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고찰 밀양 부은사 회주 태우당 혜명 스님의 영결식이 팔봉문도장으로 엄수됐다. 태우당 혜명 대종사 팔봉문도회는 4월10일 밀양 부은사 경내에서 ‘태우당 혜명 대종사 영결식’을 봉행했다. 이날 영결 법석은 태우 스님이 평생 가람 중창과 전법도생에 매진한 부은사에서 진행돼 의미를 더했다. 이 자리에는 팔봉문도회 회장 구하 스님, 태고종 경남교구 종무원장 황봉 스님, 성봉문도회 및 태우문도회 스님을 비롯해 제방의 대덕 스님들이 두루 동참했다. 또 유가족과 부은사 신도들이 참석해 스님의 생전 가르침을 기렸으며 밀양불교합창단이 조가를 음성
영축총림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장 원묵당 도오 대선사가 4월 1일 오후 3시 극락암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납 50년, 세수 74세. 도오 스님은 1973년 극락암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 후 평생 운수 납자로 참선 수행에 진력했다. 극락암 호국선원장을 맡아 수행자들을 제접하며 선풍 진작에 앞장섰다. 스님의 영결식은 4월 3일 통도사 경봉문도장으로 극락암에서 엄수됐다. 스님의 49재는 5월 19일 49재 막재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통도사 극락암에서 봉행된다.부산지사=박동범 지사장 [1724호 / 2024년 4월 10
가락고찰 경남 밀양 부은사 회주 태우당 혜명 스님이 4월5일 세납 92세, 법납 61세로 원적에 들었다.태우 스님은 조계종 고암 스님의 법상좌이며 태고종 성봉 스님의 은법상좌다. 8000일 기도 원력으로 지난 2000년 가락고찰 부은사를 중창건하며 사격을 일신하고 전통사찰 제112호로 등록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이기도 한 스님은 밀양사암연합회장을 두 차례 지내며 지역 불교의 화합과 발전에도 매진했다. 태고종 원로위원, 태고종 경남종무원장, 팔봉문도회장을 역임했다. 부은사 주지 지원 스님을 비롯해 은법상좌 스님이 23명
검찰총장 출신 대선 후보 윤석열이 가수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부르는 것을 보고, 저거 나도 좋아하는 노래인 데라고 맞장구쳤던 기억이 난다. 그는 노래를 선곡하게 된 배경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언어 구사력까지 발휘했다. 순간 시큼털털한 감동이 밀려왔다. 실제로 이승철은 영결식장에서 이 노래를 처연하고 담담하게 읊조리며 할 말이 많았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토닥토닥 꼭꼭 여미어주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대통령 윤석열의 언사와 몸짓은 거칠고 무례하다. 도리도리까지는 뭐 어쩔 수 없다하더라
“스님! 화두(話頭) 들리십니까?”“응, 응…”스님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셨다. 내내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는 조용히 다시 묻는다.“스님! 지금도 성성(惺惺) 하십니까?”“무(無)라, 무라, 무라!”1966년 10월 15일 오전 10시 정각. 효봉 스님은 그렇게 저 언덕 넘어 피안으로 가셨다. 그것도 앉은 채로!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은 1925년 38세의 나이에 석두(石頭, 1982~1954)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당시로서는 ‘늦깎이’였다. 그래서인지 엉덩이 살이 헐고 진물이 흘러나와 ‘살점이 좌복에 달라붙을 정도
“청년 전법에 있어 군포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회인까지 연결하는 놓쳐선 안 될 불사입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접근할 전담 TF팀을 조직해 군포교 활성화에 진력하겠습니다.”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1월 5일 중앙신도회를 비롯한 지역 신도 대표들과의 신년하례 자리에서 전략적인 군포교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진우 스님은 “어제(1월 4일) 군종교구장 법원 스님과 총무부장 성화 스님에게 전담 TF팀 구성을 주문했다”며 “복무 후 복학하는 대학생·청년들에게 불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전법의 파도를 계속 일으키겠다”고 밝혔다.스님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이후 2009년 제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퇴임 때까지 역대 총무원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10개월에도 미치지 못했다. 43년의 세월 동안 총무원장의 취임과 퇴임이 무려 서른두 번이나 반복된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취임 1년도 안 돼 총무원장이 물러난 일도 17차례나 있었다. 4년 임기를 채운 총무원장은 의현, 월주, 지관 스님 단 3명뿐이었다.총무원장의 이같은 잦은 교체는 불교계의 지속적인 갈등과 혼란 양상을 보여준다. 종헌·종법상 임기가 보장돼 있는 총무원장이 그 임기를 다하지 못하는
