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익조·목인박물관. 마음은 수만 갈래로 부서진다. 기뻤다가 슬프고, 좋았다가 밉다. 화났다가 즐겁다. 마음 거울에 비친 세속 인연들이 만들어낸 감정들이다. 인연 사라지면 가라앉는 감정들이지만 웃고 눈물 흘린다. 부질없는 감정이란 말, 맞다. 중생심, 맞다. 그러나 우리네 마음‘들’이다. 세속 인연들에 치어 그렇게 살아가야만 했다. 새는 온몸으로 난다. 날개로 나는 게 아니다. 머리, 꼬리 깃, 날개, 몸통, 발 모두 공기에 의지하며 하늘을 가른다. 그렇게 절절히 날아야만 했다. 본래면목을 찾아야 하는 중생들도 온 마음 감싸 안고 웃고 울며 살아간다. 절절히. 몸 하나에 두 머리를 달고 살아가는 새가 있다. 공명조(共命鳥
▲무게. 이철수 목판화가 作. 전국 시내 곳곳에서 참새보다 흔하다. 늘어나는 개체수로 2009년 해로운 야생동물로 지정돼 포획할 수 있는 새로 전락했다. 그래도 ‘평화의 상징’이었다. 비둘기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그러나 불교 안에서 비둘기는 모든 중생들 생명 무게가 같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극명히 알려주는 존재다. ‘육도집경’이 전하는 비둘기 얘기는 불교 언저리나 생명, 생태운동을 하는 이들 모두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인도 시비왕이 보시행을 닦고 있었다. 비수천과 제석천은 그를 시험하고자 했다. 비수천은 비둘기로, 제석천은 매로 몸을 바꿨다. 굶주린 매는 있는 힘 다 짜내 비둘기를 쫓았고, 비둘기는 시
▲제등행렬 공작등.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한 시대를 풍미한 김수희의 ‘애모’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한 없이 작아지고 침묵하며 눈물 흘리는 심정을 노래했다. 여기 사랑 아닌 살 떨리는 침묵도 있다. 역시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왜일까. 천적이다. 그대 앞에선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맹독 품은 뱀도 공작새 앞에선 먹잇감일 뿐이다. 공작새가 인도에선 흔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도 산치에 남아 있는 대탑이나 불교 미술품에 공작 문양들이 많다. 산치 제1탑 북문에도 공작새 부조가 있다. 인도 신화에서는 뱀 잡아먹는 새로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가루다의 깃털 하나가 공작새가
▲법주사 쌍사자석등. “흡사 가정에서 기르는 금빛 털을 지닌 삽살개처럼 생겼다. 여러 짐승이 이를 보면 무서워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 기가 질리기 때문이다.” 박지원(1737~1805)이 ‘열하일기’에서 표현한 사자의 위용이다. 옛 사람들도 사자를 무릇 짐승의 왕이라 일컬었다. 절대적인 힘과 위엄을 갖춘 동물로 생각한 게다. 사실 사자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울릉도와 사자’ 얘기가 ‘삼국사기’에 있어 삼국시대로 추정할 뿐이다. 원래 사자 명칭은 산예(猊)라고 한다. 사자 ‘산()’자에 사자 ‘예(猊)’자를 쓴다. 한자 ‘예(猊)’가 부처가 앉는 자리나 고승이 앉는 자리란 의미가 있다는 점이 흥
▲광주 문빈정사 벽화. 비울수록 목소린 청아하다. 배불러도 두 눈 번뜩인다. 잠 잘 때도 눈 감지 않는다. 배고프면 기운 빠지고 배부르면 눈 감기는 우리네 모습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전통가구 쾌, 반닫이, 뒤주 자물통 모양으로 인기다. 눈 감지 않는 보물 감시자 물고기다. 물고기는 절 이름에 들어가기도 한다. ‘삼국유사’ 제4권 제5 의해편엔 이런 얘기가 전한다. 어느 날 혜공 스님과 원효 스님이 시내를 따라가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큰일(?)을 봤다. 혜공 스님이 장난쳤다. “원효 스님이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일 거요.” 좀 각색하면 더 흥미롭다. 두 스님이 법력 내기를 했다. 산채로 물고기를 삼켜 큰일을 본 뒤 살아있는
