 흔들림이 멈춘 뒤 고갤 들어 창을 보니 문은 닫혀있었다. 사실 창문이 열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이토록 ‘간절하게’ 아름답다고 느끼던 때가 살면서 또 있었나 생각해본다. 미세먼지로 인해 연일 뿌옇게 흐리멍덩하던 하늘과, 창문을 꼭꼭 닫고 지내야 했던 경험들을 떠올려보면 요사이 이토록 청명한 하늘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해보면 선택지는 언제나 우리 손에 있었다. 파란 하늘아래서 살 것인지, 희뿌연 하늘 아래 갑갑한 마스크를 끼고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한.배기가스는 열섬현상 등 원인자동차 사망자도 연간 25만명공공 자전거 시스템의 도입은맑은 하늘과 공기 돌려받는 일일 년에 딱 두 번, 내가 살고 있는 서
재미있게 본 영화는 많지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영화는 드물다. 그 몇 안 되는 영화 가운데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가 있다. 실존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한창 유명하던 전성기에 돈과 명예의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걸어 내려왔다. 원하는 만큼 무대에 서서 연주할 수 있었지만 음악을 상업적으로 보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맘껏 작곡하고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음악회에 온 듯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에 푹 빠질 수 있었고,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