‘생사가 없다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 구나.’(자승 스님 열반송)12월3일, 겨울바람 시린 서울 조계사 마당에서 봉행된 자승 스님의 영결식장엔 안타까움과 무거운 혼란이 교차했다. 자승 스님의 마지막 모습이 던진 충격이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 컸기 때문이다. 11월29일 늦은 밤, 원적 소식이 알려지고 조계사에 분향소가 차려지는 동안 스님의 행적이 하나둘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성 칠장사 CCTV에는 입적 당일 자승 스님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손수 차량을 운전해 오후 3
해봉당(海峰堂) 자승(慈乘) 대종사(大宗師)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을 접한 심정은 고통스럽고 비통하다. 사부대중의 크나큰 의지처이자 이 시대의 큰 스승이 한순간에 떠났으니 그 슬픔과 허전함은 말할 수 없이 깊고 크다. 자승 대종사가 걸어온 여정에서 우리는 스님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 고뇌가 한국불교의 위상을 격상시켰음을 또한 새삼 알 수 있다. 제33·34대 총무원장(2009∼2017)에 취임하며 내 건 두 개의 슬로건은 ‘소통과 화합을 통한 불교중흥’ ‘자비와 화쟁으로 이웃과 함께’였는데 과감한 결단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목적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다비식이 12월3일 오후 출가본사인 조계종 제2교구본사 화성 용주사 연화대에서 엄수됐다.화성 용주사에는 이른 아침부터 자승 대종사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찾아온 5만여 사부대중의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로 가득했다. 서울 조계사에서 영결식을 마친 자승 스님의 법구가 이날 오후 용주사에 도착하자 염불소리는 이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스님의 법구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오색 만장의 인도를 받으며 용주사에서 노제를 지낸 뒤 연화대에 올랐다. 문도스님들의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애타는 외침을
대한불교조계종 33·34대 총무원장으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는 제2의 전도선언으로 한국불교 중흥의 대전기를 마련한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영결식이 12월3일 서울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8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결사에서 “천축국 40여일에 걸친 가행정진길에는 아직도 발자국이 그대로 지워지지 않았고, 위례 신도시 상월선원에서 100일동안 앉았던 좌복에는 여전히 따스한 기운이 식지 않았으며, 해동의 삼보사찰을 이어가며 밟았던 순례길에서 떨어뜨린 땀방울은 지금도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영결식이 12월3일 오전 10시로 예정돼있는 주말인 2일에도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내일 봉행되는 영결식을 앞두고 스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기 위한 일반인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오전 9시 지상욱 국민의힘 전국회의원과 서울시의원들과 중구 구의원들의 조문을 시작으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강창일 전 주일본대사 및 전 국회정각회장,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문헌 종로구청장, 김진태 강원도지사,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황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2월2일 서울 조계사 해봉당 자승 대종사 분향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조문록에 “중생의 행복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쳐 주신 큰 스님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추모의 글을 남겼다.조문 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한 시간여에 걸쳐 차담을 가졌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대통령 내외와 정부관계자들의 관심과 조의 표명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자승 대종사께서 남기신 유지를 잘 받들어 한국불교의 안정과 화합을 빈틈없이 잘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승 스님이
