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선배스님에게 전화를 겁니다. 반가운 목소리입니다. 가벼운 안부를 여쭙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스님 절에 오늘 가서 하루 자도 될까요?” “언제든지 됩니다! 템플스테이 방이 있으니 오세요.” “고맙습니다. 오후에 가서 뵐게요” 그리고 이곳에 왔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안내받아서 왔는데 문을 여는 순간 휑한 빈방이 약간 낯설긴 하지만 텅 빈 마음 같기도 합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절 마당이 훤히 보입니다. 이불을 깔고 누워봅니다. 세상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인지 오히려 반갑기까
겨우내 얼어붙었던 앞뜰의 흙이 제법 따뜻해진 햇살에 한결 수월한 숨을 내쉰다. 제주의 청매홍매는 꽃을 피우고 한창 향기를 실어 내보내느라 바쁘다. 봄이 들어서는 3월 우리는 시끌벅적한 대선을 치렀고, 이제는 대립으로 쌓은 벽을 허물고 각자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호기롭게 말했으니 뒤끝이 온전한 덕망 있는 지도자로 내려오길 바라면서, 젊은 스님들 간 벌어진 논쟁을 조실스님이 위트 있게 해결하는 ‘고구마 천수경, 옥수수 천수경’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점심공양을 마친 스님 몇몇이 모
지난 2월 말 조계종 교육원에서 주관하는 ‘승가결사체 전법교화활동 인증서 수여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승가결사체란 스님들의 공적 모임을 말합니다. 스님들이 의기투합해 펼치는 활동을 종단 차원에서 인증하는 것은 물론 격려지원금도 전달됩니다. 저는 ‘천진불어린이합창단연합회’ 대표를 맡아 지난해에 이어 2022년에도 인증서를 받았습니다. 수여식에서는 각 단체의 사례발표도 있었습니다. 발표는 무척 흥미진진하였습니다. 한국불교는 대사회 공적 활동보다는 개인의 수행을 더 중시하는 풍조가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출가자가 참선 수행에 몰두하
SNS에서 명품을 자랑하던 금수저 인플루언서가 사실은 인생도 소장품도 모두 가짜였다는 뉴스가 연일 포털 상위에 노출됐다. 그 배후에 기획사까지 있다 한다. 그녀의 인생을 거짓으로 꾸며 한탕하려던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은데 마음 한쪽이 씁쓸해져 온다. 벌거숭이 임금님과 그 백성들이 안데르센 동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약이 심할 수 있지만 요즘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너도 나도 ‘남들보다 빠르게, 더 많이’가 삶의 기준이 된 듯 싶다. 속도와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자신의 보폭을
이른 시간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명상센터에 앉아 있습니다. 불도 켜고 블라인드도 올리고 따뜻한 물 한잔에 노트북을 켭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려고 잔잔한 음악도 켰습니다. 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여러분을 만날까요. 오늘은 늘 앉던 자리 반대편에 앉았습니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지만 보이는 것, 느껴지는 건 전혀 다릅니다. 입장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10여 년 전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하신 분이 우리 절을 방문하신 적 있습니다. 그분에게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절의 분위기를 좋게 할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그것
1989년 증엄스님의 재가제자가 제공한 집에서 대만유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자제공덕회의 공익활동실황을 보고 들을 기회가 꽤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놀라웠고 부러웠다.하루는 자제공덕회 소식지에서 두 팔, 두 다리가 없는 소년이 화련 자제병원 병상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이 보다 더 비참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참을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속 병원자원봉사자와 소년의 표정에는 어색함이 없었고 그들의 평범한 일상사를 들려주는 듯 평화로움에 나는 그들에게서 한참을 더 벗어나지 못했다.며칠이 지나 자제공덕회 위원으로부터 사진
2029년 4월14일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날 아포피스라는 소행성이 지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2.7%라고 합니다. 지름 400m의 소행성인 아포피스와 충돌하면 히로시마 원폭의 8만 배나 되는 폭발이 일어난다고 하니 인류에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행성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인류는 무방비 상태의 충돌을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우주의 원리나 상태를 다 보지 못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태양계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10년에
드디어 7일 간의 미국 연수가 끝났다. 이제 휴가다! 도대체 몇 년 만의 일인가. 휴가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하늘이 약간 흐렸지만, 무사히 교육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여행에 대한 기대로 이미 내적 흥분은 최고조였다. 약간의 사치를 부려 애틀란타-보스턴행 티켓은 미리 업그레이드 해뒀다. 어느 순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가끔 천둥 번개도 쳤지만, 길에서 마주친 동료들은 날이 곧 좋아질 거라 말했다.오후 5시, 공항 스피커에서 날씨로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후 7시, 비행기 탑승은 가능하지만 업그레이드 좌석 이
법보신문 독자분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됩니다. 다시 글을 쓰게 되니 그동안 잘 계셨는지 안부도 궁금합니다. 원고 청탁을 받고 어떤 내용으로 만나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년 전에는 아직 쓰지 못한 명상에 관계된 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절 식구들에게도 용기 있게 말하고 시간을 달라며 떠벌렸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3월부터 은사스님을 모시게 되면서 그 꿈은 저 하늘의 새처럼 다 날아갔습니다. 계획은 항상 변수가 따르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냥 접으려
세상은 늘 시끄러움 속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비록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지만 우리는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면서 현재를 살아나간다. 누구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시끄럽고 질서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즉 의무는 다하되 권리는 모자라듯 행사해야 자타(自他)가 모두 평안하게 된다.언제부턴가 우리는 물질적 손익 계산을 선두에 두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풍부한 자원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을 부자라 하고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즉 물질적인 손익 계산이 지혜로운 삶보다 우선시된 것이다. 반면
‘묘법연화경’의 ‘제바달다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서술돼 있다. 부처님은 전생에 한 나라의 왕이었는데 법을 위해 왕의 자리를 선위하고는 스승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과실을 따고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게으르지 않고 섬기기를 천년이 넘도록 했다고 한다. 구도자가 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주신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런 발심을 실천하고 있을까.모실만한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법당에 부처님과 경전 그리고 절에 오가는 모든 이들이 스승이 될 수 있다.
벌써 올해도 마지막 달까지 와버렸다. 참으로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시간은 나이의 숫자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1년이 이렇듯 빨리 흘러갔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10년의 세월이 그림자같이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처음 ‘세심청심’ 원고를 청탁받고 이름이 너무 좋았다. 혼자서 ‘씻는 마음 깨끗한 마음’이라고 어린 시절 표어같이 이름 지어놓고 항상 즐거이 글을 쓴 것 같다. 때로는 마감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글을 쓰기도 했지만 때로는 마음 속에서 울려오는 이야기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담아 독자들에게 내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