▲오대산 적멸보궁 거북. 삶 자체가 수륙양생이다. 단단한 등껍질은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주술가들이 예부터 눈여겨봤던 이유다. 등껍질을 태워 갈라지는 모양으로 점을 쳐 하늘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귀복(龜卜)’이다. 여기서 ‘구복’과 ‘거붑’을 거쳐 ‘거북’이 탄생한 것이다. 중국에서 거북은 용과 봉황, 기린과 함께 4가지 영물 중 하나로 숭배됐다. 4가지 방위 중 북쪽을 지키는 수호신 ‘현무’가 바로 거북이다. 중국 남쪽 장강 중류 지방에 있던 초나라의 가사 ‘초사’ 연유편에는 현무를 설명하는 기록이 전한다. “암수가 한 몸이고 거북과 뱀이 모인 것을 이른다. 북방에 위치하므로 현(玄)이라 하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武
▲오대산 적멸보궁 두루미. 밤과 낮으로 딱 12번 운다. 깃털은 어찌나 흰지 진흙탕에서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암수는 160년에 만나 눈만 마주치면 잉태한다. 1600년 동안 먹지도 않는다. 물만 마신다. 날개 달린 동물 우두머리고 선인이 타고 다닌다. 2000년을 산다해 장수를 상징하고 고고함과 청초함에 높은 관직을 뜻하기도 한다. ‘상학경기(相鶴經記)’가 서술한 동물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에도 이 새 그림이 있다. 두루미다. 보통 학이라 불린다. 두루미는 줄곧 옛 얘기에서 학으로 등장한다. 황새나 두루미, 백로 등을 두루뭉술하게 학으로 말해 왔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두루미를 고고하고 도를 통달한 그 무엇으로 여겼다. 학을
▲오대산 상원사 고양이 석상. 요즘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슈렉보다 유명한 캐릭터가 떴다. 장화 신은 고양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애교가 스크린에 비출 때면 신음 섞인 탄성이 객석을 장악한다. 소위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동물이다. 장화와 모자 그리고 칼로 무장한 서양 고양이와 달리 불심 챙긴 고양이도 있다. SBS 동물농장에서 소개한 상주 용흥사 ‘해탈이’다. 법당 안에서 오매불망 부처님만 바라보고 꼼짝 않는 해탈이 모습이 제작진 카메라에 잡혔고, 놀라운 사실은 꽁치 조림을 마다하는 등 육식을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아 ‘4년 째 묵언수행’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했다. 사연인 즉 용흥사 인근에서 상처 입고 떨고 있던 새끼
▲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의 저팔계 잡상. 지글지글 굽던 ‘돼지고기’는 하늘에선 제독이었다. 10만 수군을 이끌던 천봉원수(天蓬元帥)였다. 천봉원수는 아홉 날 쇠스랑 하나로 무력을 뽐내며 하늘 수군을 수족처럼 부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늘과 고추에 된장을 찍어 쌈을 싸 입으로 가져가던 ‘돼지고기’가 사실 핏줄 선 팔뚝을 자랑하며 권력을 휘두르던 존재였다는 거다. 어쩌다 ‘고기’로 전락했을까. 먼저 돼지로 환생한 이유를 ‘서유기’가 소상히 밝히고 있다. 평소 색을 밝히는 게 흠이었다. 천봉원수가 술자리서 선녀를 희롱했고, 하늘에서 쫓겨난 원수는 돼지로 몸을 바꿨다. 자업자득인 게다. 다행히 인생역전 기회는 왔다. 관세음보살에
▲삼목구. 가희민화박물관 소장. 유명인사다. 친근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주인을 모시는 충성심도 깊다. 무자 화두 주인공 개 얘기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없다(無).” 선가(禪家)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심심치 않게 들어본 무문관 제1칙 화두다. 조주구자(趙州狗子) 또는 조주무자(趙州無子)로 불리는 이 화두는 번뇌의 씨앗을 송두리째 뽑는 지름길로 알려져 왔다. 하필 개가 화두 주인공일까. 사람들 지척에 늘 개가 있어서다. 개는 전통적으로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고 집안 행복을 수호하는 영물로 여겨졌다. ‘동국세시기’에는 새해가 되면 부적으로 개 그림을 그려 곳간 문에 붙였다는 풍습이 전한다. 1700년 동안 한국