대한불교조계종 제33대·제34대 총무원장 해봉당 자승 대종사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유인촌 문화관광부장관은 12월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윤석열 대통령이 추서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영전에 헌정했다. 이 자리에는 장의위원장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도 함께했다.국민훈장 무궁화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자에게 수여하는 1급 국민훈장이다. 자승 대종사는 한국불교의 안정과 화합으로 전통문화 창달에 기여하
11월29일 입적한 조계종 전 총무원장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영결식이 12월3일 서울 조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장으로 엄수된다.조계종 총무원은 11월30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자승 스님의 장례와 관련해 언론브리핑을 진행하고 이같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자승 스님의 장례는 조계종 ‘종단 장례에 관한 령’에 따라 5일장으로 진행되며 영결식은 12월3일 오전10시 서울 조계사에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장의위원장으로 종단장으로 엄수된다. 또 다비는 이날 오후 자승 스님의 재적본사인 제2교구본사 화성 용주사에서
한국·스리랑카문화사회복지재단 감사 난다 라타나 스님(Rev Inamaluwe Nandaratana Thero)이 11월10일 새벽(현지시간) 스리랑카에서 입적했다. 세납 58세.1965년생인 고인은 스리랑카 최대 종파 시암종 소속 승려로 1976년 패엽경으로 유명한 스리랑카 중부 마텔리주 알루비하라 사원에서 출가했다. 패엽경 보존과 번역에 관심을 둔 난곡사 태허 스님의 제안으로 1994년 한국으로 유학와 2006년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업에 힘쓰는 틈틈이 국내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스리랑카
“오늘 저희들은 혜암 대종사께서 수행 정진하신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오며 신심과 원력으로 용맹정진하여 큰 깨달음을 이루어 널리 고해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겠습니다.”가을이 내려앉은 희양산 봉암사는 붉고 노란 단풍의 빛깔이 계곡을 적시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포행길은 고요하면서도 상쾌했다. 그 길을 묵묵히 오른 혜암 대종사 수행처 순례단의 사부대중은 큰스님들의 결사 정신을 새기며 한국불교의 중흥을 발원했다.사단법인 혜암선사문화진흥회(이사장 성법 스님)는 10월25일 문경 봉암사(주지 진범 스님)에서 ‘혜암당 성관 대종사 탄신
‘이제 돌이켜보건대 23년 동안 오직 한 길만의 불교언론에의 길이 당신의 생애를 다한 길이었습니다. 어찌 그렇게도 심심산천에서 금방 내려온 순정입니까? 어찌 그렇게도 깊은 땅속에서 솟아난 단단한 뿌리를 가진 마을의 당산 나무였습니까? 그런 당신의 넉넉한 시절 인연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합니까? 나도 그렇고 우리 불교언론의 젊은 식구들 모두, 당신의 큰 눈동자 하나씩 받들어 눈물 가득히 서천의 여래 곁에 노니는 당신을 오래도록 추모할 따름입니다. 부디 잘 가소서. 선 국장 영가이시여!’(고은 시인의 추도사 중)1993년 10월29일 서
태고종 전 종정 지허당 지용 대종사가 10월2일 원적에 들었다. 법랍 67세 세수 83세.지허 대종사는 일평생 수행으로 일관해온 선지식이다. 태고종단 내홍 이후 상처를 봉합할 수 있는 스승으로 꼽혀 2021년 제20세 종정에 추대됐다. “태고조사의 수행과 확철대오의 종지를 철저히 믿고 행하라”고 강조한 지허 대종사는 2022년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할 때까지 종단 화합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정신적 지주이자 존경받는 스승으로 역할을 다했다.1941년에 태어난 스님은 15살이던 1955년 친구의 죽음에서 찾아온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
“대종사님, 불 들어갑니다. 속환사바 하소서!”지허당 지용 대종사의 다비장에 화염이 치솟자 텅 비어있던 하늘은 이내 잿빛 연기로 물들었다. 문중 스님들은 대종사를 기리며 경을 외웠고 대중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울려 퍼지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더니 불길이 힘차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평생 수행으로 일관하며 종도들을 이끈 태고종 전 종정 지허당 지용 대종사가 10월8일 조계산 지수화풍으로 돌아갔다.태고총림 순천 선암사 일원에서 펼쳐진 영결식 및 다비식에는 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과 원로의장 도광 스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