▲조계사 법당 문에 새겨진 닭. 보살은 자비롭고 자애로운 이미지가 강하다. 정설처럼 굳어진 얘기다. 헌데 성미가 급하기도 했다.‘천수경’에는 “나무 군다리보살 마하살”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군다리보살은 인간 마음 속 마귀를 잡아 불성을 지키는 신장과 같다. 별나라마다 혼란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무찌르고, 선을 지키는 보살이다. 이 보살이 바로 닭신이다. 군다리보살이 왜 닭과 인연이 닿을까. 닭은 누구보다 먼저 새벽을 맞이하고 울음을 터트려 인간에게 알려준다. 이런 까닭에 신의 새로 여겨졌다. 그런데 깜빡 존다면 어떨까. ‘본생경’에는 아침마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수행하는 500비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닭 때문에 고생한
▲강화 전등사 대웅전의 벌거벗은 여인상. ‘왕의 남자’란 영화는 10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정조와 광대 그리고 광대와 광대 사이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외줄타기 했던 ‘왕의 남자’는 개봉했던 그 해 그렇게 대박 났다. ‘왕의 동물’ 원숭이는 왕에게 백성을 섬기라는 충고를 톡톡히 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명백히 기록된 얘기다. 성조 8년(1477) 11월4일,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을 편찬한 문신 손비장이 왕에게 아뢨다. “어제 사복시에서 흙집을 지어 원숭이를 기르자고 청하고, 또 옷을 줘 입히자고 청했는데, 신의 생각으로는 원숭이는 곧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니
▲봉선군모천지우도. 낮에도 밤에도 느낄 수 있는 눈과 귀가 있었다. 나쁜 짓을 하면 자신에게 들킨다고 경고했다. 인도로 불전을 구하러가는 현장 법사를 수행하는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격인 원숭이가 그랬다. 손오공이라는 이 원숭이는 근두운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머리를 옥죄는 띠 대신 헬멧을 썼고 늘어나는 여의봉 대신 쌍절곤을 휘둘렀다. 머털도사가 머리카락을 뽑아 도술을 부리는 것처럼 털을 뽑아 신통력을 부렸고 약자를 도왔다. 명나라 때 오승은이 썼다는 ‘서유기’를 각색한 ‘날아라 슈퍼보드’ 얘기다. 어째서 원숭이가 신통방통한 능력을 가졌을까. 두말 하면 입 아프다. 지혜롭고 총명하기 때문이다. 동작도 재빠르다. 나무 탈 땐
맛있는 음식의 유혹은 견디기 힘들다. 배가 주릴 때는 물론이고 음식 냄새나 빛깔에 취하면 절로 배가 고파진다. 배가 부른데도 눈과 코를 사로잡은 음식에 마음을 뺏기면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찍이 부처님은 양을 비유로 들어 무명에 사로잡혀 쉽게 유혹에 빠진 경솔한 행동을 경계했다. ‘본생경’은 풀에 묻은 꿀의 달콤함을 탐내다가 산지기에게 덜미를 잡힌 양 얘기를 전한다. 이를 본 왕은 ‘조심성 많은 양이 적은 양의 꿀 때문에 잡혔다’고 생각하며 맛에 집착하는 욕심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잡보장경’에서는 성실한 여종 몰래 보리 한 말을 먹어치운 숫양 얘기가 나온다. 여종은 틈만 나면 양을 회초리로 때렸고 양도 지지 않았다. 그냥 들이 받곤 했다. 어느 날 양은 여종이 회초리를 들지 않은 모습을 보자 그
▲인달라대장 오신. 관세음보살은 자비 화신이다. 분노는 가당치도 않다. 헌데 분노에 치를 떠는 관세음보살 화신이 있다. 제도하기 어려운 중생의 번뇌를 부수기 위해 분노 띤 얼굴을 하고 있다. 말 머리를 한 관세음보살이다. 다른 이름은 마두관음(馬頭觀音)이다. 관음보살은 천(天),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등 6도를 돌며 중생을 교화한다. 6도에서 중생을 제도할 때 관음보살은 성관음, 천수관음, 십일면관음, 여의륜관음 등으로 현신한다. 보살이 마두관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축생도다. 마두관음은 사람 몸에 말 머리를 하고 한 손엔 창을 들고 있다. 분노하고 있는 표정 때문인지
▲상사뱀 이야기가 전해지는 청평사 공주탑. 다소 뚱뚱한 체형을 가진 개그우먼이 캐릭터 ‘출산드라’를 연기하며 다산의 상징이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와 “날씬한 것들은 가라”고 외치며 S라인 몸매에 열광하던 사회를 풍자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매끈한 몸을 자랑하고 여러 개 알을 낳는 뱀도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허나 갈라진 혀와 독, 차가운 몸 그리고 징그러운 모습이 신과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탓일까. 뱀은 애욕과 복수 화신이나 한 서린 동물로 비유되곤 한다. ‘용재총화’엔 스님이 죽어 뱀으로 환생한 설화가 있다. 진광사 스님이 시골여인을 아내로 삼고 밤이면
▲통도사 금강계단.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팔부중은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다. 여기에 부모 속을 썩이는 자식, 애물단지가 있다. 입에서 불까지 내뿜는다. 게다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바로 용이다. 용이 왜 애물단지(?)일까. 아홉 마리 용 설화가 얽힌 사찰 이야기가 흥미롭다. 민오 스님이 1705년(숙종 31)에 엮어 간행한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용이 등장한다.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 있어 불보(佛寶)사찰로 유명하다. 이 탑을 중심으로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있다. 공교롭게도 계단을 조성한 곳은 용이 살던 연못이었다고 하
▲제등행렬 단골인 용형상 등.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상상 그 이상의 상상.” 이런 말들이 아깝지 않은 해괴망측(?)하고 무시무시한 동물이 있다. 머린 낙타와 비슷하고 눈은 토끼처럼 빨갛다. 귀는 소귀에 목덜미는 뱀과 같고 잉어 비늘을 몸에 둘렀다. 발은 호랑이 발에 발톱은 매 발톱이다. 거기에 머리에 달린 뿔은 사슴뿔을 닮았다. 온갖 동물 잡탕이다. 머리에 온통 뱀을 두르고 눈만 봐도 돌로 굳는다는 메두사보다 끔찍하지 않은가. 이 말도 안 되는 동물은 중국 고서 ‘광아’에서 표현한 용이다. 용은 희귀한 모습인 만큼 온갖 신통력을 부린다. 비를 내리게 하거나 구름
▲ 순천 선암사 토끼조각.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사람은 부처님이다? 이런 발칙한 상상을 감히 할 수 있을까? 1969년 7월20일 미국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이는 닐 암스트롱이다. 그런데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가 부처님이라면 동네 개가 웃을까? 아니다. 흥미롭다. 토끼는 부처님 전생이었다. ‘본생경’에는 ‘토끼의 공양’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울창한 숲엔 토끼와 원숭이, 들개, 수달이 살았다. 그 중 토끼는 가장 품성이 너그러워 세 친구에게 진리를 가르치곤 했다.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지키며 포살을 행해야 한다.” 어느 날 토끼는 달을 살피다가 다음 날이 포살(布薩)임을 알고 친구들에게 계를
▲청량사지 7층 석탑. 다짜고짜 호랑이는 스님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기 일쑤였다. 목에 걸린 비녀를 빼달라는 거다. 어지간히 여인네들을 취한 모양이다. 그런데 꼭 처녀를 스님에게 물어다 놓았다. 스님을 유혹(?)하는 호랑이일까. 얘기는 기묘하게도 사찰 창건 설화와 얽힌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멀지 않은 옛날이다. 신라시대 두운 대사가 소백산 기슭 동굴에서 수행할 때다. 가끔 호랑이가 물끄러미 보다 가곤 했다. 하루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낑낑댔다. 목에서 비녀를 빼주고 나니 척! 처녀를 스님 앞에 데려왔다. 스님은 아픈 처녀를 지극정성 보살폈다. 완쾌한 처녀가 어찌 가만히 있을까. 냉큼 절을 보시했다. 은혜를 갚아 기